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써보겠습니다. 계속.
쓰는 일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보고서를 열심히 썼고, 일기를 열심히 썼습니다. 누군가에게 읽힐 것을 염두한 글쓰기도 있었고 나만의 ‘대나무숲 당나귀 귀’를 외치는 글쓰기도 있었습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어색하거나 싫은 일은 아닙니다만 잘 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글쓰기 자체를 평가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일겁니다. 보고서야 안에 담긴 숫자, 표가 더 중요했으니 맞춤법 오류나 비문 정도를 잡아내는 수준이면 충분했고 워드파일에 써제끼는 일기는 나만 읽는, 나만 읽어야 하는 음침하기도 하며 베베 꼬인 꽈배기 같은 마음을 쏟아 놓은지라 당연히 맞춤법, 오문, 비문을 잡아낼 필요조차 없는 글이었죠.
노워리 기자단에 충.동.적.으로 합류하면서 다수에게 읽힐 글을 ‘공개적으로’ 쓴다는 것에 압도되기도 합니다. 그 속마음엔 “잘하고 싶다”는 내면의 욕망이 있다는 걸 느낍니다. 왜 일까요. 글과 책을 읽는 것을 즐기면서도 남들에게 공개적으로 읽힐 글을 써보겠단 생각을,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전업’이 아닐지라도 글쓰기를 통해 돈을 벌거나 재화를 창출하는 것에 신경 쓴다면 ‘엄중한 밥벌이’가 되어 나를 옥죌 거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일까요. 그저 읽고 쓰는 게 좋은데, 평가를 받거나, 돈을 벌거나 한다는 것이 나의 즐거움을 훼손하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걱정인형스러운 마음였을까요.
글을 잘 쓴다는 건, 남들에게 인정받는 걸까요? 내 스스로 만족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남들이 잘 썼다고 하는 글이 내 맘에 들지 않는 건 어찌 된 일인가요. 나는 어떤 문장을 쓰는 건가요. 어떤 문장을 쓰고 싶은 걸까요.
어느 글이 좋았다고 말할 때 내용의 참신함인지 독특함인지, 새로운 지식이나 관점을 습득해서인지, 문체가 아름다운지 종종 헷갈립니다. 뭉뚱그려 잘 쓴 글, 좋은 글을 논하는 게 이상합니다. 동서양 막론한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그저 식사가 좋았느냐 물으면 구체적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거 처럼요. 그래서 조심스럽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말을 얹는다는 게, 평가를 한다는 게. 구성을 논해야 할까요. 내용의 흐름을 이야기 해야 할까요. 어렵습니다.
저는 제 글이 좋습니다 (근자감) 남 글도 좋아합니다 (글덕후) 특히나 남의 이야기를 읽는 걸 좋아하죠. 서늘한 글들도 좋아합니다. 정희진 선생님은 특유의 통합사고(학제를 넘나드는 지식과 사유)를 근거로 한 글로 제 딱딱한 뇌에 자극을 뿜뿜 주십니다. ‘와 나도 이렇게 배우고 싶다. 이렇게 읽고 배워 글 쓰고 싶다.’ 고 말이죠. 강남순 교수님 글도 좋아합니다. 논리정연합니다. 늘 첫째, 둘째, 셋째로 매겨가며 주장을 펼치십니다. 종교철학자로서의 관점을 더한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치고 문장을 옮겨 적습니다. 한국 사회와 교계를 비판하는 그 분의 서릿발 같은 문장들에 마음이 쪼그라들다가도 의외로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도올 김용옥선생님 글도 좋아합니다. 그 분의 어투 때문에 희화화되기도 하지만 그 분의 공부하는 태도, 연구하는 방법은 본받고 싶습니다. (그냥 ‘넘사벽’이구나 싶을 때도 많고요) 엄연하게 교정, 교열을 거친 그분의 출판물에는 비속어가 종종 등장합니다. (출판 관계자들이 좀 싫어할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글에 담긴 생각과 주장에 감복하며 누가 뭐라해도 나는 내 갈 길, 내 할 말을 하겠다는 고집스러움을 존경합니다. (철저한 공부를 바탕으로 한 고집스러움입니다. 누구처럼 독불장군스러운 아집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분들이 저의 글쓰기 선생님이자, 표본이자 이정표입니다. 글을 이렇게도 쓴다. 쓸 수 있다. 내 관점이 협소했다. 다양한 글로, 강의로 알려주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좋습니다.
종국에는 허은경의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들께 배우고, 다른 책을 통해 배우고 체화한 내 지식, 내 인생 경험을 토대로 녹여낸 나의 생각과 문장들을 써내고 싶습니다. 그게 어떤 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주술호응이 맞고, 맞춤법만 틀리지 않는다면 그 안에 담긴 내 생각(내 문장)은 오롯이 내 것이니까요. 그 감각을 소중히 여깁니다.
저자와 함인주(라고 쓰고 배우자로 밝혀진 분)과의 서신 중 일부가 저의 고민과(생각?) 비슷해 발췌했습니다.
