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요점 강설(金剛經 要點講說)
제4장 대가 없는 행위 [妙行無住分]
머무르지 않는 마음[妙行無住分] ②
여기에서 선사들은 『묘행무주분』을 어떻게 보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육조대사(六祖大師)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것으로 말한다면 허공보다 큰 것이 없듯이 무상(無相)의 공덕 또한
허공처럼 끝이 없다."
이 말은 상에 머무름 없으므로 일체행이 저절로 묘행(妙行)이 되고 묘용(妙用)이 된다는 것입니다.
야부대사(冶父大師)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읊었습니다.
"서쪽 땅에 열 가지 수놓은 비단이 있는데
거기에다 꽃을 수놓으니 색이 더 곱구나.
분명한 뜻 알고자 한다면
북두칠성을 남쪽을 향해 볼지니라.
허공은 털끝만한 생각도 거리끼지 않으니
이 까닭에 대각선(大覺仙)이라 말한다."
西川十樣錦 添花色轉鮮 欲知端的意 北斗面南看
서천십양금 첨화색전선 욕지단적의 북두면남간
虛空不閡絲毫念 所以彰名大覺仙
허공불애사호념 소이창명대각선
금상첨화(錦上添花)라는 말처럼 비단에다 꽃을 놓았으니까 더 아름답겠죠? 이것은 진공(眞空)이라는 바탕위에 미묘한 작용을 뜻합니다. 즉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끊어진 바탕에서 묘유(妙有)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상에 없는 그 가운데 행동은 다 묘용(妙用)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위대한 것, 그것은 물질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묘행(妙行)ㆍ묘주(妙住)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진공만 있고 묘유가 없다면 차가운 화성이나 뜨거운 금성처럼 무기(無記) 공적(空寂)한 세상이라 중생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묘유는 진공에서 나오고 진공은 묘유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진공을 떠난 묘유는 있을 수 없고, 묘유를 떠난 진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진공 묘유의 공덕은 한량없는 공덕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대각선(大覺仙)이라고 합니다. 대각선이란 모든 상이 끊어진 부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때로는 금선(金仙)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황금처럼 영원불변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부대사(傅大士)는 이렇게 읊었습니다.
"만약 무상보시를 논한다면
그 공덕은 헤아리기 어렵나니
자비심으로 가난을 구제하되
그 과보를 바라지 마라.
중생심으로 하는 보시는
다함 있는 경계에 떨어진다.
무상의 보시를 알고자 하는가.
허공이 시방에 두루한 것 같으리...
若論無相施 功德極難量 行悲濟貧乏 果報不須望
약론무상시 공덕극난량 행비제빈핍 과보불수망
凡夫情行劣 初且略稱揚 欲知檀狀貌 如空徧十方
범부정행열 초차략칭양 욕지단상모 여공변시방
종경대사((宗鏡大師))의 유명한 게송이 있습니다.
보시에 힘써 진상(眞常)에 계합하니
복이 허공과 같아 헤아리기 어렵도다.
그림자 없는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대로 꺾어서 부처님께 바치리라.
運力檀度契眞常 福等虛空不可量 無影樹頭花爛熳 從他採獻法中王
운력단도계진상 복등허공불가량 무영수두화난만 종타채헌법왕중
이렇게 야부선사, 부대사, 종경대사의 게송의 뜻이 모두 무상(無相)의 공덕이 허공처럼 한량없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경을 통해서 무상의 진리에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수행은 자기도 모르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금강경》을 통해서 우리의 근원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금강경》에서 글자를 찾고 지식에 의지하고 있으나 학문을 통해서 학문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금강경》에서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아상을 다스리는 것은 우리들 수행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무아상이라는 기초가 튼튼해야 그 다음 수행이 바르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부실한 기초 위에 쌓아 올리는 건물은 사상누각이라, 오래갈 수 없듯이 우리의 수행도 반드시 무상(無相)이라는 기초 위에서 우리의 수행을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드는 분이 화두에 진의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상이 있기 때문에 모든 공부가 거짓이 되어 진의가 생길 수 있는 근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염불 수행하는 불자가 염불 삼매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아상을 가지고 염불하기 때문에 염불삼매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가 수행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ㆍ인을 떠나야 수행이 진실하게 되고 진실한 수행에서 대발심(大發心), 대신심(大信心), 대의심(大疑心)과 염불삼매 등이 일어나게 되므로 이 《금강경》에서 진실하고 참다운 수행을 할 수 있는 기본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상을 가지고는 백날을 수행해도 결국 번뇌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번뇌냐 보리냐 하는 것은 상이 있느냐, 아상이 없느냐 하는 그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이 없으면 공부가 전부 보리로 바뀌고, 아상이 있으면 엄청난 노력과 고행도 번뇌 망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아상을 가지고 수행하면 탐진치 삼독을 소멸할 수 없으므로 공부에 진전이 없으니 얼마가지 못하고 타락하여 가지가지 업을 짓게 되고 그 결과로 악도에 떨어집니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가요? 본인이 지겠죠? 그래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던 나라는 아상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내세우는 곳에 나와 남이 함께 그릇된 길로 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무상(無相)의 수행을 할 적에 그 수행은 일취월장을 할 뿐만 아니라 한량없는 공덕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무아상의 바탕 위에 대승의 원력과 정신을 가질 때 이 세상을 크게 이롭게 하고 수행의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_(())_
출처 : 큰 마음 카페 원인 스님 강설 <금강경 요점 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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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상(無常)함을 알고. 무상(無相)의 도리를 닦아나가라는
원인스님의 금강경 강설 고맙습니다.
나무금강반야바라밀 나무금강반야바라밀 나무금강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_()_ _(())_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