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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환절기
"이 선생이 비노 네 병을 혼자 비웠다더라."
피레네 눈 구경의 여파는 생각보다 끈질겼다. 한글학교 수업이 있는 토요일마다 그 소문은 교민들 사이의 유쾌한 가십거리가 되어 인야를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었으나, 인야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을씨년스러운 바르셀로나의 겨울 한복판에 발가벗겨진 채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어느덧 한국의 전통 명절인 (음력)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야는 한국 시간으로 섣달그믐날 밤, 고국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북적이는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온 집안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야는 묘한 안도감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그는 마치 거룩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집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침대 시트를 빨고 바닥을 닦아내며 타국에서 혼자 맞이할 새해의 자리를 정갈하게 정돈했다.
그 무렵, 아랫집 아말리아의 올케인 꼰수엘로가 인야를 찾아왔다.
자신들의 고향 안달루시아에서 청년 하나가 디스크 치료 겸 이 동네 수영장에 다니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올 텐데, 오래 머물 것도 아니고 갑작스런 일이라 마땅한 거처를 마련해주기 애매하니... ‘침묵의 집’에 남는 방 하나를 그 청년에게 이용하도록 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 와서, 그러라고 했던 일이었다.
사실은 이미 며칠 전에 귀띔을 받았던 터라 인야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튿날, '뻬드로(Pedro)'라는 청년이 동생과 함께 짐을 들고 들어왔다. 적막하던 집에 세 사람의 숨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당 작업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아말리아는 오랜만이라며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그를 붙잡았다.
인야는 할 일이 있다며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옆방의 형제와 몇 마디 나누다 그들이 밥을 먹으러 나가서, 인야는 다시 홀로 남았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은 예민하게 지켜온 그의 작업 리듬을 여지없이 깨뜨려 놓았다.
그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마음은 자꾸만 겉돌았다.
설상가상으로 요즘은 발정 난 고양이들마저 밤마다 뒷문 계단에서 울부짖어 잠을 설쳐야 했다.
인야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채 언어학교의 첫 수업에 나갔다.
그는 강의실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학생이었다.
오후에는 작업실로 돌아와 캔버스를 준비했는데, 밑칠인 젯소를 칠하느라 금세 허기가 졌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귀찮아서 완성품을 사서 썼지만, 이곳에서는 천과 틀을 따로 사서 직접 캔버스를 짜고 밑칠까지 해야만 했던 것으로...
그 모든 고단한 노동은 오직 지독한 경제난 속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함이었다.
일주일 남짓 지났을까, 바르셀로나의 기후가 몸에 맞지 않는다며 뻬드로가 갑작스레 짐을 쌌다.
미안해하며 집세 조로 돈을 건네려 했지만 인야는 끝내 사양했다.
다시 ‘침묵의 집’으로 돌아온 그를 맞이한 것은 정적이 아니라,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육체의 통증이었다.
의식적인 음주와 폭음의 대가는 혹독했다.
2월 들어 생활 리듬이 뒤죽박죽된 데다 경제난까지 겹치자 뱃속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던 것이다.
'이 먼 외국 땅에서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제발 옛날 같은 일만은 없어야 한다.'
인야는 간절히 기도했다.
사실 겉보기에 인야는 평범한 유학생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스페인어를 배우러 학원에 다니고, 또 대학원에도 적을 두고 한글학교 교사로 일하며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속은 까맣게 썩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근데, 나는 무엇 하러 이곳에 와 있는가. 언어 배우러? 대학원 학생(학위 따러)? 한글학교 교사? 아르바이트하러?'
인야는 이 모든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한국의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식구들 모두가 인야가 건강하게 잘되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근데,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식구들에게 뭘 어떻게 해 줄 거라고, 저토록 기다린다는 걸까? ‘나’라는 사람에게 갖는 우리 식구들의 기대감은? 그리고 내 초라한 실체......'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자신이 한국을 떠나올 때는 그런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었는데, 한국에 있으나 멀리 떠나온 뒤에나, 아니 오히려 지금... 자신에 대한 식구들의 기대감이 더 커져 그를 옥죄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 때려치우고 어딘가 다시 멀리 도망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떠나왔던 사람이 바로 난데, 또 어디로 떠난단 말인가. 더구나 이런 몸으로? 요즘엔 그림도 안 되는데......'
어느 날, 인야는 시내 화랑 몇 군데를 돌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꾸벅꾸벅 졸 정도로 피곤이 극에 달했다.
