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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실상 스크랩 [새벽을 깨우는 소리(5)] 말세의 배교를 주도하는 바티칸
예레미야 추천 0 조회 58 12.03.29 19: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대로라면 개신교는 세계의 다른 종교들과 더불어 종교개혁 이후로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이 오히려 개악에 개악을 거듭해왔던 바티칸에 의해 흡수합병 될 것입니다. 지금은 강제력이 없으나 말세의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전체주의적인 세계독재정부를 출범시키면 본격적으로 종교재판이 재개될 것입니다. 물론 종교재판의 주역은 적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는 거짓선지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바티칸이 될 것입니다.


   공신력 있는 기독교 기관인 ‘천주교 정보 연구국’(Catholic Research Information Bureau, CRIB)에서는 다음과 같은 경고의 나팔을 불었습니다. “속지 말라. 천주교회는 카멜레온과 같다. 천주교는 개신교 국가들 내에서는 관용적이고 우호적이며 도덕적 권위가 지고한 듯 보이지만 국민 다수가 천주교인 곳에서는 전혀 딴판이다. 그들은 결코 자유의 수호자가 아니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색깔을 바꾸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색깔은 절대로 천주교이 진짜 색깔이 아니다.”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367.]


   팀 리하이(Tim Lahaye) 목사 역시 다음처럼 경고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천주교는 개신교도들에게 가한 핍박을 죄로 자인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를 ‘분열된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개신교도들에게 인정을 얻기 위한 방편에 불과합니다. 천주교의 권력이 재차 강화되면 다시 한번 종교재판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천주교 지배적인 국가 콜롬비아, 스페인 등을 보면 개신교도들을 이방인처럼 취급하여 교회를 불사르는 등 종교적인 자유를 박탈하고 있습니다.” [팀 리하이, 김의자 역, 『요한계시록 해설』(서울: 보이스사, 1980), p.426.]


   강정훈 목사도 동일하게 지적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카톨릭 교회는 변화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무엇이 변했단 말인가? 그들의 교리가 변했는가? 사실상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오직 기독교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 밖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그들의 기독교와의 대화는 '타종교와의 대화'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기독교와의 대화를 통해 '떨어져나간' 기독교를 다시 교황청의 지배권 아래 넣으려 하고 있고, 타종교와의 대화를 통해서는 혼합 종교를 만들어 세계를 통치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기독교와의 연합과 대화를 가장하여 기독교를 혼란시키며 파괴시키려 하고 있을 뿐이다.” [강정훈,『로마에서 시작된 카톨릭교회』(서울: 푸른초장,1991), 203.]


   일찍이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 역시 천주교의 음모를 간파하여 『경보를 발하라』(Sound and alarm)라는 제목의 연설 가운데 다음처럼 경고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진리로 하나』(서울: 목회자료사, 1998), 118-119.]

 

 

    로마 카톨릭 교회는 복음주의적인 개신교 입장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교리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전혀.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이 점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은 로마교회의 공식적인 대변자들이 전략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호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분리된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이런 종류의 상황을 다루신 일을 기억하십시오.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그들이 변장하지 않고 오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다가오는데 우리의 복음주의자들은 이것을 모르고 로마 카톨릭 교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가장 위대한 권위자 중 한 사람인 스티븐 닐 감독은 어떤 점에서는(사회적인 면에서) 로마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그들이 우호적으로 접근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덧붙여서 사실상 교리적으로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보다 지금 우리와 더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에큐메니컬 운동과 세계교회협의회를 믿는다 하더라도 그는 상황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이 대 전쟁에 가담했으며 여러분은 이 전쟁에 직면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전쟁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로마교회와 마리아 숭배라는 이 의심스러운 태도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입니까? 교황은 10월 한 달 동안 특별히 마리아에게 기도하라고 교인들에게 부탁했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입니까? 그것이 사소한 문제입니까?


