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5.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은 범상하지 않다. 아침에 교육생 숙소 밖으로 나오면 제일 먼저 눈 맞춤을 하는 것이 지리산이다. 안개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한 모습에서 시작한다. 해가 뜨고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시간에 따라 서서히 지리산 높은 능선이 보이게 되면 웅장함에 홀딱 반해서 흠모하게 된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 쳐다보니 질릴 만도 하지만 지리산은 다르다.
둘레길이란 이름이 마음에 든다. 외씨버선길, 이순신 백의종군길, 인현왕후길, 한티가는길이라는 명칭보다 제주 올레길, 대구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이 더 멋지게 느껴진다. 둘레나 올레라는 단어가 붙어 훨씬 더 예쁘고 아름다우며, 멀고 길고 크다는 느낌이 든다.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국립공원 주변 3개도 5개 시군을 연결한 우리나라 대표 숲길이다. 지역으로 살펴보면 전라북도 남원과 경상남도 함양, 산청, 하동 그리고 전라남도 구례에 걸쳐 있다. 지리산 둘레길 21개 구간 중에 6개 구간이 구례를 지난다. 가탄-송정, 송정-오미, 오미-방광, 오미-난동, 방광-산동, 산동-주천 구간으로 총 81km의 거리다.
언젠가는 완주해야 할 둘레길이다. 미루어 좋을 것 같지도 않다. 무리한 일정으로 몸을 다치거나 일상을 포기하면서 완주하고 싶지는 않다. 여건이 되면 사정에 맞춰서 지리산의 문화와 역사를 느끼고 싶다. 약 12km의 오미-방광 구간을 첫걸음으로 잡았다. 가장 만만해 보인다. 지금 내가 머무르고 있는 구례귀농귀촌지원센터와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다.
새벽 다섯 시 반이다. 아침으로 냉동된 밥알찹쌀떡 2개를 챙겼다. 한두 시간 걷다 보면 먹기 적당하게 녹을 것만 같다. 포도즙도 하나 챙기고 시원한 보리차는 보온 물통에 가득 담았다. 잠자는 아내를 깨웠다. 운조루 앞길에서 아내에게 손을 흔들며 방광마을 회관으로 데리러 와주기를 부탁했다.
길은 아주 잘 관리되고 있다. 사람 손길의 흔적이 보인다. 물고랑은 예쁘게 괭이질 되어있고 키가 큰 풀은 잘려 누워 있다. 좁은 길이지만 나뭇가지에 방해받지 않고 걸을 수 있다. 갈림길에서 망설일 필요도 없다. 적당한 곳에 정확한 방향을 알려주는 안내목이 세워져 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걷기도 하지만 숲길은 환상적이다. 거대한 지리산만큼이나 지리산 둘레길도 명품이다.
길은 순하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오르막도 없지만 급한 내리막도 없다. 안개가 걷히는 지리산 기슭의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백번을 물어도 기껏해야 “글쎄요. 오묘합니다.”라는 대꾸 외에는 별도리가 없어 보인다. 오미-방광 구간은 그랬다.
첫댓글 81km 둘레 둘레 오빠의 발자국이 자국자국 찍히겠군
이제 시작입니다. 혼자서 걷고 때로는 같이 걷고 그냥 한마리 벌레처럼... 존재감 없이 조용하게 걷다가 그 느낌에 스스로 감동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