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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의 주역풀이>
제6회 전쟁과 평화, 생사즉열반
지수사(7) 수지비(8)
◆ 지수사地水師의 사師는 전쟁이고 수지비水地比의 비比는 평화를 말한다. 천수송의 내용인 다툼과 송사가 국내적 문제라면 지수사의 전쟁은 국제적인 문제다. 다툼이 커지면 전쟁이 된다. 전쟁과 평화는 나라와 세계를 어떻게 바로잡냐 하는 문제다. 나라의 목적은 씨알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평화와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나라에 분쟁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 지수사地水師
지수사의 사師는 의로운 전쟁을 말한다. 의롭고 올바른 장수가 나와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지수사地水師는 정貞이니 장인丈人이 길吉하고 무구無咎니라.
◆ 지수사 괘를 판단한다. 지수사의 사師는 군대의 무리를 말한다. 정貞이란 정의롭다는 말이다. 많은 무리를 능히 정의롭게 쓰면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할 수 있다.
단왈彖曰 사師는 중야衆也니라. 정貞은 정야正也니라. 능이중정能以衆正하면 가이왕의可以王矣이니라.
땅속에 물이 차 있는 것을 지수사地水師라 한다. 물은 모이는 성질이 있고 위험하다는 뜻도 있다. 물의 양이 적절하면 흙을 단단하도록 뭉치게 하지만 너무 많은 물은 흙을 녹아내리고 무너뜨린다. 적절한 수분은 땅을 견고하게 하지만 땅속의 물이 너무 많으면 위험한 것이다.
땅을 어머니라 하고 물을 아들이라 볼 수도 있다. 어머니가 임신하면 위험한 상태가 된다. 땅은 백성, 즉 씨알들이요 물은 물욕이라 볼 수도 있다. 인간의 물욕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 활력을 주지만 지나치게 되면 사회를 위험하게 만든다. 사회에 음란과 사치가 극성하게 되면 씨알들의 불평불만은 커지게 되고 폭력과 분열로 위험하게 된다. 나라가 혼란하고 수습할 힘이 없게 되면 외부의 침략을 받게 된다.
왕의 잘못으로 백성을 가장 위험한 상태에 빠뜨린 상태가 전쟁이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르고 의로운 장수가 나와야 한다. 그래서 씨알을 모아 이끄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지수사 괘의 여섯 효 가운데 유일하게 구이九二만 양이고 나머지는 모두 음이다. 구이九二는 모든 씨알의 무리를 이끄는 올바른 장수를 상징한다. 의롭고 올바른 장수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이 본이다. 문무를 겸전한 사람으로서 지인용智仁勇, 지혜와 인덕과 용기를 갖춘 사람이다.
◆ 지수사 괘의 모습을 본다. 땅속에 물이 있는 것이 사師라는 괘다. 군자는 이로써 백성을 포용하고 군사의 무리를 기른다.
상왈象曰 지중유수地中有水를 사師라 하니 군자君子는 이以로써 용민휵중容民畜衆하느니라.
땅이 물을 품고 있는 그것이 사師다. 군자는 이 괘를 보고 ‘용민축중容民畜衆’에 힘쓴다. ‘축중’을 ‘휵중’으로 읽을 수도 있다. 쌓는다고 할 때는 축, 그리고 기른다고 할 때는 휵이라 읽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민축중 또는 용민휵중, 두 가지 뜻이 있다.
용민축중容民畜衆은 민의를 용납하고 중지를 모아서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또 백성의 뜻을 받아들여 농민을 훈련시켜 군사로 길러야 한다는 뜻이 있다. 땅이 물을 품듯 백성들의 불평불만을 해소한다는 뜻이 있고, 또 땅이 만물을 길러내듯 백성들에게 훈련을 시켜 힘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 있다. 농경사회에서 백성은 농민이다. 여름에는 농사를 짓게 하고 겨울에는 군사훈련을 시켜서 나라를 지키게 한다는 말이다.
◆ 수지비水地比
땅 위에 물이 있는 것을 수지비 괘라 한다. 비比는 행복이다. 근원이 나타난 것이다. 싹이 트고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는다. 허물이 없다.
비比는 길吉이니라. 원서原筮하고 원영정元永貞이니 무구无咎이니라
비比라는 글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따른다, 좇는다, 비교한다는 뜻이 있다. 서로 어깨동무하며 평화로운 관계를 비比라고 한다. 지수사 괘가 나라에 위험이 가득한 전쟁상태라면 수지비는 위험과 고통이 변하여 기쁨과 희망으로 솟아나는 평화의 세계다. 지수사 괘의 구이九二가 수지비 괘에서 구오九五가 되었다. 즉 민중 속에서 씨알의 지도자가 나타나서 마침내 왕위에 오른 것이 수지 비괘다.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서 땅 위로 물이 솟아나듯 백성의 기쁨이 솟아나는 모습을 수지비라고 보는 것이다.
