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가? 교회적인 환경 가운데 나타나는 우울증
(이관직/총신대신대원 목회상담학 교수)
신앙인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가? ... 교회 안에서 두드러지는 우울증의 증상들은 무엇인가? ... 필자는 이 같은 질문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나갔으며, 우울증의 증상들과 원인들에 대한 이해는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필요한 부분에서만 간략하게 언급하도록 한다.
1.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우울증과의 관계성 우울증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김으로써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지만, 우울증에 걸림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앙인들이 과연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성경에 나타난 많은 신앙인들의 모습 속에서 대답되어질 수 있다. 욥, 모세 엘리야, 예레미야, 바울, 심지어는 예수님까지도 우울의 감정들을 경험한 분이었다. 바울의 경우에는 살 소망까지 끊어진 경험도 있었음을 고백하였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히 고민하여"하셨고 통곡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도 했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는 외치 속에서도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극심한 거절감과 소외감으로 우울의 감정들을 경험하셨다. 시편에서도 우울증과 유사한 상태의 표현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편 22편을 대표적인 예로 들을 수 있는데,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거절감, 소외감)...내 하나님이여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수면장애)...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열등감) 사람의 훼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수치감)...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무력감)...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체증감소, 절망감)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에너지 감소)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죽음의 희구 또는 소진)"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이같은 시편 기자들의 표현을 정죄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경험할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 상태 자체를 정죄하시거나 불신앙으로 몰아세우지 않으셨고 그 상태를 직면하고 딛고 일어서서 회복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세벨의 위협을 받은 엘리야가 보여준 모습은 반응성 우울증적인 증상과 유사한 것이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왕상19:4)-사회적 철퇴;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4절)-절망감과 죽음(자살?)을 동경; "오직 나만 남았거늘"(10, 14절)-무력감과 외로움;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리니이다"(4절)-열등감;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다니"(5절)-신체적 탈진.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탈진과 우울에 빠진 엘리야를 정죄하거나 영적인 어떤 치료책을 제시하기 전에 천사를 보내셔서 그의 지친 심신을 어루만지시고 까마귀를 통하여 물과 떡을 공급하여 먹게 하시는 재충전의 방법을 사용하셨다는 점이다. 엘리야는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의 광야 길을 행할 수 있었다. 성경을 통해 나타나는 신앙인들의 삶은 긍정적인 감정들과 부정적인 감정들이 교차하는 것이었으며 항상 좋은 감정만을 칭찬하거나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들에게 깨우쳐주고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삶을 살기도 하고 신앙의 선배들이 명명했던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기도 하는 삶을 오히려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울증은 그 증상을 겪는 신앙인을 신앙의 여정에서 부정적으로 이끌어갈 위험성도 내포하고 잇지만 신앙의 성숙을 일어나게 하는 도전의 경험이 될 수 있다.
