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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혁주의 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이지명
제 104문: 하나님은 제 5계명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답: 우리는 부모들과 우리를 지도하는 윗사람들에게 모든 존경심과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고 또 우리 자신을, 모든 선한 가르침과 징계에 대하여 합당한 순종의 마음으로, 쳐 복종시키며 그들의 실수와 부족함에 대해서는 인내함으로 관용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들의 손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시고 통치하시기를 기뻐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Quid nobis inivgit Deus in quinto praecept?
-Ut parentibus, atque; adeo omnibus qui nobis praesunt, debitum honorum, amorem & fidem praestemus, nosque ipsorum fidelibus praeceptis & castigationi, ea, qua par est, obedietia submit tamus: Tum etiam ut eorum vitia & mores, nostra patientia toleremus, illud semper cogitantes, Deum nosillorum manu velle ducere, ac regere.
(해설)
제 104문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위 사람에게 순종, 2) 자신을 쳐 복종시킴, 3) 윗사람의 실수와 부족함에 대해 인내라고 관용해야 함, 4) 이들은 하나님의 통치 수단이다.
대가족 제도가 붕괴되고 핵가족으로 분열되는가 하면 심지어 결혼을 필수과목으로 여기지 않은 시대에 다섯째 계명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노인들이 자식들에 의해 학대를 당하고 심지어 부모를 살해하는 그런 무서운 시대에 사고 있다.1) 또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 성경은 말세에 이런 일이 일어남을 이미 예언했다. “마 10: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막 13:12).
I.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한 임무
A. 자녀가 부모에게
1. 성경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공경할 것을 가르친다. 부모에 대한 계명이 둘째 판에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을 보면 매우 중요함을 암시한다. 그러면 자녀들은 부모들에게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까?
-a) 모든 존경심: 마음속으로 부모를 충심으로 존경하며 외적으로도 공경을 나타내야 한다. “출 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 법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죽을 사람이 매우 많을 것이다. “레 19:3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 구절은 부모 공경과 하나님 경외를 연결시킨다. “신 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오늘날 노인을 학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b) 모든 사랑: 진심으로 부모를 사랑하고 애착심을 지니며 부모가 기뻐하는 일을 행할 뿐 아니라 부모를 위해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부모를 욕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는 룻기서에 나오는 룻이다. 룻은 시어미 나오미를 극진히 사랑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는 앞 설 수 없다. 에베소서는 ‘너의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6:1)고 말씀한다. 부모가 지옥 갈 일을 시킬 때 복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마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요나단의 자기 친구를 죽이라는 자기 아버지 사울의 말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았다.
-c) 모든 신실함: 부모를 믿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맡기는 자세이다. 룻은 시어머니가 지시한 모든 내용을 그대로 순종했을 뿐 아니라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마치 친정 어머니에게 고하듯 모두 다 소상하게 시어머니에게 고했다. 말하자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는 비밀이 없는 관계이다.
-d) 순종하는 자세: 자녀들은 주안에서 한 말을 모두 순종할 뿐만 아니라 자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잘못됨 있을 때 임하는 부모의 징계를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잠 1: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또 성경은 부모의 훈계를 멸시하는 자을 미련하다고 지적한다. “잠 15:5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이런 말은 현대 사회에서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된다. 너무 달라진 불순종의 사회 풍토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이다. “골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Ta; tevkna, uJpakouvete toi'" goneu'sin kata; pavnta: tou'to< ga;r ejstin eujavreston tw'/ kurivw/.)” 즉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이다.
-e) 인내심: 부모가 병들어 있을 때나 건강할 때, 기분 좋을 때나 나쁠 때, 그들에게 거역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부모를 멸시한 자들이 무서운 저주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잠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창 9:21-27에는 함이 그의 아비 노아에게 실수하여 자기 뿐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 저주를 받은 사실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B. 일반 사회의 윗사람에 대한 의무
제 5계명이 단순히 부모에 대한 순종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질서상 윗사람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가르친다는 점에서 이 계명은 사회적인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윗사람이란 제자에게는 스승, 도제에게는 마스터, 학생에게는 선생, 평교인에게는 담임목사, 종에게는 주인, 회사 평직원에게는 윗사람 그리고 낮은 공무원에게는 높은 공무원 등을 의미한다.
