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행운의 만남 Sam 부부
나는 종종 황당한 늙은이가 된다.
아침식사를 거의 거르는 늙은이가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겠다고 1시간 이상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간밤에 이따금 내리던 비가 포르투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려는 아침에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아침식사를 마쳤음에도 오락가락 하는 비가 그치기를 마냥 기다릴 수 없지 않은가.
9시에 나섰다.
스페인과 1시간의 시차가 있으므로 스페인 시간으로는 10시다.
야고보의 길에서 늦게 출발한 신기록이다.
포르투 길에 관한 자료는 피스테라에서 구한 개념도 1장과 대학인 순례자여권 안에
있는 방문 대학 안내도 외에는 전무 상태다.
"준비한 만큼 편하다" 는 것을 어찌 모르랴만 나는 늘 무모하게도 현장에서 풀어가는
스타일이다.
야훼 이레(Yahweh-jireh), 즉 그분이 준비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마토지뉴스(Matosinhos)에서 대서양의 해안로를 따르면 신선하겠지만 피스테라와
묵시아의 경험에 비춰보아 매우 단조롭다.
다양한 체험에는 내륙 길이 안성맞춤이다.
간헐적으로 내리는 빗속에서 마이아를 거쳐 가는 내륙길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더욱 그랬다.
이 때, 영어를 하는 젊은 삼(Sam/Samuel Lucena)부부를 만난 것은 분명 행운이다.
그들은 나의 애로를 이해하고 내게 가장 적절한 도움이 될 길을 찾은 듯 자기네 차에
나를 태우고 어디론가 갔다.
이미 세상을 떴지만 자기 장인이 나와 동갑이란다.
아마, 그래서 그들 부부는 더 내게 도움을 주려 했던 듯.
문득, 김해의 신현양 생각이 났다.
양팔과 한눈, 한귀의 장애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하는 그와 닮은꼴이라.
야고보의 길 심벌 마크인 노란 화살표가 있는 곳에서 삼의 차가 멎었다.
그가 오른팔 장애인인 것을 알고 왼손 악수를 청했더니 한국 늙은이의 센스에 그는
놀람과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그날 바로 내게 e-mail이 왔다.
Nice to met you today Kim
Have a nice walk on your jurney
I hope you get your gold
God Bless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몇장의 사진을 첨부한 mail이 왔다.
나는 고속도로 무단횡단 체질?
본격적인 페레그리나시온(peregrinacion/pilgrimage)이 시작되었다.
차량의 왕래가 적잖지만 대부분의 도로가 인도를 가지고 있어서 걸을 만한 길이다.
프랑스길에서 보지 못했던 한국타이어, 세계적 자동차회사들 중심에 서있는 한국차
A/S 등의 간판과 더 자주 눈에 띄는 국산차들이 고독한 한국영감에게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카미노와 판이한 점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한 이베리아(Iberia) 반도 안(內)이지만 국토의 면적이 92.391
평방km로 504.030평방km인 스페인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인구 역시 1천만 남짓 되어 스페인의 4.5분의 1 수준이다.
따라서 마을들은 곳에 따라서는 구분이 애매할 정도의 밀집 현상이 불가피하다.
도로 사정이 스페인에 비해 열악할 수밖에 없으며 카미노 역시 그러하다.
1개월 이상, 1.000여km의 스페인 길을 걷고 난 후라 금방 느낄 수 있다.
하물며 엇비스한 면적이면서도 5배나 되는 인구가 북적대는 한국, 포르투갈 전체의
인구와 맞먹는 시민 1천만명의 서울 삶이 오죽이나 고달프겠는가.
서울 인구가 360만명이던 1966년에 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나왔으니까
지금 한국은 만원이며 서울이야말로 초만원임을 실감케 하는 3개국 비교였다.
어느새 10km 이상 되는 아라우주(Araujo)에 도착했다.
작은 교회(Capela) 앞에서 잠시 휴식한 후 마이아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망설이게 한 안전한 대체도로를 버리고 위험부담이 많은 오리지날 루트를 택해.
내가 야고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종교적 영성수련의 일환이 아니다.