집에 와서 겨우 저녁을 챙겨 먹고 또 졸았다.
그리고 일기까지 쓰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밤... 마침내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인야에게는 스페인에서의 첫 ‘장출혈’이었다.
사람과 술을 좋아하던 30대 초반 한창 젊었던 시절, 어느 날 인야는 ‘장출혈’로 병원에 실려가며 무쇠처럼 영원할 것 같았던 건강을 잃었고, 그러면서 술과 담배도 빼앗겼다.
갑작스런 삶의 변화로 살맛도 나지 않았지만, 잃어버렸던 건강을 회복하느라 인야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인내해야만 했고... 겨우 어느 정도 회복되자, 얼싸 좋다며 다시 술 생활로 돌아갔다가, 또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몇 차례 반복되는 등, 고통의 세월을 보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스페인이란 나라로 날아왔는데, 2년이 다 되도록 버텨왔다는 교만함이 화근이었다.
가끔씩 스페인 술(비노(Vino))을 즐겼고, 또 어쩌다 했던 폭음이 병든 마음과 함께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 날따라 기운도 없었지만 밤이 좀 늦어서, 어차피 잠자리에 들어야 했기 때문에 침대로 가려다, 어쩐지 평소와는 달리 화장실에 가고 싶어 갔다가, 변기에 검은 똥을 누었던 것으로,
“악!”
인야는 소리를 지를 정도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 전의 경험으로 ‘장출혈’이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떡한다지? 어떡한다지?' 하면서 바로 병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지만,
밤에 병원에 혼자 가는 것도 겁이 났고, 또 재수 없게도 하필이면 주말과 겹쳐서... 도움을 구할 곳도 막막했다.
그러니,
‘이것도 운명인가 보다!’ 하고 한 편으로는 뭔가 포기를 하고 절망하면서 새파랗게 질려 있었는데,
‘아, 나 혼자 어찌하나? 돌봐줄 사람도 돈도 없이. 이 먼 나라에서......’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이 들더니, 동시에,
예전에 이곳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던 어느 태권도 사범이 왜 어머니에게 자신의 죽음까지 숨기려 했는지 그 마음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고, 정말 앞이 캄캄해지고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잠시 정신을 차려 상황을 파악해 보니, 자신이 누었던 피똥이 검은색이었으니, 이미 피는 멈춰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다면, 일단 그 밤을 보낸 다음 뭔가를 결정해야 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일기장에 끼적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어머니를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데, 워낙 겁에 질려선지 얼굴만 노랗게 떠있을 뿐입니다.
의기 양양 어머니를 떠나올 땐 언제고, 지금 몸뚱이 하나 간수하지 못한 채 공포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떡한답니까?
지금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뵙고 싶은 게 어머닌데, 제가 어찌 이런 모습을 어머니께 보여드릴 것이며, 하물며 소식이라도 알려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은, 이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저는 어머니 앞에 나설 수조차 없다는 처지인데,
그러고 보니, 이제야 전에 죽은 태권도 사범이 왜 자신의 어머님께 죽음까지도 숨겼는지 이해할 수 있겠네요......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어머니!'
공포와 고통 속에서도 깜빡 잡이 들었는지, 인야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일어나 제일 먼저 거울 앞에 간 인야는, 자신의 얼굴을 확인해 보고... 몇 발자국 걸어도 보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러고 있는 것 자체가, 지금은 출혈이 멈춰진 상태라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담, 병원에 가는 건 조금 더 견뎌본 뒤 결정하자......’는, 자꾸만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쪽으로 생각이 향했고, 일단 한글학교 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뒤 미음을 끓여 먹고는, 용기를 내(어쩌면 그 상황을 잊기 위해) 성당 작업실엘 갔고, 전에 그리던 그림에 손을 대기도 하고, 보통 날과 큰 차이 없는 일정을 보내는 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문은 겉잡을 수 없이 퍼진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필이면 전화 통화한 날이 토요일이라 한글학교에 수업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한글학교 교사들은 물론, 인야가 맡은 청소년 학급의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도 그 사실을 다 알게 되었고, 매주 토요일 아이들을 차에 싣고 오는 바르셀로나 교외의 교민들 역시(그들은 수업이 끝나야 아이를 싣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 자연스럽게 그 소식을 알게 되었을 터라...
인야의 의도와는 달리, 동네방네 소문이 다 퍼져버렸던 것이다.
