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26사단 여군 군악대장 허수*
지난 9월 말에 나는 다시 모부대(母部隊) 26사단에 다녀왔다. 목적은 군악대장(여군)과 대원들과의 만남이다. 물론 사전에 충분한 의논이 있었고, 업무를 관장하는 정훈공보참모 김창* 중령의 양해를 얻었음은 물론이고말고. 군악대장에게 거수경례를 올려 부쳤다. 공격!
먼저 군악대 요원들이 20여 명 모인 공간에서 나는 열변을 토했다. 정훈공보참모와 군악대장은 약간 떨어져 별도로 나란히 앉았다. 한참 떠들어대는데, 외근 중이던 진성민 전문하사가 돌아왔다. 입대 전 롯데 호텔 전속 마술사였단다. 마술계의 지존? 고개를 끄덕일 만한 표현이다.
나는 강의를 한답시고 떠들었지만, 의미가 크지 않다. 서두를 우스갯소리 정도로 열었던 것 같다. 이윽고 나는 특전사 군악대장 이인화 예비역 소령과의 해후에 얽힌 이야기를 들먹이고, 내 군 복무 시에 대유행이었던 쟈니리의 ‘뜨거운 안녕’을 절규하듯 쏟아내었다.
내가 몸담았었던 부관참모부와 군악대, 그리고 헌병대와의 인연을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늘어놓았다. 공통분모가 있다고 했다. 군기가 빡세기로 이름났고, 내무반(지금의 생활관)이 바로 이웃해 있었다는 뜻이다.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그들이 한없이 좋았다.
군악대원들과는 딱 50년 전의 만남이었다. 물론 당시의 그 전우들은 아니다. 그들의 아들이나 손자뻘 되는 나이의 장병들이고말고. 동방신기의 정**이등병은 자리에 없었다. 아무려면 어때? 나는 군악대장과 나머지 전우들이 보고 싶어 왔으니까.
허수* 군악대장! 어디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미인이다. 군복이 어울리고, 지휘관 휘장이 마치 훈장처럼 빛나고 있었다. 게다가 언행 하나하나에 절도가 배어 있다. 탄성이 절로 터졌고말고. 강의가 끝나고, 정훈공보참모와 한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놀라운 사실 하나 더. 군악대장쯤 되면, 여러 가지 악기를 대강 다룰 줄 알고 악보에 따라 지휘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얼마나 틀린 짐작인지 이내 눈치 챘다.
허수* 대위는 의자 옆에 트롬본을 반듯하게 걸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분신이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그리고 혼잣말. 아하, 군악대장은 반드시 전문 악기를 하나 다루어야 하는구나. 그러고 그걸 피나게 연습해서 실력을 쌓아 우뚝 서지 않으면? 권위가 실추로 이어짐은 보나마나.
그러던 군악대장이 내 왼쪽 검지에 끼인 반지를 보더니, 가톨릭 신자냐고 묻는다. 자기도 교우란다. 전우+교우! 소중한 인연이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세기 전 난 불자였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은 특히 전우들 간에 상대방 종교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대 교회에서 장병들 앞에 항상 그 얘기를 재해석해서 줄곧 강조하기도 했다.
반시간쯤 그렇게 앉았다가 일어났다. 여기저기서 전우들이 노병에게 경례를 부친다. 공격, 공격, 공격! ‘공격’이란 구호가 나는 참 좋다. 전성민 부사관이 따라나섰다. 반세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잠깐 동안이지만 그에게 당시 군악대의 일화를 몇 개 들려주었다. 정말 알려지지 않는 비밀(?)에 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과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 탓이었으리라.
부대 성당에 들러서 군종 병사와 해후했다. 최정현 일병. 가톨릭 대학교에 재학 중에 입대했으니, 군복을 벗으면 복학해서 장차 사제가 될 사람이다. 나는 결코 하대를 할 수 없었다. 김도* 주임신부는 출타 중이라 면담이 성사되지 못해 아쉬웠다.
다시 열흘 뒤, 10월 2일 부대의 국군의 날 행사에 초청을 받았다. 난 하사 계급장이 달린 군모를 쓰고 단상에 앉았다. 특히 눈여겨 본 것이 있다. 같이 간 손자는 특공 무술에 시선을 앗기고 있었지만, 나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군악대 연주와 행진이 제일 좋았다. 허수* 대장이 맨 앞에 서서 지휘봉을 휘두르는 가운데 전 대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북한군 의장대는 기계가 움직이는 듯하지만 우리 군악대는 감동을 창출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정의 대부분을 군악대장과 군악대원들과 보냈다.
다시 열흘이 후딱 지났다. 나는 주일(主日)을 택해, 다시 불무리 성당을 찾는다. 이번엔 주임신부가 반겨 맞았다. 거의 장병들뿐인 부대 성당에서 미사라니, 남다른 의미가 있다. <천주교 군인성가>부터 일반 교우들의 것과는 다르다. 물론 미사곡이야 비슷하지만…….미사가 끝나자마자 주임신부가 나를 별도로 소개했다. 반세기 만에 찾아온 노병이라고. 그리고 그분의 양해를 얻어, 생활 성가 ‘내 발을 씻기신 예수’를 봉헌했다. 바로 전날 동백 성당에서 신상옥 안드레아 형제의 육성을 통해 들었던 곡이다.
군악대 강민영 병장과 장현수 일병이 기타를, 최연우 상병이 키보드로 반주했다. 다들 구면이다. 정도 들었다. 그들이 있어 나는 26사단을 더욱 사랑한다. 참모장 남궁*용 대령이 사복 차림이라 얼른 못 알아봐 내가 미안했다. <군인성가>를 한 권 얻은 것도 뜻밖의 수확이다.(책값은 치렀다.)
만약 허수* 군악대장이 나가는 본당을 파악(?) 중에 있다. 내년 봄쯤 어느 주일 귀띔도 없이 찾아가 몰래(?) 미사에 참례하고 돌아오고 싶다. *1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