‘언어가 개인의 것일 수 없겠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발화는 개인의 입을 통해 이루어지고 대부분의 문장 또한 개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나 문장에는 개인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개인의 목소리’가 들어 있지 않더군요. 선생님이 손보고 다듬는 문장은 분명 누군가 개인이 쓴 것이고 따라서 그 누군가의 목소리를 담고 있을진대 선생님이 손보고 다듬은 뒤에도 그 목소리는 그대로 살아 있는 건가요? (p118)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고쳐주면 어떨까. 감상이 아니라 작심하고 교정하며 문장을 다듬는다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때도 내 문장일까. 내 생각일까. 확신할 수 없네요. 함인주(또는 그의 배우자)씨 같이 문장을 공들여쓰고, 깔끔한 분과는 달리 저의 글은 기초적인 오류들로 가득할 테지만요. ‘표준적인 문장’ 같은 건 없노라고 말하는 저자 (p99)말만 쏙 빼다가 마음에 담습니다. 저는 우선 쓰는 일에 더 집중해보렵니다. 내가 쓴 글을 내가 다듬는 법도 알아야하지만, 우선 써야 다듬기도 할 거니까요. 우선 써보겠습니다. 계속.
첫댓글 첫 문단 일기에 대한 묘사에 적극 공감합니다. 은경샘의 글이 참 좋구요. 언제 커피 한 잔 하며 수다 떨고 싶은 느낌!
콜!!!! 입니다. 저도 커피+수다 좋아요!!! (설레발을 떱니다 이렇게ㅎㅎㅎ)
오, 샘. 이 글은 오롯이 샘의 목소리가 느껴져요. 사실 이전에도 그랬습니다.
구성도 좋습니다. 나의 글쓰기->글을 잘 쓴다는 것->잘 쓰는 선생님들->내 글쓰기의 목표
글쓰기 선생님들이 쟁쟁한 것은 축복이지만, 표본씩이나! 너무 높은 클라쓰라 깜짝 놀랐어요. (저는 내가 해볼 만하다 싶은 사람을 표본으로 삼는데 ㅎㅎ)
글도 결국은 사고의 깊이를, 지식의 정도를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라, 예시든 선생님들만큼의 내공은 평생을 따라가야 잡을 수 있을까 싶긴 하죠. 그럼에도 제 고유의 사고, 글을 만드는 건 내가 하는 거니까요. 이정표 보고 가다보면 어딘가 다다를수 있지 안겠습니꽈~~!!ㅎㅎ
@허은경 크하, 멋져요, 샘!
'내 고유의 사고는 내가 하는 거다. 스승들을 이정표 삼아 따라가겠다.'
특히, 세 번째 단락의 내용 잘 쓴 글에는 '내용의 참신함인지 독특함인지, 새로운 지식이나 관점을 습득해서인지, 문체가 아름다운지' 이것들이 조금씩 다 담겨 있는 거 같아요. 물론 어느 한 면만 돋보여도 충분히 잘 썼다고 하고요. 그리고 때로는 어느 부분을 잘 썼는지 설명하기 힘들어도 그 글에 탄복하게 됩니다. 저는 은경 샘 글에서는 주로 내용의 참신함? 관점의 독특함 때문에 잘 썼다고 느껴요.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글쓰기를 오래하셨다면 더욱 놀랍습니다. 기본적으로 문장에 군더더기가 별로 없거든요.
잘 쓴 글이라고 하는데, 샘 맘에 들지 않는 글은 그 글을 구체적으로 봐야 알겠지만, 짐작컨대 그 내용이 주는 감동이 있어서일 거예요. 선생님만의 경험을 잘 살려서 써 내신 거죠. (결국 또 뭉뚱그려서 칭찬하게 되네요.)
평가는 언제나 조심스럽지만, 혼자 쓰는 것보다는 함께 읽고 나누는 게 훨씬 더 성장하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앞으로도 기자단 안에서 건필하시길!
https://blog.naver.com/noworry21/223113668713
저는 은경샘의 글이 너무 너무 좋네요~ 저도 평가하는 것도, 평가받는 것도 익숙치가 않아요 그냥 제멋에 쓰고 읽고 그래요. ㅎㅎㅎ
그런 마음을 이렇게 편안하게(편안하게 안 쓰셨을 수도 있지만 느껴지기에는) 쓰실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샘 글쓰기의 이정표인 분들의 클라스를 보니 글덕후이신 것은 분명하고, 근자감은 근거있는 자신감이라 해석해 봅니다. :)
저도 정희진선생님 글 엄청 좋아해요. 예전에 강연들었는데 글 한편 쓰고 나면 거의 탈진 상태가 된다고 하셨어요. 도올 선생님의 어떤 책은 좋았고 또 어떤 책은 별로였어요.
어쨌든 계속 쓰겠다는 결론이 맘에 들어요. 꼭꼭 계속 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