후배 심의 전화가 왔는데,
"그러게 왜 그리 술을 마셔갖고는?" 하는 꾸지람과 함께, 우선 회복할 때까지 자기 집에 와 있으라 했고,
헐레벌떡 뛰어온 J 사범도 걱정스런 모습으로 인야를 염려해 주고 돌아갔는데,
저녁 무렵엔 한글학교 교장 부부가 소족을 끓여 가지고 들이닥치는 일로도 이어졌다.
그러니 인야가 의기소침한 가운데서도 용기를 내지 않을 수 없었고, 당연히 마음이나마 그분들께 고마움을 전할 수밖에 없었는데...
인야는 어느새 자신이 여기 교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또 한 가지,
만약 아랫집에 알리면, 온 동네가 난리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예 입을 닫고 있기로 하는 일도 벌어졌다.
아무튼 상황이 그렇게 돌아갔는데, 어느새 인야는 사흘 전의 출혈을 잊어가는 듯했다.
피가 빠져나가 누렇게 뜬 얼굴로로, 인야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즈음 인야는 자화상 하나를 그렸는데, 눈, 코, 입은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얼굴의 테두리가 없는... 윤곽이 무너진 얼굴이었다.
그러던 하루, 인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하는 일 잘되고 잘 있느냐고 물으면서, 꿈자리가 사나워 전화를 거셨다는 것이었다.
물론 인야는 가슴이 뜨끔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대로 잘 있습니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허긴, 그렇다고 완전한 거짓말이라고도 할 수도 없었다.
실재로 병원도 안 간 채,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었으니까.
'내 몸을 살려야 한다. 나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를 위해서도......'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지 딱 2년이 되던 날, 인야는 거울 속에 비친 초라한 자신을 보았다.
건강과 경제난은 그를 옥죄었고, 꿈속에서는 억만장자가 되거나 그림이 팔리는 헛된 욕망이 일렁였다. 2년 전의 거창했던 기대에 비하면 지금 자신의 처지는 시든 풀과 다를 바 없었다.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비가 그치면 봄이 올 텐데......'
인야는 떨리는 손으로 일기장에 마지막 문장을 적어 넣었다.
'나는 이 봄에 이렇게 시든 풀처럼 지낼 수만은 없다. 밝게 살고 싶다. 싱싱하게 살고 싶다.'
네, 바로 교정본 드릴게요. 😊
b. 환절기
"이 선생이 비노 네 병을 혼자 비웠다더라."
피레네 눈 구경의 여파는 생각보다 끈질겼다. 한글학교 수업이 있는 토요일마다 그 소문은 교민들 사이의 유쾌한 가십거리가 되어 인야를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었으나, 인야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을씨년스러운 바르셀로나의 겨울 한복판에 발가벗겨진 채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어느덧 한국의 전통 명절인 (음력) 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야는 한국 시간으로 섣달그믐날 밤, 고국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북적이는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온 집안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야는 묘한 안도감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그는 마치 거룩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집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침대 시트를 빨고 바닥을 닦아내며 타국에서 혼자 맞이할 새해의 자리를 정갈하게 정돈했다.
그 무렵, 아랫집 아말리아의 올케인 꼰수엘로가 인야를 찾아왔다.
자신들의 고향 안달루시아에서 청년 하나가 디스크 치료 겸 이 동네 수영장에 다니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올 텐데, 오래 머물 것도 아니고 갑작스런 일이라 마땅한 거처를 마련해주기 애매하니... '침묵의 집'에 남는 방 하나를 그 청년에게 이용하도록 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 와서, 그러라고 했던 일이었다.
사실은 이미 며칠 전에 귀띔을 받았던 터라 인야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튿날, '뻬드로(Pedro)'라는 청년이 동생과 함께 짐을 들고 들어왔다. 적막하던 집에 세 사람의 숨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당 작업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아말리아는 오랜만이라며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그를 붙잡았다. 인야는 할 일이 있다며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옆방의 형제와 몇 마디 나누다 그들이 밥을 먹으러 나가서, 인야는 다시 홀로 남았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은 예민하게 지켜온 그의 작업 리듬을 여지없이 깨뜨려 놓았다. 그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마음은 자꾸만 겉돌았다.
설상가상으로 요즘은 발정 난 고양이들마저 밤마다 뒷문 계단에서 울부짖어 잠을 설쳐야 했다.
인야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채 언어학교의 첫 수업에 나갔다. 그는 강의실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학생이었다.
