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의 이런 특징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중국의 비극이란 것을 한 번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장파(張法)라는 중국사람이 쓴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이라는 책에 보면 중국의 비극과 서양의 비극에 대한 흥미있는 비교가 있습니다. 장파는 중국의 비극정신을 설명하기 위해 송나라 때의 시인 육유(陸游)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육유는 사촌누이 당완(唐婉)을 아내로 맞았는데 금실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육유의 어머니가 당완을 미워해 고부갈등이 심해지자, 육유는 결국 당완을 버리고 재혼합니다. 장파의 설명에 따르면 "육유는 당완을 사랑하면서도 효자였기 때문에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지고, 결국은 어머니의 분부에 따라 당완을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당완과 이혼을 한 뒤에 육유는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하여 살았습니다. 아마도 이번에는 고부갈등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당완도 재가를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헤어져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육유가 봄놀이를 갔다가 당완을 만납니다. 당완은 술상을 내어 육유를 대접하고, 육유는 <채두봉(釵斗鳳)>이라는 시를 써서 그에 화답했다지요.
발그레한 손엔 황동주
성 안 가득한 봄빛, 궁궐 담장엔 버들가지
동풍 세차게 불더니 즐거움을 날려버렸네.
온 맘 가득 괴로움, 세월도 이별의 아픔 끊지 못하네.
잘못된 거야! 잘못됐어! 잘못됐어!
봄은 예 같은데, 사람은 부질없이 야위었구나
붉은 눈물 자욱 손수건에 가득
복사꽃은 지고, 연못 누대는 텅 비었네
굳은 맹세 여전하지만, 그 마음 띄울 수 없으니
안 된다! 안 돼! 안 돼!
장파는 전형적인 중국의 비극을 보여주기 위해 육유와 당완의 경우 외에도 다른 여러 예들을 소개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원나라 말기의 희곡 <비파기(琵琶記)>의 주인공 채백개(蔡佰 )의 경우입니다. 채백개 역시 아내와 금실이 좋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과거시험에 급제해 집안을 빛내주기를 바랍니다. 채백개는 사랑하는 아내와 고향에서 사는 것이 더 좋아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을 거절합니다만 거듭되는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결국에는 서울로 가서 과거시험을 보게 되지요. 다행히 그는 장원급제하지만, 불행하게도 재상의 눈에 들게 되고 재상은 그를 데릴사위로 삼으려 합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황제와 제상은 그의 생각을 무시하고 결혼을 명합니다. 그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재상의 데릴사위가 되어 수도에 머물게 되지만, 고향에 돌아가 부모를 뵈려는 소망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가 떠난 후 고향에는 재난이 생겨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본처인 조오랑(趙五 )은 갖은 고초를 겪으며 남편을 찾아 나섭니다. 다행히 재상의 딸이 어질어서 그 집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은 일부이처로서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나는 중국문학에 문외한인지라, 이런 이야기들이 장파의 말대로 중국의 전형적인 비극정신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비극정신이 한국적 비극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는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야기는 그리스적 관점에서는 비극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장파는 위의 이야기를 가리켜 비극적 복종이라 말합니다. 아무튼 그 이야기들이 불행한 이야기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모든 불행이 구별없이 비극적이라 불릴 수 있다면 장파가 드는 이야기들도 모두 비극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적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고통과 불행이 비극적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직 인간 정신의 숭고를 보여주는 고통만이 참된 의미에서 비극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파가 말하는 중국의 비극은 자유인의 비극이 아니라 노예의 비극입니다. 장파식으로 말하자면 복종의 비극이지요. 여기서 그가 하는 말을 한 번 직접 들어볼까요.
