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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희-선생 진적굿 참관기 (3/31-4/1) | |
번호 : 7 글쓴이 :도불원인(잃어버린역사 보이는 흔적) | 조회 : 9 스크랩 : 0 날짜 : 2006.04.28 16:03 |
진적굿
굿은 보통 단골의 요청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상례인데 반하여 진적은 신제자가 모시는 신령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와 감사의 마음으로 신령을 대접하기위해 배풀어지는 신령을 위한 감사제 이다. 따라서 진적은 신령에 대한 고마움의 굿 판벌림이기 때문에 신령을 대접하기위한 갖가지 신음식을 차려 자랑하고, 신령님의 복색을 새로이 장만하여 받쳐 자랑하고, 굿판의 흥을 돋구는 소리와 춤을 자랑하여 신령님을 기쁘게 하는 자리이다. 이렇듯 신제자의 감사한 마음과, 풍성하게 차려진 물질적인 것들과, 흥겨운 소리와 춤의 풍류가 어우러져 모든 민중이 하나가 되는 커다란 배품의 잔치로 행해지는 굿이다.
이는 옛날 고대 신시이후 행해졌던 국중대회(나라굿)를 할 때의 분위기가 이러했을것이라 생각된다. 단군조선 제16세 위나 단군 때인 무술 28년(BC 1583년) 구한의 여러 汗들이 영고탑에 모여 삼신상제에게 제사지냈다. 닷세 동안 백성과 더불어 연회를 베풀었는데 불을 밝혀 밤샘을 하고 경을 읽고 마당 밟기를 하였다. 한쪽은 횃불을 나란히 들고 또 한쪽은 둥글게 모여 춤을 추며 愛桓의 노래(신에게 올리는 노래)를 함께 불렀다. 신시대와 단군조선시대에는 국중대회를 천제(天祭), 삼한시대에는 제천(祭天),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고구려에서는 동맹(東盟), 예에서는 무천(舞天)이라고 하였다. 나라에서 행했던 나라굿을 다 이렇게 행했던 것이다. 단군조선 제2세 부루단군 때 <단군세기>에 기록하기를, “신시 이래로 천제를 지낼 때 마다 국중대회를 열어, 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제창하였고, 모두 <어하가>를 불러 즐거워하였고, 근본을 위하여 신인이 사방에 화합하는 식을 올렸다.”고 하였다. 부루 단군 때는 1년에 봄과 가을 2회에 걸쳐 천제를 지낸다고 하였다. 이렇듯 지금도 고대 국중대회의 유습을 무당들이 이어오고 있는데, 그 유습이 또 무당 스스로 며칠 씩 거행하는 진적에 남아 있다. 이렇게 보면 무당이야 말로 개개인이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고수해 온 지킴이였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
굿이라하면 그냥 미신이라고 생각 하고 기복신앙의 민속적 한 줄기라고 생각하지, 일반인 중에서 유불선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사람은 많이 눈에 띄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실제 역사적으로 보면 선불유의 순서로 불교와 유교의 기본이 선도사상에서 온것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불당의 맨윗쪽에 위치한 산신각이 그렇고 유교의 사당이 그러하며 시경,서경,역경중에서 역경이 우주의 원리와 인간사에 대한 길흉화복을 예시하는 심오한 철학이라고 볼수 있는것이지요.역경 즉 주역의 한부분을 팔괘와 5행을 배우게되면 바로 명리를 할수 있게 됨은 확실한것으로 보이나 명리를 하는 사람도 어떻게 나온 점괘를 해석할수 있는가하는 능력에 따라 심오 혹은 천박한 점쟁이로 둔갑할수 밖에 없는 통계의 학문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주팔자를 5행의 움직임에 따라 나온 괘에 대하여 명리학을 풀이하는 사람들이 해석을 하면서 해석한 것에 대하여 나준에 그것이 맞아 들어가는지를 개인적으로 확인하더군요. 물론 다음에 다시 그 고객이 재차 방문할때 어땟어?하고 물어보는게 그 뜻인것 같더군요.
명리학과는 다르게 무당에 관련된것은 바로 물어보는 순간 접신이 되는것 같더군요. 소위 만신이라 불리는 여자무당,남자 박수무당 할것 없이 눈이 붉어지면서 정신적 압력을 받는것 같더니만 과거의 이야기들을 줄줄... 물론 미래의 이야기도...
개인적으로는 작고하신 아버지에게서 들려주시던 마을 지관 영감님이 점성술을 통해 이야기하던 6.25전쟁 발생 9개월전에 이야기했다던 여름의 난리건.... 어머니를 통해 들었던 1930년대 조부 생존당시에 일어났었던 집안행사 및 가족행사에 대해서 수십년후에 본인이 무당을 통해 당시의 일들이 자신이 본것인냥 들었을때 일치성... 놀랄만한 것들 이었지요.
어머니 살아 계실때 20년동안을 매년 음력초이틀 만신을 찾아 치성을 들이시던 어머니 그리고 연세가 드셨을때에도 모시고 가던 기억... 그리고 본인이 직접 어머니 천도제 이후에 해 보았던 천도굿. 그리고 사업전에 해보았던 사업운맞이굿 등 개인적으로 개인 기복신앙으로서 굿과는 인연이 적은 편은 아니어서 전혀생소하다고 할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사업과 관련되어 한 이야기들은 뒤돌아보면 크게 맞는것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큰 일없이 되는것도 없고 안되는것도 없는 지금에선 고개가 갸우뚱 할때도 있지만 ..무당의 개인적 능력일까 생각하지만...
하지만 이런 진적굿과는 나름대로 차이가 있고 스케일이 큰것이기에 어느 부분에 포커스를 두고 하는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면서 판단하여야 할것으로 보입니다만 인간이 볼수 없는 영적인세계에 대한 예측은 과학이 난무하는 현대세계가 감추기에는 너무 넓은 또하나의 세계인것 같아 보입니다.
아마도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이 방면의 세계 및 학문적 접근 또는 삶의 일부로서의 과제로서 연구하는데 부담감은 없지 않을까도 생각하고 있는데 어떠신지요?
물론 한편으로 혹세무민하거나 모든 일들이 예정조화설에 의해 끌려간다는 자포자기심도 만들수 있는것이지만 역사적으로 보니 어느정도의 우월적 지위와 금전적 소득에서도 상당한 위치였음을 동서고금이 말을 해 주더군요.
제정일치사회의 君長이 수천년간 세월이 바뀌는동안 그 위치가 司祭등으로 또 지금은 직업인으로 지위가 낮아졌지만 여전히 通神한다는 점에서는 일반인들의 두려움 또는 신비감을 불식시키기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는것같아 보입니다.
Anyway,좀더 큰 무당(?)으로서 祈福보다는 나라의 昌盛 과 바른역사의 회복을 통신하는 굿을 보게 될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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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은희 선생은 나도 잘 아는 분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