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는가?(벧후1:4-11)
(벧후1:4-11)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마음에 덕을,덕에 지식을,지식에 절제를,절제에 인내를,인내에 경건을,경건에 형제 우애를,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곡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핝ㄱ 얹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 이 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한 동안 우리 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이 있습니다.메릴린 히키가 쓴‘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는 책이죠.이 책은 교회는 열심히 다니고 기도하고 노력을 해도 집안에 흐르는 영적 문제와 어려움이 해결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책인데,오래 전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습관이나 문화 전통 등에 의해 저주와 질병과 모든 것들이 대물림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끊고, 하나님 말씀을잘 실천하여 새로운 습관과 전통과 문화를 세워야 한다고 합니다.너무 인기를 끌다 보니, 과연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들이 요즘 이 책에 대해 성경적으로는 문제가 없는가 하고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것들이 성경에 근거를 둔 것으로 일리가 있다고 보입니다.
제가 탄현에 온 지도 3년이 넘어갑니다.그 동안 아이들 사역을 하면서 몇 가지 느낀 것이 있습니다.첫 번째는 아이들은 몇 명 안 되는데, 편가르기가 심하다는 겁니다.누군가가 생일잔치를 하는데,도서관과 아동센터에 있던 같은 반 친구들이 우르르 다 가는데, 그 중에 한 명 혹은 두 명은 초대 받지 못했는지머뭇머뭇거리다가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을 몇 번 봤습니다.
여러분, 이럴 때 어떤 기분이 들까요?어른이든 아이든 아마 견디기 힘들 겁니다.아마 이런 일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를 겁니다.그런데 문제는 그런 따돌림을 당한 사람이 그걸 극복하지 못하고또 다시 편가르기를 하고 따돌린다는 겁니다.편가르기와 따돌림이 습관이 되고 전통이 되고 문화가 되어버린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씀씀이가 헤프다는 겁니다.아침에 아이들을 학교 앞까지 태워오면,몇 명의 아이들은 교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게로 갑니다.준비물을 사러 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 먹으러 가는 겁니다.우리 교회 나오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만,가끔은 같이 가자고 제안하면 따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다른 아이들처럼 뒷바라지 하지 못한다고 큰 돈은 못 줘도 과자 사먹을 용돈이라도 넉넉히 줘야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습관이 나중에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차비 아낀 것 가지고, 아니면 부모님께 용돈 받은 거 가지고 그 때 그 때 가게에서 값싼 거 사먹고 나면,결국 건강과 식습관만 나빠지지 않겠습니까?제가 누군가에게 농담으로 1년 동안 교회 차 타고 다니면 차비 절약한 걸로 피아노 한 대 사서 마음껏 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제가 들은 바로는 이 중에는 사먹는 거는 아끼고 아꼈다가한 번을 써도 그럴듯하게 쓰는 좋은 습관을 가진 친구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돈은 버는 것 보다 쓰는 걸 잘 해야 합니다.모든 습관들은 어려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가는 겁니다.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왜 느닷없이 목사님이 이런 이야길 할까 하겠지만,사모님이 제발 설교 때 아동센터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심신 당부하지만,부득이 해야겠습니다.왜냐하면 신앙이란 것이 교회 따로 가정 따로, 직장 따로,학교나 아동센터 따로여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입으로는 정직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위선적이다.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서 자기들 밖에 모른다.주일 날 교회에서 하는 것과 평일에 학교나 직장에서 하는 게 전혀 다르다.결국 성경 말씀을 아는 것과 실제로 생활하는 것이 정반대라는 겁니다.그러니 하나님 말씀은 교회 따로 가정과 학교와 직장과 아동센터가 따로따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베드로후서 1장 10절에,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합니다.그는 저주를 끊고 축복의 삶으로 바꾼 사람입니다.시골 어부 출신이 예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입고, 일약 수제자가 됩니다.하지만 그가 3년을 따랐지만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합니다.그저 예수님을 등에 업고 출세하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하지만 예수님이 붙잡히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자,언제 그랬느냐 하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잡아 뗍니다.
예수님이 죽자, 아예 고향으로 내려가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습니다.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가서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도)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합니다.예전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고백한 그 믿음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약속을 이룹니다.그는 다시 믿음이 회복하여 목숨을 다하여 복음을 전합니다.죽기 바로 전에 힘을 다해 성도들에게 전하는 말씀이 베드로후섭니다.
