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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국권회복과 근대적 시형의 모색
그림으로 기획된 시의 연출 효과 외인촌 김광균 |
하이한 모색募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村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가 한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룻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외인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란 별빛이 내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원 손길을 저어 열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출처 《와사등: 김광균 시전집》(1977) 첫 발표 『조선중앙일보』(19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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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 金光均 (1914~1993)대상을 회화적 이미지로 그려 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시인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시문학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
감각적인 시어로 도시와 현대문명을 형상화하는 한편, 비애와 소외의식을 그 기저에 두었다. 한국전쟁 무렵에는 사업가로 변모하였다. 주요 시집으로 《와사등》(1939), <기항지>(194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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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성에서 회화성으로
시는 본디 음악과 가깝다. 원시종합예술부터 20세기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시가 음악과 결합하지 않은 시기는 없다. 지금도 기성 시인의 작품이 가요와 가곡으로 만들어져 불린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여기에 반기를 든 흐름이 나타났다. 바야흐로 전 세계가 현대문명의 세례를 받기 시작하던 그때, 시 또한 그에 맞춰 변모해야 한다는 문학운동이 서양에서 일어난 것이다. 음악성을 중시하는 기존 시에서는 고저, 장단, 강약 등으로 리듬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으로는 현대사회의 복잡성과 속도감을 담아내기에 부족하며 시각적인 이미지가 훨씬 유용하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음악성과 결합한 19세기의 시 전통에서는 주관적인 내면을 토로하는 것이 하나의 미덕이었지만,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삶을 냉철하게 포착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자제하고 건조한 이미지로 승부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와 함께했다. 이로써 리듬보다 이미지(심상), 음악성보다 회화성이 시의 자질로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현대시의 다양성을 증폭시켰다. 193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고전시가가 쇠퇴한 자리에서 새로운 시 형식을 모색하던 시인들의 일부가 그러한 흐름에 동참했다. 정지용, 김기림, 그리고 김광균이 대표적이다. 작품 성향은 서로 달랐으나 이들은 대체로 음악성보다 회화성 또는 조형성에 무게를 두었고, 모더니즘의 기수(手) 격인 김기림의 시론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이 중 김광균은 특히 그림(회화) 같은 이미지 묘사를 특기로 하는 시인이었다. 고흐의 그림을 처음 보고 감동하여 급속히 회화의 세계에 빠져들었다는(김광균, 1982) 그는 "소리조차를 모양으로 번역하는"(김기림, 1939: 40) 기이한 재주를 가졌다고 평가받으며 당대 문단의 이목을 끌었다.
| 이미지들이 구성하는 공간과 이중적 정서
<외인촌>은 그러한 특성을 보여 주는 김광균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중·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공감각적 심상의 단골 사례로 등장하곤 했던 시구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도 이 작품에서 나왔다. 바로 이 시구처럼 김광균의 시는 토막 단위로 독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와사등>), "구름은 / 보랏빛 색지 우에 /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데생>) 등이 그렇다. 그만큼 대상을 감각적인 시어로 응축하여 이미지화한 효과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어나 행 단위의 참신한 이미지에 주목하는 접근만으로는 시에 내포된 풍부한 감상의 가능성을 놓칠 수 있다. 한 편의 시에서 이미지들은 서로 치밀하게 연계되어 있기 마련이고, 따라서 독자는 그 이미지들이 얽혀 만들어내는 패턴이나 질서를 파악함으로써 단편적인 감각성을 넘어서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김광균의 시에서는 이미지들이 모여 형성하는 '공간'에 주목해 볼만하다. 그의 시가 회화성을 띤다고 할 때, 회화란 결국 공간에 관한 예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김광균의 시에서 이미지들이 어떤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내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는 외인이라는 시적 공간을 구성하는 이미지들 중 하나이며, 이것이 같은 5연의 "공백한 하늘", "퇴색한 성교당"에 나타나는 호젓함이나 쇠락한 느낌과 어우러져 이 공간의 주된 정서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외인촌〉을 살펴보자. 제목 그대로 시의 대상은 외국인들이 사는 이국풍 마을이다. 1연은 '외인촌'의 원경(遠景)으로서, 해 질 녘 산골짜기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마을은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데, 그 앞에는 '고독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사무치는 고독을 뜻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고독함 자체가 아니라 '고독한 그림'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삶의 큰 비극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관객들이 그 비극을 고스란히 겪지는 않는 것처럼, 고독도 그림이 되는 순간 그렇게 된다. 또한 이 시구의 앞뒤로 나열된 말들도 그렇게 읽게 한다. 해질녘('모색')이되 어둡고 우울한 배경이 아니라 '하이한' 배경이고, 마을도 그 속에 암울하게 놓인 것이 아니라 '피어 있다. 풍경을 함께 이루는 '마차'와 '노을'에 각각 입혀진 '파란'과 '새빨간'이라는 알록달록한 색채, 바다를 향해 트여 있는 '산마룻길,' 평온히 노을에 젖어 있는 '구름' 또한 한적하고 어여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고독함이란 일종의 호젓함에 가까운 정서였던 셈이다. 그런데 인간의 정서인 '고독'이라는 용어가 굳이 풍경 속에 들어가 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고독'은 화자가 은폐되어 있는 이 시에서 유일하게 노출된 정서 용어이기에, 풍경에 전이된 화자의 심리를 보여 주는 단서로서 주목되어야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을 일단 넣어두고 다음을 보자.
