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무협소설사에 대해서 썼다가 요즘 이를 다시 길게 늘어뜨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적기에는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어서 우선 예전에 썼던 것을 올립니다. 지루하고 잘못된 것이 있겠지만 보시고 많은 부분 지적해주셨으면 감사하겠군요.
무협소설에 대한 몇가지 말하고 싶은 것들
1. 들어가는 말을 대신하여
이른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우리주위에서 순수와 대중이라는 개념이 매우 혼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애초부터 순수와 대중(대중문학과 통속문학은 구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그에 대한 구분은 매우 복잡하게 진행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했다. 대중과 통속의 문제는 개념의 문제라기보다는 드러나는 상황의 정도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여기서는 양자를 혼용해서 사용하기로 한다.)의 경계는 없다고 주장하는 극단성에 경계심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양자간 고유한 영역이 활발하게 혹은 난잡하게 어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또는 기본적으로 대중을 위해 생겨난 문화 혹은 문학이 순수문학의 지위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시기로부터 이제 그 순수라는 짐을 버거워하는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문학사의 한 방향이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대중문학의 지지 세력과 그들의 발언의 확대를 등에 업은 채 이제부터 무협소설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몇 가지 것들을 적어나가려고 한다. 물론 앞으로 적으려는 것이 무협소설이 대중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라든가 대중문학에 끼친 공로 따위의 거창한 위상을 정립하는 데에는 있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무협소설이 가지는 여러 특징을 지적함으로써, 대중문학의 한 장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더 바란다면 그간의 무협소설에 대한 냉소적이고, 비난 일변도의 시각이나 혹은 무협소설 자체에 대한 무지가 조금이나마 개선되기를 바라는 정도일 것이다.
2. 무협소설의 어원과 역사
무협이란 말은 행위로서의 무와 의식으로서의 협이 연결된 단어다. 정식으로 명명된 것은 아니었지만, 무협이란 말은 비단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여러 차례 거론되었다. 아더왕의 이야기로 대변되는 서양의 기사문학은 모험과 사랑을 바탕으로 해서 기사들의 무용담과 협의심을 낭만적이고 환상적으로 꾸며내었다. 이러한 기사문학이 로망스로 대표되는 서양의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narrative tradition-Robert Scholes & Robert Kellogg) 여러 가지 면에서 무협소설도 서구의 기사문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여기에서는 이점에 유의하면서 무협소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해갔는가를 다루게 될 것이다.
전국시대의 철학자인 한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는 문으로써 법을 어지럽히고, 협은 무로써 금을 범한다.”
널리 알려진 이 말에서 우리는 무협소설이 가지고 있는 의식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다시 한비자의 말을 빌리자
“비록 그 행위가 정의에 합치되지는 않지만, 그 말은 반드시 신의가 있고 또 행동은 과감하여 이미 허락한 일에는 꼭 정성을 다한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남의 액곤에 달려가 생사존망의 사이를 넘나들면서도 그 재능을 뽐내지 않으며 그 덕을 자랑하는 것을 부끄러이 여기니, 족히 칭찬할 만한 점이 있다.”
한비자의 말에서처럼, 고대 중국의 협자는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의협심을 발휘할 줄 아는 인물이었으며, 신의를 생명과 같이 아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물들을 중국에서는 고래로 유협이라 일컬었다. 춘추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시대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포부와 재능을 가지고 발탁되기 위해 전국을 떠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차 이러한 ‘여행자’들을 의탁할 만한 능력과 명망이 있는 자들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주로 국가의 군주였으나 전국말기로 갈수록 국가가 커지면서 가문이나, 지위, 재산, 혹은 명성 등을 무기로 여행자들을 자신의 세력에 포함하려는 자들이 생겨났다. 전국말기의 사군자들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진,한이 들어서면서 더 이상 재능을 팔고 사는 집단의 거취가 옹색해지면서 이들은 점차로 지하로 잠적하거나, 권력내부로 포용하는 등, 그 양상을 달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훗날 무협소설로 발전되는 데 바탕이 되었다.