오후에는 작업실로 돌아와 캔버스를 준비했는데, 밑칠인 젯소를 칠하느라 금세 허기가 졌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귀찮아서 완성품을 사서 썼지만, 이곳에서는 천과 틀을 따로 사서 직접 캔버스를 짜고 밑칠까지 해야만 했던 것으로... 그 모든 고단한 노동은 오직 지독한 경제난 속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함이었다.
일주일 남짓 지났을까, 바르셀로나의 기후가 몸에 맞지 않는다며 뻬드로가 갑작스레 짐을 쌌다. 미안해하며 집세 조로 돈을 건네려 했지만 인야는 끝내 사양했다.
다시 '침묵의 집'으로 돌아온 그를 맞이한 것은 정적이 아니라,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육체의 통증이었다.
의식적인 음주와 폭음의 대가는 혹독했다. 2월 들어 생활 리듬이 뒤죽박죽된 데다 경제난까지 겹치자 뱃속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던 것이다.
'이 먼 외국 땅에서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제발 옛날 같은 일만은 없어야 한다.'
인야는 간절히 기도했다.
사실 겉보기에 인야는 평범한 유학생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스페인어를 배우러 학원에 다니고, 또 대학원에도 적을 두고 한글학교 교사로 일하며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속은 까맣게 썩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근데, 나는 무엇 하러 이곳에 와 있는가. 언어 배우러? 대학원 학생(학위 따러)? 한글학교 교사? 아르바이트하러?'
인야는 이 모든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한국의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식구들 모두가 인야가 건강하게 잘되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근데,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식구들에게 뭘 어떻게 해 줄 거라고, 저토록 기다린다는 걸까? '나'라는 사람에게 갖는 우리 식구들의 기대감은? 그리고 내 초라한 실체......'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자신이 한국을 떠나올 때는 그런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었는데, 한국에 있으나 멀리 떠나온 뒤에나, 아니 오히려 지금... 자신에 대한 식구들의 기대감이 더 커져 그를 옥죄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 때려치우고 어딘가 다시 멀리 도망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떠나왔던 사람이 바로 난데, 또 어디로 떠난단 말인가. 더구나 이런 몸으로? 요즘엔 그림도 안 되는데......'
어느 날, 인야는 시내 화랑 몇 군데를 돌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꾸벅꾸벅 졸 정도로 피로가 극에 달했다.
집에 와서 겨우 저녁을 챙겨 먹고 또 졸았다. 그리고 일기까지 쓰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밤... 마침내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인야에게는 스페인에서의 첫 '장출혈'이었다.
사람과 술을 좋아하던 30대 초반 한창 젊었던 시절, 어느 날 인야는 '장출혈'로 병원에 실려가며 무쇠처럼 영원할 것 같았던 건강을 잃었고, 그러면서 술과 담배도 빼앗겼다.
갑작스런 삶의 변화로 살맛도 나지 않았지만, 잃어버렸던 건강을 회복하느라 인야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인내해야만 했고... 겨우 어느 정도 회복되자, 얼싸 좋다며 다시 술 생활로 돌아갔다가, 또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몇 차례 반복되는 등, 고통의 세월을 보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스페인이란 나라로 날아왔는데, 2년이 다 되도록 버텨왔다는 교만함이 화근이었다.
가끔씩 스페인 술(비노(Vino))을 즐겼고, 또 어쩌다 했던 폭음이 병든 마음과 함께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날따라 기운도 없었지만 밤이 좀 늦어서, 어차피 잠자리에 들어야 했기 때문에 침대로 가려다, 어쩐지 평소와는 달리 화장실에 가고 싶어 갔다가, 변기에 검은 똥을 누었던 것으로,
"악!"
인야는 소리를 지를 정도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 전의 경험으로 '장출혈'이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떡한다지? 어떡한다지?' 하면서 바로 병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지만, 밤에 병원에 혼자 가는 것도 겁이 났고, 또 재수 없게도 하필이면 주말과 겹쳐서... 도움을 구할 곳도 막막했다.
그러니, '이것도 운명인가 보다!' 하고 한편으로는 뭔가 포기를 하고 절망하면서 새파랗게 질려 있었는데,
'아, 나 혼자 어찌하나? 돌봐줄 사람도 돈도 없이. 이 먼 나라에서......'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이 들더니, 동시에, 예전에 이곳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던 어느 태권도 사범이 왜 어머니에게 자신의 죽음까지 숨기려 했는지 그 마음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고, 정말 앞이 캄캄해지고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잠시 정신을 차려 상황을 파악해 보니, 자신이 누었던 피똥이 검은색이었으니, 이미 피는 멈춰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다면, 일단 그 밤을 보낸 다음 뭔가를 결정해야 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일기장에 끼적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어머니를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데, 워낙 겁에 질려선지 얼굴만 노랗게 떠있을 뿐입니다.