2. 신앙의 모습으로 가장된 우울증의 양상들 신앙적 행동으로 위장된 우울증의 증상은 대표적으로 형식주의와 외식주의를 들을 수 있다. 겉으로는 쾌활한 척, 기쁜 척 떠들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성도들이 있다. 따라서 교회에 와서 보여주는 성도들의 겉모습만 보고 그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성도들의 실제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속임을 당하고 있다. 주일성수, 십일조, 성경공부, 철야기도회 참석 등과 같은 외적인 모습으로 성도들의 신앙을 측정하는 교회의 틀 속에서는 성도들의 우울증이라는 모습을 수면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 병은 치료되지 않고 만성화되어 나중에는 치료하기 힘들 정도가 된다. 조울증의 경우는 우울증보다 더 위험한데 교회봉사에서 불규칙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열심히 있고 소위 '뜨거울' 때는 지나칠 정도이지만 어느 주일부터는 예배에도 출석하지 않고 맡은 부서의 일도 무책임하게 하는 성도들을 보게 된다. 비현실적인 사고를 신앙과 동일시하고 교회사역을 충동적으로 이것저것 막 벌여놓거나 교인들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교회당 건축과 같은 비현실적인 일들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행동도 목회자들이 가질 수 있는 조울증의 증상일 수도 있음을 목회자들 스스로가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도하다가 잘되지 않으면 나름대로의 합리화'의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으로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건강한 목회자가 아니다. 성도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를 통해 자신에게 대해 갖고 있는 기대의 수준과 실제 신앙생활 사이의 괴리감이 클수록 우울증에 취약할 수 있다. 우울증 환자들은 보통 자존감이 낮으며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데 내적인 평안함이 없으며 자주 자신을 정죄하는 전쟁을 내면에서 치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완벽주의적인 양심의 발달로 인하여 자기 수용의 정도가 낮으며 자신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부각시켜 인식하는 고질적인 패배자가 우울증 환자이다. 지나친 양심은 폭군적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며 수반되는 감정은 수치감과 죄책감 그리고 열등감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신앙인의 양심은 양심자체가 우리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기초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장점을 살려나가는 것이 건강하며 성숙해져 가는 신앙의 태도일 것이다.
3. 절망과 우울증의 차이점 앤드류 레스터는 우울증과 절망을 구별하여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임상적인 우울증은 지금-여기에서 경험하는 상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다 구체적인 반면에 절망은 삶에 대하여 보다 보편적인 의미의 상실과 환멸과 연결될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수치감과 죄책감으로 표현되는 개인적인 무가치함을 자주 경험한다. 그러나 절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기 개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거의 갖지 않는다. 그들의 인지적인 인식은 부정적인 자기 평가보다는 환경이 미래와 관련되어 이해될 때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 뿌리를 박고 있다. 임상적인 우울증은 정신의학적인 치료와 심리치료에 잘 반응하는 반면 절망은 그 같은 접근으로는 별효과가 없다. 그는 특히 신앙인들의 우울증의 기저에는 절망이라는 이슈가 자리잡고 있음을 목회자들은 놓치지 말고 인식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병상적인 우울증과 신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우울증을 구별하는 것은 그 열매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병리적인 우울증은 인간의 인격을 무너뜨릴 수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살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질병인 반면에 신앙적인 의미가 있는 우울증은 하나님을 더 깊이 발견하며 이해하여 피상적인 신앙생활에서 성숙한 신앙 상태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변형된 은총이다. 더 나아가 의미 있는 우울증은 '내려가는' 경험을 해본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게 하여, 유사한 경험을 하게되는 동료 신앙인들을 공감하며 위로하며 격려할 수 있게 해준다. 우울증이라는 환난을 통하여 인내하는 법을 배우며 연단(품성과 인격)을 이루며 절망적인 순간에도 소망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하는 의미가 있다.
4. 교회 안에서 발견되는 우울증의 증상들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서가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기인하는 '한'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는데, 정한(情恨)이 우울증과 관련될 수 있는 정서이다. 분단조국의 아픔과 이산가족의 상실로 인한 것과, 정의보다는 불의한 일들이 가정과 사회, 교단, 국가 안에서 많이 일어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알게 모르게 정한의 감정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위축된 삶을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러한 환경들과 관련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목회자들과 특히 일부 사모들의 우울증은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른다. 사모가 우울증에 걸리면 목회자도 우울증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지고 목사가 우울증에 걸리면 성도들도 우울해 질 가능성이 있다. 우울증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희망을 주지 못하게되면서 정체상태 혹은 감소추세를 보이는 것과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비생산적인 교회가 될 때 교회는 우울증적 병리성을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경직된 교회구조와 제도 그리고 역기능적인 교단정치도 신앙인들에게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는 환경적인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목회자들은 인식을 해야한다. 오히려 목회자들은 억압적인 틀보다는 성도들을 '지탱하며 지지해 주는 환경'과 '힘을 부여해 주는 환경', 그리고 '해방시키는 환경'을 제공해줄 책임이 있다.