무협소설의 태동배경이 된 것은 중국서사문학의 기원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마천의 열전에서이다 특히 유협열전과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주가, 전중, 형가, 예양 등의 이야기는 무협소설의 직접적 소재는 아니나, 무협소설의 주된 모티프인 의협이야기의 원류가 되었다. 무협소설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 한참 뒤에 등장한 육조시대의 지괴, 지인의 필기류에서 기원한다. 노신의 『중국소설사략』을 보면 “중국에서는 본래 巫를 믿었는데, 진,한 이래 신선설이 성행하였고, 한말에 巫風이 또 성행했으며, 이때 소승불교가 들어와 점차 퍼지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귀신을 떠벌려 영이한 것들을 일컫게 하였으므로 진으로부터 수에 이르는 동안에는 귀신지괴의 서가 특히 많았다(p47)”고 한다. 이러한 지괴류의 번창이 훗날 당나라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전기소설이 되었는데, 무협소설은 바로 이 전기소설에서 출발한다. 당대의 전기소설은 신이한 행적에 대한 것과 의협적인 행위에 대한 것이 많은데, 따라서 무협소설도 전자의 경우를 따르는 검협과 후자를 따르는 무협으로 나누어 발전해 왔다. 검협은 주로 환상적인 색채가 강하며 황당한 내용과 불가사의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품이 이루어지는데 반해, 후자는 비교적 사실에 충실하다. 양자는 각각 일가를 이루어 발전해 왔는데, 검협의 경우는 육조시대의 지괴 필기류에서부터 시작되어 당대 지괴전기로 발전하여 후대에 봉신연의나 서유기등을 만들어 내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세기 초의 불후의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촉산객에까지 이르렀다. 후자의 경우는 사마천의 사기이래 협객류의 작품들이 나오다가 육조시대 지인 필기류를 거쳐 당대 유협 전기를 근간으로 삼국지연의, 수호전등이 있었으며 백우의 십이금전표에까지 이르게되었다. 이를 역사적으로 좀더 살펴보자.
당대의 전기소설은 당대의 문인들이 온권(과거를 보기 전에 과거 시험관에게 자신의 글을 주는 행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지만, 본래부터 그러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이 분분하다. 다만 당대의 전기소설이 당시의 문인재사의 문학적 재능과 욕망을 분출하는 하나의 방향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듯 하다. 이들은 비록 지괴, 지인 필기류에서 많은 영향을 받기는 하였지만, 자신의 文才를 뽐내는 방편의 하나로 전기소설을 지었으므로, 서사적인 기법과 작품 속에 내재해 있는 사상성은 족히 볼만 하였다.
내용에 있어서 전기소설은 아무래도 육조시대의 지괴류의 영향으로 전자에 관련된 것이 더 많았다. 그러나 그 시기만 해도 이미 지괴류의 허황된 면들이 많이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이시기 대표적인 작품으로 규염객전과 곤륜노, 섭은랑 등이 있다. 현대 신무협 작가 중에서 김용과 쌍벽을 이룬다는 양우생의 경우는 특히 야사에서 작품의 소재를 잡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작품인 화청지(원명은 대당유협전)의 등장인물인 규염객, 공공아, 섭은랑등은 모두 당대 전기소설의 주인공들이다. 당대의 전기소설은 송나라 화본소설로 발전해갔다.
