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은 여관의 로션 냄새를 느끼며 출근하는 병점행 전철,
성모와 여관에 갔는데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이 자꾸 꽃잎처럼 날리고
그 친구들과의 애틋한 추억이 탐진강 물안개처럼 자꾸자꾸 피어 올라
한참만에 잠이 들었던 어젯밤이 생각난다.
어떤 잠못드는 밤은 괴롭고 힘들었고
그래서 눈물로 그 긴 밤을 적신 적도 있을 터인데
이처럼 행복하고 따뜻한 불면이 있다니,
전철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새삼 더 순수하고 맑아 보인다.
다들 좋은 친구들 덕분이지...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해서 올라간 철산역,
상희와 성모의 전화 채근에도 아랑곳 않고 전철은 왜 그리 굼벵이 걸음인지,
혹시 너무 늦어 친구들이 가버리면 어떡하지...
조급증에 전철 노선도만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엿가락처럼 휘어 끈적이는 철로를 따라 드디어 도착한 식당,
반가운 친구들보다 너무 많은 친구들 때문에 먼저 놀랐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낯선 얼굴이 날 반긴다.
운용이, 4학년 때 전학을 갔단다.
운용이도 나처럼 추억에 목말라하며 살아왔겠다 싶어 가슴이 시큰해 진다.
여자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해도 전혀 낯설지 않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거의 조우 한 적이 없어
초등학교 여자 친구들의 기억은 그 것으로 끝이다.
그런데도 어제 만났다 다시 만난 사람처럼 살가운 이유가 뭘까?
정답은 친구가 아니고 "깨복쟁이 초등학교 친구"가 맞는 답일 것 같다.
몇 년만인지 쉽게 계산이 되지 않을만큼 오랜 세월동안
친구,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
아니,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만나지 못한 게 아니라 잊고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에게 여러 이유와 변명을 해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마저 이해해 주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기로 하자.
풍동 대구댁 딸 내 친구 미순이가 삼겹살을 구워주고 밥을 시켜준다.
중학교 모임 때도 친구를 위해 고기 굽는 모습을 병두가 사진으로 올려줬는데
미순이는 남을 많이 배려하는 멋진 중년 여성으로 거듭난 것 같다.
잠시 숨을 돌려 보니 병두가 초등학교 앨범을 실사 출력해서 걸어 놓았다.
섬세하고 감성이 풍부한 병두만이 할 수 있는 멋진 이벤트다.
병두때문에 이런 뜻깊은 자리도 마련됐고...
문득 병두의 넉넉한 마음 한 자락을 닮고 싶어진다.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금자가 보이지 않는다.
식당에서는 제일 구석에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이영애 주연의 친절한 금자씨 영화를 보면서도 내 초등학교 친구
금자를 떠올리지 못한 것이 참 미안하다.
이런 내 마음을 친절한 금자는 알아 주려나...
노래방에서 대기하며 정란이가 내 날씬한 허리를 안아주고
내 무릎에서 앉는다. 병두가 증거 사진을 찍고..
노래에 맞춰 아담한 공자도 안아봤다.
어릴적 어찌 감히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아무렇지도 않고 그 느낌이 좋을 뿐이다.
이성적인 매력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내 아들을
안아주고 뽀뽀해줬을 때의 그 느낌 그 자체...
모르는 사이에 키가 제법 크고 경찰관이 된 상현이와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부르던 느낌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 만나면 정말 더 많이 안아주고 싶다.
날이 밝아오면서 어둠속에 묻혔던 사물이 잠에서 깨어난다.
전철 차창 너머로 가을걷이가 끝난 겨울 벌판이 등장하고
멀리 도시의 빌딩과 아파트 숲이 한 무리씩 지나간다.
이내 얇고 노오란 스카프 같은 아침햇살이 차창으로 들어와
내 목을 따스하게 감싼다.
출근이 아닌 기차 여행을 하는 착각에 빠진다.
노래방에서 나와 친구들을 보내고 몇몇이서 호프집에 갔다.
다들 가슴에 주렁주렁 그리움을 달고 다닌 영락없는 촌놈들이다.
