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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살면서, 내가 만일 "나 스스로 훌륭한 임상의사가 되었다"라는 자부를 언젠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책으로부터 출발하는 suffering에 대한 고민때문일 것이다.
내가 만일 언젠가 한의학과 의학, 한의사와 의사가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한 책을 쓸수 있다면 그 근원은 바로 이 책이 될 것이다.
언젠가 영어를 잘하게 될때 혹은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될때 나는 The nature of Suffering and the Goals of the Medicine"을 원문으로 읽을 것이다.
난 행복하다.
2002년 6월 27일 진료실에서
벌써 5년전에 읽었고 서너번은 읽은 이 책을 이제 한글로 정리하고 싶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가치있는 책이다.
내가 임상의사의 인생을 사는한 나는 이 책의 사고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panic bird........
옮긴이의 글(강신익)
"어딜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내.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의 경외를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즉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임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때는
자네는 몇날 몇달을 위지 않고 나를 탈복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조지훈의 시 "병에게"
- 우리가 병에 걸리다, 병이 나다 또는 병이 들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때는 병이 주체인 표현이다.
- 하지만 병을 앓다라고 할때의 표현은 주체는 분명 인간이다.
- 이처럼 병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소극적인 것과 적극적인 것"이 섞여 있다. 영어에서는 disease와 illness로 구분한다. 전자는 질병이 주체이고, 후자는 인간이 주체이고 병은 이해와 해석의 대상이다.
- 이 책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어 왔던 illness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쓰여졌다. 따라서 저자는 질병중심의 의학에서 병을 앓는 인간중심의 의학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 질병이 주체가 된 현대의학에서 인간의 아픔이 자리할 곳이 없다. 아픔이란 단지 물리적, 화학적 자극을 인체의 신경계가 전기신호로 받아들여 뇌에 전달하는 하나의 회로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실종된다.
- 윌리엄 오슬러(1849-1919)와 프랜시스 피바디(1881-1927) 등이 이러한 주류에 반발하여 과학적 의학을 인간적 요소를 희생시키는 무자비한 요소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들은 의학계를 흥분시킨 각종 과학적 발견에 묻혀 잊혀졌다. 1백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목소리는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대안의학의 만개가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이 견딜 수 없는 격렬한 통증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으며 또는 느긋한 삶의 무게일 수도 있다. 의학적 개입으로 통증을 줄일 수 있는 아픔이 있는가 하면 의학적 개입이 전혀 쓸모 없거나 오히려 아픔을 가중시키는 경우도 있다. 신체적 아픔이 있는가 하면 종교적 영적 아픔도 있다. 의학의 대상이 되는 아픔도 있는가 하면 종교나 법학의 대상이 되는 아픔도 있다.
- 우리가 이처럼 아픔을 여러갈래로 분별하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의 아픔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의학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될까?
저자 서문
- 고통은 주관적 느낌의 상태다. 통증과 절망, 자기 자신과의 갈등, 고통에 따르는 외로움 등은 모두 인간적이며 사적인 상태다. 직접 고통을 당하는 사람보다 그 고통을 더 잘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병을 앓는 과정속에서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이고 인간적이며 사적인 속성과, 신체와 질병의 객관적 속성을 구분하는 전통은 히포크라테스시대(기원전 450년경)부터 서양의학을 지배해왔다.
- 반면 동양(한국, 중국 등)의 의사들은 수천년 동안 환자의 맥을 짚거나 얼굴과 신체부위를 보고 진단을 내리는 전통을 지켜왔다. 의사의 훈련된 주관성에 크게 의존하는 이러한 기술들은 의학의 과학과 기술에 의해 무대에서 밀려났으며 과학적으로 훈련된 의사들의 눈에는 형편없는 돌팔이로 보일수 밖에 없었다.
- 마찬가지로 환자의 증상에서 얻어지는 각종 정보들도 흔히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질병과정이 달라지고 같은 질병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발생할 경우 그 양상이 항상 달라진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 지금은 효과적인 의학의 시대지만 환자의 고통은 아예 무시되거나 치료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실상 현대의학은 병환의 인간적 측면을 인정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
- 이는 의사들이 질병상태와 신체적 기능이상에만 관심을 가짐으로써 점차 환자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게 되고 심지어는 환자의 고통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과학과 기술이 가지고 있는 개념적 결함때문이다. 이는 의료계에 관계된 각종 제도와 관습을 통해 질병에 의한 고통과 인간적인 요소들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게 된다.
- 여기서 세가지 과학적 개념이 존재한다.
첫째, 과학적 관점에서 직접 경험되고 측정되어 진실임이 증명된 사실만이 유용한 정보로 여겨진다. 사실로 증명될 수 없는 진술은 의미가 없거나 가치나 도덕의 영역에서 행해지는 기술과 같이 기껏해야 의견이나 취향정도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이러한 관점은 전체를,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으로 쪼개서 각 부분을 관찰함으로써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인간을 자연의 나머지와 분리한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이원론적 추세다.
셋째, 객관적인 것만이 유용한 정보를 준다는 의사들의 믿음이다. 가치, 느낌, 견해, 신념 등에서 우러나오는 주관적 정보는 오류투성이이고 믿을 수 없으며 과학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해서 환자와 의사의 주관적 요소는 객관적 사실에 비해 가치가 없는 쓰레기가 된다.
- 나는 이책에서 병을 앓는 사람이 자신이 앓는 병의 진행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점을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
-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의료에서 인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환자를 인간으로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그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도 있다.
들어가는 말
- 의료체계가 제대로 된 것인가를 판별하는 기준은 그것이 사람들의 고통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있다. 현대의학의 중심명제들은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근거를 주고 있지 않다. 통증이나 호흡곤란 또는 그밖의 신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훌륭한 해결책을 줄수 있었지만 정말로 인간적인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 이러한 의학의 비인간화를 줄이려는 노력은 실패를 거듭했다. 위대한 교육자들이 노력했고, 훌륭한 책도 출간됐고, 의과대학 교과과정이 개선되었지만 크고작은 시도들은 대부분 실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
-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강조되고 질병 그자체는 의료관계에서 점차 그 지위가 하락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러한 변화는 더디기만 한 것일까?
- 의료행위의 초점이 질병이 아닌 아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의학이론에서 새로운 명제다. 이는 질병이 초점이 되던 과거의 이론과는 판이한 것이다.
제 1장은 의학에서 철학이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논의하고 지금까지 통용되어온 질병이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의학이론은 의사의 행동에 그대로 나타난다.
제 2장은 의학이 인간의 고통을 다루는데 제 역할을 못한 근본적인 이유가 아픈 사람과 의사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 의학이론에 의함을 보여준다.
제3-4장은 고통의 본질이라는 이책의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우리는 질병이라는 과학적 실체가 질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나 그가 느끼는 고통보다도 더 실체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3-4장에서는 고통이란 무엇인가뿐만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해볼 것이다.
제 5장에서는 의학이 고통에 접근하는 방식을 이해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알아본다. 신비한 환자-의사의 관계는 5장의 주제다.
제 6장은 어떤 사람이 질병에 걸렸다고 할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최근 수십년간 질병의 개념을 달라지고 있다. 유방암, 폐렴, 관상동맥질환을 예로들어 그 변화과정을 살펴본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인간의 개념에 대해 논의하고, 의사의 책무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진단), 무엇을 치료할 것인가?, 치료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등을 알아내는 의사의 책무에 대해서..
의사들은 대개 같은 질병에 걸린 사람은 누구라도 같은 양상으로 그 병을 앓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제 9장의 끝부분에서는 이러한 환상을 말끔히 씻어준다.
제 10-12장에서는 우리가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면 이 고통을 없애기 위해 의학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된다.
- 의사가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치료하여 그 사람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그 사람이 앓고 있는 질병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 질병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 이상으로 병을 앓고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이 그 병을 앓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야야 한다.
- 과학의 성공과 지배로 특징지워진 우리 시대는 비과학적인 지식은 진정한 지식일 수 없다는 편견을 양산해냈다. 따라서 모든 지식은 객관적이어야 하고 측정가능한 것이어야 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고통이라는 현상을 실재하지 않는다.
- 심각한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 앞에 선 의사는 자신이 사용하려는 치료법이 확실한 치료효과를 가져다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지도 못할 것이며, 환자가 호소하는 고통이 주관적이라고 해서 그것을 무시하지도 못할 것이다.
제 1장. 흔들리는 질병관(근대적 질병관의 대두와 몰락)
질병개념의 중요성
- 질병을 하나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볼 것인지, 국소적 실체로 볼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의학의 역사를 통해 잠시도 멈춘적이 없었다.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는 개념이 "생리학적 질병개념"인데, 질병의 근원을 환자의 내부와 외부의 자연적 힘의 불균형에서 찾는다.
국소적 실체로 보는 개념은 "존재론적 질병관"이라 불리며, 질병을 어떤 실체를 가진 것으로 정의한다. 이 두 개념은 의학사상을 번갈아 가면서 지배해왔다.
