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에 한번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4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대국자들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공식기자회견이었다.
9월 5일 중국현지시각 오후 3시, 중국 꾸이저우성 꾸이양시 티엔이하오성 호텔에서 제5회 응씨배 준결승 3번기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 선수단을 중심으로 기자회견 장면을 스케치 한다.
- 한때 선수들의 부담을 줄여 좋은 기보를 만들자는 이유로 4강 진출자들이 회견에 참석치 말게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 대회 부심판위원장이 자리한 총무회담에서, 선수가 없는 기자회견은 '고무줄 없는 팬티'라는 비유가 제기되며 선수들이 회견에 참여하기로 결정.
힘차게 대회 첫 연설에 나선 천쭈더 중국기원주석은 대회를 개최한 응씨재단과 잉밍하오 회장에 감사하면서 "응씨배는 세계바둑대회에 킁 공헌을 한 대회로 사실상 최초의 세계바둑대회였다. 한국의 영원한 우승은 맛이 없다. 현재 삼성화재배,도요타배,응씨배에서 중국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으므로 중국과 한국이 더욱 좋은 쟁탈전을 벌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피력.
故 잉창치 선생의 대를 이어 대회를 후원하는 응씨재단 잉밍하오 회장은 '세계바둑규칙'을 제안했다. 바둑이 세계화 되려면 역시 통합된 세계규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 잉회장은 이번 행사기간동안 바둑룰에 대한 학술회의를 개최하기로 했으며 한국에서 특별히 남치형 바둑학과 교수가 초청되기도 했다. 잉 회장은 "첫번째 만남으로 불가능한 줄은 알고 있다. 그러나 '최고의 바둑 연구회'를 통해 최소한 서로가 가진 생각을 보완하다보면 장기적으로 세계규칙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장기 비젼을 밝혔다.
한국단장 김수장 9단은 응씨배가 '한국바둑의 은인'이였다고 한국과의 질긴 인연을 강조. 김 단장은 "회견장의 뜨거운 열기에 놀랐다. 한국바둑이 일본보다 못한 적이 있었으나 어느날 앞서기 시작했다. 바로 조훈현 9단이 1회대회를 우승했을 때 부터다. 응씨배 우승은 한국바둑의 발전계기가 되었으며 응씨배는 한국바둑의 큰 은인인 셈이다. 욕심같아서는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이 우승해 한국바둑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4강의 중국선수가 너무 강해서 결과를 자신하기 힘들다. 승패에 상관없이 선수들이 훌륭한 기보를 남기기 바란다"고 인사.
임전소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
한중양국의 대표와 대회관계자 꾸이양 시장등의 인사말이 끝나고 대회 참가선수들의 임전소감, 느낌을 말하는 차례가 왔다. 한국 선수들이 먼저 인사를 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받은 것은 최철한 8단
최철한 "처음 참가해서 4강까지 올랐다. 개인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병역문제도 있고 해서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본다. 이 기회를 잘 살려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최철한 8단 - 저, 올인합니다
송태곤 7단은 '진짜 할 말이 별로 없다'는 혼자말과 함께 최 8단의 뒤를 이었다.
송태곤 "최철한 8단과 마찬가지로 처음 참가한 대회에서 4강까지 올랐다. 이번을 놓치면 4년을 기다려야 한다. 올라온 기회를 살려야 겠다. 결승전까지 가서 두고 싶다"
▶송태곤 7단의 장난스런 웃음. '할말 없다니까 그러네
중국 선수들의 소감은 무척 길었다. 짧게 정리한다.
창하오 "꾸이양에서 대회가 개최되어 기쁘다. 이번이 2회째 참가인데 첫번째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었다.(4회대회 이창호 9단 우승). 상대 대국자인 한국의 송태곤 7단의 성적은 매우 좋다. 도요타배 8강에서 이기긴 했으나 실력의 차이는 거의 없다. 4년전보다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
펑첸 "4강에 올라 기쁘다. 1회부터 4회를 우승한 한국은 지금까지 대단했다. 세계바둑의 흐름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어졌다. 제5회대회에서 그 흐름이 중국으로 올 것이다. (중국기자들 환호)"
*** 필자주 : 응씨배는 대만의 재벌 고(故) 응씨가 마련한 국제 바둑 대회로
매 4년마다 열린다. 창립이래 아직까지 한국이 독식하고있어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크게 흔들어 놓고 있다.
우승상금은 US$400,000.-( 원화로 환산하면 4억 6천만원)
역대 우승자 : 제 1 회 1988년 조훈현
제 2 회 1992년 서봉수
제 3 회 1996년 유창혁
제 4 회 2000년 이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