성경은 분명히 인간 사회의 인륜적 질서를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이라는 것과 평등하며, 모든 인격은 각기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인륜적인 질서는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하여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순종하도록 훈련하기 위해 인륜적인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유교적인 계급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유교적인 인간관계는 인간의 평등을 전제하지 않은 체, 개인의 인격과 개성을 무시하고 오직 질서에 있어서 높은 사람의 말만이 진리로 인정함을 받는다. 유교적인 인간관계는 인간의 종적인 관계만 중요시하고 횡적인 관계는 무시되는 질서인 것이다.
-a) 종이 주인에게: “딛 2:9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이것은 직장의 상사들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지 비굴한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노조운동은 이런 자세를 말살시켜버렸다. 물론 그 동안 경영진이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대해 관심이 적음으로 인해 노동자 측에서는 피해의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그로 인해 노조가 결성되고 투쟁하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지키는 차원에서 겸손해야 됨을 가르친다. 심지어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라 하여 가볍게 그를 여겨서는 안 됨을 가르친다. “딤전 6: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그런 자세를 취하는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다. “골 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벧전 2:18).
성경은 종들이(직원들) 상전이나 윗사람들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삼갈 것을 가르친다. “딤전 6:1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b) 아이들이 어른에 대하여(교회선생, 담임목사, 교회어른): 예수를 믿는 청소년들은 교회의 어른들 특별히 담임목사나 장로들 그리고 교사들에게 존경하는 자세를 지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그들을 위해 참으로 힘을 쓰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여기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는 목사를 가리킨다.
“살전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살전 5: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여기 다스리고 권하는 자는 일반 장로를 의미한다. 교인들 내지 청소년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의 말씀에 순종하고 존경함을 통해 교회 안에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교회의 윗사람들은 교인인들이나 어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생명을 바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다른 종교에서는 볼 수 없다. 사실 교회의 어른들은 교인들의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c) 하급공무원이 고급공무원에 대하여: 성경은 사회 질서의 아랫사람들이 윗사람들에게 공경의 자세를 취할 것을 가르친다. 이는 이런 자세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벧전 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심지어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가르친다. 왕이나 정치가들이 잘 다스림을 통해 선도들이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딤전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 나왔음을 전제하고 모든 사람들이 권세에 대해 순종할 것을 가르친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롬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순종할 뿐 아니라 선한 일을 할 것을 가르친다. “딛 3:1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여기서 공권력이 부정할 때는 시민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이 만행을 해도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본회퍼처럼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음모를 해야 할 것인가? 개혁파 신학은 본회퍼와는 다르게 가르친다.
칼빈은 불의한 통치자도 공경하고 순종하라고 가르친다(Inst IV,20,22-29). 칼빈은 가르치기는 악한 지배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라고 한다(IV,20,25). 이를테면 독제 정권이 등장하는 경우 그 국민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말이다. 칼빈은 타락한 유다인들을 벌하기 위해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을 등장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이 왕에게 순종할 것을 가르친 사실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이런 의미에서 개혁파 교회는 독재정권이 등장하는 경우 먼저 시대적인 죄악을 바라다보며 회개하며 사회를 개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II. 윗사람이 아랫사람에 대한 의무
A. 부모가 자녀에 대하여
성경은 부모나 담임목사 또는 사회의 어른들은 하나님을 대리하여 자녀들이나 아랫사람들의 육체적인 건강과 영혼의 건강을 위해 지도하고 모범을 보여야 함을 가르친다. 담임목사는 성도들이 전인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 앞에서 건강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권세자들은 백성들의 일상생활의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말하자면 윗사람들은 아랫사람들에 대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1. 부모의 의무
부모의 할 도리를 요약하면 일정한 시간까지 육체를 부양하여 성장시키는 일과 정신적인 교육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녀들을 부양함: 자녀를 낳은 것만이 부모의 일이 아니다. 낳은 뒤에 부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IMF 지배 시기에 많은 가정들이 흩어짐을 보았다. 직업을 잃은 부모가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고 더러 고의적으로 가족을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 MBC의 일일 드라마 “인어 아가씨”는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성경은 이런 자들에게 대해 매우 가혹하게 말한다.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교육: 성경은 부모의 임무 중에 교육을 가장 강조한다. 모세 오경은 가정교육에 대해 매우 장구하게 그리고 엄하게 경고한다. 특별히 신 6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육백서와 같은 것이다. 그 교육내용의 핵심은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이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교육방법가지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암기 방법, 반복 교육, 시각교육 등등. “신 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 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성경은 또 자녀 교육에 있어서 잘못된 것을 교정하는 사랑의 매질이 필요함을 언급한다. “잠 13:24 超達(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이런 점은 현재 자녀를 한 두 명 낳고 금이여 옥이야 귀하게만 키우려는 한국 부모들에게는 경고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매질을 하되 지나치게 하지 말고 주어진 기준에 따라 하 것이며,사랑으로 할 것을 권고한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성경은 부모들이 다음 세대에도 하나님 섬기는 문화를 이루어 가고 다시 그것을 다음 세대에 이어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역할을 할 것을 가르친다.