그림 같은 산협촌의 공간은 다음 연들에서 보다 구체적인 형상을 얻게 된다. 마치 카메라가 마을 내부로 진입하여 곳곳을 비추듯 비교적 근거리에서의 묘사가 이어진다. 먼저 2연에는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과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가 등장한다. 얼핏 자연에 압도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집들은 언제든 "창을 내려 안온함을 보존할 수 있고 돌다리 아래 시냇물은 앙증맞게 “물방울을 굴리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과 어우러진 아늑한 공간이라는 인상이 더짙다. 3연에서는 "화원지의 벤치"가 초점화된다. 이곳에 '소녀들'이 '웃음'과 '꽃다발'과 함께 다녀간 것으로 되어 있다. 생활의 여유나 안락함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2연과 유사한 인상을 주는 공간인 셈인데, 또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청각과 시각의 독특한 결합이면서 이질적인 시간들의 결합이기도 한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가 그러하다. “가벼운 웃음”은 경쾌하지만 지나가 버린 과거의 것이다. 현재의 벤치 위에 여운처럼 남아 있지만 "시들은 꽃다발"과 함께 "흩어져 있기에 마냥 경쾌하지만도 않다. 하지만 마을이 폐쇄되거나 소녀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는 이상 그'웃음'은 언제든 다시 이 벤치 위를 찾아올 것이므로 짙은 쓸쓸함만이 남는 것도 아니다. 티 없는 명랑함과 우수에 찬 쓸쓸함, 둘 중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지 않는 어디쯤의 정서가 이 공간에 스며들어 있다.
4연과 5연에서는 시간의 경과가 감지된다. 밤이 찾아오고, 시곗바늘이 움직인다. 언뜻 보기에는 이와 함께 공간의 주된 정조도 달라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비록 "묘지", "어두운 수풀", "퇴색한 성교당" 등에서 쇠락과 어둠의 이미지가 나타나기는 하나, 그곳은 밤새 '별빛'이 비치는 곳이다. "푸른 종소리"도 독자마다 받는 느낌이 다르겠지만 청량하거나 청아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별빛은 '가느'랗고 시계의 손길은 '여윈' 상태이지만, 이들은 어둡고 쇠락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있다. 마치 2연에서 "작은 집들"이 창을 내려 안온함을 유지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도 마을은 쓸쓸하고 쇠락한 느낌으로 온전히 기울지는 않는다.
시적 화자가 드러나지 않은 채 대상이 되는 공간만이 오롯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한 편의 그림 같다는 느낌을 준다. 화자의 정서가 스며들 곳이 있다면 아마도 여러 이미지에서 수식의 기능을 맡고 있는 형용사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미지들로 구성된 '외인'이라는 공간은 위에서 본 것처럼 정서의 결이 단일하지 않다. 이미지란 '심상(心象)'이라는 단어에서도 보듯 결국 마음속에 떠오르는 형상이기에, 독자가 어떤 형상을 떠올리는가에 따라 그에 결부된 정서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독자에 따라 이렇게도 느껴지고 저렇게도 느껴지는 공간, 그것이 이 그림의 매력이다.
| 기획된 공간의 연출 효과
그런데 이쯤에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 볼 법하다. 이 시에 그려진 '외인촌'은 어디인가? 1935년 발표 지면을 보면 이 작품이 함경도 주을(朱乙)온천 여행 경험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서준섭, 2017: 186). 김기림과 이효석 등 다른 문인들의 산문에도 등장한 바 있는 주을온천은 경관이 수려한 휴양지로서 인근에 러시아인을 위시한 외국인들의 거주지가 있었다. 이를 참고하여 시인의 여정을 따라가 보거나 외국인 마을의 사연을 탐사하여 작품의 풍경을 재음미하는 것도 감상의 한 방법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시는 이후 다른 지면에 실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 현실이나 구체적 체험과의 연관성이 의도적으로 탈색되어간 작품이다. 주을온천이라는 단서도, 화자가 여행 중이라는 상황도 모두 떨어져 나갔다. 이 시의 이미지만으로 상상할 수 있는 그림 같은 공간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굳이 실제 현실의 구체적인 지명과 이 시의 연관성을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편에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떠올려야 한다. 시인은 왜 실제 현실에 얽매이지 않은 채 이토록 선명한 이미지들의 정수(精髓)와도 같은 풍경을 그려 내려고 했을까?