5. 우울증에 대한 목회적 접근 우울증을 이해 할 때 전인격적인 개인적인 접근과 아울러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몸의 생화학적인 변화와 불균형, 상실과 애통의 과정, 왜곡된 인지의 작용, 분노의 억압, 학습된 무력감, 죄책감, 낮은 자존감, 불신앙 등과 같은 다양한 원인으로부터 올 수 있는 우울증에 대하여 종합적인 시각이 필요하며 따라서 상담가나 정신과 의사, 사회사업가 등과의 팀 접근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정신과 의사의 처방을 받아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임을 성도들에게 깨우쳐 주어야한다. 목회자로서 우울증에 걸린 성도들을 상담할 때 주의할 점은 신체적인 병의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는 우울증의 가능성이다. 따라서 한 두 번의 상담으로 별효과가 없을 때에는 의료적인 검진을 먼저 받도록 하는 것을 잊지 말아라. 상담시에 주의 할 점은 자살의 가능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일이다. 우울증에 걸린 환자들은 자살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자살에 대한 생각의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자살방지에 매우 유익하며 가능하다면 상담기간 중에는 자살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서면상의 약속을 받아 두는 것도 내담자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상담하는 목회자를 보호할 수 있게 한다. 청소년 단계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하며 소위 사춘기적이기 때문에 우울증에 취약한 단계이다. 청소년들의 우울증은 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지는 것, 교회에 결석하는 것, 수면시간이 기어지거나 낮과 밤이 바뀌는 것, 반항적인 행동, 비행적인 행동, 왕따가 되는 것, 불량 서클에 가입, 폭력적인 행동, 자위행위에 집착하는 것, 자살의 충동과 시도, 신체적인 병을 호소하는 것 등은 우울증이 그 밑에 깔려 있는 행동일 수 있음을 목회자와 청소년 사역자들은 인식하고 민감하게 도움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가정환경이나 학교환경이 안정적이지 못할 때 청소년들은 우울증을 드러내게 되고 만성화될 때 청년기에 정신분열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중년기는 남성들의 경우에 실직, 퇴직 등으로 우울증에 빠질 위험성이 높고 여성들의경 우에는 폐경기와 더불어 우울증이 자리 잡을 수 있다.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신체적인 기능도 조금씩 상실하게 되며 자녀들이 하나 둘씩 출가하면서 '빈둥우리 증후군'과 같은 우울증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중년기에 이성친구를 사귀는 행동도 우울증을 해소해보려는 한 시도임을 목회자들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중년기의 우울증 내담자들에게는 우울증 자체를 무조건 증상을 없애야만 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삶의 실존의 의미를 되찾게 하며 무너지고 있는 가정을 재건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상징으로 '재해석'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자녀 양육과 일로 바쁘게 살아온 삶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내면적인 삶과 신앙의 삶을 재점검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삼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특히 우울증에 시달리는 중년 여성들 중에는 소위 화병에 걸린 분들이 잇는데 이들에게는 분노의 억압과 우울증광의 역동적인 관계에 대한 통찰을 얻게 하고 분노를 적절하게 표현하게 하며 분노의 대상과 직면하고 용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분노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왜곡되게 이해하는 성도들에게 분노도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허락하신 감정으로 수용할 수 잇게 해주며 분노에 대한 적절한 절제와 표현을 구사할 수 잇는 힘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성경말씀으로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는 말씀인데, "분을 내라"는 말씀과 "죄를 짓지 말라"란 말씀을 균형 있게 설명해 줌으로써 성도들이 분노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분노의 감정을 억압하거나 자신에게 분노함으로써 우울증에 빠지는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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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나 마음 심심한분 요런식물 관찰하며 퀴우는재미를 가져보세요. 많은 도음이될겁니다.
이식물은 선인장과에속한 다육식물입니다 . 주로 수입품입니다. 퀴우기 까다롭지 않은 식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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