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북괴군 그 전단
북한에 전단을 담은 날려 보내는 데 대해 왈가왈부 중이다.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에서 주관하는 모양이다. 이 단체에서는 기어이 그 일을 하려 하고 경찰은 한사코 원천 봉쇄한다. 지난번 이 단체에서 북한에 대형 풍선 열 개를 띄웠단다. 대북 전단 20만 장과 1달러 지폐 1천 장, 소책자 4백 권 등을 넣었다. 언젠가는 북한에서 인기 최고인 초코파이도 단골 품목이라던가? 참, 때론 소형 라디오도 풍선에 담긴다더라 북한을 내부 붕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 그거라는 단체의 충정을 이해한다. 반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아서는 이게 최선이 아니라는 여론에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언젠가 방송에서 그 전단들을 보았는데, 인쇄가 정교하고, 비에 젖어도 찢어지지 않을 만큼 질기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 정도라면, 북한 주민들의 동요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매체라고 판단했다. 하물며 주민들에게는 상당한 유혹일 수 있는 1달러 지폐이랴! 거기에 목을 매는 북한 주민들, 헐벗고 굶주림에 살기가 힘들다는 판단이 든다. 꽃제비가 대표적 예다.
문득 또 보병 제26사단 시절이 머리에 떠오르는 게 아닌가? 남들은 행여 보무라지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근거가 있다. 내 인생에서 획기적 전환점이 된 군 생활을 거기서 보냈었다. 늘그막에 몸을 의지하게 된 여기 낯선 땅 용인은 26사단이 지척과 다름없다. 내 고향, 이 나라 남쪽 끝 부산을 기점으로 해서 말이다. 이제 삶을 마감할 여기에서, 나는 26사단 시절을 그리워하며 세월을 보낼밖에. 참, 난 65년 6월쯤 자대 배치를 받았었다.
너무 힘들게 그 시절을 보냈다. 볕뉘도 비치지 않는다는 절망에 빠지기 예사였다. 효도도 못했으면서 나를 기다리시는 눈 어두우신 엄마를 걱정했다. 행여 넘어지시지나 않았는지…….남들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여자 친구가 찾아오곤 하는데, 얼씬 거릴 혈육조차 없었다. 일요일에도 대개 부대 내무반에 죽치고 앉아 있을 수밖에.
그런 중에도 위안이 있었으니, 통신 중대 옆의 철조망 구멍을 지나 계곡으로 올라가 빨래를 하는 일이었다. 그건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사단사령부 외곽 철조망에 구멍이 났다? 당시엔 간첩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침범할 수 있었으리라.
하여튼 처음으로 산기슭에 접어드는 날, 여기저기 전단이 흩여져 있었다. 수십 가지였다. 약간 두려웠지만 주워 보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할 때마다 듣는 이에게 놀라지 마라며 미리 침을 놓는다. 26시단 사령부는 의정부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양주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내 사무실에서 몇 백 미터도 못 가서, 남북한이 고무풍선에 매달아 보낸 전단에 어지럽게 섞여 흩어져 있는 것이다. 처음엔 그걸 보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고말고.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에 남북한의 국력 차이가 났던 모양이다. 남한이 큰 게 아니고 그 반대라는 얘기다. 북한 쪽 것은, 천연색으로 인쇄한 소책자 따위가 섞여 있었다. 반면에 남한이 북한으로 띄운 전단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왜 우리 것이 우리 부대로 떨어지느냐고? 기구(氣球)가 역풍을 타고 거꾸로 내려오다 터지는 바람에 생기는 현상이다.
나는 은근히 흥미가 생겨 더 깊은 산으로 올라가 보기도 하였다. 밟히는 게 전단이었고, 로켓처럼 생긴 기구 받침대인가 뭔가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것도 목격했다. 그 밑에는 북괴군의 전단이 수십 장 널브러져 있었다. 그 내용이라니, 살점이 떨릴 지경이었고. 우리 국군이 집단 귀순했다는 따위는 예사고, 만행에 가까운 성폭행을 저질렀다느니, 어느 사병이 대대장을 사살했다는 터무니없는 허구도 허구지만, 그 그림들이 정말 전율을 느끼게 했다. 그 자리에서 버렸기에 망정이지 행여나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와서 들켰더라면 영창 행?
하기야 그런 전단은 사단 사령부 연병장에도 흩뿌려지는 모양이었다. 아침에 기상과 동시에 본부중대 요원들이 전단 수거 작업에 동원되는 걸 보기도 했다. 내 신경과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가? 참, 지난번 부대 방문 때 보니까 통신대대(중대가 아니고 대대로 개편) 옆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못할 정도로 철통 방위 태세였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만 전단이 날려진다. 그것도 탈북자들의 손에 의해서. 사실만을 적은 것이다. 65년도보다 북한은 더 못사는 것 같고, 남한 국력은 북한의 수십 배다. 세월의 무상함이라고 하기가 머뭇거려진다. 26사단 장병들에게 이 전말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까?
후기 * 11장/ 2013. 7. 4
모든 게 그립다. 특히 보병제26사단 사령부! 지금은 26기계화 사단으로 바뀌었지만. 사단사령부에 46년 만에 들어섰는데, 전차가 지키고 있지 않은가? 내가 사단장 표창장을 붓으로 써대던 그 자이에 부관참모부는 그대로 있었다. 일요일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출입문 저쪽에 분명 엄마가 보이셨다. 또 눈물을 흘렸다.
통신중대는 대대로 바뀌었고, 대대장은 중령이었다. 천주교 신자였고. 만나진 못했다. 대신 123기보대대장과 군수참모와 점심을 같이 했다. 불무리 (부대) 성당 주임신부도 합석했고.
며칠 전 전화를 받았다. 김화중 대대장으로부터. 올 6월에 2차 안보 강연을 해 달라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수술 직후, 불가해서 안타까웠다. 곧 나으면 다시 26사단으로 간다. 세 번째! 여단장 김ㅇㅇ 대령과의 약속도 있었다. 나는 부르진는다. 우리 군 만세! 참, 26기걔화 사단의 구호를 소개한다, 공격!
한자를 안 섞어서 행복하다. 그러나 우리말 7할이 한자에서 왔다니 알기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전단은 삐라로 바꾸는 게 타당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말로써도 충분하니 순리를 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