사막에서 물이 솟아나면 오아시스가 되는데 수지비水地比가 이런 오아시스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갈등과 분열의 위험이 극복되어 화합과 일치의 평화의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 이상세계가 되려면 씨알의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어떻게 씨알의 지도자가 되는가? 씨알의 지도자가 되려면 하나님을 만나서 사명을 받아야 된다. 그래서 원서原筮라 하였다. 지도자의 조건이 원서原筮라 하는 절대자와의 만남이다. 서筮는 점을 친다는 말인데 하늘이 점지해준 사람이라야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사명을 받은 철인이 나와야 이상국가를 세울 수 있다. 그런 철인의 모습은 무엇인가? 원영정元永貞이다. 원元, 진리를 깨친 사람이요, 영永, 영원히 발전하는 사람이요, 정貞,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편안하지 않은 자들이 사방에서 찾아온다. 뒤진 자는 망한다.
불영방래不寧方來하니 후부後夫는 흉凶이니라
새로운 지도자는 누구나 그를 찾아온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 누구든지 문제가 있는 사람, 편치 않은 사람은 오라고 초청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태 11:28). 초청을 받아서 남들은 다 왔는데도 거기에 끼지 못하면 불행할 것이다. 빨리 찾아와서 생명의 물을 함께 마셔야지 오지 않아서 못 마시면 죽는다는 말이다. 새로운 지도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뒤에서 거부하며 헐뜯는 자는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수지비 괘를 판단한다. 비는 행복한 것이다. 서로 돕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랫사람들이 순종하는 모습이다.
단왈彖曰 비比는 길야吉也니라. 비比는 보야輔也라, 하순종야下順從也니라.
비比는 서로 사랑하며 돌보아주는 것이다.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들어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 행복한 나라의 근원이다. 하순종下順從, 스스로 낮추고 겸손하게 진리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하늘이 점지한 지도자가 나와서 이상세계가 된다. 진리를 깨닫고 영원히 발전하며 하늘의 뜻에 순종하니 허물이 없다. 철인이 나와서 나라의 중심을 잡은 것이다.
원서原筮하여 원영정元永貞이니 무구无咎라 이강중야以剛中也이니라
강중剛中이란 구오九五를 말한다. 하늘의 뜻을 점지받은 강한 사람(剛)이 나와서 모든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그 중심(中)을 잡은 것이다. 모든 씨알이 그 새로운 지도자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이다.
편안하지 못한 사람이 찾아온다고 함은 위아래가 서로 응한다는 말이다. 늦게 오는 자가 흉하다고 함은 그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불녕방래不寧方來는 상하응지上下應也이니 후부흉後夫凶은 기도其道가 궁야窮也니라.
편안치 않은 사람은 모두 오라는 말은 지도자가 그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오라 해도 오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게 된다. 왜냐면 그가 살아날 길을 찾지 못하고 막히기 때문이다.
◆ 수지비 괘의 모습을 본다. 땅 위에 물이 있는 것을 수지 비比라고 한다. 선왕은 이것을 보고 만국을 세워서 모든 나라와 친하게 지냈다.
상왈象曰 지상유수地上有水가 비比이니 선왕先王은 이以로써 건만국建萬國하고 친제후親諸侯하니라.
땅 위로 물이 솟아나서 호수를 이루니 모든 만물이 모여 친하게 지낸다. ‘선왕先王’이란 성인聖人 즉 철인哲人을 말한다. 이상국가가 되려면 철인이 왕이 되든지 왕이 철학을 하든지 해야 한다. 철인 왕이 나와야 모든 나라와 모든 씨알이 행복하게 산다.
‘선왕先王’을 기독교로 풀어보면 왕중의 왕인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와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진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모두가 친하게 지내자는 게 복음이다. 땅에서 나무가 자라나서 숲을 이루는 것처럼 세상에 나라들이 일어서서 평화의 세상이 온다. 이렇듯 모든 나라가 서로 친하여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게 되는 이상세계를 수지비水地比라 한다. 모든 철인이 꿈꾸는 이상세계의 모습을 수지비 괘에서 본 것이다.