2.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에 대하여
성경은 사회의 유지들(왕, 사회의 지도층 사람들)은 아랫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동시에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고 나아가 사회정의를 실현할 것을 가르친다.
-사회의 모범: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며 배우며 자란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 역시 이런 교육 방법을 강조한다. “벧전 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우리는 지금 매스컴을 통해 소위 사회 지도층 사람들의 부정 부패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된다. 사실 본을 통한 사회 교육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이 법대러 살면 손해를 본다는 풍조가 만연해 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는 과연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여 삶의 본을 보여주었는가 하고 질문해야 한다. 사회의 부패는 교회가 실패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성경역사의 가르침이다.
-사회 지도자들은 하늘에 만유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아랫사람들에게 잘 해야 함을 가르친다. “골 4:1 上典(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성경은 심지어 아랫사람들에게 공갈을 그칠 것을 말씀한다. “엡 6: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이런 의미에서 상전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회정의 실현: 상전 또는 윗사람들이 사회정의를 이룰 것을 가르친다. “렘 22: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으로 그 다락방을 지으며 그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를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이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이다.
3. 담임목사(영적 지도자)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여 영혼을 살리고 영적인 양식을 나누어줌. 동시에 내외적으로 침입하는 적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함.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도고함.
-경고의 말씀을 전함: “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겔 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겔 3: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겔 3:20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겔 3: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더 생각해야 될 과제
* 생명 복제 시대에서 제 5계명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 이런 계명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연인에게는 없을까?
제 105문: 하나님은 여섯째 계명에서 무엇을 절실하게 요구하십니까?
답: 나는 이웃을 생각으로나 말로 또 표정으로나 행동으로 그것도 나 자신을 통해 그리고 다른 사람을 통해, 헐뜯거나 미워하거나 모욕을 주거나 죽여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나는 복수하려는 정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나는 나 자신을 해치거나 알면서 다른 어떤 위험 속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살인을 방지하기 위해 권세자에게 칼을 부여하셨습니다.
-Quid flagitat Deus in sexto praecepto
-Ut proximo neque; cogitatione, neque; verbis, neque gestibus, nedum factis, vel per me, vel per alium incommodem aut noceam, neve eu oderim, neu occidam: Sed omnem vindictae cupiditate abijciam. Adhaec ne me ipsum laedam, aut sciens in aliquod periculum coijciam. Quod circa etiam ne caedes fierent, Magistratum gladio armavit
(해설)
5계명과 더불어 6계명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팔조금법(八條禁法)1)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살인에 대해 두려워하는 생각은 죄를 어거하는 수단인 일반은총에 속한다. 이런 세상 때문에 이 세상은 죄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기간가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만 살인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의 생명을 쉽게 해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량살상 무기를 통한 전쟁을 통한 살인은 물론, 존속 부모에 대한 사무친 원한으로 저지르는 살인, 카드빚을 갚기 위해 저지르는 살인, 돈을 받고 하는 살인 청부업 등등 신문은 이런 사건으로 도배질 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살인은 이런 것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남을 미워하는 것도 살인으로 취급했다. 또 고의적으로 타인의 명예를 실추시켜 사회적으로 죽이는 일도 여기에 속한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이 금지하는 살인 행위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점거하려고 한다.
제 105문은 다음과 같이 분석된다. -1) 생각, 말, 몸 거동, 일 저지름을 통해 이웃을 해쳐서는 안 된다. -2) 미워하거나 죽여서도 안 된다. -3) 복수의 정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4) 자살 금지. -5) 공권력.
