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로(新作路)
임금재
유년의 깊은 속 뜰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지워 버릴 수 없는 길이 하나 있다.살아온 인생여정을 꼭 닮은 신작로다.
반세기가 훨씬 지나갔음에도 주름살처럼 골이 깊이패인 채 기억 속에 아주 둥지를 틀어 버렸다.
쩔렁쩔렁 쇠 방울을 울리며 소달구지들이 지나간 뒤 뽀얀 먼지 속에 바퀴자국을 남기던 신작로는 고스란히 내 마음의 고향 속에 그대로 있다.
고향인 철원 벌말에서 서북쪽으로 십리를 가면 노동당 당사가 있던 철원읍에 이르고 동북 방향으로 오리를 가면 사기막 골에 이르는 신작로가 있었다
사기막 골은 높은 산으로 가로막힌 막다른 골이지만 일제 시대 그곳에서 구워내던 사기 그릇을 운반할 목적으로 신작로를 냈다고 한다.
동구밖에 삼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남쪽으로 십리를 가야하는 양지 인민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다.
아버지의 무관심과 반대로 제 나이에 인민학교 마저 다니지 못 할 번했다.
떼를 쓰다 못해 몸을 던져 단식 투쟁을 불사하여 얻어낸 등교 길은 동네 안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아니고 앞이 확 트인 신작로였다.
한 여자의 일생이 평탄치 못 할 것임을 예고하기 위함이었을까?
유년초기부터 무엇인가 어둡고 예사롭지 못했다.
마을의 젊은이들이 일제의 압제를 피해 객지로 나가고 징용에 끌려갔던 이들이 해방 후 고향으로 되돌아오던 그 길로 학교엘 다니게 되었다.
학교로 가는 신작로 양옆 길섶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살아남는 질경이와 앉은뱅이 민들레, 찔레꽃 그리고 조팝꽃(싸리꽃)이 번갈아 널부러지게 피면서 꽃 향을 토해내고 있었다.
먼 산자락의 진달래꽃 무리는 분홍빛 무지개꿈을 멀리 보며 오래 간직하라는 암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오래 못 가서 그 신작로 마저 사각거리는 하얀 모래를 밟으며 사근사근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들꽃의 향기처럼 뽀얀 먼지 일던 신작로는 탱크의 무딘 쇠 발톱에 여지없이 짓 밟히어 이겨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초여름 무성한 콩 잎사귀들도 미제 B 29라면 벌벌 떨던 어느날 나는 뽕나무에 올라가 한가로이 오디를 따먹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느닷없이 머리 꼭대기로 나타난 비행기가 굉음을 토하며 폭탄 세례를 퍼부어 댔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듯이 천지를 진동시키던 폭격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조용해진 후 콩 잎 사이로 훔쳐 본 하늘은 그대로 거기 있었으며 멀리 뵈는 신작로와 나는 멀쩡했다.
폭격은 분명히 뽕나무 꼭대기에 올라간 나를 겨냥했던 것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10리 밖 우리 학교가 표적이었다.
학교 건물은 오 간데 없이 포격으로 날아가 버리고 그 자리에는 커다란 구덩이만 남아버렸다.
고추잠자리가 마치 미제 정찰기처럼 띠엄띠엄 공포에 질린 하늘을 겁도 없이 날기 시작했다.
인민군이 남조선을 해방시킨다고 호언장담 기세등등하게 남녘을 향하더니 슬그머니 수구러 들자 이상한 나라 사람들이 탱크를 앞세워 신작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숭이 닮은 흰둥이, 유난히도 하얀 이빨이 튀는 검둥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잡종들, 어린 나로선 도저히 종족을 구별 짓기 어려운 얼굴들이 동네를 마구 어지렵혔다.
우리가 경외하던 김일성 장군의 군대(인민군)를 추격 중이라 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김일성 장군과 인민군 만세! 뿐이었는데 이제는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분간할 재간이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서북쪽 철원을 지나 개성 평양까지 그리고 백두산 정상에다 태극기를 꽂는다는 말에 속아 기러기 떼도 북녘으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온 세상이 민심처럼 얼어붙기 시작하자 그리도 당당하던 UN군도 부상병들을 들것에 싣고 남으로 기수를 돌려 동구 밖 신작로를 메우기 시작했다.