   우리는 이 전투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싸우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평신도들이 동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어서서 말하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회의 전반적인 미래를 위해 대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때에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중략)


   여러분이 복음주의를 부인하는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나는 복음주의자이다. 난 지금 복음의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봐야 소용없습니다. 나팔이 불분명한 소리를 내면 아무도 전쟁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이 말을 해야 하며 우리는 죽은 자들을 깨울 수 있는 목소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크게 외치고 경보를 발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도들의 영광의 외침이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을 안다면 어찌 나팔소리를 죽이고 작은 평화와 인기에 영합하여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연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또한 진리를 수정하거나 적들과 연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찍이 분명한 나팔 소리가 들려야할 때가 있었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협력합시다! 함께 헌신합시다.


   그리고 나팔의 분명한 소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회개하고 믿음을 가지며 초대교회를 수립하라는 분명한 소리를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게 외쳐야만 합니다. 이 악하고 왜곡된 세대들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 주님의 편에 있나요?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을 선언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이것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할 준비를 하게 합시다. 주님의 편에 누가 서 있나요? 여러분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하나님으로 모신다면 그분을 따르십시오. 그러나 바알을 섬긴다면 그를 따르십시오. 여러분이 신약 성경적 교회가 복음주의 교회임을 믿는다면 확고하게 그 입장에 서십시오.

 


   실제로 교황청에서는 오늘날에도 개신교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천주교의 교리문답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변기영, 『뜨리뗀 공의회 간추린 교리문답』(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1983) ,24-25.]

 

 

 

   천주교의 교리에 다르면 이단에 대한 합당한 반응은 화형시키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세속권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참고 있는 것뿐입니다. 천주교가 제2차 바티칸 회의(1962-65) 이후 개신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분열된 형제’라고 부르며 부지런히 ‘화해’와 ‘일치’를 외쳐온 것은 강정훈 목사의 지적처럼, 오직 개신교회를 교황권 아래로 흡수하여 중세 암흑기의 위상을 되찾고자 하는 야심 때문입니다.


   오늘날 ‘음모론’이라는 이름으로 경시되는 음모의 진짜 주체는 바로 바티칸입니다. 중세시대에서의 세속권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음모인 것입니다. 실제로 음모론에 등장하는 다양한 세력들(프리메이슨, 빌더버그 그룹(엘리트), 로스차일드 가문, 패이비언 사회주의, CFR, UN, IMF, 연방준비은행 등등)은 바티칸의 장기말일 뿐입니다. 이는 바티칸이 일루미나티(교황청의 친위대인 예수회의 비밀이름)의 창설 이후로 지금까지 치밀하게 진행되어온 음모이며 그 키워드가 바로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입니다.

 


   현재 천주교가 주축이 되어 진행되는 ‘세계종교통합운동’이란, 실제로는 바티칸의 휘하에 세계의 모든 종교를 흡수합병 시키는 과정입니다. 종교다원주의란, 실제로는 로마카톨릭 안으로 모든 종교를 흡수합병 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지금은 우호적 흡수합병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나 머지않아 적대적 흡수합병으로 바뀔 것입니다. 전 세계 종교계의 지각변동이 일단락되면 또다시 종교재판이 부활될 것이며 중세 암흑기와 같은 처참한 마녀사냥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대상은 바로 우리 개신교도들입니다.

 


   바티칸은 지금 현재 종교다원주의에 근거하여 세계의 모든 종교를 급속하게 천주교 안으로 통합시키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개신교 안에서는 이미 W.C.C.가 그 일을 진행하고 있으며 빌리 그래함의 공작으로 인해 W.E.A까지 넘어간 실정입니다. 바티칸이 만약 세속권을 다시 거머쥐게 된다면 종교재판의 부활은 필연적입니다. 그리고 변함없는 교리 그대로 천주교로의 개종을 거부하는 모든 개신교도들에 대한 무참한 고문과 학살이 자행될 것입니다. 이는 과거에 그들이 저지른 행적을 통해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는 일입니다. [Baron Porcelli, 생명의서신 편집부 역, 『성전에 앉아 있는 죄의 사람』(서울: 생명의서신, 2004) 참조.]


   A.D. 1215년, 라테란(Lateran) 제4차 종교회의의 종교법령은 이교도와 이단의 제거에 더욱 정열을 쏟았습니다. 천주교 성직자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세속권력들이 두드러지게 뭉쳤습니다. A.D. 1227년 나본(Narbonne) 종교회의가 동일한 노선을 밟았고 그 이후 톨로스(Toulouse) 종교회의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를 이단자로 비난하도록 강요받았고 성경읽기가 평신도에게는 금지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종교회의마다 동일한 노선을 취했습니다.