- 의사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인간의 행동은 반드시 이론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개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 의료행위 역시 이론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데, 이는 의사들이 질병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믿음위에서 의료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 카이로 프랙틱이 번창하는 사실만 보아도 일반인에 대한 현대의학의 구속력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알 수 있다. 현대의학으로 명백한 검증효과가 있는데도 대중이이를 외면하고 대안의학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사실은 사람들이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자기 나름의 해석(자신의 이론)에 입각해서 행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질병이론의 등장
- 180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아래의 질병이론은 의사들 사이에 공통된 이해의 기반을 마련했을 뿐만아니라 의학에 과학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이다. 이 이론은 의학사에서 20세기 중반가지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의학이론가 Faber의 이야기다.
"질병을 기술하기 위한 노력은 서술적 박물학에서 차용한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질병의 원인을 찾기 위한 노력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러므로 임상의학은 자연적 현상을 제어하기 위해 자연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자연과학과 다를바 없다. 하지만 임상의학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각각의 질병을 일정한 경과와 발생을 거치는 하나의 임상적 모습으로 합성해내는데까지 나아간다. 이러한 질병의 임상적 모습은 어떤 분명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한정된 자연현상을 말한다"
- 이러한 질병이론에 따르면 임상의사의 목표는 병든사람에게서 질병이라는 특별한 원인을 지닌 특별한 현상을 찾아내어 진단과 치료의 토대로 삼는 것이다. 1930년대 당시 의학은 과학을 통해 질병의 본질과 원인, 치료법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환상에 도취되어 있었다.
- 진단의 정확성을 향한 끝없는 추구는 그후 의학의 특성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질병이론의 약점
- 위의 질병이론에는 두가지 약점이 존재한다.
첫째, 하나의 질병에는 하나의 원인만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두번째는 신체 또는 자연계의 기능은 구종에서 비롯되고 따라서 기능의 변화는 구조의 변화에 따르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 이러한 질병이론에 의하면 "증상복합체"는 하나의 질병으로 간주될 수 없게 된다.
- 전염병은 이러한 질병이론 이해방식의 가장 완벽한 모델이다. 이러한 관점은 치료방식을 과거의 경험위주의 방식에서 원인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전환시켰다. 그 결과 의사들은 환자의 증상완화보다는 원인에 작용하는 치료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
- 이후 특이병인론의 개념이 서서히 중심적 지위를 잃게된다. 그 이유는 항생제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환상적 치료법도 질병의 원인에 직접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 유기체의 기능의 변화는 구조의 변화에서 기인한다는 믿음으로 인해 의료현장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모든 진단은 이제 완전히 구조의 변화를 찾는 과정으로 변질되어 갔다. 환자는 아무리 고통을 호소하여도 구조의 변화가 없으면 신경성에 의한 것일뿐 질병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 의사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가 되어버렸다.
- 예를들어 노인들에게 이 방법을 적용하면 수많은 질병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치료에서 얻는 이득보다 과잉치료로 인한 부작용을 더 걱정해야 할 것이다.
- 지식의 진보에 따라 구조와 기능의 엄밀한 구분이 모호해져갔다. 하지만 환자들은 보통 자신이 앓고 있는 병에 구조에 바탕을 둔 질병이름이 붙여지기를 바란다. 그들의 기대는 의사들에 의해 부추겨지기도 한다.
- 구조이론은 실생활에서 유용하기는 하지만 인위적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지니고 있다. 자연게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우리가 기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나 빨리 변하기 때문에 임상적 상황에서 측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신체의 구조 역시 끊임없이 변화한다.
생태학적 시각의 등장
- 1940년 후반에 문화적 사회적 요인이 질병의 발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 르네 듀보의 "건강이라는 환상"에서 인간의 신체적 고통의 근원에는 환경에 대한 적응과 부적응의 무제가 자리한다고 주장한다. => 한국에서 명경출판사에서 건강유토피아로 번역됨
- 적응하는 인간, 너무나 인간적인 동물이라는 저서를 통해 듀보는 계속해서 개인, 문화, 국가 심지어 시대의 생명이 진화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 듀보의 업적은 널리 인정받아 1960년대 후반 미국을 휩쓸었으며 환경운동에 의해 계승되고, 1970년 4월 22일을 지구의 날로 제정하도록 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된다.
의학의 사회적 책임
- 20세기에 변화한 것은 질병이론만이 아니었다. 의학에 대해 일반인이나 의사들이 기대하는 책임 역시 크게 확대되었다.
- 많은 의사들이 의학은 개인의 질병치료를 넘어서 사회적 발전에 기여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을 가진다고 믿게 됨에 따라 여러 대학에 공중보건과 예방의학을 담당하는 학과가 설치되었다.
- 빈곤과의 전쟁과 지역사회의학 프로그램의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정리하면, 빈민들 사이에서 질병이 증가하는 이유를 열악한 주거환경, 교육부족, 부적절한 의료서비스, 가족 구조의 붕괴와 같은 빈곤을 특징짓는 요소로만 환원할 수는 없다.
의철학의 몇가지 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질병을 둘러싼 생리학적 관점과 존재론적 관점의 갈등 그리고 생리학적 관점의 점진적 승리다.
둘째, 의학과 그 임무에 대한 협소한 인식과 사회의학 사상 사이의 갈등이다.
세째, 질병을 유기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생태학적 관점과 그 자체 국소적 존재로 보는 견해 사이의 갈등이다.
- 각각의 대립은 질병을 고정된 실체로 보느냐 아니면 인간적 기능의 부조화를 보이면서 계속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으로 보느냐 사이의 것이다. 생리학적 관점과 존재론적 관점이 대립하는 곳은 인간의 몸이고, 사회의학 논쟁에서 대립의 장은 사회이며, 생태학적 관점의 갈등에서 대립의 장은 환경이다.
- 의학의 사상과 이론들은 의사들의 행동 속에서 실현된다. 다음장에서는 이론, 과학, 테크놀로지가 의사에 대한 관념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사상과 이론, 철학이 과연 인간의 삶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특히 의료는 상품이고 의사는 의료라는 서비스의 공급자
즉 자본주의의 사조대로 흘러가는 인간의 삶(의사의 삶)의 모습을 사상과 이론, 철학인 변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또 다시 어려운 삶의 모습, 철학의 모습이 꿈틀거린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2002년 6월 14일 진료실에서
제 2장. 바람직한 의사상의 변화
- 의사의 사회적 이미지와 의사-환자관계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화한다. 예전에는 의사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환자가 거의 없었으나 지금은 많은 환자들이 의사들의 의도와 판단에 대해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다.
- 의사-환자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요인을 찾아서 정리하는 일은 아주 복잡하고도 어려운 작업이다. 그 요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의학이 과학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의사-환자 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지난 두세대에 거쳐 교육을 받은 의사들은 과학과 의학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때 의학과 과학이 추구하는 바는 분명히 달랐다.
- 과학은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롭다. 자연계의 사물은 다만 존재할 뿐이지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의학은 전통적 가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환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아무런 위해를 끼쳐서는 안되며, 환자의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 환자를 바탕으로 한 실제적 경험을 중시하는 학파(한의학?)와 이론적 배경을 중시하는 학파 사이의 대립은 이처럼 뿌리가 깊은 것이다.
- 두번째 요인은 지난 50년간 의료의 성격을 변화시켜온 기술문명의 발달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과학과 기술이 의사의 행동과 사고에 미치는 영향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때문에 기술의 발달자체가 의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의사들은 그 동안 불확실성과 의혹속에서 큰 책임을 져야하는 부담속에서 살아왔다.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의혹을 경감시킨다는 기술문명의 내재적 약속은 의사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은 불확실성과 의혹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 세번째 요인은 이러한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 있게 해준 충분한 시간이다. 그 결과 미국에서 이상적 의사의 모습은 보통의 임상의사의 모습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과학자-의사로 변화하였다.
- 네번째 요인은 의사역시 인간이고 다른 인간을 치료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과 개인의 개념이 변하면서 의사, 환자 그리고 그들 관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과학에 대한 불신과 생명윤리운동이 일어났다. 이결과 환자의 존재와 권리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바람직한 의사상에 대한 과학의 영향
- 1950년대 쯤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방사선과에서 쓸모없어진 의료기구를 전시하는데 그 중에 "청진기"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전시는 과학적 의학과 기술이 발달하면 의학의 진보를 방해하는 개인의 주관주의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으리라는 당시의 일반적 믿음을 나타내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과학이 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 20세기 초 의학이 받아들였던 과학의 철학적 바탕은 이러했다.
- 과학은 가치나 질과같은 주관적 요소에 물들지 않고 서로 독립적이며, 그것이 위치한 맥락이나 시간과도 관계없이 존재하고 부분을 분석함으로써 전체를 알 수 있는 객관적 대상을 연구한다. 예측가능성은 과학이론과 지식의 과학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다. 과학적 예측은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언제나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의과학에서 모든 기능은 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모든 기능의 변화는 반드시 구조의 변화와 관계된다.
