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와글와글거리는 아비지옥 / 김형효 교수
진리와 정의로 위장한 망상들이
우리 사회 지옥 벼랑으로 몰고가
불법은 ‘무엇이 정의다, 진리다’ 라고 애써 강조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불법은 도덕윤리적 사고방식에 얽매이는 사상이 되어서
도처에 선/악과 진/위를 너무 뚜렷이 분별하는 경계선을 확연히 긋게 된다.
한국사회가 지금 그런 경계의 병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중생신이자 동시에 법신이다.
이 말은 우리가 중생이자 동시에 부처임을 말한다.
많은 분들이 우리가 중생이자 동시에 부처임을 말하나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가 중생의 고집만 꽉 차있으면서
자기 생각이 진리이고 자기 행위가 정의라고만 주장한다면,
우리 사회는 구제불가능의 저주만을 외쳐대는 꼴이 되고 만다.
우리는 원효대사를 본받아 우리 사회를 위하여 시급히 하심(下心)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우리는 원효대사의 주장처럼 스스로 하심하여
무슨 주의주장을 잘난척하며 취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어린애처럼 천진불같이 자연스럽게 울고 웃는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가 아는 척, 옳은 척하는 짓을 할 때마다, 우리는 유위적 작위를 만들게 된다.
그래서 무엇이 도덕적인 척 처신한다. 그런 작위가 위선을 도처에 뿌린다.
조선조 사회적 지도층들이 도처에 위선을 지음으로써
그 사회에 선악병이 너무 넘쳐 흘러 결국 망했다.
자기는 선하고 상대방만 악하다고 굳게 믿는
그런 선악병이 지금 한국 사회에 너무 많이 흐른다.
미국 교수 마이클 샌덜의 책 ‘정의론’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소식은
얼마나 한국사회가 정의의 실천에 굶주렸는가를 반영한다.
좋은 소식처럼 들린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말은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미움의 감정에 서로서로 깊게 젖어 있는가를 알려주기도 한다.
저 책은 정의란 ‘이것이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 책이 만약 세상에 있다면, 그것은 허구고 거짓덩어리인 셈이겠다.
그런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그 교수의 강의를 EBS에서 들었다.
이미 강의 내용이 벌써 허구적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조선조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정의가 존재하는 양 큰 착각 속에 살아 왔었다.
그런 것은 없다. 정의라고 주장하는 아집만 있었을 뿐이다.
늘 있어 온 것은 이기배타적 중생심과 자리이타적 불심만이 존재했다.
자리이타적 불심은 한 물건도 특별히 주장할만한 견해가 없다.
‘증도가’는 말한다. “법신을 깨달음에 한 물건도 없으니,
근원의 자성이 천진불이라. 오음(五陰)의 뜬 구름이 부절없이 오가며,
삼독(三毒)의 물거품은 헛되이 출몰하도다.
실상을 증득함에 인/법(人法)이 없으니,
찰나에 아비지옥의 업을 없애버림이라,
‘만약에 망언을 가져 중생을 속일진대,
스스로 발설(拔舌)하여 진사겁(塵沙劫-무궁한 억겁의 세월)을 부를 지로다’
(탄허번역).”
우리사회에 부글부글 끓는 거품처럼 생각들이 치솟고 사라지는
오음(色受想行識)의 삼독들이 영일이 없는 경우에,
진리와 정의를 위장한 망상들이 우리 사회를 지옥의 벼랑으로 몰고간다.
경제적으로 한국이 선지국의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지만,
정신적으로 한국인이 가장 불행한 사람들에 속한다는
스스로의 판단을 우리가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전반적으로 한국인이 삼독의 거미줄에 얽혀 있기에,
한국인이 스스로 가장 불행한 마음의 가시밭길을 헤매고 다니는 셈이 된다.
영가(永嘉)대사의 ‘증도가’는
초탈적인 깨달음의 종교적인 노래라고만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이 노래는 동시에 세속의 불행을 치유(治癒)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세속적 정치의 목적은 동시에 사람들을 종합적으로 치유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증도가’는 우리 시대 정치사회의 방향을 알려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2011. 02. 08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출처 :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