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근 / 아동문학가
선비같은 품새로 길을 걸을 참이다. 옷 매무시도 단정히 하고 점잖을 길을 따른다. 봄바람이 부니 고즈넉이 앉은 포항의 고택을 찾아 선조들의 숨결을 느껴본다.
하회마을의 풍산 류씨, 양동 마을의 여강 이씨와 월성 손씨처럼 고택 마을은 씨족 중심 집성촌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색이다.
포항의 고택은 다른 지방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기북 덕동의 사우정, 애은당, 이원돌 가옥, 기계의 기천 고택과 신광의 여주 이씨 고택 등 5개 동(棟)의 문화재급 고택이 있다.
덕동 마을은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으로 큰 공을 세운 농포 정문부(1565-1624) 선생이 피난처로 이 곳에 왔다. 전쟁 후 전주로 돌아가면서 손녀 사위 이 강(1621-1688)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360여년간 3동의 고택은 여강 이씨 집성촌으로 지금은 30여호가 살고 있다.
이 강은 3남에게는 사우정(四友亭)을, 4남에게는 애은당(愛隱堂)을, 둘째 아들에게는 이원돌 가옥 등을 물려주어 그 후손이 지금까지 고택을 관리해 오고 있다.
사우정 고택(경북 민속자료 81호)은 정문부 선생의 조부인 정언각이 청송부사로 재직 시 길지(吉地)로 알려져 지은 집으로서 이 강의 후손 중 이헌순이 호(號)를 따 명명하였다.
방형(方形)의 담장을 통해 들어서면 一자형 사랑채와 口자형 안채와 그 우측에 사당지(祠堂地)가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의 안채와 정면 7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된 조선 중기 상류층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고택이다.
또한 애은당 고택(경북민속자료 80호)은 이 강의 4남 이덕소를 거쳐 현 소유주인 이동우의 5대조인 이재급이 매입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 고택은 거북형 지형에 거북형으로 건물 배치된 게 특징으로서 거북 앞발 위치엔 별당과 방앗간, 머리 부분엔 잠실, 꼬리 부분엔 화장실이 배치돼 곡자형(曲字形) 안채와 좌측에 창고 방이 딸린 부속사로서 전체적 口자 형으로 정면 4칸, 측면 3칸 반의 안채와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된 상류층 가옥이다.
이원돌 가옥(경북문화재자료 206호)은 이 강이 물려받은 별옥일체(別屋一體)의 부속 건물 중 하나로 둘째 아들 이덕령에게 물려준 것으로 현 소유자 이원돌은 이 강의 9세손이 된다.
정면 4칸, 측면 6칸의 口자형의 고택은 조선 중기 시대상을 나타내는 가옥이다.
영일 기천 고택(迎日杞泉古宅 경북문화재자료 205호)은 1800년대 건물로 6.25 전쟁 때 다 소실됐으나 유일하게 남은 고택이다.
경주 이씨 집단 세거지(世居地)로서 이승운(1793-1861)에 의해 건축되어 사랑채와 안채가 ㄱ자로 별동(別棟)으로 배치되었다.
대문간채는 1990년 신축되고 정면 5칸, 측면 1칸 위 맛배지붕의 안채와 정면 4칸, 측면 1칸의 사랑채로 되어 있다.
우각리 여주 이씨 고택(경북문화재자료 481호)은 이언적의 5번째 손자인 오의정이 의택 계열이 17세기 이후 세거해 온 가옥으로 一자형 안채와 ㄱ자형 사랑채가 중문채와 이어진 집으로서 맞은 편엔 고방채가 口자형으로 이루어진 고택이다.
정면 8칸, 측면 2칸의 一자형 정침, 좌측으로는 부엌, 안방, 대청을 2칸씩 두고, 1칸의 건넌방, 1칸의 마루방과 안방에서 건건넌 방까지 정면에 툇간마루가 설치돼 있다. 이 고택은 각 건물의 영역이 잘 분리돼 있는 게 특징이며 19세기 전통기법으로 지은 당시 남부지방 양반가의 전형적 건물이다.
포항의 고택들은 1988년 9월 23일 이후 경북 민속자료와 문화재 자료로 등록되었다.
이러한 고택들은 조선 중기 상류층 양반가들의 모델하우스로 대변되는 그 당시 건축양식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들이다.
첫댓글 좋은자료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