화본소설은 주로 강독사(소설의 내용을 거리에서 읽어주고 대신 돈을 받는 사람)에 의해서 송대 발전한 도시문화와 더불어 급속히 확산하였는데, 화본소설의 주 내용은 민간의 전설이 지괴류를 거쳐 당대 전기소설에서 서사적 품격을 갖춘 것이었으므로 허황된 상상력과 현실적 욕망이 교묘히 교차되었다. 특히 송나라의 국력이 허약했던 만큼, 이에 대한 역반응적 분출구로서 의협적인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었다. 그 대표적인 의협이야기가 노지심, 무송, 양지 등의 이야기였는데 이를 훗날 시내암이 내용을 정리하여 수호전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무협소설은 명대에 들어오면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앞서 말했던 삼국지연의나, 수호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봉신연의도 실상은 이 시대에 등장한 소설이다. 특히 명대는 장편장회소설과 단편소설이 공존하던 시기로 검협과 무협의 발전 가능성을 타진하던 시기였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이시기에 이르러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비로소 무협소설의 틀이 갖추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무협소설의 정리가 이루어진 것으로 꼽히는 것이 청대의 공안소설이다. 공안소설이란 이른바 송사와 관련된 얽혀진 미스테리들을 유명한 판관이나 의협적인 인물이 명쾌하게 풀어내는 것을 주요 줄거리로 한다. 얼마 전 TV에서도 방영된 바 있는 삼협오의(판관 포청천)은 그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노신은 삼협오의를 평하면서,
“무릇 이런 종류의 저작들은 용감하고 의협심 넘치는 인물들이 성시를 떠돌아 다니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폭력을 제거하며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는 것을 서술함에 뜻을 두었다. 그러다 보니 유명한 대신을 축으로 삼아 일체의 호걸들을 그에 연루시켜야 했다...”
고 한바 있다. 결론적으로 청대의 공안소설들은 여타의 다른 무협장르들과 서로 어울리며 20세기 초 신무협의 발판이 된 것이다.
그러나 공안소설을 비롯한 많은 청대의 작품들은 무협을 발전시키는 한편, 무협이 가지고 있는 그간의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굳이 노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시기 무협소설들은 이미 노예화 근성과 함께, 낡은 환상과 낭만에의 예속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이를 좀더 따져 보기로 하자.
청대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히는 아녀영웅전의 경우, 주인공인 하옥봉(십삼매)는 전반부에는 협의로운 행동과 놀라운 무공으로 악을 응징하는 등 통쾌한 일면을 보이나, 후반부에는 남편을 부귀공명의 벼슬길에서 잘 내조한다는 보수적이고, 귀족적인 취향을 드러내었다. 삼협오의의 경우 주인공은 물론 벼슬아치인 포승(포청천)으로 당대의 남협, 북협, 쌍협은 모두 그를 흠모하여 그에 예속되는 데, 이는 이미 오래전 한의 건국주체였던 유협들이 한의 건국후 보수적인 정부의 그늘 속에 안주하던 것과 별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원인에 대해서는 뒤에 좀더 자세히 밝혀보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들 협의로써의 위치가 매우 불안정하고 과도기적이며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막상 평화가 지속되면 그 필요성이 사라진다는 역설적 위치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협소설은 청대 후반부에 이른바 초인소설이라고도 불리면서 그 절정을 이룬다. 이시기의 무협소설가들을 흔히 북파와 남파로 나뉘는데, 소설적 특징보다는 지역적 특징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남파의 경우는 작자층은 더 두터웠다고 하지만, 볼만한 것은 별로 없었으며, 작자층은 비교적 얇았지만 오히려 북파의 작자들이 그 영향력은 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북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환주루주(이수민)과 왕도려, 백우등을 들 수 있다. 이수민은 신마검협소설 중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한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는 촉산객의 작자이다. 촉산객은 사실 한편의 작품이 아니고 촉산검협전, 장미진인전, 아미칠외, 청성십구협 등 20여부가 모여져 만들어진 방대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우연한 기회에 접한 적이 있었는데, 등장인물의 신출귀몰함과, 무공의 황당무계함, 해박한 지리적, 철학적, 역사적 지식, 방대한 스케일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백우는 사실적인 무협의 대가로 꼽히는 인물로써, 환상적이고 황당한 세계를 배격하고 대신에 세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실들을 약간은 냉소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세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하나 절대자가 아니고, 심지어는 당대 최고의 고수라도 채화 음적 등의 하오무리의 계략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의 이러한 사실성 강한 무협은 훗날의 무협소설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유감스럽게도 백우의 작품은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왕도려는 이른바 원앙호접파의 대가라고 불린 인물이었다. 원앙호접이라는 명칭은 본래 무협소설의 한 지류가 아니었고, 청대의 애정,염정소설을 지칭하는 뜻이었는데, 왕도려에 의해서 이러한 애정,염정의 소재가 본격적으로 무협소설의 주요테마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그의 대표작인 청강만리 3부가 들어와 있는데, 읽어본 바에 의하면 매우 지루한 면이 있었다. 이상과 같은 무협소설은 그러나 중국이 공산화되는 시기에 점차로 중국대륙에서 사라졌다가 1950대 초반 대만과 홍콩등지에서 신무협이란 이름으로 다시 전성기를 맡게 된다.