.....주인공들은 모두 무력하고 모순적이다. 그들은 감정적으로는 반예교와 소례의 편에 서지만, 이성적으로는 예나 대례의 편에 서야 한다고 느낀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인이 진퇴양난의 모순 속에서 개인의 욕망을 천지법칙에 의거한 '예'에 복속심킴으로써 분쟁을 없애고 안정국면으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육유는 모친에게 복종하며, 채백개는 재상에게 굴복한다. 하지만 이런 곤경이 비극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복종 역시 비극적이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부부간의 사랑은 작은 예인 반면 효도는 보다 큰 예이고, 사랑이나 효도는 보다 작은 예라면 충성은 보다 큰 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육유나 채백개의 경우 모두 그들의 삶에서 소례(小禮)와 대례(大禮)가 충돌함으로써 비극적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 장파의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장파는 소례는 감정에 속하고 대례는 이성에 속한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사랑이 사적인 감정에 속하는 것이라면, 임금이나 재상에 대한 충성은 이성적인 당위에 속한다는 말이지요.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어머니의 뜻이나, 임금의 뜻을 따르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지는 것은 불행하고 고통스런 일이지만, 이를 통해 "개인의 욕망을 천지법칙에 의거한 예에 복속시킴으로써" 천하의 질서를 보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장파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비극은 우리에게 약간의 연민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육유나 채백개 그리고 당완과 조오랑의 운명을 생각하면 아무튼 불쌍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나에겐 눈곱만큼의 감동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봉건적 질서 속에서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연민은 단순한 연민일 뿐 결코 그 이상의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고통에는 아무런 정신의 크기도 깃들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다가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외적 강제에 굴종함으로써 고통받았을 뿐입니다. 장파는 중국의 비극적 주인공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이 개인의 욕망을 천지법칙에 의거한 예에 복속시킨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놀랄만한 궤변입니다.
그것은 정당하게 혼인한 아내와의 결혼관계는 한갓 사사로운 욕망의 문제이고, 정당한 결혼을 어머니나 재상의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파기하는 것이 이성적인 천지법칙을 따르는 것이라는 말인데, 이것이야말로 불의한 현실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성을 참칭하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장파는 이런 상황을 "어쩔 수 없는 곤경의 비극"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작품들이 스스로 묻는 방식으로 자기 문화를 힐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십게 말하자면 한편에서는 잘못된 사회질서에 어쩌지도 못하고 굴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는 말인데,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노예의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에서는 아무 소리 못하고 당하기만 하면서 뒤에서는 혼자 중얼거리는 형국이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의 행동에서 우리가 무슨 감동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육유와 채백개의 삶은 아무튼 불쌍합니다. 우리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하지요. 그러나 그 연민은 인간성의 숭고에 대한 감동과 더불어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장파가 보여주는 중국적 비극의 주인공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연민은 불의한 현실 앞에서 비굴하게 굴복하는 노에적 인간에 대한 멸시를 동반한 것으로서, 한 마디로 아무런 감동 없는 연민인 것입니다.
어디에서든 노예적으로 당하기만 하면서 참고 인내하고 순응하는 것 속에 비극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비극은 노예에게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숭고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 사회절서 아래서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굴종하면서 고통받는 것은 비굴한 노예의 비극입니다. 그리스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렇게 발생하는 비극적 현실은 타도되어야 할 현실이지 절대로 미적으로 승화되어야 할 현실이 아닙니다.
장파가 보여주는 중국의 비극에 비하면 춘향은 똑같이 불의한 봉건질서 아래서 고통받는 사람이지만 훨씬 더 숭고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춘향도 불의한 사회제도 아래 묶여 있는 여인입니다. 그는 기생의 딸로서 인간의 존엄을 사회적으로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천민입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는 기존 질서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사로잡힌 노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변 사또는 수청을 들라는 명령을 통해 이런 춘향의 노예상태를 확인하려 합니다. 성적 자기결정권, 사랑의 자기결정권을 갖지 못한 사람이 자유인일 수는 없습니다. 춘향에게 변 사또가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춘향이 묶인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외적으로는 노예적으로 사로잡힌 상태에서 춘향은 어떻게 대처했던가요? 그는 그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춘향은 너무도 당당하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변 사또의 불의함을 탄핵합니다. 이를 통해 그는 자기가 몸은 노예 상태에서 묶여 있지만 그의 정신은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이런 용기, 노예가 아니라 오직 자유인에게 합당한 용기가 춘향을 더욱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는 막강한 권력에 저항함으로써 보복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춘향에게서 느끼는 정신의 크기와 숭고는 그가 보여주는 바로 그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생각하면 자유인의 비극이냐 노예의 비극이냐 하는 구분이 단순히 기존의 사회질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춘향전>은 똑같이 봉건질서의 한계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긍지를 보여줍니다.
춘향은 신분으로는 노예였으나 마음으로는 결코 노예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오이디푸스 역시 운명 앞에서 어쩔 수 없는 노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의한 운명에 굴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춘향이든 오이디푸스든 모두 같은 자유인들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