   성경대로 믿는 크리스천에 대한 교황의 학살은 예수회 신부 그레트져(Gretzer)가 자신의 저서에서 인정하듯이 역사에 또렷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360년부터 1380년까지 종교개혁자 위클리프(Wycliff)와 그를 따르던 롤라드인들에게 퍼부어졌고, 약 40여년 후엔 보헤미아에서 신앙개혁가 후스(John Huss)를 처형했습니다. 교황은 1464년부터 1498년까지 보헤미안인들과 영국 사람들을 박해한 것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사보날로라(Savonarola) 같은 사람들에게 박해를 가했습니다. 왈덴시스(Waldemses) 크리스천들에 대한 학살사건, 볼 루이스(Vll Louis) 크리스천들의 학살사건 등은 어느 누구의 피라도 응결시킬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잔학한 행위의 반복이었습니다.


   보수적인 견해에 의하면 15세기 동안 로마 천주교의 손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숫자는 대략 2,500,000명으로 보는데, 다울링(Dowling)은 스코트(Scott)의 교회사를 인용하여 프랑스에서 1,000,000명의 왈덴 크리스천들이, 네델란드에서 36,000명의 크리스천들이, 또 스페인 종교 재판소에서 150,000명, 그리고 제수이트(예수회)가 죽인 성경대로 믿는 크리스천들 900,000명을 언급합니다.


   종교재판과 박해와 살육의 도구로써 더욱 유효할 수 있게 하기 위해 1478년에 개편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역사가 로렌트(Lorent)에 따르면, 스페인에서는 1480-1498년에 8천 명의 크리스천이 화형 당했고 9만 명의 크리스천이 다른 형벌에 처해졌으며 1499-1506년 사이에는 1,600명 이상이, 또 1515-1570년에는 2,536명이 화형 당했습니다. 1524년에는 2만 명 이상이 처형되었고 이들 중 천 명가량이 트리아나 세빌르(Triana Seville)라는 한 도시에서 화형 당했습니다.


   이처럼 애당초 대량학살(Genocide)은 히틀러와 나치가 만들어낸 아이디어가 아니라 바티칸의 교황이 만들어낸 공식교리였습니다. 이교도, 그러니까, 모든 개신교도들에 대한 대량학살에 대한 교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천주교의 공식교리로 남아있습니다. 쉽게 말해, 그들은 언제든지 상황만 변하면 과거처럼 개신교도들을 잔혹하게 학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시기가 도래할 것입니다. 천주교가 주도하고 있는 종교통합운동이 이미 전 세계의 모든 종교를 다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참된 개신교도들만이 남을 것이고 그때부터 천주교는 다시금 종교재판을 부활시킬 것입니다. 


   과거의 종교재판소는 독창적인 기관으로 천주교에 대항하는 유럽의 모든 사람을 말살할 목적으로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밀라노, 제네바, 아라곤, 그리고 사르디니아에서 폴란드까지(14세기), 그리고 다시 니헤미아에서 로마까지(1543) 퍼져나갔습니다. 스페인에서는 1820년까지 존속했습니다. 종교 재판소는 1229년, 1233년, 1234년에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이 천주교 도살장은 13세기를 거쳐 14세기 말에도 그 살인과 약탈, 고문을 멈추지 않으며 15세기에서 16세기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를테면, 17세기(1641)에 아일랜드의 천주교는 10월 23일(이그나티우스 로욜라 기념일)을 개신교도들에 대한 학살의 날로 정하여 하루에 150,000명을 죽였습니다. 성경대로 믿는 크리스천들은 땅에 모가지만 내놓고 매장된 채로 굶어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몸이 찢어져서 유혈이 낭자한 몰골로 미사에 끌려갔습니다. 한 사람은 톱으로 켜져서 몸이 둘로 쪼개졌고 그의 부인은 목청이 잘려 나갔고, 그의 어린 아들은 골이 깨어져 버렸는데 그 시체가 돼지우리에 던져졌습니다. 어떤 크리스천들은 허리에 줄을 묶어 말이 시궁창을 달리는 동안 질질 끌려 다니다가 죽기도 했습니다. 수천 명이 팔과 손, 다리를 잘렸으며 그 상태로 피를 흘리며 죽어갔고, 티로(Tyrone) 지방에서는 하루에 삼백 명을 익사시켰고, 오륙십 명이 한 집에 감금시켜 놓고 태워 죽였습니다.


