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감사로 하나님 앞에 서는 자 되라!!”
+ 본 문 : 예례미야 15장 19절 - 21절 (구약성경 1075쪽)
19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속하리라. 아멘!
이 시간은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자는 의미에서
드리는, 추수감사주일에 성례식을 함께 거행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래전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한 상인이 금 캐는 사람들을 상대로 "이동 레스토랑" 을,
곧 천막식당을 차릴 것을 계획을 하고서,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서
마차 10대 분의 천막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정보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때라,
현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규모의 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10대분의 천막을 쓰레기로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주고 받는 말이 귀에 들려 왔습니다.
"금을 캐다 보니, 바지가 금방 닳아 못 입게 되었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맞아, 조금 질긴 재료로 된 바지가 있었으면 참 좋을 텐데."
그 말을 들은 상인은 무릎을 쳤습니다. / "그래, 저 못 쓰게 된 천막으로 바지를 만들자."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청바지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식당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으나,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그 천막으로
오히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누구든 주어진 기회를 잡으면 성공하고, 주어진 그 기회를 놓치면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축구 경기를 보면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키는 선수가 유명한 선수입니다.
그러나 주어진 기회를 놓쳐서 볼을 잘못 처리하면, 많은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은 사람은
성공했다고 박수를 쳐주지만, 주어진 기회를 놓치면 아픈 마음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회를 놓쳤다고 한탄하고, 절망에 빠져 있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기쁜 소식이요.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입니다.
그 기쁜 소식, 그 복음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복된 소식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벗은 모습이 부끄러워 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가죽 옷을 입혀 주심으로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셨습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잘못된 방향으로 간 그를 돌이켜
니느웨 성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주셨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쏟으신 후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 때문에 이방인들인 우리에게 새로운 구원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해 실패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았어도,
주님은 그런 실패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경기 중에 한번 지면 다시 올라갈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패자부활전이 있잖아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패자부활전에서 승리하도록 기회주시고, 도와주시마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주어진 바로 그 기회를 놓치면 실패자가 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반드시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이미 주신 기회를 잃어버려서, 세상에서 넘어진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 하나님 앞에 세워지는 기회를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세워지는 것, 소중한 일입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아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먼저 세워지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서 이루어진 성공이라면,
그 성공의 결국은 먼지처럼, 티끌처럼 허무하게 다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 이룬 성공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떠나서 얻은 부귀영화도 결코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전도서 말씀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 이루어진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세워졌으나, 하나님 앞에 세워지지 않으면,
그 인생의 마지막은 비참합니다. 불행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전에 어떠했던지, 하나님 앞에서 세워지는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여러분!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라.” 하나님 앞에 세워진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세워진 사람이 진정한 성공자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다윗이 아름다운 집을 잘 짓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 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아멘!
다윗이 자신의 가정에 복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 복의 내용이 바로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지 않은 복, 주님을 떠나지 않는 복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세워지는 사람이 바로 복된 사람입니다. 믿습니까?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 앞에서 세워지고 보니,
자기의 배경이 보잘 것 없는 배설물처럼 여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에게는 주님 앞에 세워진 것이 너무나도 소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목이 잘려 순교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삶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아멘!
그는 주님 앞에 세워지는 삶이 너무나도 소중했습니다.
비록 순교를 당하지만, 그에게는 하나님 앞에 세워지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었습니다.
의과대학을 다니는 어느 학생의 글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해부학 첫 실험 시간에 해부실로 들어갔습니다.
해부도구와 수술용 고무장갑, 그리고 비닐로 된 앞치마에 흰 실험복까지 갖춰 입고,
실험실의 문을 여니, 거기에는 실험대마다 시체가 놓여 있었습니다.
시체의 피부를 벗기는 것이 첫 해부학 실험 시간의 과제였는데. 그 작업을 하는 동안.
그것이 단지 시체일 뿐 사람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공 모형 배를 가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착각과 함께 그의 뇌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 이 사람들도 살아 있었을 때에는 모두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며 살았겠지. 돈도 있었고, 명예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또 죄를 짓고자 하는,
사악한 마음도 있었겠지. 그런데 이제 그들은 실험대에 누워 있다. 이 여인의 얼굴에,
평생 동안 발라졌던 화장품은 얼마어치나 되었을까? 저 아저씨는 저 손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만졌으며 그것으로부터 얼마만큼의 만족을 얻었을까?”
그 순간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나 자신과 이 시체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것은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그 시체들은 죽었고 자신은 살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우리의 몸을 위해서 삽니다.
그러나 숨이 멈추는 그 때에, 우리의 몸을 위해서 살았던 지난 시간들이 얼마나 허무할까요?
그래서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세워지는 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우리가 기회를 놓치면, 힘들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십니다. 주님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세워질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정확합니다.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라.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아멘!
하나님 앞에 세워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헛된 것을 버리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공부 많이 한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 아닙니다.
유명한 연예인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돈이 많은 부자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헛된 것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주십니다.
송명희라는 뇌성마비에 걸린 찬양시인을 잘 알 것입니다.
이 사람은 깊은 골방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니 하나님께서 그를 큰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송명희 씨가 건강해서 그럴까요? 예뻐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입니까? 단 한 가지 이유 -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이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는 기회를 놓치면,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그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헛된 것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주 앞에 세우리라.” 아멘!
이 얼마나 분명하고도 기쁜 소식입니까?
여러분! 세상에서 사람들 앞에 자신 있게 서는 것보다, 주님 앞에 세워지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기회를 놓쳤다고 후회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라.” 아멘!
하나님 앞에 세워지는 새로운 기회가 우리에게 반드시 주어집니다. 믿습니까?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모두 다 감사로 하나님 앞에 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