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빌기를 다한 후, 더운 국밥 다시 떠다, 산모(産母)를 먹인 후에, 여보 마누라, 이 아이 젖 좀 먹여주오. 그때 곽씨부인(郭氏婦人)은, 산후(産後)에 손대 없어, 찬물에 빨래를 하였든가, 뜻밖에 산후별증(産後別症)이 일어나는데,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사대삭신 육천마디가 아니아픈데 가 전혀 없네. 곽씨부인(郭氏婦人), 아무리 생각하여도, 더 살 길이 전혀 없는지라. 유언(遺言)을 하는데, <진양조=진계면> 가군(家君)의 손길 잡고, 유언(遺言)하고 죽더니라. 아이고 여보 가군(家君)님, 내평생(平生) 먹은 마음, 앞 못 보는 가장(家長)님을, 해로백년(偕老百年) 봉양(奉養)타가, 불행망세(不幸忘世) 당하오면, 초종장사(初終葬事) 마친후에, 뒤를 쫓아 죽자터니, 천명(天命)이 이뿐인지, 인연(因緣)이 끊쳤는지, 하릴없이 죽게되니, 눈을 어이 감고 가며, 앞 어둔 우리 가장(家長), 헌옷 뉘라, 지어주며, 조석공대(朝夕恭待) 뉘랴하리. 사고무친(四顧無親) 혈혈단신(孑孑單身), 의탁(依託)할 곳 전혀 없어, 지팡막대 흐터집고, 더듬 더듬 다니시다, 구렁에도 떨어지고, 돌에 채어 넘어져서, 신세(身世) 자탄(自歎) 우는모양, 내 눈으로 본 듯하고. 기갈(飢渴)을 못 이기어, 가가문전(家家門前) 다니시며, 밥좀 주오 슬픈 소리, 귀에 쟁쟁(錚錚) 들이는듯. 나 죽은 혼백(魂魄)인들 차마 어이 듣고 보리. 명산대찰(名山大刹) 신공(神功)드려, 사십후(四十後)에 낳은 자식, 젖 한번도 못 먹이고, 얼굴도 채 모르고, 죽단말이 웬말이요. 이일 저일을 생각하니, 멀고 먼 황천(黃泉)길은, 눈물 겨워 어이 가며, 앞이 막혀 어이 가리. 여보시오 가군님. 뒷마을 귀덕(貴德)어미, 정친(情親)하게 지냈으니, 저 자식을 안고 가서, 젖 좀 먹여 달라 하면, 괄시 아니 하오리다. 저 자식이 죽지 않고, 제발로 걷거들랑, 앞을 세워 길을 물어 내 묘(墓) 앞에 찾아 오셔, 모녀상면(母女相面)을 하여주오. 할 말은 무궁하나, 숨이 가뻐서 못 하겠소. <중머리=진계면> 아차 아차 내 잊었소. 저 아이 이름일랑, 청(淸)이라고 불러주오. 저 주려 지은 굴레, 오색비단(五色緋緞) 금자(金字)박어, 진옥(眞玉)판 홍사(紅絲)수실, 진주(眞珠)느림 부전 달아, 신행함(新行函)에 넣었으니, 그것도 채워주고, 나라에서 하사(下賜)하신, 크나큰 은(銀) 돈 한푼, 수복강녕(壽福康寧) 태평안락(泰平安樂), 양편에 새겼기로, 고운 홍전(紅氈) 교불줌치, 끈을 달아 두었으니, 그것도 채워주고, 나 끼던 옥지환(玉指環)이, 손에 적어 못 끼기로, 농안에 두었으니, 그것도 끼워주오. 한숨 쉬고 돌아누어, 어린아이를 끌어다 낯을 한대 문지르며, 아이고 내 자식아, 천지(天地)도 무심(無心)하고, 귀신 (鬼神)도 야속하구나. 네가 진즉 섬기거나, 내가 조금 더살거나, 너 낳자 나 죽어니, 가이없는 궁천지통(窮天之痛)을 너로 하여금 품게되니, 죽는 어미 산 자식이, 생사간(生死間)에 무슨 죄(罪)냐, 내 젖 망종 많이 먹어라. 손길을 스르르 놓고, 한숨지어 부는 바람, 삽삽비풍(颯颯悲風) 되어 불고, 눔물 맺쳐 오는 비는 소소세우(蕭蕭細雨) 되었어라. 