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4일, 지리산 종주를 하기로 한날이다.
지금은 그 그 전날인 6월 13일 밤. 남편은 마침 2박3일 교육이 있다며 아침에 출발, 둘째는 공무원 첫발을 내딛는 2주간의 교육 첫날이라 어제 서울로 올라가고, 아들은 일주일간 여행 중이다.
결혼한지 28년 6개월만에 처음으로 나홀로 잠을 청한다. 걱정반, 설렘반으로 드디어 6월 14일 새벽 5시 기상. 가벼운 점심도시락을 준비하고 챙겨온 짐을 점검하며 6시에 집을 나선다. 6시 10분 성신병원 앞에 도착하자마자 일행들이 타신 봉고차가 빵빵-한다. 몸을 싣는다. 8명 중 5번째로 탑승. 6번째는 총무님, 7번째는 골목대장님, 8번째는 치송님... 우리 일행을 태운 봉고차는 새벽 안개속을 헤치며 성삼재를 향하여 달린다.
차 운행은 아보카도님이 해 주신단다.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한다. 아침식사는 총무님이 준비한 찰밥, 정령치에서 먹었다.
8시 성삼제에 도착. 산행시작을 알리는 사진 한 컷 찍고 천왕봉 28.1Km 이정표가 보인다.
몸과 마을을 가다듬고 산행을 시작한다. 말씀이 별로 없으신 골목대장님, 가끔 농담을 하시며 웃음을 주시는 양피디님, 늘 무거운 카메라로 회원님들의 모습을 담아 주시는 신천옹님, 더 늙기 전에 지리산 종주를 하겠다는 통나무님, 늘 희생과 봉사로 회원들의 편의를 봐주시는 총무님, 일행 중 막내인 치송님(무거운 짐은 몽땅 맡으시고), 언닌인데도 동생처럼 보이는 킬리앤님...
천천히 걸어서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 노고할매와 또 찰칵. 지름길로 노고단을 향한다.
10시쯤 됐을까. 노고단 정상에 도착(나중에 알고보니 안갔어야 된단다) 신천옹님이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 주신다. 또 다시 산행시작. 두시간쯤 걸었으려나. 킬리앤님이 정성껏 준비해온 샌드위치, 참 맛있었다.
남은 거리 아득하지만 걱정은 안된다. 일행분들이 좋으신 분들이라서 든든하고 재밌고,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일걸령, 노루목을 거쳐 삼도봉에 도착했다. 4년 전 모 산악회 따라 오른 적이 있다. 우리는 각자 멋진 포즈를 취해 사진을 찍는다. 아직은 지친 기색은 안보이고 행복한 얼굴들이다. 점심은 화개재라는 곳에서 먹기로 했다. 김밥, 유부초밥 모두들 간단하게 싸 오셨다. 그 중 제일 인기가 좋은 도시락은 통나무님의 김밥과 소고기 지짐. 나도 몇번 집어 먹었다. 그야말로 통투님의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든든히 배를 채웠으니 산행은 또 시작된다. 가파른 계단길도 있고 돌길도 있고 하지만 아직까진 갈 만 하다.
오르막길에서는 약간 힘들어 하시는 양피디님, 그 뒤에는 어김없이 골목대장님이 계신다. 역시 두분의 의리를 대단하시다. 통나무님은 뱃속이 고장나셨다. 무척이나 힘들어 하신다. 안타까웠다.
걷다보니 연하천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물로 갈증을 가시게 하고, 커피도 끓여 마시고 한참을 쉬었다. 사람들이 꽤 많다. 갈길은 멀고 시간은 자꾸 간다. 지리를 잘 아시는 신천옹님과 총무님이 재촉을 하신다.
우리 일행은 또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중간중간 아름다운 곳에선 꼭 사진을 찍어 주시는 신천옹님, 땀을 엄청 흘리신다. 항상 소녀 같은 총무님은 가끔 엉덩이를 흔들며 우리 일행의 피로를 풀어주시며 힘내라고 굵다란 인삼까지 선뜻 나눠주신다. 정말 힘이 나고 발검음은 한층 가벼워진다.
형제봉을 거쳐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 한 시간은 오후 5시 30분쯤, 3시간을 더 가야만 예약한 세석산장에 도착한다는데 걱정이 앞선다. 일행모두가 '이쯤에서 자면 좋은데...'하신다.
마침 안내방송이 나온다. 짙은 안개로 천왕봉 방향의 산행이 금지란다. 잠잘곳은 세석 대피소라 예약도 안된 상태, 신천옹님과 총무님이 계셔서 큰 걱정은 안된다. 7시가 되어야만 방을 알 수가 있단다. 방은 있을 거라 안심을 시켜 주신다.
우리 일행은 여장을 풀고 준비해온 삼겹살을 굽고 라면을 끓이며 정담을 나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즐거운 식사를 한다. 양피디님이 새로 장만하신 노란 물통에 물을 가득 담아 오셨다. 100여 미터나 떨어져 있다는 샘에서...