통칭 오늘날 신무협이라고 일컫는 무협소설군은 1952년 양우생이 당시 유명했던 무술고수들의 결투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용호투경화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뒤 경쟁적으로 김용이 서검은구록을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신무협의 시대가 열렸다. 신무협은 구무협에서 나오는 죽고 죽이는 간단한 줄거리나, 한 가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단순하고, 지루한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나 복잡한 이야기의 구조를 애정, 복수, 권력, 욕망 등 다양한 재료로 얼버무린 것에 가장 큰 특징으로 삼는다. 그와 함께 그전의 검협과 무협을 적절히 섞어 호기심을 유발시키며, 인과관계가 한층 복잡해지고, 시간의 전후관계가 혼용되는 등 현대소설의 기법을 다수 사용하였으며, 인간관계 또한 현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새롭게 설정함으로써 동남아시아를 비롯해서 동북아시아 구미대륙에까지 한자문화권이 속한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널리 유통되었으며, 특히 80년대 중반이후 대륙에 상륙함으로써 대륙의 독자들에게 열풍과도 같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3. 무협소설의 특징, 그리고 김용과 양우생
무협소설의 발전은 중국의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한대이전의 혼란한 상황속에서 태동했던 유협류의 인간형과 육조시대라는 난세 속에서 발전해간 신이,지괴류는 사실 민중의 고난 속에서 발화되었다. 이는 현실의 고난의 양상은 낭만적이고 이상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보편적 심리와 상통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 이상이 사라진 시대, 정의가 정복으로 대변되던 시대에 사람들은 보다 강력한 정서를 원하게 되는 것이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라는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중국인들의 숭무정신(무협소설사 참조)과도 일정한 연관성을 갖게 된다. 즉, 사람들은 더 이상 말과 이성에 의한 해방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고, 자신들의 내적 불만과 욕망을 또 다른 무언가로 표출하고자 하게 된다. 자신들의 억울함을 대변해줄 인물을 찾게 되며, 자신이 하지 못하는 금기를 깨 줄 영웅을 찾게 된다. 실천적 욕구를 구체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영웅에 대한 민중의 염원은 권력자에게는 기반의 도구로 쓰여졌으며, 종교의 지도자에게는 신앙의 기반으로 사용되었다. 무협소설의 태동은 이러한 민중정서 속에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본시 그러한 배출구를 담당한 것은 이른바 설화였으며, 설화가 민중 속에 스며들게 된 다양한 문학양식 중에 무협소설은 그 하나였던 것이다. 법보다 힘이 앞서는 시대에 협은 무로써 금기를 범함으로써 민중의 억눌렀던 심정을 대변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협, 즉 의라는 것은 실은 법과 통치이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 무협의 가장 큰 딜레마가 있다. 즉, 의협 혹은 협객이라는 존재는 의와 법이 갈라선 시대에 민중들의 순간적인 불만은 제거해줄 수 있었지만, 평화가 지속된 사회, 다시 말하면, 의와 법이 통일된 시대에 있어서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서 강등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녀영웅전을 비롯한 여타의 구무협 소설들이 부귀공명과 연결되는 유가적 이상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나 청대 등장했던 협의공안 소설류가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것은 그러한 딜레마를 빠져나가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무협소설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딜레마는 장르적 한계에 있다. 즉, 무와 협의 연결체인 무협소설은 반드시 이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여타소설에 대해 무협소설만의 독자성을 보호해주는 구실임과 동시에 치명적인 폐쇄성을 드러내주었다. 이야기의 소재와 내용은 작품의 양에 반비례하여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그것이 그것인 즉,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게 되는 상태로 소멸하게 될 운명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이른바 신무협이다. 현대적인 감각과 역사적인 배경을 적절히 혼합함으로써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환상과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노력은 신무협의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가시화되었다. 