예전에는 베드로도 우리도 편가르고, 내 욕심대로 살아왔습니다.내 편하고 내게 이익 되는 것만 좇으며 살았다 이겁니다.남이야 이러든 저러든 무슨 상관이냐 하면서 말입니다.하지만 그런 삶은 잠시 있다가 썩어 없어질 모습입니다.그런 모습으로는 결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약속 있는 말씀 중에, 네가 행한대로 갚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누군가를 왕따시키면, 왕따 당하게 되고,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면 결국 속임을 당하게 되고,누군가에게 원수를 갚으면 자신도 원수 갚음을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그것도 결정적일 때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베드로전서에서 뭐라고 하셨나요?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라.애매하고 심지어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순종하고 복종하라.지금 잠시 받는 고난 뒤에는 영원한 기쁨과 평안이 있다.마귀는 참지 못하도록, 복종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을 속이도록마치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찾아 다니는 것처럼 우리를 좇고 있다.그러니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전신갑주를 입고 싸워 물리쳐라.힘에 겨우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도와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부르시고 택하신 것은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려 하기 때문입니다.즉 하나님 자녀이면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데, 뭐가 닮아야 하느냐?바로 성품이 닮아야 한다는 겁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그 믿음 위에 덕, 즉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는 거요,그 위에 지식, 즉 무엇이 하나님 말씀에 비춰 옳고 그른 건지 알아야 하고,그 위에 절제, 즉 자기 욕심을 비워야 하고,그 위에 인내, 짐을 짊어지고 걷는다는 의미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가는 것입니다.그 위에 경건,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하여 온전히 순종하고,그 위에 형제우애, 즉 다른 사람들과 가족처럼 지내고,그 위에 마지막으로 사랑, 즉 남의 유익을 위해 희생하라는 겁니다.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우애와 사랑을 공급하라, 흘려 보내라는 겁니다.11절에, 이같이 하면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하신다는 겁니다.
19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니이체는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우수한 삶, 즉 노블레스 오빌리제를 실천해야 할기독교인들이 오히려 병들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도덕과 정직과 순종을외쳤기 때문에 신은 죽었다! 라고 하면서 도덕적으로 가장 강력한 인간이 세상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하지만 결코 하나님은 죽지 않았고 영원하십니다.다만 오래 참고 계실 뿐입니다.
며칠 전 아동센터에서 한 아이를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그 만 할 때는, 얼마든지 장난으로 그럴 수 있습니다.하지만 상대가 마음 아파하니, 장난으로 그런 거라고 미안하다는 말을 했어야 합니다.그런데 아무도 자기가 그랬다고 하는 아이가 없었습니다.저는 너무 당황스러워 몇 차례 경고를 했습니다.심지어는 모두 눈을 감게 하고 조용히 손을 들라고도 했습니다.나름대로 충분한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우리는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아신다면서 까지 했는데, 끝까지 자백하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이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누가 도대체 이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만들었을까?이미 순진한 아이들이 아니었다 이겁니다.당당하게(?)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무섭고,내가 과연 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회의가 들었습니다.오늘 저는 마지막 설교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강단에 섰고,설교 제목도 ‘신은 죽었는가?’라고 물었습니다.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신은 죽지 않았습니다.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고, 다만 우리의 모든 언행을 보시고즉각적으로 반응하시기 보다는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그리고는 정말 꼭 필요할 때에, 비로소 반응하십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그도 한 때는 우리와 똑같이 악한 습관과 전통과 문화를 끊지 못하여예수님을 부인하고, 자기 혼자 살자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자입니다.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믿음이 회복되고 축복의 삶을 살았습니다.우리도 그리스도를 앎으로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습니다.신의 성품에 참예하여 좁은 문, 영광의 나라를 넉넉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흔히 기독교를 프로테스탄트, 혹은 개혁주의 신앙이라고 부릅니다.프로테스탄트는 과거 잘못된 것들에 대해 저항하는 겁니다.거짓된 악에 대해 진리와 선으로 대적해 이기는 겁니다.또한 개혁이란 말은 자기 껍질을 벗는다는 한자업니다.예 것을 고치는 것, 그것은 마치 자기 살 껍질을 벗는 것과 같은 고통과아픔이 있다는 겁니다.하지만 그래도 벗어야 합니다.과거 자기 껍질을 벗는 작업이야 말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이요,이것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도록 천국문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