제54회 조선일보 주최 동인문학상 수상자로 부산의 작가 정영선의 소설 <아무것도 아닌 빛>이 선정되어 12월 8일 시상식이 있었다.부산에선 지역작가가 받은 흔치 않은 경우로 지역의 영광이란 평가도 있었으나 한편으론 작가가 요산문학상을 수상한바 있고 현재 요산문학관에 관계하고 있어 요산 정신과 맞지않는 다는 일부 평가도 있어 작가 당사자의 곤혹스러움은 물론 지역으로서도 묘한 갈등의 양상을 빚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동인문학상은 작가 김동인의 업적을 기리는 상으로 54회가 보여주듯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작가회의는 김동인의 친일행적을 문제삼아 문학상 시상을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왔다. 시상식 하루전에 발표된 부산작가회의 성명을 통해 그 진상의 일면에 다가가 보기로 한다./오하룡
<부산작가회의 성명서>
요산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부산작가회의 회원이면서 2018년 요산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2023년 동인문학상을 받게 된다. 2022년 요산김정한문학축전의 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더욱이 현재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의 이사로서, 요산문화연구소의 임원으로서 활동하는 작가이기에 동인문학상 수상 소식은 모두를 아연하게 하고 의아하게 만들었다. 모두 망연자실, 당혹스럽고 동료들조차 쉽게 축하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왜냐하면 요산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해 ‘저항’과 ‘협력’이라는 정반대의 지향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산 김정한의 문학 정신은 부산의 자긍심이었다. 부산문학의 짧은 근현대사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부산이 자랑스럽게 내세울만한 것이 요산 정신이었다. 당연히 요산문학상도 부산의 긍지였다. 요산정신을 기리는 그 상은 최소한 친일문학의 대표인 동인문학상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자랑스러운 상이었다. 요산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은 요산의 문학혼을 본받고 요산 정신을 고양하겠다는 서원에 다름 아닌 것인데, 요산 문학상 수상 작가가 내선일체를 통한 황민화에 앞장선 반민족 문학인을 기리는 친일 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은 문학적 모순일 수밖에 없다.
김동인은 한국작가회의에서 발표한 친일 문인 42명의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고,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도 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문학 분야 친일반민족행위자’ 31명의 명단에도 수록되었다. 그의 친일은 살기 위한 단순한 협력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일본에 동화되고 침략 정책에 앞장섰다. 조선의 청년과 학생들을 전쟁 수행을 위한 도구로 동원, 천황에게 충성할 것을 독려하며 조선인 학도들에게 황군이 되라고 역설하는 건 섬뜩할 정도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매일신보』와 『국민문학』 등에 친일 사상이 담긴 글을 게재하고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소설을 발표했다. 두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1938년 매일신보에 "국기란 멀리서라도 얼른 알아볼 수가 있고 기억하기 쉽고 그리기 쉽고, 그리고도 국체(國體)의 위의(威儀)를 넉넉히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서 일장기는 가장 우수하다."라고 썼다. 또 1944년 조선인 학병이 처음 입영하게 되자 “내 몸은 이제부터는 내 것이 아니요, 또는 가족의 것도 아니요, 황공하옵게도 폐하의 것”이라며, “학병제야말로 조선인의 황민화의 정도, 조선인의 일본인적 애국심의 강도를 다루어보는 저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요산은 1928년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됐다. 일제의 조선인 교원 차별에 항거하기 위해 조선인교원연맹 조직을 계획했으나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일경에 체포됐다. 이 일을 계기로 교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1930년 일본 와세다대 제일고등학원 문과에 입학, 1932년 여름방학 때 귀국해 양산농민봉기사건에 관련돼 투옥되자 학업을 중단했다.
이듬해 보통학교 교사를 하면서 농민문학에 투신했으며, 1936년 단편 ‘사하촌(寺下村)’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요산의 문단 데뷔는 부산문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식민지 현실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단편들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민중을 선동하는 요주의 작가’로 지목되기도 했다. 1948년 발간된 문예지 《중성》에 게재한 단편소설 「길벗」에서 양산 독립운동가 전병건을 모델로 집필, 조명하기도 했다. 전병건은 일제 무단통치의 중추였던 양산경찰서를 습격한 항일독립투사다.
가난하고 핍박받는 민중에 대한 애정,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항거를 작품 속에 녹여 낸 요산은 삶과 작품, 정신과 행동이 하나였다. 한국 사회의 문제 속에서 제국주의에 짓눌린 조선 민중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뛰어들었고 그러한 정신을 작품에 담았다. 이렇게 요산 정신은 치열하고도 절실한 부산문학의 뿌리였다.
한국작가회의는 친일문학 청산을 위해 오래 노력해왔고, 수년째 동인문학상 폐지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고투하고 있다. 물론 문학이 정치화되는 것은 반대이다. 하지만 한국의 근대사를 제대로 안다면 친일문학을 정리하는 일은 정치 이전에 곧 민족정신과 역사를 반석 위에 바로 세우는 일이다. 친일문학을 정리하는 일에 어찌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것인가.
모든 인간이 역사적 존재이듯이 모든 문학은 시대의 소명을 타고 난다. 문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문학이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킨다는 말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지 못하는 불의에 저항하는 자유의지를 말한다. 또한 함부로 된 폭력을 넘어서서 진정한 민중적 삶의 뿌리를 지켜내는 강인한 정의를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동인문학상을 받는 것도 작가의 개인적 선택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가는 공인이다. 그런 논리로 말한다면 김동인의 친일행각도 한 개인적인 선택이었을 뿐인데, 왜 그는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비판과 적폐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김동인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그렇다면 아무리 인간이 매순간 자신을 합리화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친일 문학상 수상이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님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부산과 낙동강은 요산 선생의 문학적 터전이었다. 우리가 요산 문학상을 제정하고 시행하고 있는 것은 요산 정신을 드높이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요산 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요산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하는 친일 문학상의 품에 안기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상식 이하의 문학적 작태를 보면서 지하에서 요산은 어떤 한탄을 하고 있을까. 요산 선생님을 뵐 낯이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작가는 요산기념사업회의 직책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부산작가회의는 앞으로 요산의 문학혼을 고양하고 실천하는데 문학적 소임을 다할 것이다. 요산문학상 수상 작가가 친일 문인 김동인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을 수상할 경우 요산문학상 수상을 사후에라도 취소토록 하는 제도 정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문학이 후세에 남기는 것은 ‘정신’이다. 얼룩지고 오염된 문학 앞에 선 우리의 현실이 정말 부끄럽다.
2023년 12월 7일
부산작가회의 회장 김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