- 인간의 조건을 구성하는 모든 현상은 궁극적으로 물리화학의 용어로 설명되며 마음이나 영혼과 같은 것들은 환상이거나 기껏해야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다.
과학의 약속 : 질병과 병환
- 현대의학의 성공은 질병이론과 과학의 결합에 의한 것으로만 보였고, 따라서 의사들은 질병과 질병의 치료법을 알면 환자가 그 병을 앓는 과정을 알 수 있고, 따라서 그 환자의 치료도 가능하다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환자를 돌보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의사가 아니라 의사가 지닌 질병의 지식과 과학이다.
- 의사는 환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질병에 접근할 수 없다.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치료한다. 더구나 같은 질병이라도 환자의 체질, 유전적 특성, 해부학적 변이에 따라 다른 발병양상, 경과, 결과를 보일 수 있다. 과학적 의학은 이러한 개별 변이를 인정하지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해주지도 못한다.
- 과학은 사람의 몸과 거기에 발생하는 질병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체계를 제공함으로써 문제의 절반을 해결했을 뿐이다.
과학이 아닌 테크놀로지의 영향
- 중대한 질병앞에서 어떤 것이 최선인지 확신하기란 누구에게나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의사들은 대안적 처방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진단과 처방에 대한 정립된 방법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 본질적으로 복잡할 수밖에 없는 대상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불확실할 수 밖에 없는 대상에 확실성을 부여하는 테크놀로지의 힘은 의학뿐만 아니라 문화전반에 걸쳐 흔히 볼수 있는 현상이다.
의료조직에서 권력이동(의학 권력으로서의 과학적 지식)
- 과학의 발달로 병든 사람을 돌보면서 얻은 임상적 전문성(임상의학의 지위)은 권위가 있는 과학적 의학에 의해 도전받게 되었다.
- 임상의사에서 의과학자에게로 권력이 이양되고 있었던 같은 기간동안, 과학의 영향력 증대에 힘입어 의학은 미국 대중들 사이에서 더 많은 존경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이 이렇게 변화된 것은 과학에 대한 믿음, 과학적 의학의 우월성, 의사업무의 불확실성을 덜어주는 새로운 기술 등 때문이다.
의학권력 : 대중에게까지 뻗어나가다.
- 미국의 대중은 의과학과 기술의 경이로움을 받아들이면서 의과학자로서의 의사와 과학으로서의 의학을 지지하고 발전시켰다.
- 의학지식은 보통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었고, 일반인의 욕구역시 크게 증가하였다.
- 의학지식이 많은 환자라도 자신의 의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환자들은 자신의 의학지식이 의사들의 의학지식과 같다면 그 지식의 효과도 똑같을 것이라고 믿는다.
- 질병의 과학적 사실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의사들은 문명히 의사가 되는 방법, 판단하는 방법, 자신의 개성을 의료기술의 일부로 통합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훈련받게 될 것이다. 과학이 아닌 의사가 치료의 주요한 동인이라면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 의사의 수련과정에 대한 이런 관심은 최근 몇년 사이에야 비로소 제기되기 시작했을 뿐이다.
사회적 혼란과 인간 개념의 변화
의사-환자 관계의 변화
- 의사가 가장 잘 안다는 믿음은 사라졌다. 환자들은 의사와의 관계에서 수동적인 편이 더 이롭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들의 치료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과거에는 의사들에게만 맡겨졌던 의사결정과정이 이제는 환자들도 참여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기대치의 상승은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 의학연구성과를 과대 선전했던 의료계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의료윤리에 대한 관심의 증가
- 연구대상이 되는 사람들과 환자들의 인권보장은 의학연구에서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상업주의의 모순
- 환자들은 의학이 최신의 기술로 자신들의 개인적 필요, 욕구, 믿음, 걱정을 해결해주길 요구하는 동시에 갑싸고 균등한 수가체계를 갖추기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 두지향점은 상호배타적이다.
이상의로의 복귀
- 지난 50년간 의학은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과학이 자연의 모든 비밀의 해법과 모든 질병의 치료법을 줄 것이라고 믿게 됨에 따라 의학적 주체로서의 의사의 중요성은 빛을 잃었다. 과학은 의학을 주도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의과대학 교육이 지향하는 기본가치가 되었다.
- 의학은 치료받는 사람의 안녕과 복지에 일차적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도덕적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 의학은 과학만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넓은 의미의 인간에 대한 봉사하는 것이므로 의학에서 과학이 지배적 위치를 점할 수는 없다. 올바르게 이해된 과학은 인간의 필요에 반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과학이 제공하는 자연관에 입각한 연구와 과학적 사고방식은 환자를 돌보는 도구로서 꼭 필요하다. 반면에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기위한 태도는 의학의 목적에 대한 깊은 이해없이는 마련될 수 없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통의 뜻을 알아야 하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필요한 것(인간에 대한 이해, 새로운 의학이론, 의사교육방법 등)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아야 한다.
제 3장. 고통의 본질
-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의사의 기본의무라는 사실은 태고적부터 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의학교육과 의학연구, 의료의 실천과정에서 인간의 고통에 대해 심각히 고민한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례. 35세 여자 조각가, 유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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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효과가 나타나 희망이 되살아나는 듯 하다가 다시 악화되는 과정이 반복되자 환자는 살려는 의지가 오히려 병을 악화시킨다고 믿게 되었다......
그녀는 점점 더 고독해졌다. 더이상 친구들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괴로워했다. 이게 그녀는 자기가 곧 죽게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 이 젊은 여자환자에게는 아주 심한 통증과 그밖의 신체적 증상이 고통의 원인이었다. 그녀를 괴롭힌 것은 신체적 고통만이 아니었다. 여러 사회적 요소들과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요소들도 그녀를 괴롭히는 원인이었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질병의 고통을 악화시키기 위해 사용된 치료법마저도 그녀의 외모와 능력을 두드러지게 약화시켰기 때문에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이러한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
- 환자와 일반인들은 고통의 경감이라는 문제가 의학의 가장 일차적인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의과대학생들과 의사들의 반응, 그리고 의학교육과정으로 볼때 의료전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려는 오랜 역사속에서 환자들은 질병자체 뿐만 아니라 치료의 결과로부터 많은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몸과 마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습관이 의학의 이론과 실천에 미친 영향 또한 지대했다. 나는 이러한 이분법이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치료법이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역설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고통에 대한 세가지 논점
첫째, 고통은 개인이 경험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구도에서 인간이 단지 마음, 정신일 수는 없다. 인간이 다양한 측면을 가지는 존재라는 점을 무시한다면 고통은 훨씬 더 가중된다.
둘째, 고통은 인간성 파괴위협을 인식할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고통은 인간의 완결성이 위협받을때 나타나는 심각한 고뇌상태라고 정의할 수있다.
셋째, 고통은 인간의 어떠한 측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바로 마음인 것은 아니다.
- 인간이나 인격의 개념이 마음의 개념과 똑같은 것은 아니다. 인간의 개념은 역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변해왔으며 결코 불변의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다는 생각은 우리 지성사와 의료에 대한 접근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인간이라는 개념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 몸과 마음의 이분법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한 고통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실존하지 않는 다는 것으로 여겨져 의학의 영역에서 추방되거나 아니면 단순히 육체적 통증과 같은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인격의 파괴
- 고통은 결국 인간적 현상이다. 고통의 존재와 정도는 고통을 겪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문제다. 때때로 환자는 전혀 고통스러울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고통스러워하기도 하고, 매우 고통스러울 것 같은 상황에서 담담해 하기도 한다.
- 기독교 신학에서는 고통의 당사자를 신에게로 가깝게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 통증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그통증을 경감하는데 필요한 약의 양도 많이 달라진다. 좌골신경통으로 생각되어질때는 소량의 진통제로 그럭저럭 지내다가 악성종양이 퍼져 그렇게 된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소량의 진통제로는 통증이 경감되지 않기도 한다. 신장결석을 가진 환자는 통증으로 몸부림치면서도 그다지 괴롭지는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에 통증의 원인을 모를때는 아주 적은 통증만으로도 크게 괴로워하기도 한다.
괴로움과 통증에 대한 세가지 예
첫째, 통증이 너무 심해서 환자를 압도하는 경우
둘째, 환자가 통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 경우. 말기암..
셋째, 통증이 그다지 심하지 않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힐 것이라고 믿는 경우.
- 의사들은 세번째의 경우 환자들에게 앞으로 이런 통증에 적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환자들은 통증 호소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지겹게 하는지 알게 될 뿐만 아니라 통증이 오래 지속될수록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배워간다.
- 반복적으로 재발하는 통증의 경우 단지 그것이 재발할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워 한다. 자주 재발하는 편두통을 가진 환자들은 통증이 아주 중요한 순간에 발생하여 그 순간을 망칠 수독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울 것이다.