포깍질(딸꾹질) 두 세번에, 숨이 더럭 지는구나. <아니리> 그때의 심봉사, 아무런줄 모르고, 여보 마누라, 사람이 병(病)든다고, 다죽을까. 내 의가(醫家)에가, 약(藥)지어 올테니, 부디 안심하오. 심봉사 약(藥)을 얼른 지어와, 수일승 전반(煎盤) 위에 얼른 다려, 짜들고 방으로 들어와, 여보 마누라, 이약 자시면, 즉효(卽效)한다 하옵디다. 아무리 부른들, 죽은 사람이, 대답할리 있겠느야. 그제야 심봉사, 의심이 나서 양팔에 힘을 주어, 일으키려고 만져보니, 허리는 뻣뻣하고, 수족은 늘어져, 콧궁기 찬김나니, 그제야, 죽은줄 알고, 실성발광(失性發狂)을 하는데, 서름도 어지간해야, 눈물도 나고, 울음도 나지, 워낙 아람이 차나노면, 뛰고 미치는 법이였다. <중중머리=진계면> 심봉사 기절하여 떴다 절컥 주저 앉으며, 들었던 약그릇을, 방바닥에 내던지며, 아이고 마누라. 허허 이것이 웬일이요. 약지러 갔다오니, 그새에 죽었네. 약능활인(藥能活人)이요, 병불능살인(病不能殺人)이라더니, 약이 도리어 원수로다. 죽을 줄 알았으면 약지러도 가지말고, 마누라 곁에 앉아, 서천서역(西天西域) 연화세계(蓮花世界), 환생차(環生次)로 진언(眞言) 외고, 염불(念佛)이나 하여줄껄, 절통하고 분하여라. 가슴 쾅쾅 두드려, 목재 비질을 덜컥, 내려 둥굴 치둥굴며, 아이고 마누라, 저걸 두고 죽단 말이요. 동지(冬至)섣달 설한 풍(雪寒風)에 무얼 입혀 길러내며, 뉘젖 먹여 길러낼이거나. 꽃도 졌다 다시피고, 해도 졌다 돋것만은, 마누라 한번 가면, 어느 년(年) 어느때, 어느 시절에 돌아와. 삼천반도(三千蟠桃) 요지연(遙池宴)에, 서왕모(西王母)를 따라가. 황릉묘(黃陵墓) 이비(二妃)함께 회포(懷抱) 말을 하러가. 천상(天上)에 죄(罪)를 짓고, 공(功)을 닦으려 올라가. 나는 뉘를 따라 갈거나. 밖으로 우루루, 나가더니, 마당에 엎드러져, 아이고 동내(洞內) 사람들, 차소위(此所謂) 계집 추는 놈은 미친 놈이라 하였으나, 현철(賢哲)하고 얌전한 우리 각씨가 죽었소. 방으로 더듬 더듬 들어가, 마누라 목을 덜컥 안고, 낯을 대고 문지르며, 아이고 마누라, 재담(才談)으로 이러나. 농담(弄談)으로 이러나. 실담(失談)으로 이러는가. 이 지경이 웬일이요. 내 신세(身世)를 어쩌라고, 이 죽음이 웬 일인가. <아니리> 동리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여보 봉사님, 사자(死者)는 불가부생(不可復生)이라. 죽은 사람 따라 가면, 저 어린 자식은, 어찌하려오. 곽씨부인 어진 마음, 동리 남녀노소없이, 모여들어, 초종지례(草終之禮)를 마치는데, 곽씨시체 소방상(小方狀)댓돌 위에, 덩그렇게 모셔 놓고, 명정공포(銘旌功布) 삽선 등물, 좌우(左右)로 갈라 세우고, 거릿제를 지내는데, 영축기가(靈軸旣駕) 왕즉유택(往卽幽宅), 재진견례(載陣遣禮) 영결종천(永訣終天) 관음보살(觀音菩薩). <중머리=계면> 요령은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어허넘차 너와너, 북망산천(北邙山川)이 멀다더니, 저건너 안산(案山)이, 북망(北邙)이로다. 어허,넘처 너화너. 새벽 종달이 쉰길 떠, 서천명월(西天明月)이 다 밝아온다. 