◆ 지수사地水師는 전쟁의 상징이고 수지비水地比는 평화의 상징이다. 지수사 괘를 뒤집으면 수지비 괘가 된다. 전쟁을 뒤집으면 평화가 된다. 지수사는 땅속의 지하수요 수지비는 땅 위로 솟는 샘물이다. 지하수가 가득하게 되면 땅이 위험하게 되지만 지하수가 샘물로 터져 나오면 만물을 살리는 생수가 되어 기쁨이 열린다.
땅속의 지하수가 터져 나오면 기쁨의 샘물이 되듯이 인생의 고민도 어느 순간 가슴을 뚫고 나와 진리가 된다. 그래서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 한다. 진리와 번뇌는 서로 다름이 아니라 번뇌가 변하여 진리가 되는 것이다. 진실이 땅속에 들어가면 불만과 번뇌가 되지만 그것이 밖으로 터져 나오면 기쁨과 진리가 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새 생명의 싹이 나와서 많은 열매를 맺는다. 땅인 어머니가 생명의 씨를 임신하면 위험하고 괴롭고 힘들어도 그것을 길러 마침내 밖으로 낳게 되면 새 생명을 출산하는 기쁨이 터지고 평화가 온다.
◆ 구도자의 길
누구나 사람은 자기의 실존적 고뇌를 지니고 산다. 자기의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문제를 스스로 의식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구도자는 자기의 문제를 찾아서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까 붙들고 고민한다. 자기의 문제를 파고 들어가는 일이 참선이다. 그것은 마치 뜨거운 쇠구슬을 삼킨 듯 괴롭고 힘들어서 토하고 싶어도 토할 수도 없다. 온갖 생각과 방편으로 기력을 다하여 애써보지만 결국 다 포기하고 힘이 빠졌을 때 번뇌는 어느덧 사라져 없고 텅 빈 충만의 기쁨이 온다. 자기도 모르게 새로운 생명을 출산한 것이다. 내가 이제 나를 낳아 대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나 밖에 부처가 어디 있으며 조사가 어디 있느냐? 생사를 넘고 윤회를 벗어난 나는 이제 지옥에 들어가도 유희삼매를 즐길 뿐이다. 생사가 곧 열반이요 지옥이 곧 천국이다.
이렇듯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번뇌의 진흙 속에서 깨달음의 연꽃을 피워야 한다. 깨끗한 연꽃이라 하여 깨끗한 허공을 찾아가서는 도저히 연꽃을 피울 수 없다. 더러움 속이라야 깨끗함이 있는 것이다. 짐승들의 분뇨로 더러워진 땅일수록 옥토가 되어 아름다운 향기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 연꽃이 자라는 것을 보면 3층천을 산다. 맨 밑바닥 뿌리는 어둡고 더러운 진흙밭이요 줄기는 물속에서 뻗어나고 꽃은 물 밖으로 솟아 공중에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떨친다. 우리가 처해서 사는 환경이 추하고 험악할수록 성인들은 그 속에서 더 아름다운 진리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는 것이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말이 좋다. 내적 모순의 번뇌와 죽음이 없으면 외적 생명의 보리와 평화도 없는 것이다. 지수사와 수지비는 전쟁과 평화를 말한다. 번뇌와의 싸움이 전쟁이요 번뇌가 사라졌을 때 평화가 온다. 내적 모순의 전쟁을 잘 다스리고 극복하면 발전과 통일의 평화가 된다. 깨달음이란 우리말은 돈오頓悟의 깨침과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점수漸修로 계속 달려감을 합친 말이다. 깨서 달려간다는 말이 깨달음이다. 병아리로 깨어나서 달리다가 날아간다.
불교가 개인적 차원이라면 유교는 사회적 차원을 강조한다. 그래서 내적 모순의 극복과정을 용민휵중容民畜衆이라 한다. 내적 모순을 극복하고 통일하는 일이 용민容民이요 새로운 백성으로 길러감이 휵중畜衆이다. 그래서 평화로운 만국을 건설하자는 것이 지수사와 수지비 괘의 가르침이다. 개인이 깨어나듯 나라도 깨어나서 발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라를 일깨우려면 철인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철인이 나와서 나라를 다스려야 이상국가가 된다고 한다. 나라를 일깨우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씨알이다. 그래서 씨알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 깨지 못하면 생사의 전쟁이지만 깨어나면 생사가 곧 열반이라는 평화가 된다. 씨알들이 깨어나면 생사의 전쟁터가 변하여 열반의 평화가 온다. 그래서 깨어나길 힘써야 한다. 깨어나기 위해 힘쓰는 씨알들이 나와야 나라가 살아나고 평화가 오기 때문이다. 깨어나기를 힘씁시다. 깨기를 힘씁시다. 이것이 또한 나라를 사랑하는 다석 류영모선생의 외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