- 요약하면 고통속에 있는 사람은 고통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때, 고통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일때,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때, 그리고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고통때문에 괴로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 이러한 상황속에서 사람들은 고통을 자신의 생명뿐 아니라 온전한 인격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통증과 고통의 관계에서 고통이 경감될때
- 통증의 원인을 밝히고 통증의 의미를 새롭게 하며 그것을 통제할 수 있으므로 언젠가 멎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경우 환자가 느끼는 고통은 현저히 줄어든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통증이 아닌 숨이 막힐듯한 증상이 있는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고통이 악화될때
첫째, 의사들이 환자의 통증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다. 환자에게서 어떠한 질병도 발견되지 않을때 의사들은 환자가 상상속에서 통증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하면 통증이 심리적인 것이라거나 환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질병을 경험하는 방식에 부여하는 의미의 측면이다. 예를들면 가슴에 통증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심장병을 의심하게 된다.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앎으로써 그 사건이 가지는 의의를 깨닫게 된다.
인간에 대한 단순한 이해
- 인간의 위상을 몇가지로 구분해봄으로써 의학의 목적과 고통의 관계에 대해 유용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1) 인간은 인간성과 성격을 갖게 마련이다.
- 어떤 사람은 죽어가면서도 차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가벼운 병을 앓고 있을뿐인데도 아주 짜증을 내고 성급하게 구는 사람이 있다.
2)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 사람은 누구나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기억과 과거의 경험이 질병과 치료에 관계된 것일때 그것은 곧바로 현재의 질병과 치료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공포를 느낄 수도 있고 자신감을 가질수도 있고 심한 고뇌에 빠질 수도 있다.
- 과거에 많은 성취를 경험했던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이라면 암진단을 받더라도 매우 낙관적인 태도를보이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자신의 인생이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그 결과는 판이하게 나타난다.
3) 사람에게는 가족이 있게 마련이며 가족 결속력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 폐암으로 죽어가던 환자 중 한사람은 자신의 아버지와 두 형제가 같은 병으로 잃었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았을대도 아주 차분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가족은 인간의 한 부분이다.
4) 인간은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하고 살아간다.
- 어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신념과 가치체계는 주로 문화에 의해 결정되기 대문에 어떤 질병이 한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의 성격은 문화적 요인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된다.
- 문화는 환자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 그리고 환자들의 스스로에 대한 태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 고통은 육체의 온전함뿐만 아니라 자기자신과의 관계 및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생겨나는 인간으로서의 온전함과 일관성과 통일이 상실되었을때 생긴다. 또한 우리는 의학적 치료가 질병의 영향을 줄일수 있더라도 부주의한 치료로 환자의 고통을 증가시킬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5)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 그래서 질병에 걸리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 인격에까지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할수 없게 된다면 인격마저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 퇴원후 아무도 반겨줄 이 없는 빈 아파트로 가는 사람과 친구나 가족이 있는 사람의 경우엔ㄴ 차이가 엄청나다.
- 인간은 자기자신과도 관계를 갖는다. 자존심, 자기애, 자기멸시 등은 자신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들이다. 질병에 직면해서 이를 품위있게 극복하는 경우에는 만족감을 얻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평생 실망감 속에 살수밖에 없다. 이처럼 자신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을때도 고통은 생겨난다.
- 인간은 정치적 존재이고, 인간은 어떤 행위를 하는 존재이고, 인간은 규칙적인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고, 몸을 가지고 있다.
- 모든 질병은 우리와 몸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질병에 걸리면 우리의 몸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적으로 변한다. 이것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병에 걸렸을때 그래서 자신의 몸에 대한 느낌자체를 믿을 수 없게 되었을때 더욱 심해진다.
- 질병은 인격의 공개된 부분을 파괴할 뿐 아니라 비밀스러운 인격까지도 파괴한다. 병에 걸리면 비밀스럽게 사귀어오던 친구를 더이상 만날 수 없을 터이고 따라서 그를 잃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 모든 사람은 미래를 가진다. 아기의 탄생에 대한 기대에서 창조적 역량에 대한 믿음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질병으로 미래를 잃어버리면 불행, 고통에 빠진다.
- 인간은 누구나 초월적인 차원(영혼의 삶)을 갖는다. 의학전문가들은 인간의 영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고통의 본질
- 인간다움의 모든측면 - 살아온 과거, 가족의 역사, 문화와 사회, 역할, 도구적 차원, 협동과 관계, 몸, 무의식적인 마음, 정치적 존재, 비밀스러운 삶, 미래에 대한 기대, 그리고 초월적 차원의 존재-은 모두가 손상되거나 잃어버릴 수 있는 것들이다.
- 손상은 슬픔, 분노, 외로운, 우울증, 비애, 불행, 침울, 격노, 회피, 열망 등으로 표현된다. 손상이 가해지면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그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 수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 고통은 보편적인 동시에 특수한 것이다. 고통은 우리에게 공통된 특징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특수한 시간과 특수한 개인이라는 조건적 특징도 짓는다.
고통의 경감
-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온전함이 유지되거나 회복되지 못한다고 여길때 고통을 느낀다. 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만성적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호소에 귀기울여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 사실을 더이상 말하지 않는다. 만성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 어떤 사람은 고통에 위축되어 움츠리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다. 적당한 고통은 인간에게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여기서 생겨나기도 한다.
-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마치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린 사람이 그 부분을 스스로 회복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인간성에 힘입어 잃어버린 부분을 보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힘을 빌려주는 것이 바로 의사가 해야할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 인간성이 부분적으로 파괴되거나 그 완결성이 위협받을때 "의미와 초월성"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두가지 방법을 제공해준다. 인간이 겪는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은 역사 전반에 걸쳐 개인적 차원과 문화적 차원에서 계속되어 왔다.
- 상처받은 인간의 조건에 의미를 부여하기만 해도 그와 관련된 고통은 많이 줄어든다. 우리는 대개 가까운 과거에 내가 한 행동이나 신념에서 지금 겪는 고통의 원인을 찾게 마련이다. 이때 고통은 자아속에 그 원인이 있으며 자아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의 직접적 원인인 통증이나 위협자체는 인격을 파괴하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동양종교의 업보(karma)라는 개념은 고통에 대해 방어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이때 고통은 전생에 그 사람이 한 행동의 결과다.
- 초월은 인격에 상처를 받은 뒤 그 인격의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자기 초월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 기독교도들에게 고통과 상실은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자신이 겪는 고통을 예수의 고통과 동일시함으로써 위안을 얻기도 한다.
고통이 지속된다면?
- 만약 고통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격의 온전함에 대한 위협이 지속되거나 인격의 한 부분에 생긴 결함때문에 고통이 생긴것이라면 그것을 회복하지 않는 한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만성병이나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의 대부분은 치료가 성공적이어서 회복되더라도 정상적인 기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다. 의학적으로 치료가 되었더라도 직장에 복귀가 안될수도, 성기능을 잃을 수도, 가족을 돌보지 못할수도, 사회생활에 제대로 복귀하지 못할 수도 있다.
- 치료의 결과로 고통이 생길 수 있다는 역설은 이제 더이상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의학이 고통의 본성과 원인에 그렇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사실 의사들보다 통증의 경감이나 잃어버린 기능의 회복에 더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 반드시 요구되는 이해와 지식이 부적절하고 부족하다는 점이다.
- 또한 인간의 모든 차원을 이해하고 그것을 질병이나 고통과 연결시키려고 할때 너무나 복잡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우리의 몸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할때 발생하는 문제만큼 복잡하지 않다.
- 의학의 목적이 인간을 고통에서 구해내는데 있다면 온갖 어려움이 있어도 이 작업을 해내야만 한다.
제 4장. 만성병으로 인한 고통
- 통증은 그저 통증일 뿐이고 환자가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때 고통이 된다. 같은 질병이라도 다른 환자에서는 다른 병환이나 다른 통증, 다른 고통이 된다.
- 만성병에서 생기는 고통을 살펴보면 이러한 현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급성병의 위협은 분명하고 제한적이지만 만성병의 위협은 지속적이고 포괄적이며 직접적 해결책이 없는 경우가 많다. 위협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만성병에서의 고통은 환자의 여러측면 사이의 부조화로 인해 내부적으로 발생한 인간으로서의 온전함에 대한 위협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만성병의 정의
- chronic disease와 chronic illness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 질병이란 만성병환의 일부를 구성하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 만성질병이 있다고 해서 만성병환을 앓는다고 단정할 수 없음은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환자를 보면 쉽게 알 수있다. 그들은 자신이 앓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반면 질병이 없는데도 만성적으로 앓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우리의 과학적 의학이 만성병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부적절한지 잘 보여준다.
- 만성통증증후군환자의 사례를 보자. 의사들은 증세의 원인이 될만한 아무런 객관적 실체가 없는 환자의 통증은 그 통증의 실체마저 부인해버릴 것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그의 행동은 이제 모두 통증을 중심으로 다시 짜여지기 시작한다. 사회적으로 그의 존재는 생산을 담당하는 적극적 구성원에서 쓸모없는 존재로 전환된다.