신무협(차후로는 무협이라고 한다)을 읽다보면, 등장하는 주인공이 비록 수백년전의 인물로 설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친숙하게 여겨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에게서는 현대인의 욕망을 고루 충족시켜주고 있는 멋들어진 풍취가 드러난다. 현대에 맞추어 만들어진 현대적 영웅들은 이미 이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무협속의 인물들은 현대의 모습과 고대의 이상이 적절히 안배된 인물이므로 현대인들에게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무협소설의 인물들의 형상은 현대인의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되 그 해결을 고대의 이상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무의 측면에서도 무협소설은 보다 복잡하면서도 사실적 요소를 혼합하는 즉 검협과 무협을 조화시킴으로서 현대인들에게 거짓인 그러나 아주 거짓은 아닌 모호성을 제공함으로써 현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즉, 현대인들은 이성에서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으며, 현실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낭만과 환상의 배출구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해진 인간군상을 보다 다양한 배경에 깔고서 수많은 플롯은 복잡하게 꾸며냄으로써 소설적 재미를 부각시켰다. 이른바 책을 잡으면 끝날 때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며, 그 대표적 작가들로 꼽히는 이들이 바로 김용과 양우생이다.
김용과 양우생은 위에서 말한 바의 것들을 모두 충족시켜준 거장으로 일컫는다. 둘 모두 중국의 철학과 역사에 정통한 인물들로 학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으며, 그들의 작품은 이미 통속소설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김용의 경우는 김학이라 하여 그의 작품을 가지고 학위를 받는 학자들까지 나오고 있다고 하니 그 위상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둘에 대한 평가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김용은 일찌기 홍콩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예광이 “동서고금에 이런 예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거의 모든 중국인이 그의 메니아라고 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내용적인 재미를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의 모대학에서 중국학의 부교재로 그의 천룡팔부를 선정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문학적으로도 뛰어나다. 특히 그는 도교와 불교에 매우 깊은 조예가 있다고 하며 이러한 것은 그의 작품속에 잘 드러난다. 천룡팔부에서의 불교적 무상관이나 소오강호에서의 도교적 무위관은 어지간한 학문적 성취가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인물들의 개성과 작품의 재미라는 측면에서 전무후무한 경지를 일구어내었다.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바람이 없는 호숫가에 홀연 광풍이 일어 조각배가 파도에 휩쓸릴 듯 하다가 홀연 맑게 개여 물결 한점 일지 않으며, 때로는 무대가 크게 열렸다가 닫혔다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지기도 하고, 혹은 촘촘한 바느질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천길 낭떠러지에 서있는 듯 하여 두려움과 놀라움 경이와 비통함, 웃음과 감동이 편편마다 파노라마처럼 되풀이되어 읽은 후에도 그 황홀함이 여운처럼 남는다. 그의 기발한 스토리 전개와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군상의 어제와 오늘은 실로 무협소설사뿐 아니라 중국소설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양우생은 김용과 동시대의 인물로 무협소설의 正宗이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특히 역사 그중에서도 야사에 능통하여 그의 붓끝에서 나온 대개의 인물들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거나 야사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장중하고 광막하기로 유명하여 마치 둔중한 산맥을 보는 듯하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모두 인생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 역력한 인물들로 이들을 통해 풀어나가는 인과관계의 설정은 마치 양자강이 서해로 나가는 것처럼 도도하다. 특히 그는 권위적이고 보수화된 세력에 맞서 싸우는 반동적인 인물을 내세워 문제의식을 문학 속에 펼쳐놓음으로써 대만 당국으로부터 작품출간을 금지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지식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내기도 하였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김용과 양우생은 각각 나름대로의 방면에서 일가를 일구어냈다.