어허 넘차 너화너, 물가 가재는 뒷걸음을 치고, 다람쥐 앉아서, 밤을 줍는데, 원산(遠山) 호랑이 술주정 하네 그려. 어 넘차 너화넘. 인정(人定)치고 파루(罷淚)를 치니, 각댁(各宅)하님이 개문(開門)을 하네그려. 어, 넘차 너화너. 어너 어너 어어으 넘차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그때의 심봉사는, 어린 아이를 강보(襁褓)에 싸서 귀덕어미에게 맡겨두고, 꼭 죽어도 굴관제복(屈冠制服)을 얻어 입고, 상부 뒷채를 검쳐 잡고, 아이고 마누라. 나 하고 가세. 나하고 가세. 눈먼 가장(家長) 갓난 자식을 불고인정(不顧人情)을 버리시고, 영결종천(永訣終天) 하네그려, 산첩첩(山疊疊) 노망망(路茫茫)에, 다리 아파 어이가리. 일침침(日沈沈) 월명명(月暝暝)에, 주점(酒店)이 없어서, 어이 가리. 부창부수(夫唱婦隨) 우리 정분(情分), 나와 함께 가사이다. 상여(喪輿)는 그대로 나가면서, 어허 넘차 너화넘. <중중머리=계면> 어허넘 어허넘,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여보소 친구네들 이내 말을 들어보소. 자네가 죽어도 이길이요, 내가 죽어도 이길이로다. 어허 넘차 너화넘. 어너 어너 어으으 넘차. 어이가리 너화넘. <아니리> 산천(山川)에 올라가, 깊이 파고 안장(安葬)한 후, 평토제(平土祭)를 지낼적에, 심봉사가 이십후(二十後), 안맹인(眼盲人)으로, 그전글이 또한 문장(文章)이라. 축문(祝文)을 지어 외는데, 「차호부인(嗟乎夫人) 차호부인(嗟乎夫人), 요차요조(邀此窈窕) 숙녀혜(淑女兮)요. 행불구혜(行不苟兮) 고인(古人)이라. 기백년지(幾百年之) 해로(偕老)터니 홀연몰혜(忽然沒兮) 언귀(焉歸)요, 유치자이(遺稚子而) 영서혜(永逝兮)여, 저걸 어이 길러내어, 누삼삼이(淚森森而) 칠금혜(漆襟兮)여, 진한 눈물 피가 되고, 심경경(沈耿耿)이 소허하여, 살길이 바이없네. <진양조=진계면> 주과포혜(酒菓哺醯) 박전(薄奠)하나, 만사(萬事)를 모두잊고, 많이 먹고 돌아가오. 무덤을 검쳐 안고, 아이고 여보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마누라는 나를 잊고 북망산천(北邙山川) 들어가, 송죽(松竹)으로 울을 삼고, 두견(杜鵑)이 벗이 되니, 나를 잊고 누웠으나, 내 신세를 어이하리. 노이무처(老而無妻) 환부(鰥夫)라니, 사궁중(四宮中)에 첫 머리요, 아들없고 눈 못보니, 몇가지 궁(窮) 이 되단 말가. 무덤을 검쳐 안고, 내려 둥굴 치 둥굴며, 함께 죽기로만 작정을 한다. <아니리>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여보 봉사님, 죽은 사람 따라가면, 저 어린 자식을, 어쩌시려 하오. 어서 어서 가옵시다. 심봉사 하릴없어, 역군(役軍)들께 붙들려, 집으로 돌아 올제, 동인(洞人) 들께 백배치하(百倍致賀), 하직(下直)하고, <중머리=계면> 집이라고 들어오니, 부엌은 적막(寂寞)하고, 방안은 휑 비었는데, 심봉사 실성발광(失性發光), 미치는데, 얼싸덜싸 춤도 추고, 하하 웃어도 보며, 지팡막대 흩어 짚고, 이웃집 찾아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우리 마누라 여기 왔소. 