- 이러한 예를 통해 우리는 질병이 없다고 해서 곧 신체작용의 이상이나 교란, 변화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만성병환의 원인으로서의 증상
- 만성병환은 자족적 경로를 거치면서 신체뿐만 아니라 인간존재의 모든 차원에 관계한다.
세계인식의 변화
- 만성병환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킨다. 모든 감각, 지각과 경험은 환자가 앓아온 병환의 경과에 비추어 해석된다. 그 결과 만성병 환자는 현실인식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 만성병 진단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스스로를 병든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가 공유하는 지식과 가치뿐 아니라 각자가 살아온 특이한 역사에 비추어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만성병 환자가 세계를 달리 인식하는 것을 그저 보상작용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정신활동
- 정신활동은 통상적으로 추론을 포함한 의식의 행동, 행동의 무의식적 결정인자, 본능적이거나 습관적인 행동그리고 물리적 신체를 모두 포함한다.
-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무의식적 요소가 갈등을 일으켜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행동심리학자들은 무의식적 요소자체를 부정하고 학습을 통해 습득된 요소가 그 사람속에 내화되어 자동적으로 행동에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 만성병환은 인간조건의 두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의 측면이고, 둘째는 그 갱인의 자기자신에 대한 관계의 측면이다.
사회적 세계와의 관계
- 18세기 이후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져온 특성 - 자존심(self-esteem),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approvativeness), 남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망(emulativeness)-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병든사람이라고 해서 이러한 욕망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불행하게도 만성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나보다 뛰어나기 위해 필요한 기준에 도달하기가 무척 어렵다. 질병으로 인해 행동양식이 제한되기 때문에 자존심을 충족시키기도, 존경하는 사람과 같아지려는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무척 어렵다.
- 그들은 그들의 약함을 내보여야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하고, 저속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 따라서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남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장애를 동반한 만성병 환자들은 이러한 사회적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심리적 갈등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러한 갈등을 흔히 외부적인 데서 찾으려고 한다.
- 만성병환자들의 자존심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남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구때문에 생기는 갈등은 크게 보아 자기자신과의 갈등이라고 보아야 한다.
자신과의 갈등
- 만성병에 시달리는 이들은 매일매일 불공정한 규칙과 규범, 그리고 편견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장애인들은 인도의 경사, 의자, 화장실이나 지하철 계단 등 공공시설뿐 아니라 음악회시간, 악수하는 습관, 이성을 만날때의 예절 등 사회적 관습에 이르기까지 정상인에게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생활습관에서 불공정한 규범들을 만난다.
- 환자들은 분노하고 씁씁해하고, 피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세상사를 그럭저럭 참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들도 우리 건강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화를 나눌 친구나 친척이 필요하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남기를 원한다.
- 많은 만성병 환자들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굴욕을 피하여 안전한 자신만의 세계로 도피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쩔수없이 사회와 관계를 지속하려는 욕망을 가지므로 사회에 적응하려는 환자의 노력은 그치지 않는다.
- 회피하고 싶은 욕망과 사회속에서 살고 싶은 욕망의 충동이 클수록 갈등은 커지고 고통은 심해진다. 가족들은 환자에게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고 노력해봐라"라고 권유함으로써 환자의 내부갈등을 심화시킨다.
혼란과 부조화
- 사회적 상호작요은 심미적 관점에서도 측정될 수있다. 어떤 개인과 그의 행동은 다른 사람이나 세계와 맺는 관계는 보통 조화롭고 리드미컬하며 질서정연하다. 무질서, 불화, 부조화는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하지만 만성병에 시달리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이나 외부세계와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 만성병환자들은 이러한 부조화로 인한 불편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지 못한다면 만성병환자와 주변사이에 장벽을 쌓게 될것이며 이 장벽은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이 된다.
자기자신과의 갈등
- 내부적 세계도 실제로 존재한다 그속에서 질병으로 인한 갈등이 생기며 그로 인해 사람됨의 온전함을 파괴하기도 한다.
자아대 신체
- 한 사람의 신체적 요구가 그의 다른 내면적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병에 걸린 사람은 종종 자기의 몸이 마치 자기의 적인것 처럼 행동한다.
- 엘레인 스캐어리의 "통증속의 신체"에서 지적한 바와같이, 이런 상황은 고문피해자들에게도 적용된다. 고문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단순한 통증뿐 아니라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칙들이 신체적 나약함과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고통스러워 한다.
- 고통을 이해하는 관건은 "고통이란 사람의 온전함이 경험으로 손상될때 일어난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 만약 자아가 확대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통증이 남아있더라도 환자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 고통은 스스로를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이 될때에만 유용하다. 질병으로 폐쇄된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의 인간조건을 충족시키고자 할대 겪는 고통, 어떤초월적 목적을 달성하고자할때 고통은 그래서 값진 것이 된다.
- 만성병 환자들은 몇가지 점에서 자신의 신체와 갈등을 겪는다.
- 신체는 환자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순간에 환자를 저버리기도 하고,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면서 다음날에 통증이 사라질것이라는 기대를 해보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어 있는 경험은 흔한 일이다. 그들의 신체는 너무나 변덕이 심해서 일관되게 고통을 주지도 않는다.
- 환자는 자신의 신체에 대해 너무나 화가 나 오히려 더 심한 통증을 가하거나 약을 거부하거나 목욕을 거부하거나 혹사함으로써 신체를 처벌하는 경우도 있다.
- 신체는 믿을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치스러움의 원인이 될수도 있다. 폐기종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진찰해보니 그녀의 고통은 호흡곤란이 아니라 요실금으로 인한 세상으로부터의 고립과 삶의 파괴인 경우도 있었다. 방광에 도뇨관을 연결하자 그녀의 고통은 사라졌다.
- 다양한 방식의 갈등은 급성병에서도 존재하지만 만성병에서는 훨씬 더 심각하다.
고통을 줄이기 위한 4가지 전략
1) 현재 중심의 삶을 사는 것
- 고통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이란 한 사람의 온전함이 손상되어 다시 회복할 수 없을때 발생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시시각가 두려움에 둘러싸인 미래를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환자는 증상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그것이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앞으로 닥칠일에 대한 공포가 고통의 원인이므로 진정한 적은 공포 그자체이다.
- 만성병은 근본적 치료가 불가능하고 증상이 자주 재발하기 때문에 이런 환자들은 절대로 다시 완전해질 수 없다는 절망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2)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
- 급성통증의 상황에서 신체의 부분이나 자아의 운명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자갈밭에 파도가 밀려오듯이 신체적 고통속에 나 자신을 그대로 맡겨버린다. 이런 자세가 고통을 덜어주는 이유는 두가지다.
- 첫째, 운명을 무시함으로써 고통의 근원인 온전함의 상실에 대해 무관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의지를 통해 자신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운명에 완전히 무관심할 수도 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증과 싸우기를 그치지 않는다. 통증이 심할수록 더욱 더 강력하게 저항하려고 한다. 이 싸움은 계속될수록 점점 더 소모적이 되어간다. 탈진상태에 이르면 그들은 통증이 완전히 자신을 압도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며 이로 인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다.
- 둘째, 만성병의 경우 고통을 피하는 동일한 전략이 급성병에서와는 다르게 표현된다. 만성병에서는 그 사람의 욕망과 기대, 질병으로 말미암은 한계상황 사이의 갈등과 모순때문에 고통이 생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룰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한다. 따라서 신체적 증상에 대한 굴복은 자손심을 손상시키는 행위다.
- 무관심 전략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존경받고 싶은 욕구, 내가 존경하는 사람과 같이 되고 싶은 욕망,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욕구 등은 잠재울 수 있어야 한다.
3) 부정은 비탄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도록 해준다.
- 부정의 전략은 만성병환에서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간단한 해결책같지만 역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전략이다.
4) 유연성
- 인간적 온전함에 위협이 가해져서 생기는 고통은 개인의 어떤 측면과 관련하여 일어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위협받거나 파괴된 부분을 다른 의미있는 양상으로 대체한다면 고통은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유연성을 가지기는 결코 쉽지 않다.
- 만성병 환자는 내가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 1) 아픈 사람이 과거에 경험했던 순간의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게하고 아울러 불필요한 미래의 예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 2) 걱정을 대수럽지 않게 넘길 수 있는 힘 3) 부정 전략을 압도할 수 있는 힘 4) 질병으로 인한 인간적 상실을 보충해 줄 것으로 보이는 유연성 전략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힘 등은 환자의 내부에 있다.
- 하지만 이러한 인간적 힘은 경우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모든 사람의 자아가 동일하지 않기 대문이다.
- 자아와 신체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 있듯이 자아 안에서도 갈등은 있을 수 있다. 자아 내의 부분들 간의 갈등대문에 병을 더 심하게 앓을 수도 있고 새로운 고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 지금까지 나는 병을 앓는 과정에서 생기는 내부적 갈등의 많은 예를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질병은 갈등을 부추기고 그 갈등은 다시 질병의 충격을 악화시킨다. 내부적 갈등은 만성병의 모든 국면에 걸쳐 나타난다.
