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1장17-24절 안디옥교회 개척 260628 원주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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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역사와 예기치 못한 복선
사도행전 11장 17~24절은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가 된 안디옥 교회의 탄생과 바나바의 사역을 보여줍니다. 유대인 중심이었던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영광을 돌리는 장면입니다. 이 거대한 선교적 흐름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정교하게 심어두신 ‘복선’이 존재합니다.
드라마나 소설, 그리고 최근 유튜브 예고편을 보면 다음 회차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자꾸 자극하는 장치인 '복선'이 나옵니다. 나중에 이야기가 풀릴 때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 복선의 묘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온 민족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복음을 펼치길 원하셨는데, 이를 위해 안디옥 교회를 세우기 전 놀라운 복선을 깔아두셨습니다.
그 결정적 계기는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유대교에 단단히 갇혀 있던 교리적인 담과 민족적인 경계라는 큰 장벽이 먼저 한 번 확 깨졌습니다. 이 복선이 먼저 해결되었기에, 이후 스데반의 순교로 흩어진 자들이 이방 땅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할 때 그 신앙의 열매를 공식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놀라운 체험이 일어난 이후에는 이를 바르게 세워줄 신앙의 지도가 필수적인데, 하나님은 이를 위해 안디옥에 영적 지도자 바나바를 보내시는 완벽한 마무리를 보여주십니다.
2. 카리스(은혜), 카리스마(지도력), 카리스마타(은사)
대한민국 교회는 1960~70년대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와 은사, 그리고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경험했습니다. 당시 수많은 목회자가 목숨을 걸고 40일 금식 기도를 하는 것이 일종의 흐름이었습니다. 한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가보면 40일 금식을 마친 분들의 이름이 벽면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참 대단한 열정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쳐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성경과 교회의 언어 속에서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Charis)’라고 부릅니다. 이 은혜가 지속해서 임하고 쌓여서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영적 리더십을 ‘카리스마(Charisma)’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흔히 “저 사람 카리스마가 있다”라고 말하지만, 이 단어의 진짜 유래는 교회입니다. 즉,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교회의 참된 지도자가 된다는 영적 원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접미사가 붙으면 은사를 뜻하는 ‘카리스마타(Charismata)’가 됩니다. 카리스(은혜)가 쌓이고 쌓이면 성령이 주시는 지도력(카리스마)과 더불어 방언, 예언, 신유(병 고침), 지혜와 총명 같은 성령의 은사(카리스마타)들이 삶에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됩니다.
3. 다양한 성령 사역들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역은 매우 다양하며, 이를 영어로 ‘파워(Power)’가 임한 사역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가 말씀을 준비할 때 성령의 임재가 더해지면 그것이 바로 ‘능력 설교(Powerful Preaching)’가 됩니다. 찬양과 예배 중에 성령의 임재가 확 풀어지면 그것은 ‘능력 예배(Power Worship)’가 됩니다. 학교 선생님이신 장로님이 성령의 지혜로 학생들을 가르치면 ‘능력 티칭(Teaching)’이 됩니다.
상담의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 상담과 기독교 상담은 방법론적으로 언뜻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상담을 하거나 성경 구절 몇 개를 기계적으로 읊어준다고 해서 기독교 상담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적 배경만 깔아준 것에 불과합니다. 기독교 상담의 진짜 특징은 상담 과정 속에 성령님이 직접 역사하셔서 피상담자를 복음 안으로 인도해 가시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능력 상담’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가 늘 강하고 거친 ‘파워’의 형태로만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아주 ‘소프트(Soft)’하게, 미풍처럼 부드럽고 세밀하게 다가오셔서 영혼을 차근차근 만지시고 치유하시는 성령의 역사도 매우 많습니다. 이 모든 영적 지도력과 은사(카리스마타)를 균형 있게 갖추어 온 땅을 구원하는 통로로 쓰임 받은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한편으로는 꿈을 푸는 예언의 은사를 가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지도력(경영)을 겸비하여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4. 이방 땅에 풀어지는 복음과 주의 손의 역사
스데반의 순교 이후 일어난 대대적인 박해로 인해 많은 헬라파 유대인들이 피난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베니게, 구브로를 거쳐 안디옥이라는 이방 땅까지 흘러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의 메시아(다윗의 자손)라는 생각에 갇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몇 사람이 안디옥에서 파격적으로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방인 중에는 유대교의 선하고 사랑 넘치는 삶의 태도에 이끌려 회당 바깥 주변에 삐죽이 앉아 귀동냥으로 예배를 드리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혈통이 달라 회당 안에는 선을 그어놓고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 장벽 밖의 헬라인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복음이 전달되었습니다. 불교처럼 지은 업보를 다 청산하고 보시를 해야 죄가 닦이는 굴레에 익숙했던 이방인들에게, 오직 예수의 보혈로 거저 용서받고 마음의 평강을 얻는다는 소식은 충격적인 은혜였습니다. 이 복음이 선포될 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셔서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오늘날에는 아프면 병원에 가고, 돈 문제는 은행에 가고, 사회적 곤경에 처하면 행정복지센터의 사회복지사를 찾아가 전산 조회를 통해 나라가 자식 노릇을 해주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병원 안에도 사회복지사가 있어 취약계층의 치료비를 지원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는 인생의 비참한 문제와 질병을 개인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적인 치유와 신유의 은사자를 찾아 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전도사 시절, 한 성도가 감기 걸린 아기를 데리고 기도를 받으러 왔을 때 교단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하여 나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소가 아프다고 기도해 달라는 무식해 보이는 요청을 하는 분도 만납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있고 카리스마타가 임한 곳에서는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할 때 성령의 임재가 질병을 확 밀어내고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안디옥 교회에 바로 이러한 주의 손의 도우심이 강력하게 임했던 것입니다.