이런 물음은 김광균의 시를 대할 때 특히 유의미하다. 시에서 그의 언어는 그때그때의 현실에 조응하여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일정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철저하게 기획된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정 이미지가 그의 다른 시들에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사례가 많고, 심지어 관조적 성격을 띤 그의 수필에 등장한 표현이 시에 그대로 쓰이기도 한다. 이는 물론 시인들의 일반적인 시작 과정에 비추어 보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나, 김광균의 경우 그의 시가 '현실'보다 '의도된 기획'에 가깝다는 점을 뒷받침해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예컨대 <외인>에 쓰인 '종소리가 분수처럼 퍼진다'는 표현은 시인의 고향인 개성의 풍경을 담은 수필에서도 동일하게 등장한다(김광균, 1937). 즉 정교하게 다듬어진 그의 풍경 시어는 대체로 현실의 고유한 대상을 지시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 애초에 구체적인 현실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시어들을 생성하기보다는, 선명한 이미지의 시어들을 마치 공예처럼 지속적으로 기획해 두었다가 조합하는 방식이 더 우세하게 사용된 까닭이다.
김광균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한 문학자는 훗날 이러한 시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사실 김광균은 '아! 내 하나의 신뢰할 현실도’(〈공지(空地)〉)없었기 때문에 동요불안정(動搖不安定)한 그 현실에서 형상에 고정된 하나의 단절 세계로 도피한 것이 그의 회화적인 문학태도가 되었다" (백철, 1989: 545). 시인이 살고 있는 현실은 불안정하고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안주할 수 있는 안정된 그림의 세계를 취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시인의 의도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추론할 필요는 없다. 시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시가 기획된 회화 같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줄 수 있고, 그러한 생각의 한 예시를 이 비평이 보여 주고 있다고 받아들이면 된다. 이를 바탕으로 하면 다음과 같은 생각도 가능하다. 회화(그림)라는 예술 형식은 '그리는 자'가 소재와 구도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고, 실제 현실의 구구한 소리와 냄새, 보기싫은 영상은 소거해 버리거나 변형할 수 있다. <외인촌>의 잘 정돈된 공간이 철저한 소거의 결과라고 본다면, 역으로 정돈되지 않은 현실이 이 시의 배후에 희끄무레하게 깔려 있음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혹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질적인 정서의 공존이 <외인>의 기획이라고 본다면, 현실에 존재하는 복잡한 정서들이 이 시와 같은 이미지 중심의 언어에 포섭될 가능성을 음미해 볼 수 있다.
또한 시가 기획된 그림과 같다는 사실은 '그리는 자'(주체)와 '풍경'(대상)의 분리를 내포하기도 한다. 풍경으로부터 거리를 두지 않은 채 그것을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사실에 대한 주목은 <외인>에서 은폐된 듯한 화자의 문제를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강민규, 2015: 32-35). 주체는 대상을 자신의 시선 속에 넣어 소유하기 위해 분리라는 포즈를 취하는 것일까? 아니면, 대상의 바깥에 선 채로 자신의 입지를 위협받지 않으려는 것일까? 혹은 단순히 분리를 통해 객관적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경지를 지향하는 것일까? 이 작품의 공간 기획에 대한 사유는 이런 상상을 통해 풍요로움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 강민규
참고문헌
강민규(2015), 「이미지즘 시의 공간 연출(演出)과 시 읽기 교육: 정지용과 김광균의 시를 중심으로」, 『문학교육학』 47, 한국문학교육학회, 9-47.
김광균(1937), <풍물일기>, 오영식·유성호 편 (2014), 《김광균 문학전집》, 소명출판,
김광균(1977), 《와사등: 김광균 시전집》, 근역서재.
김광균(1982), 「30년대의 화가와 시인들」, 『계간미술』 23, 중앙일보사, 91-94.
김기림(1939), <시단의 동태>, 《인문평론》, 인문사, 36-44.
백철(1989), 『신문학사조사』, 신구문화사.
서준섭(2017), 『한국 모더니즘 문학 연구』(개정판), 역락.
사회평론 교육 총서 19 『문학 교육을 위한 현대시작품론』
2024. 11. 4
맹태영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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