아무리 부르고 다녀도, 종적(踪迹)이 바이없네. 집으로 돌아 와서, 부엌을 굽어 보며, 여보 마누라 마누라. 방으로 들어 가서, 쑥내향기(香氣) 피워 놓고, 마누라를 부르면서, 통곡으로 울음울제, 그때에 귀덕어미 아이를 안고 돌아와서 여보시오 봉사님, 이애를 보더라도, 그만 진정 하시오. 거, 귀덕어민가. 이리 주소 어디 보세. 종종 와서 젖 좀 주소. 귀덕어미는 건너 가고, 아이 안고 자탄할제, 강보(襁褓)에 싸인 자식은, 배가 고파 울음을 우니, 아가 우지말아, 내새끼야. 너의 모친 먼데 갔다. 낙양동촌(洛陽東村) 이화정(梨花亭)에, 숙낭자(淑娘子)를 보러 갔다. 죽상체루(竹上涕淚) 오신 혼백(魂魄), 이비부인(二妃夫人) 보러 갔다. 가는 날은 안다만은, 오마는 날은, 모르겠다. 우지마라 우지마라. 너도 너의 모친이, 죽은 줄을 알고 우느냐. 배가고파 울음을 우느냐. 강목수생(剛木水生)이로구나. 내가 젖을 두고, 안주느냐. 그져 응아 응아. 심봉사 화가 나서, 안았던 아이를, 방바닥에다 미닫치며, 죽어라 썩죽어라. 네 팔자가, 얼마나 좋으면, 초칠 안에 어미를, 잃어야. 너 죽으면, 나도 죽고 나 죽어면, 너도 못 살리라. 아이를 다시 안고, 아이고 내새끼야. 어서어서 날이 새면, 젖을 얻어 먹여주마. 우지마라 내 새기야. <아니리> 그날밤을 새노라니, 어린아이는 기진(氣盡)하고, 어둔 눈은 더욱 침침하여, 날새기를 기다릴제, <중중머리=계면> 우물가 두레박소리, 얼른 듣고 나갈적에, 한품에 아이를 안고, 한손에 지팽이, 흩어 짚고, 더듬 더듬 더듬 더듬. 우물가 찾아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초칠(初七)안에 어미 잃고, 기허(飢虛)하며 죽게 되니, 이에 젖좀 먹여주오, 듣고 보는 부인들이, 철석(鐵石)인들 아니 주며, 도척(盜蹠)인들 아니주랴 젖을 많이 먹여주며, 여보시오 봉사님, 예, 이집에도 아이가 있고, 저집에도 아이가 있으니 어려이 생각말고 자주 자주 다니시면, 내자식 못 먹인들, 차마 그 애를 굶기리까. 심봉사 좋아라고, 어허 고맙소,수복강녕(壽福康寧) 하옵소서. 이집 저집 다닐적에, 삼베 길삼 하느라고, 흐히 히히 웃음소리, 얼른 듣고 들어 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인사는 아니오나, 이애 젖좀 먹여주오. 오뉴월 뙤얕볕에 김메는 부인들께, 더듬 더듬 찾아 가서, 이애 젖 좀 먹여주오. 백석청탄(白石淸灘) 시냇가에, 빨래하던 부인들게, 더듬 더듬 찾아가서, 이애 젖 좀 먹여주오. 젖 없는 부인들은, 돈 돈씩 채워주고, 돈없는 부인들은, 쌀되씩 떠서주며, 밤쌀이나 하여주오. 심봉사 좋아라, 어허 고맙소, 수복강녕(壽福康寧) 하옵소서. 젖을 많이 먹여 안고, 집으로 돌아 올제, 언덕 밑에 쭈구려 앉아, 아이를 어룬다. <늦은 중머리=평계면> 아기 내 딸이야. 아가 아가 웃느냐. 아이고 내 딸 배부르다. 이상 배가 뺑뺑 하구나. 이 덕(德)이 뉘덕(德)이냐. 동리 부인의 덕(德)이다. 너도 어서 어서 자라나, 너의 모친 닮아, 현철(賢哲)하고 얌전하여, 아비 귀염을 보이어라. 어려서 고생을 하면, 부귀다남(富貴多男)을 하느니라. 