- 따라서 만성병환의 어려움을 밝혀주고 실제적인 고난의 원인이 인간 밖에 존재하는 것일지라도 고통은 내부의 자기모순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설명할 수있는 정산활동에 대한 대안적 견해가 필요하다.
- 만성병환자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어진다. 만성병 환자라도 사회적 자아와 일치하지 않는 내적 요구, 목적, 욕망, 신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할 기회는 앓고 있는 질병으로 인해 한정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 사람의 사회적 부분과 내적 부분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고 심할 경우 인간분열에까지 이를 수있다. 만성병에서 나타나는 우울증은 대체로 이렇게 해서 발생한다.
요약
- 만성병을 앓는 과정(chronic illness)은 만성질병(chronic disease)과는 다르다.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만성병을 앓는 과정은 질병에 대한 전통적 이론이나 현대의 병태생리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 과정이다.
- 만성병에서 환자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사회와 집단이 요구하는 것과 신체적 제약조건이 그 사람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 급성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현대의학의 목적은 만성병에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있다. 앞으로 만성병환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의학의 목적 자체에 중대한 변화가 있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만성병 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병든 사람을 돌보는데 필요한 중요한 식견을 얻을 수 있다.
- 우리사회의 의학이 전문직업인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질병때문에 유발되는 고통을 줄여주어야할 의무를 지니기 때문이다.
제 5장. 의사-환자 관계의 미스터리
- 고통은 개인적 현상이고 의학적 치료는 한사람의 의사와 한사람의 환자가 만나는 인간적 작업이다. 의사-환자의 관계는 항상 상대적이다. 의사가 없으면 환자가 있을 수 없고, 환자가 없으면 의사의 존재도 무의미하다. 모든 의학은 그러한 특별한 관계에 의존한다.
- 이러한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면 환자는 자신의 신체적 인간적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의사는 아픈 사람이나 그들의 질병에 대해서 알수도 없다.
- 의사-환자의 관계는 경제적관계일수도, 정치적일수도, 공동체적 관계일수도, 사회적 관계일수도 있으며 인간적 관계일수도 심지어는 아주 긴밀한 사적인 관계일수도 있다.
- 명백한 외과적 내과적 개입이 아닌 인간관계가 어떻게 환자의 질병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근의 연구에 다르면 마음이 면역과 그밖의 신체적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으며 따라서 의사가 환자의 생리적 과정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사실도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 환자-의사 관계는 일반적 의미의 전이가 일어나는 관계는 아니다. 물론 전이의 관계가 성립되어서 의사에 대한 환자의 반응이 부모에 대한 반응처럼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와의 관계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 환자-의사의 관계는 심리치료사와 환자의 관계와도 다르다. 의사-환자의 관계는 몸이 관계하기 때문이다. 심리치료사의 환자가 병에 걸리면 치료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가 매우 두텁더라도 의사-환자의 관계의 강력한 힘이 생기지 않는다. 심리치료사들은 사회적 관습이나 그들이 받은 교육내용으로 보아서 신체적 질병을 치료할 수있으리라고 기대되지는 않는다.
- 환자-의사관계의 효과를 단순한 정신-육체관계로 보는 것도 올바르지 못하다. 정신신체의학은 위약효과나 의사가 환자를 안심시킨 다음 통증이 사라지는 등의 현상이 알려진 뒤 인기를 얻고 있다.
- 환자-의사의 관계가 반드시 사회적 문화적 차원을 가진다는 점은 응급상황에서 생전 처음 대면하는 의사와 환자와의 관게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때 처음 만나는 의사가 순식간에 통증을 경감시켜주기도 하고, 공포를 잠재우기도 하고, 편안히 숨쉴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의사가 무언가를 잘못하여 통증을 증가시킬 수도 있고, 호흡을 악화시키기도 하며,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 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하면 다른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다양한 신체적 효과를 나타낸다.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맥박이 빨라지기도 하고, 가슴이 떨리기도 한다. 또는 반대로 얼굴에 핏기가 없어지기도 하고, 가슴이 죄어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 따라서 의사의 역할은 두가지 방법으로 환자의 몸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첫째는 역할자체가 나타내는 효과이고, 둘째는 의사에게 부여된 역할때문에 그의 말이 환자에게 특별한 호소력을 가짐으로써 나타내는 효과다.
- 한번이라도 의사의 치료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능력있는 의사의 말 한마다기 얼마나 환자에게 위안이 되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 의사가 통상적으로 하는 일들이 환자의 진료가 아닌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행해진다면 그것은 남을 엿보고 유혹하는 행동 혹은 잔인한 행동으로 비쳐질 것이다. 하지만 의사가 그런일을 할때면 사려깊고 협조적이며 아프기는 하지만 회복에 도움이 되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 관계라는 수단을 통해 아픈 사람을 낫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거꾸로 그러한 관계를 통해 아픈 사람에게 해를 끼칠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의사는 병자들이 가장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는 상대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것에 애착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 부모의 행동이 자식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듯이 의사의 말과 처방 또한 환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 의사는 여러환자들과 맺는 유대의 영향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지혜를 역시 배워야 한다. 유대와 집착이 너무 강해지면 의사의 감정적 육체적 삶 등 내면적 영역까지 침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보호가 너무 지나치면 의사의 직분을 원활히 수행할 수 없게 된다.
- 의사가 환자가 느끼는 것을 철저히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충분히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환자가 강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감정적 훈련을 해야 한다. 때로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희생해야 할때도 있다.
- 의사-환자 관계의 고통스러운 역설은 의사가 환자를 돌보는데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환자에 대해 최대한 열려있어야 하는데, 열려있다는 것은 곧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의사가 환자에게 닫혀 있다면 그것은 환자를 저버리는 행위일 뿐 아니라 자신을 저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의 의사
좋은 의사의 구비조건
- 좋은 의사는 믿을 만한 의사이고 믿을만한 의사는 자기수양이 된 의사를 뜻한다. 의사는 상처받기 쉬운 병든 사람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적용하는 사람이다. 병이 깊으면 깊을수록 정확한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럴수록 실제로는 그 지식이 더욱 부적절하기 쉽다. 또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환자의 치료에 효과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 질병은 항상 존재에 대한 위협을-실제적인 것이든 상상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든- 포함하고 있으며 효과적인 행동을 방해하거나 아예 무력화시키는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다. 불확실성은 언제나 참기 어려운 것이지만 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 병에 걸린 사람은 확실성이 없다. 그들에게는 필요한 정보가 부족하고 이런 상황속에서는 모든 것이 더 불확실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불확실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는 것이다. 바로 이 신뢰가 환자-의사 관계의 핵심을 구성한다.
- 좋은의사란 환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의사이며, 이 경우 환자와의 관계는 더욱 확고해진다.
- 의사는 그들이 습득한 특별한 지식으로 인해 환자의 신뢰를 받는 동시에 사회로부터 일정한 권력을 부여받았으며 이로 인해 상응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신뢰와 이타주의의 관계
- 의사의 중요한 속성으로 여겨지는 이타주의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많은 굴절을 겪었다.
- 의학에서의 이타주의는 과학적, 의학 지식 이상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의 입장에서 질병을 이해하는 것-질병의 원인, 경과 그리고 결과-이 필수적이며, 그 다음에 지식에 바탕한 행동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병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이타주의의 가장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된다.
자기규율
- 믿을만한 의사는 철저하고 자기규율에 충실해야하며, 철저함에 대한 깊은 믿음이 의학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
-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을때,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때, 진단이 잘못되었을때, 환자의 인간성이나 행동이 괴팍할때, 감정적 유대가 형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환자의 생명이 위독할때 등의 경우에는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규율이 필요하다.
- 좋은 의사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의사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 너무 지나치게 심각한 진단을 내린 것은 아닌지, 치료를 너무 일찍 중단하는 것은 아닌지, 확증되지도 않은 진단과 치료를 하는 것은 아닌지, 상태가 악화되었을대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판단하여 올바른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며 이러한 과감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기규율이 필요하다.
- 자기규율은 믿을 만한 의사에게 필요한 속성이며 바람직한 의사-환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 좋은 의사는 의학지식에 통달하고 병자를 인간적으로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의사인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충분히 통달하고 있어야 한다.
- 뛰어난 임상의사는 환자의 신임을 얻고 관계를 증진시킬 뿐 아니라 친밀성과 독립성, 감정적 동정과 객관성의 균형을 교묘히 맞추어간다.
- 위대한 임상의사의 재능 중 하나는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최대의 친밀성을 유지하여 환자에 접근하면서도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환자를 위한 최대한의 치료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제 6장. 질병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임상의사는 환자를 볼때 다음 네가지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는다.
첫째,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둘째, 문제가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셋째,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넷째, 결과가 어떻게 딜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 새로운 진단과 치료의 기술은 엄청난 효과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청진기와 따뜻한 손밖에 가진 것이 없는 의사들이 진찰을하던 시절보다도 의사의 관심을 인간적 고통의 문제에서 멀어지게 했다.