짙은 안개로 별이 안보인다. 기대가 무너진다. 얼마나 설레며 기다렸는데...무척 아쉽다. 음력 열사흘이라 안개 속에서라도 달은 제 모습을 비친다. 다행히 방을 배정받아 벽소령에서 묵기로 하고 잠을 청한다. 내 집이 아니니 잠이 올리가 없다. 뒤치닥거리며 뜬 눈으로 날을 새고, 혹시나 해서 별을 볼 수 있을까, 새벽3시쯤 밖에 나가본다.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다. 몇몇 산악인들이 배낭을 메고 랜턴을 머리에 두르고 천왕봉을 향해 출발을 한다.
어느새 날은 밝아 약속한 시각인 5시에 벽소령을 나서고, 아침은 세석에서 먹기로 한다.
15일 아침, 지리산의 운무는 아직도 깔려 있고 세석까지의 거리는 6.3Km, 남은 천왕봉까지의 거리도 한자리 숫자다. 피부에 와닿는 공기는 말로 표현안해도 다들 알 것이다. 새 소리가 한층 더 아름답게 들린다. 험한 너덜길도 있어 일행들은 벽소령에서 자길 잘했다고들 한다.
처음길이라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는데 골목대장님, 신천옹님, 치송님, 총무님은 멀리 보이는 봉우리 이름까지 다 꿰고 계신다. 대단한 분들이시다. 어제와 달리 통나무님의 컨디션도 좋아보인다.
영신봉을 오르는 계단이 만만치 않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기에 그리 막막하진 않다. 총무님은 무릎마다 물파스를 뿌려 주시고, 드디어 영신봉에 오르자 운무에 쌓인 첩첩의 산들이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다. 저기는 어디, 저기는 어디, 신천옹님은 잘도 아신다.
드디어 세석 대피소에 도착. 햇반을 데우고 북엇국을 끓이고 여기서도 물당번은 양피디님이 맡아 주신다. 난생처음 지리산 대피소에서 먹어보는 북어국에 햇반, 그 맛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먹어보지 않고는 말을 말라...
든든히 배를 채우고 우리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선다. 먹은 후의 쓰레기는 항상 치송님이 담당을 해주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네... 촛대봉을 올라 인증샷을 찍고 천왕봉이 가까워지자 고사목들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서 있다.
'장터목 대피소 1.4Km, 천왕봉 3.1Km' 때때로 메세지로 힘을 주시는 회장님 덕에 마음이 한층 가볍다.
세석에서 장터목 사이 칠선봉. 다들 이쁜 포즈로 한컷씩 사진을 찍고 연하봉으로 향한다. 조금씩 다리가 무거워진다. 신천옹님의 설명을 들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장터목 대피소다. 볼일도 보고 물병도 채우고 이제 천왕봉이 1.7Km 남았다.
금방 갈 것 같다. 자! 힘을 내자!
한발 한발 내딛어 제석봉 해발 1808m이다. 높아서인지 바람이 거세다. 모자가 날아 갈 것 같아 배낭 속에 집어 넣는다.
순간순간 백두산에서의 운무를 보는 것처럼 주변 환경이 자주 바뀐다. 천왕봉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가팔라진다.
드디어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 또 인증샷을 남기고 드디어 우리 일행은 목적지인 천왕봉에 도착을 한다.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우리 모두 입을 모아 화이팅을 외친다. 골목대장님 배낭 속에 꼭꼭 숨겨논 양주로 정상주 한잔씩 나눠 마신다. 좀 더 머무르고 싶지만 바람이 워낙 거세고 내려갈 길도 만만치 않아 하산에 들어간다.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은 돌계단이 장난이 아니다.
남강댐의 발원지 천왕샘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나를 포함한 일행분들 모두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후루룩 맛있게도 드신다.
법계사에서 버스를 이용하기로 하고 또다시 하산시작, 이제 다들 한계를 느끼시는가보다. 말들이 없다. 그래도 개선문에서 사진 남기는 건 잊지 않는다. 법계사에 내려오면 차가 있을 줄 알았는데 3Km를 더 내려가야 된단다. 법계사에서 만난 여사님 말로는 2Km라는데 걷다보니 3Km이다.
발가락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터벅터벅 걷는 걸음... 법계사 버스가 있다는 주차장.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구세주(아보카도님)가 나타나셨다. 5Km를 더 내려가야만 차를 정차시킬 수 있다는데, 일행들을 위해 차 진입 금지를 뚫고 오신 것이다.
저녁 7시에는 좋은 사람들의 월례모임이 있는날. 시간도 잘 맞췄다. 씻지도 못하고 옷도 못갈아 입은 상태라 불쾌한 냄새가 날까 조심스럽다. 회원님들이 한분 두분 모이기 시작한다. 큰 목소리로 환영해 주시는 회장님, 케이크까지 들고 맞이해주시는 파랑님과 아리따님 모두들 환대해 주신다. 종주를 함께한 일행분들과 월례회 자리를 빛내주신 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안치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반성하러 오시라.
(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언제나 첫 마음이니 )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가사 출처 : Daum뮤직
첫댓글 2011년6월 무지개님이 꿈에 그리던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썼던 산행기를 ----2013년9월 통나무가 사진을 추가로 올리다
이어 지리산 사진을 ---낼 올리겠읍니다
글 좋고, 사진 좋고, 음악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