의기양양 어머니를 떠나올 땐 언제고, 지금 몸뚱이 하나 간수하지 못한 채 공포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떡한답니까?
지금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뵙고 싶은 게 어머닌데, 제가 어찌 이런 모습을 어머니께 보여드릴 것이며, 하물며 소식이라도 알려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은, 이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저는 어머니 앞에 나설 수조차 없다는 처지인데, 그러고 보니, 이제야 전에 죽은 태권도 사범이 왜 자신의 어머님께 죽음까지도 숨겼는지 이해할 수 있겠네요......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어머니!'
공포와 고통 속에서도 깜빡 잠이 들었는지, 인야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일어나 제일 먼저 거울 앞에 간 인야는, 자신의 얼굴을 확인해 보고... 몇 발자국 걸어도 보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러고 있는 것 자체가, 지금은 출혈이 멈춰진 상태라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담, 병원에 가는 건 조금 더 견뎌본 뒤 결정하자......'는, 자꾸만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쪽으로 생각이 향했고, 일단 한글학교 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뒤 미음을 끓여 먹고는, 용기를 내(어쩌면 그 상황을 잊기 위해) 성당 작업실엘 갔고, 전에 그리던 그림에 손을 대기도 하고, 보통 날과 큰 차이 없는 일정을 보내는 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진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필이면 전화 통화한 날이 토요일이라 한글학교에 수업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한글학교 교사들은 물론, 인야가 맡은 청소년 학급의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도 그 사실을 다 알게 되었고, 매주 토요일 아이들을 차에 싣고 오는 바르셀로나 교외의 교민들 역시(그들은 수업이 끝나야 아이를 싣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 자연스럽게 그 소식을 알게 되었을 터라... 인야의 의도와는 달리, 동네방네 소문이 다 퍼져버렸던 것이다.
후배 심의 전화가 왔는데, "그러게 왜 그리 술을 마셔갖고는?" 하는 꾸지람과 함께, 우선 회복할 때까지 자기 집에 와 있으라 했고, 헐레벌떡 뛰어온 J 사범도 걱정스런 모습으로 인야를 염려해 주고 돌아갔는데, 저녁 무렵엔 한글학교 교장 부부가 소족을 끓여 가지고 들이닥치는 일로도 이어졌다.
그러니 인야가 의기소침한 가운데서도 용기를 내지 않을 수 없었고, 당연히 마음이나마 그분들께 고마움을 전할 수밖에 없었는데... 인야는 어느새 자신이 여기 교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또 한 가지, 만약 아랫집에 알리면 온 동네가 난리 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예 입을 닫고 있기로 하는 일도 벌어졌다.
아무튼 상황이 그렇게 돌아갔는데, 어느새 인야는 사흘 전의 출혈을 잊어가는 듯했다.
피가 빠져나가 누렇게 뜬 얼굴로, 인야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즈음 인야는 자화상 하나를 그렸는데, 눈, 코, 입은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얼굴의 테두리가 없는... 윤곽이 무너진 얼굴이었다.
그러던 하루, 인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하는 일 잘되고 잘 있느냐고 물으면서, 꿈자리가 사나워 전화를 거셨다는 것이었다.
물론 인야는 가슴이 뜨끔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대로 잘 있습니다." 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허긴, 그렇다고 완전한 거짓말이라고도 할 수도 없었다. 실제로 병원도 안 간 채,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었으니까.
'내 몸을 살려야 한다. 나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를 위해서도......'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지 딱 2년이 되던 날, 인야는 거울 속에 비친 초라한 자신을 보았다.
건강과 경제난은 그를 옥죄었고, 꿈속에서는 억만장자가 되거나 그림이 팔리는 헛된 욕망이 일렁였다. 2년 전의 거창했던 기대에 비하면 지금 자신의 처지는 시든 풀과 다를 바 없었다.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비가 그치면 봄이 올 텐데......'
인야는 떨리는 손으로 일기장에 마지막 문장을 적어 넣었다.
'나는 이 봄에 이렇게 시든 풀처럼 지낼 수만은 없다. 밝게 살고 싶다. 싱싱하게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