잦은 교통사고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오로지 자동차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길을
여한 없이 실컷 걷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포르투갈 길의 기점을 리스보아(Lisboa/Lisbon)로 정했던 당초의 계획을 수정하여
포르투로 한 것 역시 공차증(恐車症) 때문이었는데 첫날부터 난감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등 난코스 때문에 빌라르 두 피녜이루(Vilar do
Pinheiro) 역(metro)에서 시작했다는 어느 분처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분은 아마 바르지 못한 정보로 인해 긴 아쉬움을 간직하게 되었을 것이다.
레사 강(rio Leca)의 중세다리를 건넌 후 위험천만이라는 하이웨이를 무단 횡단했다.
고속도로 횡단도 인내심을 발휘해 차량의 흐름을 간파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해 옴으로서 고속도로 무단횡단 체질이 되었다 할까.
한국 늙은이가 야고보의 길에서도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으니까.
포르투 주(州)의 지자체중 하나인 해발 125m 마이아(Maia)를 넘었다.
오늘 일정에서 가장 높은(alto/high) 지역이다.
대부분이 고원지대와 지평선인 프랑스 길과 달리 포루투갈 길은 전구간을 통해 해발
400m가 넘는 곳이 단 둘 뿐이며 대체로 고도 200m 미만의 길이다.
걷기가 무난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스페인보다 더 많이 돌길이다.
아무렇게나 깔아놓은 돌이 아니라 정교하게 심었지만 문제가 많은 길이다.
돌많은 나라에서 돌을 처분하려면 불가피했겠지만 돌도 수입하는 나라의 수도(首都)
시장은 1번지 광화문 길을 왜 문제 투성이인 돌밭으로 만들었을까.
긴 여정의 액을 미리 터는 별난 신고식?
마이아는 인구40.000여명의 고도(古都)지만 대단위 산업단지가 있으며 포르투갈의
북부에서 가장 산업화된 지역이란다.
단지를 벗어나면 십자로에서 대체도로와 다시 만나게 된다.
얼마쯤 가다가 교행하게 된 최초의 중년남이 무척 반가웠다.
산티아고에서 자기 집 파티마(Fatima)로 가는 중이라는 그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인지 사진 한장 찍을 기회도 주지 않고 달아나듯 가버렸다.
카미노는 모스테이루(Mosteiro), 빌라르(Vilar), 기앙(Giao) 등 N-306도로를 따라서
빌라리뉴(Vilarinho)로 이어진다.
포르투에서 12km 마이아에 이어 26km인 이곳에 알베르게가 있다.
다음에는 11km 되는 하티스(Rates)에 있기 때문에 첫날을 마감했다.
실은, 좁고 꼬불꾸불한 돌길을 달리는 차량들이 쏟아놓는 굉음, 겁 없는 저 차량들이
어느 순간에 저승사자로 표변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심신이 지쳐있었다.
도중에 사라진 화살표를 찾느라 잠시 헤맨 끝에 어둡기 전에 알베르게에 도착했으나
문이 잠겨있고 을씨년스러운 것이 마치 폐가에 다름 아니었다.
인기척이 느껴져 문을 두드렸다.
거의 폐물이 된 2층침대 2개가 있는 방을 홀로 차지한 독일 중년녀는 겁이 났던가.
안에서 문을 잠갔던 것.
주위 공간과 환경으로 보아 자그마하나 아담한 알베르게의 조건을 갖췄으며 최근에
16베드로 확장했다는 알베르게가 왜 이 꼴이 되어 있을까.
얼마나 심한 헤비급들이 자고 갔기에 모든 베드의 스프링이 몽땅 망가졌을까.
아예 불량품 철침대를 구입한 것일까.
관리의 소홀, 공동체 의식의 결여 등 이유야 많겠지만 포르투 길 첫 밤의 알베르게에
대해서는 많이 유감스러울 수 밖에 없다.
긴 여정에 있을 액들을 미리 털버리는 별난 신고식일까.
화장실과 샤워실이 살아있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우리는 하룻밤 오누이처럼 지내기로 하고 함께 식당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딴 방의 침대 사정을 알아보려고 알베르게의 키(key)를 관리하는 약국부터 들렀다.
