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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강좌 51강
이번주 디카시 강좌에는 김경화 디카시집 『디카시, 섬광의 유혹』의 해설을 한 김종회 교수의 <가족애의 깊이와 세상살이의 관점 >을 소개한다.
1. 그가 디카시와 더불어 사는 법
김경화는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을 공부한 필자의 제자다. 2021년 중랑문인협회에서 시행하는 〈중랑신춘문예〉에 입상했으며, 2023년 제7회 〈황순원 디카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디카시인이다. 그동안 디카시를 쓰는 동료들과 함께 펴낸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한다면』과 『디카시, 이래야 명품이다』 등의 시집이 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서럽도록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정보를 전혀 숨기지 않고 진솔하게 토로했다. 이러한 시인의 태도는 미더움과 공감을 불러오는 요소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곧 ‘최상의 정책’은 정직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집은 그의 내면이자 사유(思惟)의 집적이며 생애사의 고백이다.
김경화가 이 시집을 서둘러 상재한 이유는 그 ‘엄마’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낙상하여 척추압박골절로 입원한 87세의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다는 절박감이 이 시집의 출간을 서두르게 한 이유다. 동시에 그 삶의 동반자인 배우자, 아들들과 동생들, 소중한 벗들이 이 시집의 간행을 추동(推動)한 소중한 존재들이다. 시집의 단락별 소제목에 그 ‘생얼’이 등장하는 엄마, 아버지, 가족 등의 혈연 공동체는 어쩌면 이 시인의 생명을 부양(浮揚)하는,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하나인 개체들이다. 좀 더 강력하게 말하면, 이 시집은 그 가족애의 직접과 함께 세상살이 또는 일상의 시적 감각을 한데 묶은 형국이 된다.
기억의 반영
둥근 쟁반 가득
햇살 같은 엄마가 빚은 만두
봄 같던 그 맛 그리워
빈 쟁반이 햇살 받고 있네
시인은 황순원 디카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 「기억의 반영」을 마치 서시(序詩)처럼 시집의 맨 앞에 가져다 두었다. 사진은 아마도 양수리 연못이나 아니면 세미원 수상식물 서식지 언저리의 풍경이 아닐까 싶다. 이 공모전이 양평 인근의 자연을 사진으로 포착했을 때, 심사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큰 두 장의 연잎을 두고 ‘햇살 같은 엄마가 빚은 만두’를 담아낸 ‘둥근 쟁반’이라고 보았다면, 기실 삼라만상 어느 모습에서나 시인은 암마의 그림자를 뒤쫓고 있는 셈이다. 그는 ‘봄 같던 그 맛’이 그리워 빈 쟁반이 햇살을 받고 있다고 단언한다. 사진과 그 배면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 어울려서, 그가 좋은 디카시를 쓰는 시인임을 감각하게 한다.
2. 어머니, 언제나 절박한 그 이름
1부 〈내 삶의 근원, 엄마〉에는 시인의 어머니를 중심 주제로 한 시 10편이 실려 있다. 세상에 애절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은 사모곡(思母曲)이 어디 있으랴마는, 순간 포착의 사진과 함께 표현하는 디카시의 사모곡은 한결 명징하고 호소력이 있다. 80대 중반을 넘어선 엄마에게서, 시인은 다시 어린 시절로 회귀하는 시간의 역행(逆行) 현상을 목격한다. 마침내 시인은 ‘내 삶의 근원’이라고 엄마를 호칭한다. 그 엄마는 ‘징용 간 아버지’를 목 빼고 기다리며 여러 자식을 키웠다. 아들 못 낳는다고 구박받다가 마흔다섯에 아들을 얻기도 했다. 미수(米壽)에 소원이 있다면 ‘시인 내 딸’에게 열두 폭 병풍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떠나면 ‘바람처럼 날다 뿌리처럼 쉬고 싶다’고 한다.
