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연수때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극단 한강' 대표 장소익님의 글입니다.
'극단 한강' 대표 장소익
사전적 의미 : 몸짓과 언어를 빌어, 인간의 삶을 공간과 시간속에 연출하는 시각적이고 입체적인 예술
연극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연극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다르다.
교사들은 수업이나 학생들과의 만남에 도움이 될것이다. 시간 관계상 핵심적인 이야기만 하고자 한다.
연극이란 무엇인가?
연극과 영화,연극과 미술,연극과 음악등과 비교하여 연극의 독자적인 것은 무엇인가?
연극과 영화는 다른 점이 무엇인가?
연극만의 독자성이란 무엇인가?를 알면 쉬워질 것이다.
영화의 안성기란 배우가 있다.
영화관에서 안성기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을 때 다른 영화관에서도 상연된다.
외화는 몇십개 이상의 배급망을 가지고 있다. 연극은 그와 같지 않다. 안성기가 연극을 한다면 그 장소에 가야만 한다.
영화는 빛의 그림자로서 안성기는 없지만 빛(색깔)을 통해서, 빛의 특성을 이용해서 전국적으로 상연이 가능하다.
연극은 적국적으로 동시 상연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를 찾아 낸다면 연극의 독자성이 이해될 것 이다.
연극이란 무엇인가?
몇가지 접근 방법이 있는데 연극사, 연극의 기원, 연극의 요소, 연극의 기원등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있다.
'연극(演劇)'의 뜻은 무엇인가?
앞에서 설명한 것은 사전적 의미인데 연극의 요소가 나와있다.
연극의 요소는 배우, 무대, 희곡, 관객이다.
劇이란 한자어의 뜻은 호랑이와 멧돼지의 치열한 싸움이라고 한다.
연극이란 말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drama란 고대 희랍어를 어원으로 하는데 '동작'이란 뜻이다. '劇'은 동작(호랑이와 멧돼지와 같이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투쟁)으로서 행해지는 예술이다. 객석에 맹아와 농아가 있다고 하면 누가 더 극을 잘 이해할까? (농아라고 답함)
말은 안 들려도 보기만 하면 80%는 이해한다.
외화 비디오를 보면 그렇다. 연극은 동작으로 먹고 사는 장르이다.
그래서 연극의 3대요소는 무대, 배우, 관객이다. '극적이다' 라는 것은 동작적이다. 치열한 동작적이다.
그것이 없을 때 연극은 재미없게 되는 것이다. 연극의 본질적인 면보다는 연극에 대한 이해에서 그렇다. 연극에는 멧돼지와 호랑이의 치열한 싸움이 있어야 한다.
연극의 기원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모방, 유희, 노동의 부차적 산물, 원시적 제의, 자기확대욕구등이 있는 데 여러가지를 혼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특히나 '놀이'라는 것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극은 놀고자 하는 것, 모방, 확대욕구등으로 동기부여가 되어서 보여지고 향유된다.
관객들이 기대하는 호기심을 배우는 고양하고 발 맞춘다.
연극의 제요소와 관객이 어우러져서 총체적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하는 사람만이 아닌 배우, 관객 모두가 어우러 져야 한다.
연극의 4대요소는 무대, 배우, 관객, 희곡이다.
희곡은 3대요소중 안 끼어든다.
희곡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희곡은 구전문화이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것을 잘 정리한 사람이라고 한다. 중세부터 전해오던 것을 잘 정리한 사람이다. 희곡이란 배우 민중들의 소리가 체계화된 것이다.
현재 이것이 역전 되었다. 배우의 영혼의 떨림,민중들의 소리가 희곡으로 만들어 졌던 것이다. 희곡은 현대 희극에서 거의 45%의 영향력을 가졌다고 한다.
영국, 독일에 셰익스피어나 브레히트가 있듯이 뛰어난 극작가가 있으면 그 나라의 연극은 발전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 손꼽을 만한 극작가가 없다.
희곡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예이다. 누구든 작품을 할때 가장 힘든 것이 희곡이다.