백미 닷섬에 뉘하나, 열 소경 한막대로구나. 둥 둥 내 딸이야. 금을 준들 너를 사며, 옥을 준들 너를 사랴. 어덕 밑의 귀남(貴男)이, 아니냐. 설설 기어라. 어허 둥둥 내딸이야. <잦은 머리=평계면> 둥둥둥 내딸. 어허둥둥 내딸. 어허둥둥 내딸. 금자동(金字童)이냐 옥자동(玉 字童). 주유천하(周遊天下)에 무쌍동(無雙童). 은하수(銀河水) 직녀성(織女星) 의, 네가 되어서 환생(還生). 표진강 숙향(淑香)이 네가 되어서 환생(還生)의. 달가운데는 옥(玉)토끼. 댕기 끝에는 진주(眞珠)씨. 옷고름에 밀화불수(密花佛手). 주얌 주얌 잘강잘강, 엄마 아빠 도리도리. 어허둥둥 내딸. 서울 가, 서울 가, 밤 하나 줏어다, 트래박 속에, 넣었더니, 머리 감은 새양쥐가, 들랑날랑 다 까먹고, 다만, 한 쪽이 남았기에, 한 쪽은 내가 먹고 한 쪽은 너를주마. 으르르 아나 아가 둥둥 둥둥 어허, 둥둥 내딸. <아니리>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포단(蒲團) 덮어 뉘어 놓고, 동냥차로 나가는데, 권마성제를 늦은 중중 머리로 나가것다. <늦은 중중머리=권마성제> 삼베 전대 외동지어, 왼어깨 들어 메고, 동냥차로 나간다. 여름이면 보리 동냥. 가을이면 나락 동냥. 어린아이 맘죽차로, 쌀얻고 감을 사, 허유 허유 다닐적에, 그때의 심청이는, 하늘의 도움이라, 일취월장(日就月將) 자라날제 십여세(十餘歲)가 되어가니, 모친의 기제사(忌祭祀)를, 아니잊고 할줄 알고, 부친의 공양사(供養事)를 의법(依法)이 하여가니, 무정세월(武情歲月)이 아니냐. <아니리> 하루는 심청이, 부친전(父親前), 단정(端正)히 꿇어 앉아, 아버지 오냐, 오늘부터는 제가 나가, 밥을 빌어, 조석공양(朝夕供養) 하오리다. 여봐라 청아. 네말은 고마우나, 내 아무리 곤궁(困窮)한들, 모남독녀 너를 내보내, 밥을 빈단 말이, 될법이나 한 말이냐. 워라 워라 그런 말마라. <중머리=계면> 아버지 듣조시오. 자로(子路)는 현인(賢人)으로, 백리(百里)에 부미(負米)하고, 순우의(淳于意) 딸 제영(提榮)이는, 낙양옥(洛陽獄)에 갇힌 아부 몸을 팔아 속죄(贖罪)하고, 말못하는 가마귀도, 공림(空林) 저문날에 반포은(反哺恩) 을 할줄 아니, 하물며 사람이야, 미물(微物)만 못 하리까. 다 큰 자식 집에 두고, 아버지가 밥을 빌면, 남이 욕(辱)도 할 것이요, 천방지축(天方地軸) 다니시다, 행여 병이 날까 염려오니, 그런 말씀을 마옵소서. <아니리> 여봐라 청아. 너 그 이제 한 말은 어디서 들었느냐. 네 성의가 그럴진대, 한 두집만 다녀오너라. <늦은 중머리=계면> 심청이 거동 보아라. 밥 빌러 나갈 적에, 헌베 중의(中衣) 다님 매고, 말만 남은 헌치마에, 짓 없는 헌저고리, 목만남은 질보선에, 청목휘항(靑木輝項) 눌러 쓰고, 바가지 옆에 끼고, 바람맞은 병신처럼,옆걸음 처나갈적에, 원산(遠山)에 해비치고, 건넛 마을 연기(煙氣) 일제, 주적 주적 건너가, 부엌 문을 다달으며, 애긍(哀矜)이 비는 말이, 우리 모친, 나를 낳고, 초칠(初七)안에 죽은 후에, 앞 어둔 우리 부친 나를 안고 다니시며, 동냥젖 얻어 먹여, 요만큼이나 자랐으되, 앞 어둔 우리 부친, 구(救)할 길이 전혀 없어, 밥 빌러 왔아오니 한술씩만 덜 잡숫고 십시일반(十匙一飯) 주옵시면, 추운 방 우리부친 구완을 하것내다. 