   1655년 1월 25일 교황 클레멘트 8세의 재임 기간에 무장한 폭도들은 성경대로 믿는 크리스천들이 사는 삐에드몽으로 갔습니다. 지오반니 앙드레 미샬랭(Giovanni Andrea Michialine)은 그의 앞에서 세 아들이 칼에 베임 당하는 것을 목도해야만 했는데, 한 폭도가 그의 넷째 아들 다리를 잡고 벽에 내동댕이쳐 머리가 깨졌습니다. 천주교 폭도들은 10살짜리 소녀를 나무 곳간에 몰아넣고 불을 피워 그녀를 불에 달군 후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죽였습니다. 지오반니 로스타그날(Giovanni Rostagnal)은 80세의 노인인데 코와 귀를 잘랐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의 몸에서 살점을 베어내었습니다.

 
   야콥 비로네(Jacob Birone)는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벌거벗겨서 뜨겁게 달군 족집게로 그의 손톱과 발톱을 뽑고는 허리에 줄을 묶어 양쪽에서 두 폭도가 거리에 끌고 다니는 바람에 몸에는 깊은 상처가 나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둘은 매 순간 그에게 “자 이래도 미사를 드리지 않겠는가?”하고 물었는데, 그는 모든 폴리시안즈나 보고마일즈가 믿었듯이 미사는 마귀에게 속한 것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목을 베었고 시신은 강에 던져버렸습니다.


   야콥 로제노(Jacob Roseno)는 성인들에게 기도하라는 강요를 받았으나 어떤 마니캐안도 불가리안도 또 소위 다른 ‘이단들’도 그런 가증스런 일을(딤전2:5) 하지 않았기에 천주교 폭도들은 그를 심하게 매질하고 여러 발의 총알을 쏘아댔습니다. 그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그들은 또 “성인들에게 기도해라!”하고 악을 썼으나 그의 대답은 “No”였습니다. 그들은 그의 목을 칼로 끊어버렸습니다. 천주교 폭도들은 야균도 미살리노(Jacopo Michalino)라는 종의 생식기를 떼어냈는데 그 떼어낸 부분의 출혈을 막는다고 불을 켠 양초를 갖다 댔습니다. 그 다음에는 족집게로 손톱, 발톱을 뽑고 끈으로 그의 머리를 묶어 조였는데 어찌나 조여 맺는지 눈알과 골이 빠져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로마가톨릭은 어떠한 이견이나 반대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천주교가 지배한 수세기 동안 로마교가 참된 성도들을 죽인 수는 이전에 로마제국이 죽인 수보다 더 많았습니다. ‘암흑시대’라고 후세의 사가들이 명명한 로마가톨릭 지배하의 약 1,200년 동안 5,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교황권의 박해를 받아 죽었던 것입니다. 이는 100년마다 평균 400만 명 이상의 비율로 죽은 셈인데, 당시의 세계 인구를 감안할 때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입니다. 당시의 100만 명은 어림잡아 지금의 1000만 명에 상응하는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천주교가 지배하는 신성로마는 그 잔인성에 있어서 이교도들의 로마를 훨씬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암흑시대는 주후 약 312-1517년 종교개혁이 시작될 때까지 약 12세기 동안 지속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 위에 앉아서 만만치 않은 권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가 달성되면 바티칸은 성경의 예언대로 다시금 세속권을 거머쥐게 될 테고 종교재판을 부활시켜서 동일한 만행을 자행할 것입니다(계시록 17장). [유석근, 『알이랑 고개를 넘어 예루살렘으로』(서울: 도서출판 예루살렘, 2011), 276.]


   끝까지 배교하지 않는 개신교도들에 대해 바티칸이 어떤 식으로 박해할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입니다. 그들은 1,200년 동안 인류 최고의 고문 기술을 축적시켜두었기 때문입니다.