초라하고 처절한 패잔병들은 몇 개월 전 의기양양하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퇴각 행열은 남으로 길게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온 세상은 내린 눈으로 인해 하얗게 변했다.
피로 얼룩지고 부끄러운 양심들이 헤집고 지나간 흔적들을 잠시나마 지우려는 하늘의 섭리였을까?
이번에는 눈으로 뒤덮인 신작로에 흰 누비옷으로 위장을 한 중공군들이 말과 마차에까지 흰 포장을 두르고 나타나 마을 을 송두리 채 하얗게 점령했다.
UN군(잡종들)처럼 부녀자들을 괴롭힌다거나 민폐를 삼가려는 모습은 위장술에 능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UN군 측의 패잔병들이 지나간 신작로를 따라 중공군들도 남쪽으로 갔다.
직접 보고 듣고 겪으면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상이었다.
인민군이 남조선 해방이라는 피취 아래 떨치고 간 그 길로 잡종들이 밀려오고 그들이 처참하게 물러나자 중공군이 지나가고 다음엔 또다시 어떤 일이 신작로를 통해 벌어질런지 알 수가 없었다.
젊은 남정네들은 마을을 떠난지 오래고 민심은 흉흉했다.
불확실한 미래 겁먹은 눈망울들 산목숨 어쩌지 못하는 상황으로 겨울이 가고 서러운 봄이 꼬리를 감추었다.
인민군이 들어오면 김일성을 찬양하고 국군이 들어오면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뜻도 모르면서 불러야했다.
보리 고개와 초여름을 향한 높은 문지방을 죽기 아니면 살기로 넘겼다.
인민 해방이다 세계평화다 다 개 뼈다귀같은 속임수에 놀아난 꼴이었다.
논밭에서 일해야 할 농부들의 모습은 찾을 수 가 없었다.
또 한차례 인민군과 중공군이 동네를 거쳐 북으로 야밤도주 하듯 밀려가고 검둥이 흰둥이 세상이 되었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을 수 없는 막바지 전쟁터가 될 거라며 개 떼 몰이하듯이 신작로로 내 몰았다.
기껏해야 2,3개월이면 다시 돌아오리라 여겨 예사롭게 봇짐 꾸려 떠나온 길이었다.
찔래꽃, 싸리꽃, 아카시아도 영영 다시 피울 수 없게 될 그 신작로를 뒤로하고 묵정밭에 말 못하는 강아지와 망초대만 남겨 둔 채로.
폭격을 피해 숨어든 콩밭에서 콩 잎사귀 틈새로 보았던 하늘은 여전히 암울했고 무작정 신작로로 쫓겨난 상황에서 무슨 희망이 있었으랴.
그때는 도저히 상상 할 수조차 없었던 꿈을 향해 걸었다.
견디며 버티어온 길고 긴 세월 속에서 꿈은 이루었지만 반세기 지난 세월 저편은 지워지지 않은 채 아프게 곪아있다.
고향의 진달래며 길가의 풀포기와 민들레, 냉이, 꽃다지 그 어느 하나도 잊을 수가 없어 서럽다.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그 향기에 아찔한 현기증을 앓던 어린 시절의 하얀 신작로를 꿈속에서 신나게 달린다.
허리춤에 두른 보자기책가방 속에서 딸랑거리던
양철필통소리! 그 상큼한 소리도 듣는다
첫댓글 우리의 신작로가 애환이 참 많네요... 저도 어린시절에 장에 가셨던 어머니가 맛있는 걸 사가지고 돌아오시는 신작로가 생각납니다..,언덕에 올라서서 고개를 빼고 기다리던...^^
제 평생 주제가 길인데. 저는 신작로 하면 먼지가 생각나고, 하교길 뙤약볕이 생각나요. 글구 비가온후에 촉촉한 흙색깔. 어릴때 추억을 끄집어 내게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