듣고 보는 부인들이, 뉘아니 슬퍼하리. 그릇밥 김치 장을, 아끼지 않고 후이 주며, 혹은 먹고 가라하니, 심청이 엿자오되,추운 방 우리 부친 날 오기만 기다리니, 저 혼자만 먹사리까, 부친전에가 먹것내다. 한 두 집에 족한지라, 밥빌어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 올제, 심청이 하는 말이, 아까 내가 나올 때는 원산(遠山)에 해가 아니 비쳤더니, 벌써 해가 둥실 떠, 그새에 반일(反日)이 되었구나. <잦은 머리=계면> 심청이 들어 온다. 심청이 들어 온다. 문전에 들어서며, 아버지 춥긴들 오직 하며, 시장낀들 아니리까. 더운 국밥 잡수시오. 이것은 흰밥이요, 이것은 팥밥이요, 미역튀각 칼치자반, 어머니 친구라고, 아버지 갖다드리라 하기로, 가지고 왔아오니, 시장찮게 잡수시오. 심봉사가 기가막혀, 딸의 손을 끌어, 입에 넣고 후후 불며, 아이고 내딸 춥다 불쬐어라.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이 지경이 웬 일이냐. <아니리> 세월(歲月)이 여류(如流)하여, 심청 나이 벌써, 십오세가 되었구나. 효행(孝行)이 출천(出天)하고, 얼굴이 또한 일색(一色)이라. 이렇듯 소문이, 원근(遠近)에 낭자(狼藉)하니 하루는 무릉촌(武陵村), 장승상댁(張承相宅) 부인(夫人)이 시비(侍婢)를 보내어, 심청을 청(請)하였것다. 심청이, 부친께 여짜오되, 아버지 무릉촌(武陵村), 장승상댁(張承相宅) 부인(夫人)이 시비(侍婢)를 보내어, 저를 청하였아오니, 어찌 하오리까. 심봉사 좋아라고 어따 아야. 그 댁 부인과, 너의 모친과는 별친(別親) 하게 지냈니라. 진즉 찾아가서, 뵈올것을, 청하도록 있었구나. 어서 건너가되, 아미(蛾眉)를 단정히 숙이고, 묻는 말이나 대답하고, 수이다녀 오너라. 응. 심청이 부친 허락을 받고, 시비따라 건너 간다. 무릉촌을 당도하야 승상댁을 찾아 가니, 좌편(左便)은 청송(靑松)이요, 우편(右便)은 녹죽(綠竹)이라. 정하(庭下)에 섰는 반송(般松), 광풍(狂風)이 건듯 불면, 노룡(老龍)이 굼니난듯. 뜰 지키는 백두루미, 사람자태 일어 나서, 나래를 땅에다, 지르르 끌며 뚜루 낄룩, 징검 징검 와룡성이 거의 하구나. <느린 중중머리=평조> 계상(階上)에 올라서니, 부인이 반기하여, 심청 손을 부여잡고, 방으로 들어가, 좌(坐)를 주어 앉힌 후에, 네가 과연 심청이냐. 듣던 말과 같은지라. 무릉(武陵)에 내가 있고, 도화동(桃花洞) 네가 나니, 무릉(武陵)에 봄이 들어, 도화동(桃花洞) 개화(開化)로다. 네, 내 말을 들어봐라. 승상(丞相)일찍 기세 (棄世)하고, 아들이 삼형제(三兄弟)나, 황성(皇城)가 등양(登揚)하고, 어린자식(子息) 손자 없어, 적적(寂寂)한 빈방안에 대하느니 촛불이요, 보는것 고서(古書)로다. 네 신세를 생각하면 양반(兩班)의 후예(後裔)로서, 저렇듯 곤궁(困窮)하니, 나의 수양(收養)딸이 되어, 내공(內攻)도 숭상(崇尙)하고, 문필(文筆)도 학습(學習)하야, 말년(末年)재미를 볼까하니, 너의 뜻이 어떠하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