농사꾼 마음
울 엄마 텃밭에
알토란 영글 듯
익어간 자식 사랑
손 많이 간만큼
자랑도 늘어간다
인용한 시는 썩 잘 된 고추 농사의 전면에 색깔 좋고 싱싱한, 붉은 결실이 돋보이는 영상을 보여준다. 그 사진에 연대하여 ‘울 엄마’의 ‘자식 사랑’을 말한다. 농사일에 손 많이 가면 수확이 좋아진다. 동시에 자랑도 늘어간다. 자식 사랑도 그렇다. 비록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다 할지라도, 농사든 자식이든 이와 같은 사랑을 받고 있었으면 그 결과가 잘못되는 법이 없다. 온 세상 우주 천지 간에 이 엄마의 사랑을 대신할 어떤 사상도 철학도 찾기 어렵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는 『지성과 사랑』에서 “어머니가 있어야 사랑할 수 있고 어머니가 있어야 죽을 수 있다”라고 했던 것이다. 김경화의 이 시들도 그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3. 아버지, 예전에는 몰랐던 음영
2부 〈아버지, 내 생애의 그림자〉에는 아버지를 소재로 그 부녀지정(父女之情)을 노래하는 시 10편이 실려 있다. 어느 집안에서나 대개 아버지는 엄마보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다. 아버지의 마음과 그 자리를 체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한다. 시인이 어느 단계에서 이렇게 아버지 송(頌)을 꺼내어 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간절함이 엄마의 정황에 못지않다. 그러고 보면 이 시인은 사뭇 ‘착한 딸’이다. 풍을 맞았던 아버지, 가난을 감당했던 아버지, 자식들 걱정하던 아버지, 꿈만 꾸다 서둘러 가신 아버지가 이 대목에 여러 모습으로 줄지어 있다. 찾아보기로 한다면 시인의 눈에 비친 온갖 경물 가운데 아버지의 음영(陰影)이 없는 곳이 없다.
북망산도 봄이 왔나요
주택복권 당첨되면
카메라 한 대 사서
남산 가자던 아버지
손마다 들려진 디카
함께 갈 당신만 없네요
익히 알다시피 ‘북망산’은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자리를 이르는 말이다. 원래는 중국 허난성 뤄양 북쪽에 있는 작은 산이나, 이제는 사후의 보금자리를 이르는 것으로 일반화되었다. 시인은 아버지가 잠든 북망산에 봄이 왔는가를 묻는다. 생전의 아버지는 주택복권 당첨되면, 카메라 사서 ‘남산’ 가자고 했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서울 어느 지역의 남산 성곽일 시 분명하다. 그 성곽 언저리에 안개가 운무(雲霧)로 서리고 문득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는 정조(情調)가 형성된다. 자, 이제 대화가 가능하다. 그런데 예년의 카메라가 손마다 들려진 ‘디카’로 되었건만, 함께 갈 ‘당신’만 없다. 쉽고 단조로우나 애잔한 정서와 감동을 불러오는 시다.
4. 가족, 삶의 근본을 형성하는 힘
3부 〈또 다른 내 이름, 가족〉은 혈연의 연분을 나눈 이들, 곧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의 시 9편이 실려 있다. 그 가족은 ‘말이 없이도 무거운 짐 들어줄 그림자’로 늘 곁에 있다. 이 관계성의 확신이 분명하다면, 시인은 행복한 사람이다. 일찍이 한문 문화권의 조종(祖宗) 가운데 한 분인 맹자는, 그가 적시(摘示)한 세 가지 즐거움(三樂) 가운데 첫 번째로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父母俱存 兄弟無故)을 들었다. 시대와 세월이 달라져서 이 교훈적 언술은 고색창연한 옛말처럼 되었으나, 그 본질적 의미는 여전히 변함이 없고 특히 김경화의 디카시에서는 확연히 그러하다. 이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은연중에 기쁨이 된다.