위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 된다.
1.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이웃을 해치거나 미워하며 모욕을 주어서는 안 됩니까?
2. 여기 금지된 7가지 사항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3.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권세는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나?
I. 제 6계명에 금지되어 있는 것
“나는 이웃을 생각으로나 말로 또 표정으로나 행동으로 그것도 나 자신을 통해 그리고 다른 사람을 통해, 헐뜯거나 미워하거나 모욕을 주거나 죽여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다른 사람을 해치는 방법문제를 다룬다. 생각, 말, 표정, 행동으로 이웃을 괴롭히거나 물리적인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A. 살인은 금지되어 있다.
살인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살인에는 육체의 생명을 죽이는 것과 영혼을 죽이는 살인이 있다. 말하자면 직접적으로 생명을 죽이는 것도 살인이지만 교묘하게 간접 살인하는 것도 금지하는 것이다.
1. 살인이 일어나는 방법
a) 남을 헐뜯음을 통한 살인: 즉 이웃에 대해 악한 말을 함을 통해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것도 살인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은 적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다는 논리로 교묘하게 이웃에 대해 중상모략을 한다. 성경은 구원의 백성들은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을 말씀한다. “시 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 시 15:3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인들이 이렇게 참소함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데 시인은 간접적으로 이들이 뱀의 후손임을 지적한다.
b) 미워함을 통한 살인: 마음속에 이웃에 대해 악한 생각을 품는 것을 의미한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이웃에 대해 악한 생각을 품으면 살인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따라서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지 말도록 엄중히 경고했으며2) 또 이 세상 마지막에 서로 미워하여 잡아 죽이는 일이 절정에 이를 것을 예언하고 있다. “마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c) 이웃을 모욕함을 통한 살인: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과 행동을 통해 상처를 받고 죽어가게 만드는 일. 이를테면 오늘날 왕따를 당해 심신이 죽어가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다. 또 모략을 하여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공작하여 사회적으로 망신을 주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도록 만드는 행위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시도는 죄인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는 마귀의 행위와 일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과를 간과하신다. 즉 덮어주시려고 한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의 죄과를 폭로시켜 수치를 당하게 하는 것이다. 다윗이 사울왕의 칼날을 피하여 도망하다가 아히멜렉 제사장의 도움을 받던 것을 도엑이 보고 그것을 사울왕에게 고자질하여 아히멜렉을 비롯한 제사장들을 칼로 죽인 사건은 이런 자에 대해 대표적인 예가 된다(삼상 21-22장).
d) 육체의 생명을 죽임: 물리적인 힘으로 생명을 파괴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의 첫 살인은 가인이 아벨을 시기 질투하여 죽인 사건이다. 인류의 역사는 인명을 살상하는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자기가 당한 것 이상으로 갚는 풍조가 만연했다. 따라서 탈리오 법칙과 같은 것이 나온 것이다. “레 24:17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레 24:18 짐승을 쳐 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레 24:19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레 24:20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e) 원수 갚음으로 살인함: 유교적 전통을 지닌 동양 풍습은 부모의 원수를 갚아주는 것을 효도로 여긴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원수란 ‘해를 입어 원한이 맺힌 대상’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렇게 해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즈음 MBC 연속극 ‘인어 아가씨’는 자기 어머니와 자기 그리고 동생을 버린 아버지와 그의 둘째 부인에 대한 원한에 사무쳐 창으로 찌를 듯이 원수를 갚으려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원수를 미워하는 만큼 그녀의 건강에 손상이 온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때에 몸에 해로운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다.4) 나아가 원수를 갚으려면 생각에 몰두하게 되면 자기가 마땅히 해야될 일도 못할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달렸으니 그에게 맡기도 원수를 사랑한 것을 명령한다.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오히려 성경은 원수에게 더 잘 해주어서 감동을 받고 회개시킬 것을 명하신다. “롬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f) 자살을 통한 살인: 자살은 고의적으로 자신에게 부과한 죽음이다. 자살은 함부로 저지르거나 의미가 없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에게 심한 고통을 주는 위기나 어려움을 탈출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자살자는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를 한번쯤은 시도한다. 자살은 인간의 10대 사망원인이고 우리나라의 자살율은 10만명당 8.5명으로 높은 편이다.