우선 김용은 작품의 흥미라는 면에서 독보적이다. 반대로 양우생은 작품의 문학성에 대해서 김용에 한결 앞선다. 김용이 천용팔부에서 세 명의 주인공을 교차시켜가며 신출귀몰한 전개로 독자를 탄복시킨다면, 양우생은 대륙풍에서 세 명의 주인공이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끝없이 깊이 파고드는 무게로 독자를 감동시킨다.
다음으로 김용은 영화적 기법을 사용하여 공간적 이동이 자유로운데 반해, 양우생은 경극이나 연극적 기법을 사용해 그 당시의 상황을 주의 깊게 표현한다. 김용은 검협에 좀더 비중을 두어 신출귀몰한 무공결투장면이 등장한다면, 양우생은 무협에 비중을 두고 훨씬 사실적이며 구체적으로 결투장면을 묘사한다. 김용은 양우생에 비해 더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독자에게 파고드는데 반해, 양우생은 무협 본연의 주제인 협을 다른 이념들과의 관계속에서 풀어내는데 주안점을 둔다. 김용이 소설적 재미로 인해 소설적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는데 반해, 양우생은 작품의 변화가 적어 재미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김용과 양우생은 무협소설을 완성했다는 것과 동시에 대부분의 수법들을 거의 모두 써먹었다는 지적도 함께 받았다. 즉, 새로운 경지를 창도하긴 했지만, 그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 이미 그 한계가 이들의 시대가 끝나면서 벌써 들어 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후대에 등장한 와룡생이나 고룡등 새로운 작가들이 각기 다른 방면으로 출로를 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지면상 더 이상의 언급을 피하기로 한다.
4. 국내 무협소설의 상황 - 맺음말을 대신으로
우리나라에도 무협소설이 근대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무협소설은 번역소설(삼국지연의나, 수호전, 서유기같은)에 불과 했으며, 본격적으로 등장한 적은 없다. 군담소설이 혹 그 원류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주장하기엔 근거나 설득력이 부족하다. 다만, 조선 후기에 증가한 이인전과 유협전이 무협으로써의 가능성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둘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미흡하므로(이에 대해서는 박희병 『한국고전인물전연구』를 참조)여기에서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우리나라에 무협소설의 효시로는 1960년대 김광주의 비호라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대만의 와룡생의 작품을 번역한 것이었는데, 그 이후 무협소설은 처음에는 주로 대만, 홍콩 등지의 무협소설을 번역하다가 드디어 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했다. 이시기에 무협소설은 폭발적인 붐을 조성했는데 70년대 중반 고룡의 영향을 받은 무협소설이 등장하면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무협소설 중에서도 특히 검협류가 황당하고 환상적이라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았는데, 소재나 기타 중국의 지리적, 철학적 배경에 미숙하던 우리나라는 특히 이 검협류의 신이한 무공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무협소설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무협소설은 더욱 황당무계한 지경으로 치닫게 되었다. 80년대 나온 무협들은 대부분이 경천동지한 무공과 남성의 호기취향에 맞추어 그야말로 불사신의 주인공을 탄생시켜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함으로써 다소간 사양세를 멈추었고 한때는 중흥의 시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이때 등장한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것이 금강, 야설록, 서효원, 와룡강등이었다. 그러나 자극의 극대화에는 필연적으로 소재를 고갈시켰을 뿐 아니라 무협소설을 상업성 일변도로 변화시켜 작품성을 등한시하게 되었으며, 그만큼 빨리 실증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결과를 낳아 80년대 후반, 무협소설은 다시 한번 소멸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무협소설의 재 도약은 90년대 초 젊은 무협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90년대 무협작가들은 신선한 감각과 새로운 방면에 깊은 조예를 쌓으면서 상업 일변도나 자극을 목적으로 하는 무협소설이 아니라, 나음대로의 젊은 인생관과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뇌를 성공적으로 담아내어 특히 젊은층으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게 되는 시점에 이르게 되었다.