차별
엄마 젖 독차지하곤
혼자 잘났다고
빛깔 좋게 뽐낸다
하나라도 잘 컸으면 되었다
부모가 밤송이의 껍질 같은 울타리라면, 형제자매는 그 속에 가지런히 앉아 있는 밤톨과도 같다. 이 시의 사진은 그 외형적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 한 톨만 유난히 크고 때깔이 좋은데, 나머지는 허약하고 왜소하다. 시인은 그 때깔이 엄마 젖 독차지한 결과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하나라도 잘 컸으면 되었다’는 언사를 가져다 둔다. 이것이 누구의 말인가가 문제다. 부모 중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 있고, 아니면 형제 중 한 사람이 그럴 수도 있다. 거기에는 시기와 질투가 없고 오히려 넉넉한 이해와 포용의 분위기가 감돈다. 가족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시인이 주장하는 듯하다.
5. 가르침과 깨달음이 있는 통로
4부 〈세상에 던지는 질문〉은 디지털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본 세상살이의 여러 면모를 통해, 다시 반대로 세상을 향하여 삶의 의의와 존재 양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시 11편으로 되어 있다. 시와 문학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감상을 내포하고 있고, 그 형식 및 내용에 대한 물음을 포괄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도덕적 완전주의자의 태도다. 그의 시각으로는 ‘평화’가 참 쉽고, 그런 만큼 팽목항은 ‘미안한 곳’이다. 심지어는 ‘생활 쓰레기’조차 버리고 싶은 나의 어제를 반사한다. 「고민 중」이라는 시의 사진은 암벽의 한 지점에서 절묘한 표정을 잡았다. 시인은 이 고뇌의 형상에 ‘눈 뜨고 볼 수 없는 세상만사가 지천’이라는 해석을 붙였다. 그에게는 모든 사물이 가르침과 깨달음의 통로다.
오덕에 반하지 않는 익선관
머리에 주름이 우아하고(文)
이슬 먹고 사니 맑고(淸)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 염치가 있고(廉)
집이 없으니 검소함이 있고(檢)
때에 맞춰 행동하는 믿음(信)이 있는
인용된 시는 익선관처럼 맑고 투명한 매미의 날개를 포착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정묘(精妙)한 사진 그 자체가 아니라, 사진이 담고 있는 익선관으로서의 의미와 그것의 덕목에 관한 평설이다. 익선관은 원래 임금이 평상복인 곤룡포를 입고 정무를 볼 때 쓰는 관을 말한다. 곧 임금의 모자다. 사극(史劇)을 보면 임금님이 쓴 관의 뒤쪽에는 세로로, 신하가 쓴 관의 관모에는 가로로 한 쌍의 매미 날개가 붙어 있다. 중국 진나라의 시인 육운이 매미의 다섯 가지 덕을 여기에 비유했기에, 매미의 오덕(五德)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사진과 시를 한데 묶어서, 시인은 매미처럼 단순 소박한 가운데 온전한 사람됨을 지키며 살자는 간곡한 권유를 전하고 있다.
6. 디카시 지평을 확장하는 활력
5부 〈일상의 시, 시의 일상〉은, 디카시를 통해 일상이 예술 활동이 되고 예술이 일상의 숨결 속에 스며든, 시인의 기쁨과 자긍심을 보여주는 시 10편을 담았다. 문학과 예술은 그 발생 초기부터 상류층의 전유물이었고, 기층계급은 그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서구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서사시와 비극만 다루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고급한 정신적 향유의 표징이었다. 서민 대중이 이에 다가서는 소설 등 산문의 출현은 중세 이후 민중 의식의 성장과 더불어서였고, 이는 동양 문화권이나 우리 고전문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작가는 더 이상 우월한 ‘교사’가 아니고, 독자와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가수’의 자리로 내려섰다. 이를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문예 장르가 디카시다.
환생
격랑 속에서 한 생
고문이었을까
단련이었을까
인용된 시는 아마도 구이 식당의 불길 위에서 고기를 익히는 맥반석인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여기에서 ‘격랑 속에서 한 생’을 살아온 자취를 보고, ‘고문’이나 ‘단련’과 같은 고단한 언사와 함께 ‘환생’을 유추한다. 인생의 범주를 보다 큰 눈으로 보면, 하나의 작은 일상이 그 속에서 어떤 지위에 도달해 있는가를 보다 쉽게 볼 수 있을 듯하다. 모두 50편에 이르는 김경화의 디카시들은 이렇게 작고 소박하면서도 소중하고 품위 있는 삶의 의미들을 찾아 예민한 감각의 촉수를 작동하고 있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니, 그의 이와 같은 노력과 수고가 우리 디카시의 지평을 값있게 확장하고, 그 자신에게는 한 생애의 중심을 관류하는 활력이자 보람이 되기를 간곡한 마음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약력
문학평론가,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경남정보대학교 디지털문예창작과 특임교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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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는 가장 짧은 영화다. 디카시는 디지털 세상을 수놓는 별이다. 또한 디카시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1초 , 또는 3초짜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디카시는 디지털 세상을 밝히는 한 편의 영화다.