침대에 대한 독일녀의 불만을 들은 약사는 택시를 이용해 하티스 또는 빌라 두 콘드
(Vila do Conde)로 갈 것을 권했다.
독일녀가 떠난 자리에 자전거 순례자인 61세의 스웨덴녀가 들어왔다.
얼마 후에 한 청년이 입실해 3인 한팀이 되었다.
그리고, 내 위층을 차지한 이 젊은이가 경량급인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여러날 묵을 것 아니고 지붕있는 실내인 것만도 행운인데 독일녀는 왜 떠났을까.
그녀와 스웨던녀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
이 정도의 애로를 감수하지 못한다면 그녀에게 순례길은 꽃길이어야 하는가.
프랑스 길에서 처럼 선행자를 모두 추월했는데 그녀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 독일녀에게 순례자는 어떤 존재이며 그녀는 과연 포르투 길을 걸었을까.
이에 반해 스웨덴녀는 수다스런 나르시스형(narcisse/자기도취형)이다.
자기사진이 게재된 어느 잡지를 자기홍보용으로 활용하는 그녀는 마치 의도적인 것
처럼 파드론까지 내가 묵는 알베르게에 꼭 느지막이 도착했다.
마음 먹기 달렸다
알베르게를 찾느라 배회할 때 한 건물 안으로 남녀노소가 몰려들고 있었다.
프랑스 길에서도 이따금 보던 대로 음악회 또는 영화상영이 있는 것으로 간주했는데
시간이 갈 수록 더 왁자지껄해 가고 있는 현장이 궁금했다.
실은 이질적인 3사람이 누워있는 작은 방의 공기가 답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페레그리노스(peregrinos/pilgrims)라는 공통분모는 있지만 많은 연령의 차이와 제
각각인 언어와 사고를 극복하고 대화한다는 것이 용이한 일인가.
빌라리뉴 마을회관에서는 주민들의 노래와 장기 경연대회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기웃거리는 나를 본 한 청년이 달려나와 떠밀 듯 안으로 데려갔다.
청년은 에드바르두 실바(Edvardo Silva).
영어를 하는 그는 내 말을 듣고 좌중에 나를 소개했다.
포르투갈 어라 모르지만 짐작컨대 "포르투 길 순례중인 한국의 77세 노인"이라는 듯.
좌중은 내 나이가 77세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스페인어로
확인을 거듭했다.(내가 포르투갈어를 모른다니까)
'세텐타 이 시에테'(setenta y siete/77)가 맞느냐고.
나를 위해 새로 내온 와인을 따라준 에드바르두의 부탁대로 나는 빌라리뉴 주민들을
위한 축배를 제안했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지만 이미 프랑스 길과 피스테라, 묵시아 길을 걸었고
지금 포르투 길에 들어선 한국영감에 대해서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그들.
그들도 나의 행복한 여정을 빌어주었다.(에드바르두가 통역)
그리고 밤이 깊어가는 시각, 어지간한 취기를 느길 정도가 되어 회관을 나왔다.
금방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은 텁텁한 밤공기인데도 이베리아 반도에 서있는 한반도
늙은이의 마음에는 살랑대는 봄바람이 불어오는 듯 했다.
아주 길고 따분한 밤이 될 것으로 각오했건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 는 속담으로 풀 수 있을까.
아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신묘한 일들은 '그 분'을 빼고는 이해될 수 없다.
이것이 빠른 눈치와 철저한 사전 준비로 만들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인가.
밤새 거센 바람을 동반해 쏟아지는 소나기에 몇번이나 잠이 깨었다.
스프링이 꺼져서 많이 불편해도 우악스런 비를 맞지 않는 아늑한 실내에 누워있다는
사실이야 말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마음 먹기 달렸다.
한때 정략적으로 보급했던 노랫말이지만 원효대사가 돈오, 득도한 글귀다.
심생종종생 심멸종종멸(心生種種生心滅種種滅)
새 날부터는 좋은 일의 연속일 것 같은 느낌에 불편한 침대가 보금자리에 다름 아닌
밤이었다. 계 속>
첫댓글 항상 저의 멘토역할 하십니다. 감사
멘토라니요. 만부당한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