- 우리가 점차 병을 환자의 생활과 환경의 총제적 국면의 변화로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존재론적 개념은 점차 그 호소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경우 질병과 환자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가에 따라 의료의 개념, 의사의 역할, 좋은 의사의 개념 등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제 7장. 질병에 집착할 것인가? 병든 사람을 보살필 것인가?
- 의사는 지나간 일을 말할 수있어야 하고, 현재를 알아야 하며, 미래를 예측할 수있어야 한다.
- 증상의 경험이 환자가 앓게 되는 병의 첫번째 단계다. 이 증상이 의사에게 전달됨으로써 의사는 환자의 병환을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다.
선생님, 저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 의사들이 환자가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주로 환자가 앓고 있는 병을 일으킨 원인, 질병을 찾는데만 신경을 쓴다는 사실에 환자들은 자주 불만을 터뜨린다.
징후와 증상(sign and symptom)
- 진단에서 증상은 환자가 인식하는 비정상적인 감각인 반면 징후는 검사자가 보고 느끼고 들은 것을 의미한다.
- 과학은 자연의 진리를 밝힐 뿐 아니라 지식의 기준을 만들어 낸다. 과학적 관점에서 인정할 수 있는 지식은 객관적이고, 재현가능하며 예측가능해야 한다. 그러한 의학정보를 우리는 hard data라고 부른다. 반면에 주관적이고 가치를 포함하며 측정할 수 없는 정보는 비과학적인 것이며 따라서 훨씬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soft data라 한다.
- 불행히도 증상은 항상 무르며 주관적이고 가치를 포함하고 측정이 가능하지도 않다. 의과학자들은 무른 정보가 단단한 정보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증상은 의사에게 진단을 내릴 수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임에 틀림없다. 의사는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만을 근거로 진단을 위한 다음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 환자는 개별적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개별적 존재에 대한 과학은 없다. 과학은 특수한 경우를 다룰 수 없기 때문에 과학적 의학은 증상마저도 보편적 구도에서 바라보려한다. 하지만 환자가 느끼는 통증과 그밖의 증상은 결코 기본요소로 환원될 수 없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이다.
일반적 증상이 특정 환자의 증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
- 사람들은 아프다고 느낄때, 실제로 아플때, 아프게 될것 같을때 또는 병이 두려워질때 의사를 찾는다.
- 증상이란 병을 앓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을 인지한 사건(perceived occurrences)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인지한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증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자아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하며 인지의 특수한 측면을 이해해야 한다.
- 일단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믿게 되면 최악의 상황-호지킨 병, 뇌종양, 다발성 경화증, 정신분열증, 에이즈-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증상과 고통과의 관계
- 통증은 고통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어떤 유해한 감각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이후에 같은 자극이 가해졌을대 그것을 느끼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수도 있게 된다.
실재하는 것은 증상인가? 질병인가?
- 의사는 증상이 질병의 직접적 표현이라고 믿기에 그것을 연구한다. 그들에게 질병은 실재하는 것이고 실재하는 것만이 사태의 진실이다. 질병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방사선 사진이나 조직검사, 심전도 검사 등을 검사하는 것이고 두번째로 좋은 방법은 증상을 연구하는 것이다.
- 질병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총체적인 것이 중요하다면 병에 걸린 한 사람에 관한 모든 사실들의 총체와 질병에 대한 사실들의 총체를 함께 관찰해야 한다.
- 과학은 특수한 것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한다. 특수한 것의 개념은 성질들의 우연한 집합으로 간주하다.
이러한 분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질병의 명백한 사실들을 다루는 것은 과학적 의학이 아니라 의사들이다. 의학의 두문화 사이에 있는 간극은 의사의 인격을 통해 메워질 수 있다. 의사는 둘을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 의사들은 폐렴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폐렴에 걸린 이런 저런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개별환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체계와 의미의 문제를 무시하고 그것을 숫자로 환원하려고 한다.
- 의사들은 증상을 질병의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몸에 의해 지각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환자는 그 증상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때로는 왜곡시키기도 한다. 질병과정에서 변화하는 생리적 현상은 환자의 개인적 의미가 추가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개별화한다. 따라서 개별환자가 느끼고 의사에게 보고하는 어떤 질병의 증상은 결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과 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마치 아기를 분만하듯이 질병을 환자의 복잡한 상황에서 다로 떼어내 관찰하고 연구하고 치료하고자 하는 의사들의 바람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의사가 연구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실체로서의 질병은 구체적 현실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속에만 존재하며, 결코 환자의 생활현실로부터 독립된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임상의사가 연구하고 치료해야할 유일한 대상은 지금 여기에 있는 바로 이 병든 사람이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추상적 질병은 아닌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아셨나요?
- 전통적 질병이론을 이야기한 레반도스키(1911년)의 말이다.
"질병의 특정병인설은 모든 질병은 특정한 원인때문에 발생하고, 같은 원인에 다른 질병이 발생하지는 않으며 다른 원인에서 같은 질병이 발생하지도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의학이 질병의 결정적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우리모두는 그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 특정원인을 찾으려는 욕구가 자연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질병의 발생과정을 충분히 검토해보면 이 개념이 불충분하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난다.
사례. 70세 남자 환자 폐렴으로 입원. 엘리베이터 없는 5층에 혼자 거주. 검사결과 폐렴균발견, 항생제 투여로 호전. 진찰시 환자의 한쪽 무릎이 부어 있었음(퇴행성 관절염). 환자의 아내는 1년전 사망. 자식들은 아주 멀리서 거주.
- 질병의 원인으로 생각되는 요인들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 인턴의 관점에서 보면 폐렴균이 원인
- 자식들의 관점에서 보면 아버지가 혼자 사신것이 원인
- 이웃들은 남자의 슬픔과 외로움이 원인
- 공중보건을 담당하는 의사들은 영양실조가 원인
- 사회봉사자들은 노인을 방치한 사회보장체계가 원인
- 전통적 질병이론의 장점은 의사의 책임을 좁은 범위에 한정할 수 있고 의학적 치료의 범위를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질병의 특정원인을 찾는 작업이 가치를 갖는 이유는 치료법의 발견을 향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주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질병의 원인에 대해 다시 논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전통적 질병이론을 따르는 의학이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 의학에서의 원인의 개념은 원인의 철학이라는 공허한 논의에 그치기 보다는 병을 앓는 아른 사람에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질병의 원인에 대한 기존의학의 관점은 이러한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므로 병든 사람을 보살피는데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illness는 하나의 이야기다.
- 폐렴에 걸린 노인의 이야기에서 만약에 그 노인의 생활조건을 조금이라도 바꾼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관절염을 낫기 위해 아스피린을 복용했다면..
- 비탄에 빠진 노인이 많은 술로 지냈다면
- 독립심이 강하고 이웃과 잘 지내는 사람이었다면..
- 폐렴에 걸린 노인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하나의 이야기다.
- 전통적의학은 이 이야기가 단지 신체적 사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 병을 앓는 일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해하면 질병의 원인에 대한 개념을 검토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한 인간이 앓는 병 이야기의 전 과정을 묵시적으로나마 이해하지 못하면서 질병의 원인을 언급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질병이야기를 몇마디로 축약해서 이해하면 질병이 하나의 과정이고 이야기가 펼쳐지듯이 진행된다는 점을 이야하지 못하게 된다. 질병의 과정을 이렇게 축약해서 이해하는 것은 현대의학이 질병의 원인을 한정함으로써 의사의 책임영역을 좁히고 치료의 가능성을 떨어뜨린 만큼이나 해로운 것이다.
제 8장. 치료의 대상 : 질병인가, 몸인가, 환자인가?
최선의 치료법 찾기
- randomized controlled clinical trial에 관한 이야기
- 실험이 최선의 결과를 보장할 수 있으려면 어떤 질병이나 상태를 아주 정밀하게 정의해야 하고, 어떤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법을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플라세보를 줄것인가를 무작위로 결정해야 하며 치료받는 환자나 의사 모두 어떤 치료법이 적용되는지를 전혀 모르도록 해야 한다.
- selection bias 치료효과를 내는 실험을 하려는 의사들의 욕구때문에 발생하는 편견이다.
치료과정에 대한 환자의 영향
- 환자 역시 의사의 판단을 왜곡하는 편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위약효과
- 어떤 치료법에 대해 의사 개인이 갖는 태도는 치료결과에 대한 플라시보 효과와 유사한 영향을 미친다. 의사가 치료법에 열성인 만큼 환자도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마련이며 의사가 회의적이라면 환자도 의심을 품게 된다.
개별환자에 대한 치료
만성병의 치료
- 만성병에서 환자와의 타협없이 질병이나 병태생리학적 과정에 따라서 투약이나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과 한참 거리가 멀다. 만성병은 의사가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만성병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를 치료하는 것이며, 의사는 그 치료과정의 일부만을 담당할 뿐이다.