양우생의 소설이 중국본토에서 밀려난 대만인들의 자괴감을 극복하는 통로를 마련해 주었고, 김용의 소설이 영국과 중국사이에 위치한 모호한 위치에 서있는 홍콩인들의 불안감을 씻어준 것과 마찬가지로 무협소설은 현실의 불만의 낭만적인 해결이란 점에서 한국에 다가왔다. 이는 물론 같은 한자문화권으로서의 사상적, 내지 역사적 공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무협소설이 담지하고 있는 이러한 낭만성을 통한 현실의 극복은 70년대와 80년대의 수많은 현대사적 격동속에서 당당한 하나의 탈출구가 되었다. 특히 90년대 이른바 목표상실의 시대 속에서 그 혼란을 명쾌한 다른 무엇으로 보상받으려는 때, 무협소설이 새로운 틀과 기치를 내걸고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은 다만 우연은 아니다. 무협소설이 설혹 ‘환상과 낭만을 통한 배설문학’(한용환: 소설학 사전)이라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가능성을 모색하던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문학의 한 장르라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결국,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현실세계의 문제를 현실세계의 밖에서 관조하고 객관하하는 그리하여 김현의 말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과연 살만한 것인가”를 되묻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무협소설은 이 세상의 모순과 고통의 양상을 강호라는 새로운 역사적 공간 속에 풀어냄으로써 도가 땅에 떨어진 시대, 인간성의 상실의 시대에 진정한 인간성의 본질적 물음을 동양적 협의론과 결부시키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과정과 동기의 문제를 다시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무협소설은 협의를 통한 삶의 실천을 강조한다. 무를 통한 시원하고 장쾌한 해결은 폭력미학의 극치가 아니라 인간정서, 내지는 민중적 정서의 소박한 그러면서도 원초적인 발상으로 보는 것이 더 온당하다. 무협을 폭력과 섹스에 물든 배설문학이라는 것은 무협문학이 가진 결과에만 집착하여 피상적으로 도출해낸 인상적인 비판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사마리아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군중들의 핍박 심리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도출과정이 폭력이라고 하여 반드시 폭력이 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결과적으로 폭력이 나오기까지의 그 과정에 무협소설의 미학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무협소설의 인식에 대한 가장 시급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무협소설에서 필요한 것은 그동안 있어왔던 편협된 배척일변도를 지양하는 일뿐만 아니라 무협소설자체에 대한 무지를 극복하는 일일 것이다. 이 글이 이러한 양자의 시각을 불식시키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빌며 이만 줄인다.
***** 참고문헌 *****
1장에서는 존 스토리 저, 박모 번역,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이 도움이 됐고, Fowler의 The Life and Death of Literary Form과 Scholes & Kellogg의 'Narrative Tradtion'의 이론도 글을 쓰는데 많은 용기를 제공하였다.
2장에서는 노신 저, 정범진 역, ‘중국소설사략’과 양수중 저 안동준/김영수 옮김, ‘무림백과’와 얼마 전에 나온 ‘무협소설사’가 특히 도움이 되었고, 정범진/김학주 저, 중국문학사도 밑그림의 작업에 동참하였다.
3장에서는 다른 작가나 문학자가 쓴 작품의 서문 혹은 발문을 참고하였으므로 구태여 일일이 적지는 않는다. 그외에는 ‘중국소설사략’과 ‘무림백과’, ‘무협소설사’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하였다.
