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인들은 아래의 산해관.의주 사이의 사신 로정에 대해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
즉 위 사행도가 묘사하는 범위를 아래의 적색 실선 지역으로 인식한다.
- <중국전도> 산해관 부분도
안타깝지만 명백한 식민사관이고 동시에 동북공정 마저 선전.홍보하는 짓이다.
하지만 일반 대한인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대략 갑오농민혁명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120 여 년 동안 일본명치왕의 지리 조작 결과를 수용한 게으로고 무지무식하고 등신짓하는 한국역사학계 탓이다.
1870 년대 초 일본명치왕은 이조선과 청국 국경 지역의 지리 곧 란하.황하.요하.압록강 등 주요 물길과 각 물길 유역의 지리를 조작.홍보했고 이런 조작지리가 만주국지도와 중국전도에 공식 표시되었다.
즉 위 사행도는 아래와 같이 중국 한漢 건국 시기부터 청 멸망 시까지 약 2100 여 년 동안 묵묵히 흐른 난수.란하 하류의 동쪽 지역이였고 대요수.황하, 염난수.요하 및 열수.이조선압록강의 하류 지역을 묘사한 것으로 그 위치는 아래의 적색 실선 내 지역을 묘사한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요수는 난수.란하였고 한.당 시기의 대요수는 지금의 란하 서북쪽 지류 일부였으며 송.명.청 시기의 요하는 지금의 란하 정북쪽 지류였다.
1910 년 압록강을 건너 요동.요하 유역을 밟은 신채호가 고대의 요수는 란하라 하고 계연수가 패수는 금 란하라 교시한 이유는 일본이 지리를 조작하고 선전.홍보하기 시작하지 40 년 가까이 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모든 중국 정사급 지리지 기록과 송.명.청 시기 간행된 고지도를 보라.
요동이 어디였고 요하가 어떻게 흘렀는지를.
장성동단 곧 임유.산해관 위치는 진시황 시기는 물론이고 이후 한.당.명 시기를 지나 청 시기까지에도 염난수.요하의 입해처 서쪽 강안 지점에 구축되었었고 그 산해관에서 서쪽으로 170 리 떨어진 지점으로 난수.란하가 흘러내렸었다. 중국 정사급 지리지 기록에는 요하의 입해처는 바다로 기록되었으며 바다 북쪽 끝에는 요택이 있었고 그 요택으로 서북쪽으로부터는 대요수.황하가, 정북쪽으로부터는 염난수.요하가 흘러내렸었다.
진시황이 태자 부소와 장군 몽염을 시켜 수축한 만리에 이른다는 장성의 동단은 지금의 중국전도에 표시된 산해관 표시 지점이 아니라 그 곳에서 서쪽으로 약 500 리 쯤 떨어진 곳인 지금의 지금의 당산 북쪽 지금의 풍윤 지점 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경판천문전도京板天文全圖>
청(淸)왕조 시대인 1780-1790년 사이에 마군량(Ma Junliang)에 의해제작되었으며, 미국 라이스(Rice )대학에서 디지털화 했다. Woodson Research Center, Fondren Library
소장 출처 ; http://blog.daum.net/sabul358/6895389
- <지리도>
1137 년 송인 황상 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