왜 자살을 해서는 안 될까? 사람들은 자기 생명을 자기가 끊는데 왜 간섭하느냐고 반박한다. 군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필자는 위생병으로 복무할 때 자주 자살하는 사람들을 응급 처치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어떤 병사가 마음고생을 하다가 자살을 기도했다. 다행히 죽지는 않고 후송되었다가 다시 자대 복귀를 했다. 복귀하자마자 그는 감옥으로 가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의 몸은 나라의 재산, 몸인데 허락도 받지 않고 함부로 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의 생명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성경에는 자살하는 경우를 겨우 몇 가지만을 언급한다. 사울왕(삼상 31:4), 가룟유다(마 27:3) 그리고 자신의 탁월한 전략이 압살롬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실망하고 자살한 아히도벨 등이다.
요즈음 자살 사이트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왜 자살을 시도할까? 보통 사회적인 요인, 심리적인 요인 그리고 생리적인 요인을 들고 있다.5) 그러나 우리는 이런 요인들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이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악령의 지배를 받아 그렇게 함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절망하는데 이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 때문이다. 이런 불신앙은 결국 사탄이 개입할 빌미를 주게 되는 것이다.
2. 살인의 수단
a) 생각으로 살인하지 말라. 그 이유는 살인하려는 생각은 말로 표현되고 결국 행동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슥 8:17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b) 말로 살인하는 경우: 인격을 모독하는 말이나 멸시적인 욕설 등은 그 대상의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렘 9:8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하는도다”. 이런 자세를 천로역정에 나오는 사탄 곧 기독도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붓는 사탄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계 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계 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c) 협박, 공갈 등 몸거동으로 살인하는 경우: 그 마음이 증오심이 발동하면 밖으로 표출하게 된다. 가인의 경우가 그 대표적이다. “창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d) 행동으로 살인: 물리적인 힘이 크다는 것에 의거하여 다른 사람의 생명을 죽임. 아합이 나봇을 죽인 일, 헤롯이 세례 요한이 죽인 일 등은 여기에 속한다. 또 교묘하게 다른 사람을 시켜 생명을 빼앗는 일도 여기에 속한다. 이를테면, 다윗이 우리아를 죽인 경우.
e) 영혼의 살인: 말이나 행동 또는 공갈 협박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실족시켜 범죄토록 하거나 믿음에 떠나게 하는 경우. 예수께서는 이런 자들의 책임이 매우 큼을 지적한다.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B. 살인의 뿌리를 제거할 것
1. 살인의 뿌리
a) 시기, 증오, 분노: 이런 것들은 이웃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게 만들어 결국 살인을 행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회 법률상으로는 겉으로 이웃을 죽여야 살인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그 원인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b) 복수심: 불의로 억울함을 당해서 그 억울함을 준 사람에게 복수하려는 욕망, 곧 악을 악으로 갚겠다는 욕망을 의미한다. 세상은 “복수는 육신에게는 달콤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복수심은 증오라는 쓴 뿌리를 지니고 있다. 복수심은 치명적인 열매 곧 죽이고 싶은 원수관계를 이룬다. 성경은 이것을 경계한다(살전 5:15; 롬 12:19-20)
2. 이런 쓴 뿌리는 제거해야 한다.
a) 잡초를 제거할 때 그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처럼 악한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마 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 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마 15: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면 이 쓴 뿌리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이 문제는 이신칭의와 성화를 다룰 때 이미 다루었다.
b) 하나님은 마음의 이런 악한 정욕을 미워하시며 교묘한 살인으로 간주하신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남남갈등으로 서로 간에 빈복 질시하고 있다. 불법적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창으로 찌를 듯한 증오감으로 경찰과 맞선다. 그 원인은 잘못된 정보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거짓 정보를 통해 사람들을 선동하는 자들이 문제이다. 이럴때면 문제의 주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여 오해를 푸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방송국을 장악한 자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주선하지 않는다고 한다.
c) 이 쓴 뿌리를 제거하지 않아 벌어진 대 살인극: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음(창 37:4,11,18). 이들의 경우 시기 질투가 살인의 동기였다. 압살롬은 자기의 누이가 암논에 의해 강간을 당했을 때 마음속에 분노가 있었다. 이 분노는 결국 부하들을 통해 대 살인극을 벌렸다(삼하 13:22,28,29). 또 야곱의 아들 중에 레위와 시몬은 그들의 여동생인 세겜족의 왕자에 의해 강간을 당하자, 비겁한 방법으로 대 살인극을 벌렸다(창 34:7,25). 이들의 경우 분노와 복수심이 살인의 동기였다.