[금주의 디카시]에는 경남정보대학교 디지털문예창작과 대마도 출사 기념, 경시 대회 수상작 <세상을 보는 방법(정경미)>, <대치 중(이성숙)>, <이즈하라(박서영)> 세 편과 심사평을 소개한다.
#금주의디카시
세상을 보는 방법 / 정경미
바로 보고
돌려 보고
거꾸로 보고
내가 선택한 창이 내 마음이다
대치 중 / 이성숙
바쁘다 바빠
방해하지 마라
제발 각자 갈 길 가자
비켜
이즈하라 / 박서영
타국에 뿌리박힌 옹주 영혼
목젖이 아프도록 그리는 조선 땅
애도로 피어난 백의민족 여인들
여행은 인간의 오감을 확장하게 만든다. 여행하는 동안 사람은 자신의 잠자던 감각을 최대한 작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에서 오는 긴장감과 그런 공간을 이해하려는 감성의 작동, 거기다 언어까지 통하지 않는 곳이라면 생존 본능은 고도로 작동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세계의 문호들이 집필실을 옮겨 다닌 것도 그런 일환의 하나 아니었을지.
짐작건대, 대마도를 다녀온 후 한동안 마음 무거울 것으로 여긴다. 여행지가 품고 있는 역사, 그것도 쇠잔한 우리의 왕국의 비애, 시대를 거스를 수 없었던 한 사람의 비극적인 삶, 실존 인물 덕혜옹주 등을 느낄 수 있는 대마도는 우리에게는 비애이다.
그렇기에 26편 중 당연히 역사에 관한 작품, 덕혜옹주를 주제로 하는 디카시가 많았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고증된 역사를 그대로 언술하는 것이 아니어야 하며, 적절한 시적 비유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적 대상과 비유적 대상의 등가도 따져보아야 한다. 「덕혜옹주 연가」의 작품에서 “마음은 고향”이라는 문자 기호 언술은 ‘고향’이라기보다 ‘조국’이나 ‘모국’ 등으로 언술하였더라면, 덕혜옹주가 갖는 인물사적 의미의 비유로 적확하여 시적 의미는 증폭하였을 것이다. 아쉬움을 접고 아래의 세 편을 작품상으로 선정하였다.
「세상을 보는 방법」, 「대치 중」, 「이즈하라」이다. 「이즈하라」는 덕혜옹주의 결혼봉축기념비를 시적 대상으로 한 점만으로도 큰 비애가 인다. 거기에 흰 무궁화를 조선 여인으로 비유한 점이 울림을 얻었다. 「대치 중」은 오염되지 않은 게의 세상에 인간이 나타난 위험한 상황을 보여준다. 게에게는 극단의 대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제발 각자 갈 길 가자”라는 문장 기호의 언술이 ‘대치’라는 언어의 긴장감을 무너트리는 묘미를 준다. 「세상을 보는 방법」은 사진 기호와 문장 기호의 융합이나 제목의 융합이 깔끔하고 명징해서 눈에 띄었다. “내가 선택한 창이 내 마음”이라는 문장 언술이 갖는 메시지 또한 주제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심사위원 정유지 교수 · 이상옥 교수 · 최광임 교수(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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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는 SNS의 날개를 타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전달된다. 스마트폰이 켜져있을 때 디카시 박동소리 즉, 디카, 디카, 디카 소리가 들리면 디카시를 신앙처럼 여기는 우리 시대 진정한 디카시 심장을 가진 마니아다."
정유지(부산디카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