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에서의 라이딩 헤프닝
구름 보이지 않으니 자연히 하늘이 맑을 밖에.
사람들 참 많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더 많다.
토요일이라서일까 가족 나들이도 곳곳에 눈에 띈다.
10월 12일. 오전 9시 여의나루 역.
오랜만에 자전거 라이딩하기 위해 모였다.
김창석 이정우 박동진
사당에서 오기가 좀 그렇고 처음 참가하는 사람 입장 고려해서
교통편 좋은 여의나루로 택한 것.
누구는 장인 생신이라서
또 어떤이는 이런저런 사연 없이 불참을 통고했다니
어쩔수 없이 않은가? 본인이 싫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리.
단촐한대로 좋다.
의견이 엇갈리지 않아서 좋고
이야기 많이 나눌수 있어서 좋고
대화의 초점이 한데 모여서 좋다.
언제 이처럼 단촐하게 모여 떠들고 즐길 수 있었단 말인가?
팔당으로 갈까나 여의도 탐방을 할까나
사람이 서넛 됐으면 일정대로 팔당이나 분당을 갔으련만
숫자가 적은 때문에 행주산성 국수집으로 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만장일치.
다리 건너 강변북로가 붙은 둔치길
강남길에 비하면 촌스럽고 투박해 보이지만
덜 세련된 길이 그리고 그 모습이 오히려 정겹기만 하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나 가지'
오랜만에 애마를 끌고 나온 경덕 김창석 공은
두툼한 옷 때문에 땀 뻘뻘, 몸 뒤뚱거리며
페달 열심히 밟건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감?
" 좀 쉬었다 가세나"
다리 밑쯤에서 물 마시고 잡담하고 투덜대고...
나중에야 그이유를 알았겠다?
타이어에 바람이 반쯤은 빠졌다는 사실을.
그러니 힘은 힘대로 들고 차는 차대로 말을 안들을밖에......
성산대교 밑에서 바람 보충하고 나니 살것같단다.
달리는 모습 또안 전혀 딴판이다.
이건 새내기가 아니라 세련된 꾼의 자세다.
힘 좋겠다. 덩치 크겠다, 발바닥 넓겠다, 애마가 훌륭하겠다...
좋다는 거 다 가지고,지니고, 들고 있으니
자전거 탄다고 섣불리 입 열었다간 얼굴 붉어지기 십상이겠다.
애마가 몸에 익은 때문인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니다.
발에 힘이 들어가선지 빠르기가 총알같다.
어허
자전거는 빨리 달리면 결코 멀리 못간다고 하던데
자전거는 달리면서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라는데
저러다 지쳐 주저앉으면 저 큰등치를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은근히 걱정이 된다. 뒤따라 가면서...
하지만 염려는 금물.
월드컵경기장 앞에서부터 행주산성까지 논 스톱 질주가 계속됐다.
가는 동안 군데군데 자리잡은 이동 주막에선
잘 익은 술냄새 구수한 라면 냄새가 바람에 묻어오는데
도무지 눈을 돌리지 않고 달리기만 한다.
선무당 사람잡는 것이 아니라
초짜가 베테랑을 우습게 보고 넌지시 하는 말 아닌가며.
"어디 한번 해볼겨? "
홍제천 물줄기를 가로 지르고
캠프장 국궁장 생태학습장을 단숨에 내닫고
방화교 밑 빈대떡 집에서 목한번 축이지 않고
드디어 행주산성 원조 국수집에 도착
행여 귀중한 애마 손 탈까봐 끈으로세개를 한데 묶어놓는다.
조조의 연환계처럼.
사람들이 흘끔거린다.
제비 날개 닮은 자전거 안장 때문이겠다.
하기야 그들이 이런 귀한 물건 어디서 듣기나 했을까?
보는 것도 처음일테고, 물론.
우리도 걱정이 태산같다.
식사하는 동안 정말 괜찮을까?
누군가 안장만 슬쩍 한대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먹는 곳과 보이는 곳이 다르니깐두루.
제발 괜찮기를....
국수로 고픈배 채웠겠다
캔커피를 손에 들었겠다
몸 사르르 퍼지니 어디서 살짝 눈이라도 붙이면 좋으련만
앉아서 커피 마실 곳도 보이지 않는다.
"산성으로 올라가자"
어차피 가야할 방향이니 당연히 가야한다.
근데 일은 여기서 비롯됐다.
생각해도 끔직한 일이 벌어진 것은.
행주산성 매표소 앞 주차장 벤치
그 순하디 순한 진국의 화도 이정우 공이
자전거 점검하는 동안 떠든 수다에 정신이 혼미해진 까닭인지
아니면 태생이 어리버리인지 모르지만 떠난 자리에 배낭을 두고왔것다?
그것도 행주대고 남단에 다달아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아뿔사. 발 동동. 가슴 쿵딱.
이럴줄 알았으면 일진을 미리 볼 것을...
멍청이, 바보, 박 모씨.
"돌아가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니 택시을 잡자"
김창석이 바들바들 떠는 모습보고 냉정하게 말한다.
옳커니.
헌데 차가 잡혀야 말이지. 행주대교 한복판에서 택시잡는다는 걸 상상해 보라.
그게 가능한 일인가를.
갈까 말까? 포기할까, 희망해 볼까? 갖가지 생각이 오락가락.
"그래도 해보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창석의 일침에 현장으로 가서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택시잡기 전쟁이 한동안 계속됐다. 근데 있었다. 빈택시가 있었다.
오, 하느님 부처님 용왕님. 당케쉔 메르시 그라셰 셰셰 댕큐.
창석 공과 박 모씨가 동승했으니 애마 지킴이노릇은 당연 정우 공차지다.
이럴 때 피해 당사자는 말이 없다.
어안이 벙벙이니 무슨 생각이 날 수 있겠는가?
창석 공이 냉정을 찾고 수습에 나선다.
끼리끼리 연락하다가 현장 사무소 직원과 연락이 됐다.
이러쿵저러쿵 자초지종 설명하고 나서 하회를 기다리란다.
기사님도 한말씀 거든다.
"이젠 하늘에 맡기셔야 합니다.
" 나 죄지은거 없는데 하늘에서 도우실까요?"
근데 왜 차는 그리 막히는지. 시간이 여삼추라는 말이 실감난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 길 위에서 시간만 축내고 있을 때
창석 공의 스마트 폰이 울린다.
문명의 이기가 이처럼 편리하고 이롭게 사용될 줄이야....
브라보. 찾았단다.
작고 검은 보따리가 있던 곳엔 어느새 많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만일 창석 공이 관리소 안내원에게 부탁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순간의 차이, 간발의 차이로
지옥과 천국이 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짐짓 상상해 본다
보따리 안에 지갑은 그대로 있었다.
현금은 차치하고라도 카드가, 두장의 카드가 안녕했으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으리.
복잡했던 실타래가 삽시간에 풀린다.
이럴 때 해야할 일은 마시는 일 아니던가?
끼리끼리 연락해 도와준 친구의 고마움과
남의 일에 귀찮은 일 내색하지 않고 심부름해준 안내원의 봉사정신과
긴 시간 뙈약볕에서 인내로 3마리 애마를 보호해준 친구의 후덕함을
술잔에 담아 음미해 본다.
마시자 친구야,
고맙다 친구야,
그리고 다시 라이딩하자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