더 생각해 볼 과제
*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살인의 원인을 한번 분석해 보자
* 국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원인도 분석해 보자.
제 106문: 그리고 제 6계명은 단지 살인에 대한 계명으로만 보아야 합니까?
답: 하나님은 살인 금지 계명을 통해 살인의 뿌리와 근원 곧 분노, 질투, 증오, 복수심을 등을 미워하심과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결국 살인으로 인도함을 가르치십니다.
-Atqui hoc praeceptum solam caedem probibere videtur?
-At caede prohibedo, docet Deus, se radicem & originem cedis, iram scilicet, invidiam, odium, vindictae cupiditate odisse, atw; ea omnia cede ducere.
II. 살인을 허락하는 경우
그러면 인간 사회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해치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성경은 살인을 완강하게 거부하는가? 우리는 지금 지존파와 같은 사람들이 매우 잔인한 수법으로 다른 사람의 인명을 살상하는 것을 보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 더러 패역한 사람들, 이를테면 부모에게 거역한 자, 안식일을 범한자 등을 죽일 것을 명령하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죄의 횡포 때문에 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우려하여 살인을 허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1. 사형제도
지구상에는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국가에서는 사형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사형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기관인 국가를 통해 수행되는 것이다.
“창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즉 범죄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국가 기관을 통해서라는 말이다. 만일 국가 기관을 통한 통제가 없을 경우 우리 사회는 어지러워서 도저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롬 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2. 정당방위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격을 당할 때는 공권력의 보호나 자신을 방어할 권한을 얻는다. 이때 공격하는 쪽이 생명을 잃어버려도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 대한미국의 법률은 정당방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법상 정당방위: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를 말한다. 이것은 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법성조각사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정당방위는 개인의 법익에 대한 보호뿐만 아니라 법질서의 유지를 위해서도 인정되는 것으로서 긴급피난의 경우와는 달리 반드시 다른 피난방법이 없을 것을 요하지 않으며 침해한 법익이 방위 된 법익을 가치관계에서 초과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정당방위의 인정: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는 때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일 것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세가지 요건이 구비되어야 한다.
1. 현재의 부당한 침해란 법질서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법익에 대한 사람의 공격 또는 그 위험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의 침해이기 때문에 법익에 대한 침해가 급박한 상태이거나 계속되고 있어야 하며 또한 그 침해가 부당해야 한다.
2.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여야 하며, 여기의 타인에는 자연인, 법인, 법인격없는 단체, 국가 등도 포함된다.
3. 정당방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상당한 이유란 침해에 대한 방위가 일반상식에 비추어 상당한 정도를 넘지 않고 당연시되는 것을 말한다.
4. 정당방위에 있어서 상당한 이유라 함은 방위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방위의 필요성은 침해의 즉각적인 배제가 확실히 기대되고 위험의 제거가 보장되는 때에 인정된다.
-정당방위의 예외: 방위행위가 지나쳐 그 상당성의 정도를 벗어난 과잉방위나 객관적으로 정당방위의 요건이 구비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착오로 정당방위의 요건이 구비된 것으로 오인하고 방위를 한 오상방위 등은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아 처벌된다. (http://www. moneyfund.co.kr/law/law3/law3_07)
3. 전쟁의 경우
정당한 전쟁의 경우, 인명 살상은 허용되는 것이다. 이 경우 전쟁이 공의 면에서 뚜렷한 大義名分(대의명분)을 가져야 한다. 매우 놀라운 사실은 전쟁의 역사를 보면 대의명분이 뚜렷하지 못한 전쟁은 항상 패배했다. 한국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김일성, 쿠웨이트를 불법으로 침입한 걸프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은 패했다.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을 분석해 보자
III. 제 6계명이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내용
우리는 제 4계명에 언급한 대로 살인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살인을 금지하는 이면에는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이는 인간은 원래 모두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살인하는 행위는 죄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이런 적극적인 선행에 대한 가르침은 제 107문제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