- 사람의 주변환경이나 행동요소들을 변화시키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며 단지 환자에게 지시만 한다고 해서 절대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의사는 그것이 왜 중요하고, 그런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 환자를 납득시켜야 하며, 기회 있을때마다 변화를 이루려는 환자의 욕구를 자극해주어야 한다.
- 환자가 급성질병을 앓고 있을때나 만성병과 싸우고 있을때 그리고 죽어가고 있을때를 막론하고 의사가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환자는 안정감을 찾을 뿐 아니라 실제로 치료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 의사는 항생제나 그밖의 강력한 약물, 현대적 기술 심지어 종교적 의식마저도 도구로 사용하지만 무엇보다도 의사 자신이 치료의 중요한 도구다.
- 모든 단계에서 의사와 환자 그리고 그 둘의 관계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한다면 질병의 치료과정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 원인 개념이라는 낡아빠진 개념들을 포기하고 질병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갖는다면 올바른 치료란 이야기를 가장 간단하고도 효과적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 우리의 몸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이 있고,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잃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고 사회는 아픈사람에 대해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아픈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마력적인 연대의 정신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 불확실성은 언제나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지식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본래 지식은 과거와 현재를 통해 얻은 것을 미래에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아는것도 지식의 일부다.
- 불확실성은 불안을 초래하는데 이러한 불확실성에서 초래된 불안을 의사를 향한 신뢰로 메우는 것이다.
- 의학의 도구인 과학은 히포크라테스가 이상으로 삼았던 질병의 미래를 예측하는 의사의 능력을 크게 향상시켜가고 있다.
- 의사들이 질병과정에 개입하여 예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들은 많다. 어떤 판단을 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양한 종류의 지식은 앓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동안 겪는 경험에서 얻어진다. 그 중 하나가 질병에 수반한 사건이 진행되는 속도다.
- 수련과정에서 의사들은 흔히 자신들이 당장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경솔한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만 근무한 의사들은 질병의 진행속도에 대해 과장된 생각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질병이라도 그 질병의 진행속도는 개별환자에 따라 무척 다르다는 사실을 의사들은 주로 경험을 통해 알게된다.
- 질병의 예후는 질병의 특성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병을 앓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그리고 의사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이러한 배움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을때 비로소 최고의 임상의사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겪는데 30년이나 걸린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 임상의사는 질병지식없이는 살수도, 아니 숨쉴수도 없다. 질병의 생물학을 이해하는 것은 합리적 의학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만으로 임상의학이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질병이 아픈 사람속에서 하는 행동을 의사들은 반복적으로 관찰해야만 한다. 질병때문에 아픈 사람을 관찰하고 또 관찰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의사들은 변해간다.
- 최근 150년동안 의학은 질병에 대한 지식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으며 병을 앓는 사람이나 의사자신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직관이나 초점없는 경험의 소임으로 돌려왔다.
제 9장. 의사와 환자
-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로서의 환자가 본래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질병 중심 의학의 한 부분이 아니라면 환자와 의사의 관계역시 그것의 한 부분일 수 있다. 환자의 인간성이 중요하다면 의사의 인간성도 분명 중요한 요소다.
- 인간으로서의 환자, 윤리적 문제, 의사-환자의 관계, 의학의 기예 등의 문제가 논리적으로 의학의 주류에 통합될 수 없다면 더 좋은 이론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임상의학의 새로운 근거를 찾아서
병태생리학의 약점
병을 앓는 사람이 임상적 실체가 될 수 있을까?
- 병든 사람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는 상당히 까다롭다. 병든 사람은 자신을 아프다고 규정하고,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함으로써 의사의 치료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정말로 질병이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아프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때 의사는 무조건 그가 원하는대로 행동해야 한다면 의사로서의 역할과 권위가 크게 위협받을 것이다.
- 어떤 객관적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해결책
- 병든 사람이 의사의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하더라도 진단은 여전히 질병의 이름으로 주어진다.
- 진단의 목표는 몸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 환자는 어떤 사람인가?
- 병태생리학과 환자와 그가 처한 맥락의 관점에서 볼때 환자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리고 이런 현상은 왜 생긴 것인가? 등을 밝히는데 두어져야 한다.
- 병을 앓는 과정에 영향을 주는 사람 사이의 관계(인간관계)도 역시 진단에 포함되어야 한다.
=> 예를 들면
# 그 사람은 가족내에서 어떤 지위에 있는가?
# 환자가 부모에 의지해 사는 어린이라면 부모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 그 사람은 혼자 사는 사람인가?
# 가족과는 멀리 떨어져 사는가?
# 사회적 지원체계는 갖추어져 있는가?
# 환자는 결혼을 했는가?
# 그가 속한 가정은 결손가정은 아닌가?
# 자식이 있는가?
# 배우자는 살아 있는가?
# 이혼의 경험이 있는가?
# 지금 만나고 있는 이성친구가 있는가?
# 의사나 간병인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 그가 살고 있는 곳의 환경은 어떤가?
# 도시에 살고 있는가? 농촌에 살고 있는가?
# 직장의 환경은 어떠한가?
# 1년 중 어느 시기에 병에 걸렸는가?
- 마지막으로 환자가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환자가 풀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접근법을 통해 의사는 과학과 환자의 입장을 종합하여 문제를 규정할 수 있으며 비로소 환자를 이해할 수 있고 개별환자에게 맞는 질병의 치료계획을 세울 수 있다.
- 성공적인 의사가 되기위해서는 환자가 앓고 있는 질병의 이름이나 병태생리학을 알아야 하지만 또한 거기에 그쳐서도 안된다. 그는 환자가 앓는 병뿐 아니라 그 병을 앓는 인간 자체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질병이 아닌 병든 사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는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
제 10장. 이 사람은 누구인가?
- 어떤 개인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인간들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고, 우리는 인간의 한 측면만을 볼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질병을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질병은 지금 여기에 정지해 있는 것으로 개념화할 수 있지만 인간을 그렇게 개념화하는 것은 우리의 정서상 용납되지 않는다.
- 병든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의학이 필요로 하는 만큼 인간을 잘 알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생활에서 요구되는 것보다 더 정확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 환자의 인간성에 대한 고려로 인해 임상의학이 더욱 복잡해질 뿐 아니라 과학적 의학의 정밀성이 떨어진다고 불평하는 의사들도 있다.
이야기를 통한 인간의 이해
-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가 진단에 방해되기는 커녕 임상의사가 효과적으로 진료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적 논리
- 의사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환자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으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다. 환자와의 상호관계에서 얻어지는 공식적, 비공식적 정보중에서 의사들은 극히 일부만을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해버리기 때문이다.
지각의 초점
- 의사들에게 환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이유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라도 그것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 한 제대로 지각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환자에 대한 지식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편견 그리고 비판에 대한 저항
- 어떤 사태를 아무리 완벽하게 기술했다하더라도 거기에는 의레 어느정도의 편견이 포함되게 마련이다. 편견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사람들 사이에 명백히 존재하는 차이점을 부정한다면 좋은 임상의사에게 필요한 능력의 관찰은 길러지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병력이나 환자의 이야기에서 환자가 누구인가를 알아내는 능력도 현저히 위축될 것이다.
환자의 대상화
- 일단 의사가 어떤 사람에 대해 기술하고 나면 그 사람은 병속에 든 조직표본과 같은 의학적 대상이 된다. 어떤 사람이 A형 성격이라느니, 강박관념을 가졌다느니, 자기 파괴적이라느니, 지시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기술이 그것이다.
- 범주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버릇은 과정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는데 아주 좋지 않은 장해물이다.
사생활에 대한 관심
사회적 제약
제 11장. 인간의 척도
- 현대의학에서는 과학적 지식만이 진짜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
- 이 장에서는 병든 사람에 관한 세가지 정보 - 단순한 사실, 도덕적 차원, 미학적 차원 -가 임상의사에게 필요하다는 점을 보일 것이다.
- 여기서는 진실함, 선함, 아름다움이라는 전통적 범주가 그대로 적용된다.
- 임상의사는 엄청나게 많은 증거를 제시하는 환자와 만나게 되는데, 환자가 제시하는 증거가운데 일부는 특정한 질병 범주에 꼭 들어맞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 의사들은 환자가 폐렴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폐렴을 갖고 있는 특별한 환자에 대해 뭔가를 발견하려 하기보다는 폐렴에 대해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환자에게서 찾아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 과학적 사실은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어지며, 이런 저런 방법으로 관찰될때 지식 또는 정보가 된다. 환자들도 편향적인 인간 관찰자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믿을 만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산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검사를 받기를 원한다.
- 적어도 두가지 이유로 인해 홀로 존재하는 독립된 사실은 있을 수 없다.
첫째, 의학에서 어떤 것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 의해 관찰되어야만 한다. 어떤 관찰도 해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둘째, 어떤 사실은 항상 더 큰 현상의 일부다.
객관과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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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들은 아프다고 느낄때, 실제로 아플때, 아프게 될것 같을때 또는 병이 두려워질때 의사를 찾는다
http://edu.counsel24.com/index2.asp의 상담전문가 과정을 신청해서 공부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