4장에서는 박희병, 한국고전인물전연구가 약간의 도움이 되었다.
끝으로 꼭 읽어야 할 책들을 적어 놓는다.
1. 무협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는 분은 .........
우선 김용의 <소오강호>(동방불패, 열웅지라는 제목으로도 나와있음)와 <영웅문>3부작씨리즈(원명은 1부 사조영웅전, 2부 신조협려, 3부 의천도룡기임. 특히 의천도룡기의 경우에는 대평원이라는 제목으로도 나와있다.) 그리고 역시 김용의 <천룡팔부>(한가지 주의할 점은 출판사에 따라 1부와 2부로 나뉜 것이 있는데 이 경우에 2부는 김용의 또다른 작품인 협객행이므로 굳이 읽을 필요는 없다.)를 읽는 것이 순서다. 이 세 작품은 이미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한결같이 찬탄을 금치 못하는 것들이므로 괜히 읽었다는 후회는 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중국 역사나 풍속, 철학과 종교가 매우 잘 드러나 있으므로 중국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자들이 진순신의 소설 십팔사략(일명 대황하)와 함께 반드시 읽어야 되는 책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모 대학들(단0대와 고0대등)에서는 교수가 솔선수범해서 위의 네 가지 책들을 읽으라는 숙제를 낸 적이 있다고 한다.(확인은 안했음)
2. 위의 책들을 읽어본 분은 .............
역시 김용의 소설을 계속 읽음으로써 무협에 대한 흥미를 계속 돋구는 것이 순서. 김용의 소설중에서도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진 <녹정기>는 특히 남성들에게서 매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비호외전>도 역시 소설적 재미와 작품성을 함께 인정받은 것이므로 읽어도 나쁠 것은 없지만, 발표자의 생각으로는 재미 면에서 약간 처진다고 느꼈다. 양우생의 작품도 이 단계에서는 읽어도 무방한데 우선, 대당유협전(일명:화청지)는 재미도 재미이거니와 당대전기소설과 당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는데도 좋은 밑거름 역할을 해준다. 대륙풍(본명은 생각나지 않음 알고 싶은 분은 대륙풍 1권에 있는 서문을 볼 것)은 남송시대의 풍경을 잘 드러내고 있어 역사적인 측면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양우생은 스스로 말했듯이 중국의 詩, 書, 畵, 史에 많은 영향을 받은 인물이었으므로 그의 작품은 대개 역사적 배경이 깔리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유체계나 풍습 등을 공부하는데도 좋은 효과가 있다. 물론 거기에 소설적 재미라는 보너스를 가득 안고서 말이다.(이점이 무협소설이 대중소설이 되는 이유다. 무협소설은 뭐니 뭐니 해도 무협만이 가지고 있는 통쾌한 재미에 있다.)
3. 이 단계에까지 이른 분들은 .........
이분들께 권하고 싶은 필독서는 바로 다음과 같은 책들.
고룡의 다정검객무정검과 초류향씨리즈, 육소봉과 유성호접검(이른바 자객무협의 대표작으로 이미 영화화 된지 한참 되었다.) 그리고 와룡생의 천애기, 군협지(본명은 생각이 날듯 말듯함) 여기에 김용과 나머지 양우생의 작품들.
참고로 우리나라의 무협소설 중에서는 특히 금강, 서효원, 야설록등의 구세대(?)무협작가들과 운중악, 좌백, 장경으로 이어지는 작가들의 작품이 매우 신선하다. 특히 전인미답의 영역이었던 여류무협작가인 진산과 유사하가 출현하여 무협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그중에서도 진산의 작품은 무협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작품인 만큼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그 외에도, 더 추천해주고 싶은 책들이 널려있으나 지면상 그만하기로 한다. 좀더 알고 싶은 분은 언제고 환영함을 분명히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