5. 케리그마(선포)와 디다케(가르침)의 균형
수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는 큰 축복이지만, 예루살렘 교회가 이를 소문으로만 듣고 방치했다면 그 신앙의 불꽃은 이내 사그라들거나 왜곡되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한다면, 그것을 삶에 가르쳐 지키게 하는 영역을 ‘디다케(Didache)’라고 합니다. 신앙이 올바르게 성장하려면 이 둘의 균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복음 자체는 매우 직선적이고 단순합니다. 초등학생 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합니다. “회개하고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믿으라”는 선포 외에 다른 것을 더할 필요가 없습니다. 간혹 성경을 지나치게 지식적으로만 풀려고 하는 주지주의적 태도는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은 머리로만 쪼개고 분석하는 책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제멋대로 비유 풀이하고 성막 풀이를 하며 신비감을 조장하는 대표적인 이단이 바로 신천지입니다. 그들은 온갖 교묘한 해석을 늘어놓지만 정작 피 묻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는 세우지 않고, 결국 교주를 구원자로 믿게 만듭니다. 참된 가르침과 양육은 장황한 지식적 해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성도의 실제 삶에 적용하여 말씀대로 살아내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서삼경이나 유교 경전을 외우듯 성경 지식만 머리에 가득 채우고 삶은 제멋대로 살아간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6. 바나바의 신앙 지도와 안디옥 교회의 영적 도약
하나님은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 바나바를 파송하셨습니다. 성령의 은사로 병 고침이나 재정 문제 해결을 경험한 초신자들은 예수를 단순히 ‘인생의 문제 해결사’로만 제한하여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성숙은 예수님을 온 인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일상의 호흡 속에서 주님과 생생한 인격적 관계를 맺으며,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은사 중심의 신앙을 올바르게 지도하지 않으면 결국 영적 정체성이 무너지고 위험한 신비주의로 빠지게 됩니다.
청년 시절, 용문산 기도원 출신의 목사님을 따라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앞을 보지 못함에도 성령의 신비한 계시로 성경의 장절과 구절들을 관주로 쫙쫙 엮어 외우는 신기한 분이 계셨습니다. 많은 문하생이 그 신비함에 매료되어 모여들었지만, 불행히도 올바른 말씀의 지도를 받지 못한 그 문하생들은 훗날 대부분 성경 풀이 방식이 유사한 신천지 이단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배우는 목적은 한 구절이라도 붙들고 삶 속에서 살아내기 위함이며, 내 힘으로 안 되기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길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안디옥 성도들에게 이미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며 함께 기뻐했고, 환난과 유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En Christo,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고 가르치며 함께 기도해 주었습니다. 은사가 나타나도 삶이 엉망이거나, 회개 없이 방언 기도의 재미에만 빠져 몇 시간씩 기도하는 왜곡된 신앙을 바나바가 올바른 말씀의 궤도 위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그 결과 안디옥 교회는 신비와 복음이 건강하게 조화되어 큰 무리가 주님께 더해지는 대부흥을 이루었습니다. 이후 사도 바울의 동역까지 더해지면서 온 이방 땅에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전초 기지로 우뚝 서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적 중심축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옮겨가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베드로의 고넬료 가정 방문이라는 복선에서 시작되어 예루살렘 교회의 포용, 그리고 바나바의 바른 신앙 지도가 착착 맞물려 돌아갈 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완성되었습니다.
7. 결론 및 간절한 기도
오늘 선포된 사도행전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교회와 이 나라, 민족 가운데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은사가 건강하게 균형을 이루어 아름다운 복음의 열매를 맺는 건강한 교회로 든든히 서 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주신 말씀의 축복이 우리 교회 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든 자를 치료하는 신유의 은사를 더하여 주시고, 병원의 치료를 넘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온전히 돌보게 하옵소서. 인생의 무거운 문제와 어려움 속에 신음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소망과 하늘의 빛을 전하는 은혜가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몸 된 교회가 하나님의 살아계신 영광을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뜻을 이 땅 위에 온전히 이루어내는 풍성한 은혜의 동산이 되도록 성령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시며 함께해 주시기를 원하옵고,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