가슴에 매달고 다닌 그리움 몇 개씩을 보따리 풀듯 풀어 헤치고
자주 만나자는 약속으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지...
촌놈은 역시 촌놈이다.
얼마지 않아 마지막 역에 도착한다는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종착역, 더이상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마지막 역.
급행으로 왔던 간이역을 다 들러 늦게 도착했던
결국은 더 이상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존재한다는 게
우리 인생을 닮아 있다.
내 인생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
난 지금까지 종착역은 생각하지 못한 채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그렇게 살아왔지.
정해진 철로만을 따라 빠르게만 내달리는 게 내 인생이라면
이제라도 그 뻔한 여행을 거부하고 기차에서 내려
작은 플라타너스 오솔길도 걷고 코스모스 만발한 신작로도 걸어보리라.
전철에서 내리는 순간 겨울 바람이 몰아친다.
너무 추워 눈물이 난다.
그래도 마음은 따뜻하다.
40대,가슴은 온기를 잃은 잿더미인 줄 알았는데
나도 몰랐던 고운 불씨 하나 친구들이 밝혀 주지 않았는가.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더 만나야 할 친구들이 많고, 더 들어야 할 친구의 이야기가 남아 있기에...
김희동
첫댓글 넘 반가웠어 나도 친구가 그리워 철산동까지 갔는데..돌아온뒤 가슴이따뜻하고 다시생각해봐도 즐거워.. 희동아 고맙다 우린 역시 친구야 모두들 넘 사랑해 .또 만나자 자주자주
간만에 호복하게 글 써주는 친구가 고맙네~! 건조 해지기 쉬운 인생여로에 서로 촉촉한 단비를 만난건 우리들에게 행운이야,, 담에 카페의 글 모아 동창 기념 책이나 하나 만들어서 서로 웃음 달고 다니면 어떨까? 이렇게 한 5년 후쯤~?!
그 시간을 같이 한 친구들이나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 모두가 그립고 안타까워 그 밤을 희동이 처럼 꼴딱 지새웠을거야... 나두 울 신랑 밤새 재우지 않고 친구들 얘기 해주느라 고문했거든.ㅎㅎㅎ(울 신랑이 생동이를 어떻게 알것이라고 상희, 순호, 정호, 금자,...등등) 오늘도 모처럼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같이 먹겠다고 일찍 들어온 울 신랑 사진 속 친구들 얼굴 보여 주며 또 배 곯게 해서 늦은 저녁 먹였당!!!
참석하지 못한 우리들....너희들끼리만 행복한시간 공유하는것 같아서 나 엄청 샘나거든,,,변해버린 모습속에 국민학교시절 모습들이 보인다,,,이친구는 누굴까,이친구는?? 사진 이곳저곳 뒤적이며 찾아보았지,,,공유하지못한시간이지만 국민학교시간의 연장이었다고 생각할께...
듣지도 못한철산역 몇시간이 걸리는지모르고가다가 늦었지만 넘 반갑더라. 친구들을 보니 이름까지생각나는것보면 정말 그리운 친구들이 맞긴 맞단말이야.정말 반가웠다...,반가운 친구들 또 보자 ,정오
목소리도 신사였지만 만나보니 네 모든것이 그대로이면서 영원한 멋쟁이더라. 특히 커다란 네 손은 너무 따뜻했다
희동이 당신이 있는 자리여서 더욱 아름다웠다. 복있는 사람 영원이 맑디 맑은 사람에게서 사랑도 받을 줄 알고... 이런 공간을 밑바탕으로 해서 튼실한 우정있는 동창회를 만들어 봅시다. 준비하세요이... 여러 동무들이 서로 도와서 모임을 만들고자 하니 잘 되리라 믿습니다. 흩어진 동무들 의견 모아서 서울이라고 광주라고 강진이라고 치우치지않게 하면서 사소한 것으로 순수함이 퇴색되는 우를 범하지말고 서로 의견 존중하면서 아름답게 양보하면서 부족하겠지만 모두를 아우룰 수 있는 멋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되 서울 광주 강진을 중심으로 한명씩 둬서 서로 얼굴보게 하면서 모임의 구심점을 안배해서 아무든 잘 해 봅시다. 준비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