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기성찰의 미학과 이상의 해석
①자기 수양으로서의 글쓰기
②자기 성찰의 방식
자기 마음의 상태나 움직임을 진지하면서도 냉철하게 살펴보고 진단하는 것이 자기 성찰의 출발이다. 그 다음 단계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을 뉘우치는 반성이다. 반성은 자기 성찰의 핵심적 행위다. 뉘우침이 없는 성찰은 진실함을 결여하기 쉽다.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끝나면 자기 성찰은 완성될 수가 없다. 깨달으니 수반되어야 한다. 깨달음은 자기성찰이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이고 앞으로의 자기 개선과 실천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진정한 깨달음은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도록 해준다. 수필을 왜 자기 성찰의 문학이라고 하는가?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자기 잘못을 반성함으로써 삶의 지혜에 도달하는 자기 수양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경지로는 ‘비움’이 있다. 비우기 위해서는 욕심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마음의 담장을 낮추고 외부와의 소통의 길을 터놓는 일도 비움에서 비롯된다. 자기성찰에서 반성은 잘못을 시인하고 그것을 뉘우치는 일이다. 모든 문제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반성은 그 대상이나 객관적인 계기보다 나의 잘못과 부족을 내세우다보니 사태를 분석적으로 보지 못하고 내적 주관성에 편향될 가능성이 크다. 즉, 자신의 잘못을 일찌감치 시인함으로서 윤리적 책임이나 비난의 부담을 덜어보겠다는 의도가 개입될 수도 있다.
무조건적인 자기반성보다는 자신을 객관적 위치에 대상화하고 자기자랑을 넘지 않은 범위에서 긍정도 필요하다. 일반적인 자기 부정과 잘못만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것을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의 차원에서 파악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기성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삶의 보편적인 깨달음에 도달해야 한다.
③일상의 해석
수필은 일상을 글감으로 취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수필은 일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기회가 되면 일상으로부터 이탈하려고 한다. 일상에 귀착하려는 구심점과 그곳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원심력이 팽팽하게 맞서는 시공간이 수필의 장이다. 수필가는 일상을 재구성하고 해석한다. 일상을 그대로 충실하게 추종하기보다는 그 속으로 파고들어 숨은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여기에는 일상의 질서에 대한 부정과 해체가 따르기 마련이다. 미숙한 작품일수록 일상을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담아내는데 힘을 소비한다. 수필은 일상이 해체되고 재해석되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고, 문학적 가치도 확보한다. 일상의 해석 능력은 좋은 수필에 이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예를 들어 일상의 사소한 예에서 출발하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근원적인 문제의 원인, 삶의 보편적인 깨달음에 도달해야 한다.
④수필가의 체험은 어떻게 재현되는가?
이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기억에 의존한다. 수필쓰기는 과거의 기억을 재생하고 해석하는 일이다. 과거의 일들이 기억의 통로를 통해 언어로 재생된다. 과거의 일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선택하는 시공간에 의해 유동적인 모습을 띤다.
*문학성이란?
문학성이란 어떤 것인가? 문학은 언어예술이므로 문학성은 언어를 부리는 방법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문학성은 언어의 애매성이나 함축성에서 기인한다.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도록 하는 언어의 사용이 그것이다. 한 작품에서 인간 존재와 삶의 다양한 의미가 함축적으로 내포되어 있을 때 문학적이라고 말한다. 함축적 언어 사용은 가능하면 언어의 양을 줄이면서 내포적 의미를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최소의 언어를 사용하여 최대의 의미를 담는 것이다.
*‘주제의 문학’으로서의 수필
수필은 내용을 드러내는 형식에서 가변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다른 문학 장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에는 얼마간의 한계가 있다. 수필이 허구적인 장치를 의도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칸트 이후 예술작품의 미적가치가 내용을 재현하는 형식의 미적 적합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예술론의 핵심이다. 수필은 미적가치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형식에서 제약이 크기 때문에 예술적 성취를 달성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이 한계성이 예술성이나 문학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되기도 한다. 수필의 고유성은 바로 여기서 확립된다. 그것은 한 마디로 내용지향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철학, 사상, 주제 등은 수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수필이 주제의 문학이라는 점은 문학의 배반인 동시에 수필의 고유 영역이다.
주제의 문학으로서 수필을 평가하는 기준은 두 가지다. 하나는 주제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주제를 형상화하는 방식이다. 이 둘은 작품에서 구현되는 과정에서 별개가 아니라 한 덩어리다. 주제의식이 아무리 깊고 참신하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형상화를 이루지 못하면 설득력을 잃고 만다. 반면에 주제의 형상화가 아무리 잘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주제 자체가 상투적이고 교훈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좋은 수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