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길
부친 문성모(1908.1.25~1992.4.2)
모친 김용삼(1915.6.9~2008.9.18)
안양사람 문수길은 1944년 1월 8일 황해도 사리원시 동측 봉산군 토성면 마산리45 에서 문성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로 누님들이 있다. 부친은 사리원 철도원으로 근무하였다.
교통도시인 사리원 철도관사에 6년 살다가 1.4후퇴 시 철도 가족에게 제공된 화차로 영등포역에서 하차 하여 눈속을 걸어 서정리도착 피난생활을 시작한다. 이곳은 운좋게 열차차장으로 금무하는 지인의 집이라 많은 도움을 받는다. 9.28수복후 안양읍내 사는 사촌형수가 살고 있어 안양으로 이사 왔다.
1951년부터 화단극장앞, 태평방직뒤, 삼덕제지 남측 길 건너 철도관사, 웃관사, 새마을, 낸천동, 안양선로반옆 7개소로 이사다녔다.
토성면 마산리45번지.사리원에선 철도 관사에 살았고.전화, 목욕탕도 있었네. 안방은 석탄을 때고, 다른 방은 다다미방이었고. 문수길 댓글에서
‘어느 덧 전쟁이 난지 벌써 7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나도 부모님과 누님 셋, 여동생 둘 이렇게 8식구가 사리원역에서
석탄싣는 무개열차를 타고 남으로 내려온지 어언 69년(51년 1/4후퇴때)
영등포역에서 내려 안양천서측으로 하얀눈이 발목까지 덮는 길을 걸어서
서정리까지 가서 피난 생활을 했습니다.
수복때 안양으로 와서 정착을 했습니다.
금방 고향 갈줄 알았는데,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나도 생전엔 고향 가기가 힘들 것 같네요.
우리 역사에 다시는 이런 참혹한 비극이 없기를 바라며
6.25때 나라를 위해 산화한 국군용사들과 억울하게 죽은
국민들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오늘 하늘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네요.’안양초교27회카페에서
영상 앨범을 보다가 옛날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 나가셨던
어머님 사진을 보았습니다.
83년 9월에 출연해서 북에 두고온 제일 큰 누님을 찾는
종이를 앞에 들고 울먹이시던 모습이 생생 합니다.
비록 TV에 나온 모습이지만 ~
이제는 큰 누님 얼굴은 기억 할수 없지만
그 당시 나를 데리고 고모님댁으로 피난갔던
생각은 뚜렷이 납니다.
갑자기, 어머님과 큰 누님 생각에 가슴이 멍해 옵니다. 안양초교27회카페에서 인출
이후 안양6동 9동 철도관사 철도변으로 이사 다면서 피난생활을 하며 안양읍에 정착한다. 부친이 철도원으로 일을 다니지만,
생활력이 강한 이북사람 모친과 누님은 새벽에 범고개를 넘어 소래포구 동측 염전에 가서 무허가(야미) 소금을 머리에 이고 범고개를 와서 구시장 장에 팔아 생계를 보태였다.
수길은 표준보다 2년 늦게 4286년(1953년) 안양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이런 경우 동급생이 후배 열령(나이) 인고로 형 같고, 나이로 성적이 좋은 경우가 있다.
아무튼 간에 입학 하자 마자 6월 제1차로 치러진 일제고사에서 100점으로 매우 우수하여 정한시 교장으로부터 상장을 받는다.
제3차로 실시한 전교 일제고사에서 사회생활 성적이 매우 우수하여 동년 12월 10일 상장을 받는다.
57.11.21 제2회 학력교사 최고점을 수상한다.
‘57.12,20 2학년 교내 제3회 학력고사에서 동학년 최고점 우수한 성적으로 수상한다.
’58.3.14 2학년에서 최고점(282점)으로 수상한다.
‘58.3.21 2학년에서 최고점(291점)으로 수상한다.
’59.12.31 4학년3반 학년에서 최고점(266/300)교내학력고사에서 최고점수상
6학년1반에서 4.10일 급장으로 임명된다.
4291.12.15 제2회 교내 학력고사에서 동학년중 최고점(374/400)수상
일년에 4회 6월 12월 3월 주로 수상기록이 나온다.
부친이 알아본 서울중학을 입학한다.
서울중학을 졸업
철도원자제들이 많이 다니던 1965년 용산공업고등학교 전기과를 졸업하였다.
20일이 내가 논산 훈련소 입소한 날이네.
1066년 10월19일, 친구들과 동춘관에서 저녁 먹고
10.20 안양역에서 목포행 막차 타고 논산으로 갔지.
옛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네.
논산으로 가는 나를 축하해준 친구들:위 우측부터 이문희,송석정,신동일,최정섭,윤해진,구장서,조태연,조순일,양재관,손진욱,최홍규,정태영(군포친구)나, 장석균, 김영균, 조창연
2025.10 3일에는 수서에 계신 장인,장모님 산소에 다녀오고
5일엔 광주 오포에 계신 부모님께 추석 인사드리러 가고.
부천은 내가 79년도에 이사 와서 살던 곳입니다.
수원 율전동은 내가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살던 곳.
1호선 성대앞역에서 내려 10분정도 걸으면 우리집.
윗밤밭,아래 밤밭이 있었지.
내 두 아들이 파장동까지 걸어서 초등학교 다녔고.
성대 학생들이 데모하면 경찰들이 학교 담까지 와서
학생들과 대치하는 것을 옥상에서 다 구경하고.
옛날 생각이 나네.
삼성전자에서 퇴사해서 동양트랜스회사
부천 공장장으로 와서 송내동에서 살다 심곡동으로
이사해서 85년도까지 살다가 다시 안양으로 이사 했지요
스쿨보이(문수길)
17:41 새글
첫댓글 난 윤희와 안산에서 몇년동안 같이 지냈네.
약국을 운영하던 윤희 소개로 안산에서 설비가게를 개업해서
한 2년동안 운영하다 내 전공이 아닌걸 하자니
운영이 어려워서 가게을 접으니 그 당시 윤희가
새마을 금고 이사장을 맡게 되서 나보고 사무장을
봐 달라고 해서 한 1년 동안 같이 일을했지.
그사이 윤희 아들이 유괴되서 안양경찰서 형사들과
며칠밤을 새우며 아들을 찾던 적도 있었고.
결국 안양 삼원 극장 뒤에 있는 여관에서 범인을 잡아서
다행이었고.
내가 영종도에서 인천공항 근무할때 지병으로 죽어서
최종구보다 고 길형균이 더 절친이어었지.
손기준과 같이 장지까지 갔다 왔고.
작은딸은 경찰관으로 복무하면서 청와데에서도 근무했고.
안양시청 부근에서 운영한 약국은 세화약국이었네.
사람이 너무 좋아서 내가 가끔씩
너 이래가지고 약국 운영이 되냐 할 정도로 손님들에게
약을 달라고 오면 집에 무슨 약이 있냐고 물어본 후
약이 있다고 하면 그걸 쓰라고 하며 팔지를 않을 정도였네.
윤희와의 추억이 새로워지네.
1972.5.8. 가족사진
신부 이명종양과 문화예식장에서 혼례를 올리다
*수정요망
첫댓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언제 이렇게 찾았나.
틈틈이 동창회 카페에 올린 사연을 올렸구만.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