옛날처럼 공동체가 조성되어져 있다면 쉬울텐데 현재는 낱낱이 나뉘어져 동질성을 얻기 어렵다. 예전처럼의 방식보다는 역으로 희곡이 어떻게 쓰여져야 좋은 연극이 될 지를 철저하게 연구하여야 한다.
정리하면 희곡은 언어의 동작을 체계화 시킨 문학으로 인간의 언어와 동작이 수세기 동안 정리되어 온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때 기성극단(보수극단)에서 좋은 작품을 쓰는 역량이 있다.
일제때부터의 역사의 단절, 수많은 역사적 사건, 70년대와 80년대의 단절(광주항쟁)과 인식의 부족으로 창작능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기성극단은 번역극, 민족극 계열은 창작극을 한다.
민족극진영에서는 4~50편, 제도권에서는 5~10편이 나온다. 50편이 10편을 못 따라간다. 10편 중 몇 작품은 크게 히트한다. 제도권은 창작의 어려움을 번역극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민족극 진영은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와 브레히트가 있고 없고 하는, 한 나라의 전통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전교조와 관련된 작품도 어느덧 5개정도 있다.
이렇게 작품이 쌓일 때 역량이 생긴다고 본다.
그래서 제도권보다 민족극이 전망이 있다고 본다.
배우에 관해서 이야기하겠다.
문:배우하면 떠오르는 것은?
답:여러가지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
인생과 가면 분장, 말씀하신대로 여러가지 인생을 사는 것이다.
탈춤에서 탈을 쓰듯이 분장도 같은 맥락으로 본다. 가짜 얼굴을 만든다. 배우는 가면이다.
가면이 사실은 아니다. 가짜 몸짓이다. 그런데 분장이, 가면이 진실을 획득할 수 있다.
옛날에 광대, 딴따라, 창녀, 부랑자등이 배우의 시초였다.
그러한 몸짓들이 관객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진실을 획득,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배우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좋은 연극이다,아니다의 차이는 현실에서 가져오는 상징이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이다.
배우라는 것은 현실을 가져오는 상징, 가면을 쓴 (분장한) 인물에 의해 상징화되어, 진짜보다 더한 사실을 느끼게 한다.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배우이다. 배우의 사전적 의미, 가짜라는 인물에 의해서 진실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배우가 약 35% 정도의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것은 희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에 의한 평가이다.
무대이야기를 하자.
어느 곳이나 무대일 수 있다.옛날에는 숲과 산이 극장이었다.
사나운 외침 소리와 피리의 날카로운 곡조를 울려 주던 곳이 무대였다.
연극은 무대에 의해 많은 종류로 나뉠 수 있다. 무대극, 마당극, 거리극, 바닥극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극을 나누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무대가 어떻게 쓰여지느냐에 따라 액자무대, 돌출무대, 원형무대, 삼면무대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연극을 바라보는 각도가 많이 다른데 연극을 바라보는 관점과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의 닫힌 연극, 열린연극은 크게 보면 무대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브레히트는 닫힌 연극을 열린 무대로 만들기 위해 서사극 형식을 도입하였다.
마당극은 열린 극이고 무대극은 닫힌 극이다라는 생각은 잘못 되었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원형무대라도 닫히거나 열리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는 열리는 것이고 이러한 관점이 진보적인 연극인 것 같다.
무대는 '울리는 곳''외침이 울려 나오은 곳'이다.
관객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연극을 보는 관객이 서울에 20만 정도라 한다. 영화는 한편에 100만을 넘을 때가 있다. 연극의 관객은 굉장히 적고 무척 까다롭다.
요즘의 관객은 뭔가 고상한 척한다. 학식이 있어야 하고 뭔가 이상해야 연극을 보는 것같다. 노동자,민중등 덜 학식이 있는 사람들은 연극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연극은 누가 만들었는가?
희곡은 학식있는 자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민중의 울림으로부터 희곡이 나온 것이다.
학식있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민중의 소리가 연극을 가능케 했다.
