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의 모양과 능력
본문말씀: 딤후 3:1-5
주제말씀: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마지막 날의 특징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in the last days)'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 3:1,2,4)
'말세'란 구체적으로 언제를 가리킬까요? 신약에 와서 넓은 의미로는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전 기간을 뜻하며, 좁은 의미로는 주의 재림 직전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오늘날 타락한 성도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죄들이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수단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마음의 여지가 전혀 없으며 결국 인간 비하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 모든 것들의 내적인 원인은 5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경건의 모양은 있는 것 같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having a form of godliness but denying its power. And from such people turn away)(딤후 3:5)”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에 빠져간다는 것입니다. 경건이란 일반적인 의미로는 ‘공경하고 깊이 삼가며 조심 한다’라는 뜻이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을 하려는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경건’에 두 가지 측면이 다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형식’이며, 둘째는 ‘내용(능력)’입니다. 둘 다 중요합니다. 내용이 빠진 형식이나 형식을 무시하는 능력 그 어느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형식은 그것의 내용을 담는 그릇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형식, 껍데기만 남은 채 능력이 빠져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는 점입니다. 알맹이가 빠져버린 빈껍데기, 내용이 사라져버린 채 덩그러니 놓인 빈 그릇.......
말세의 특징은 바로 ‘경건의 능력이 상실된 채 경건의 껍데기만 즐비하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건실한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은 텅텅 비어있는 현실, 겉으로는 그럴 듯 해보이고 경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무능력하고 무기력해진 그리스도인들.......
본문 2~5절은 불신자들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말세에 타락한 성도들에게 타나나기 쉬운 죄목 19가지가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성도들이 이 말세에 무기력해지고 무능력해져가고 있습니까?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자기 자신을, 돈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까? 왜 이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인들에게 감사가 차츰 차츰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까?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룩하지 아니한 것들이 가득해져 갑니까?
능력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power가 상실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로잡혔던 사사 삼손처럼 말입니다.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을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삿16: 20-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미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사사 삼손, 여호와의 권능(power)이 더 이상 자기에게 있지 아니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사사 삼손. 그의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없는 것이며,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는 경건은 무의미하며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복음의 능력과 사랑의 실천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린도전서 4:20)
* 경건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경건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말세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그럴 듯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교회도, 가정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말입니다.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길 힘써야 합니다. 경건의 모양과 능력을 균형 있게 겸비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명심합시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만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외식’에 빠지지 않도록 늘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건실한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마저도 부정하는 사람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에게 그런 요소들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되어가고 있는지 부지런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 23:1-36) 입술로 부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삶과 행동으로 부정하는 성도들도 얼마든지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 밖에서는 전혀 하나님 없는 자처럼 살아가는 성도들, 하나님 없는 자처럼 생각하고 불신처럼 판단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경건은 기독교 신앙 전반에 관한 포괄적인 용어입니다. 경건은 모든 일에 유익하며 현재와 미래에 신령한 축복이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경건에 이르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고 하십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매일 부지런히 연습을 하듯 말입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매일, 매순간 힘쓸 때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경건의 능력이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콩나물시루에 매일 물을 부어대는 것처럼, 부지런히 노력하고 자신을 훈련할 때 경건의 능력은 생겨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돌아보십시오. 세속에 물들지 않게 자신을 늘 지키십시오. 그리고 언어생활에 유의하십시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서 1: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