인천의 부평이라는 곳에는 4공단이 있는데 그 많은 인구중 연극을 본 사람은 드물다.
현재 관객과 연극이 유리되어 있다.
실제로 연극이 있게한 사람과 연극이 유리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연극의 양식 운동이 생겨났고 연극하는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관객과 만나는 방식이 연극론의 출발이고 거리극, 마당극, 서사극,사실극등이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사회적 관계의 표출방식이 과학화되고 체계화되는 것이다.
관객은 연극을 보는 사람이 아니다. 연극이 존재하기 위한 필수 그 자체이다. 관객은 연극을 만든 사람이고 있게 하는 사람이다.
물론 영화에도 관객이 있기는 하다.
영화와 연극이 다른 점이 무엇이냐?
차별성이 없으면 타 장르에 의해 먹혀든다. 그 단적인 예를 풍물로 생각할 수 있다.
'연극의 위기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연극의 많은 요소들을 다 없애 보자.
야구에서 가장 야구일 수 있는 것은 투수와 타자이다.
연극에서는 배우와 관객만 있으면 연극은 된다. 영화배우는 배우의 그림자이다.
모든 요소를 잘라 내더라도 관극과 배우의 교감이 없으면 연극이 안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갈등을 가지고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것이다.
배우와 관객은 역사적으로 변하지 않는 본질이다. 연극이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매체들이 하면 되지 않는다. 연극은 연극의 독자성이 필요하다. 동작적이란 것이 이 사회에서 필요하다. 연극이 포함된 예술은 반드시 필요하다. 먹고 사는 것과 연극은 하등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노동자들을 보면 굳이 연극을 할 필요가 있는가 싶다.
연극을 왜 하는가?
인간이란 존재는 類的存在이다.
인간이란 혼자 있으면 외롭다. 외로우면 견디기 어렵다. 외로움을 먹고 사는 것이 연극, TV,영화이다.
인간의 본성은 듣고 싶다,저사람 머리속을 보고 싶고 달나라도 가고 싶다, 엿듣고 싶어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소외를 조장한다. 현대는 이러한 영향으로 연극으로부터 배우, 관객이 소외되고 있다.
비인간화시키며 類的存在의 본성을 망치고 있다.
이러한 것을 개량화시키는 것이 프로야구, 영화등이다. 類的存在는 예술을 가능케 하는 요소이다.
연극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음악, 그림, 연극이 없다면 어떤 세상일까?
어떻게 고통을 견뎌낼 수 있을까? 분명 연극은 이러한 것들에 답할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들이 연극을 볼 때 이렇게 보았으면 싶은 것들을 이야기 하겠다.
연극은 엿듣게하는 작용, 몸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한 방식이다.
요즘 한창 이야기되고 있는 벗기는 연극이라는 불의 나라같은 연극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관객들은 연극을 보고나서 무슨 말을 하는가? --- 그 배우 연기를 참 잘해! 조명이 참 좋았어! 실컷 웃고 나왔는데 남는게 없어!--- '재미있게'를 가장 강조하는 사람은 연출가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주 관객을 속이고 현혹시킨다. 그러한 속임수에 빠지지 않으려면 '의사소통'에 유의하면 된다. 선거때 모후보가 연설하면서 '이번엔 바꿉시다'하며 여러 예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극에서도 울리기도 웃기기도 하고 그러기 위해 음악도 넣고 조명도 넣고 장치도 꾸민다.
'이번에는 바꿉시다'가 드러나지 않고 '그 배우 죽이더라'라면 그 연극은 잘못 된 것이다.
TV드라마, 코미디가 대부분 다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극을 보고 말해야 하는가?
첫째, 무엇을 말하려는가?
둘째, 말할려는 것을 잘 말했는가?
셋째, 말할려고 하는 것이 가치가 잇는 것인가?
인천의 연극 소모임 선생님들은 대본 쓰기를 시작했는데 첫째와 둘째를 해결하지 못해 두달이 걸렸는데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그만큼 이러한 관점에서 창작하는 것은 어렵지만 보고나서 제대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