 

   『폭스의 순교사』에 따르면 중세시대 때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은 천주교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어 온갖 종류의 처참한 고문을 당하다 참혹하게 순교했습니다. 천주교 사제들은 그들에게 끓는 기름을 붓거나 관절을 잡아 비틀었습니다. 창자를 끄집어내거나 온 몸을 창으로 찔렀습니다. 채찍질을 통해 살점을 뜯어냈으며, 이마를 쇠사슬로 죄여서 눈알이 튀어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인두로 남성과 여자의 성기를 지졌으며, 가위로 여성의 가슴을 잘라내기도 했습니다. 갈고리로 살을 긁어내거나 철판 위에 생사람을 올려놓고 삼겸살 굽듯이 굽기까지 했습니다. 나사로 손가락을 죄어 부러뜨리고 혀를 뽑아냈으며 펄펄 끓는 기름과 타르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생매장하거나 익사시키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생살을 바늘로 꿰매거나 산 채로 맹수들에게 뜯어 먹히도록 만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창을 여성의 성기로 찔러 넣어 정수리까지 통과시켰습니다. 그야말로 꼬치를 꿰듯이 꿰어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천주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으로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성도들이나 개신교도들을 박해하고 학살했습니다. 무엇보다 천주교의 종교재판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화형입니다. 산 채로 죄인을 태워 죽이는 화형은 원래 이로교마가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박해할 때 사용하던 형벌인데 바티칸이 그대로 답습한 것입니다. 단순히 성경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히 라틴어 대신 다른 언어로 성경구절을 낭독했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히 교황권의 정책을 부정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화형 집행 방법에 있어서 프랑스의 사례를 좀 더 실감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석근,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 281-283.]


   화형에 처할 죄수가 있을 경우 미리 선정된 장소에 화형집행대에 해당하는 기둥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키 높이까지 짚과 장작을 몇 겹씩 쌓아올립니다. 물론 기둥 주변에 죄인이 들어갈 수 있는 입구와 죄인을 묶기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죄수에게는 불에 잘 타게 하기 위해 죄수복 대신 유황이 칠해진 셔츠를 입혔습니다. 이윽고 죄수를 줄과 쇠사슬로 기둥에 단단히 묶은 후에는 죄수가 들어가던 입구 통로까지도 짚과 장작으로 채워 넣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불을 붙이면 사방의 장작더미가 일시에 불이 붙었다고 합니다.


   산 사람을 화마 속에 넣는 행위가 얼마나 잔인한 일입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로마 교황이 개신교도들을 처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고문실의 쾌락』(자작츨판사, 2001)이라는 책자에 보면 1796년 1월에 이단자에 대한 화형 집행 장면을 목도한 사람의 편지가 실려 있습니다. 편지에는 화형이 얼마나 참혹했던가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처형은 정말 잔인했습니다. 여자는 화염에 휩싸여 한 시간 반, 남자는 한 시간 이상 산 채로 고통 속에 몸부림쳤습니다… 죄인이 계속해서 갈구하는 것은 단지 몇 더미의 장작을 더 태워달라는 것뿐인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화염은 타버린 만큼의 장작만 보충하면 똑같은 온도를 유지하며 탔습니다. 그의 간절한 탄원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줄지도 않았고 땔감이 더 많이 허락되어 죽음이 앞당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이것이 바로 머지않아 세속권을 다시 거머쥘 바티칸이 배교를 거부하는 개신교도들에게 가해올 핍박의 방식입니다.

 

 

   실제로 바티칸에서는 고도로 훈련된 예수회의 신부들을 개신교 진영의 곳곳에 침투시켜서 온갖 종류의 교란 및 파괴 공작을 벌여왔습니다. 이에 관한 역사적 증거들도 얼마든지 있거니와 오늘날에도 사정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예수회 소속 신부로서 개신교회들을 와해시키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워서 초고속 승진을 했던 알베르토 리베라(Alberto Rivera) 신부가 회심한 다음, 양심고백을 통해 바티칸의 적나라한 실상을 여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전직 천주교 사제인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는 스페인에서 출생했습니다. 7세부터 천주교 신부학교에 입학하여 14년간 제수이트(예수회) 요원으로 훈련을 받은 그는 27년 동안 교황청을 위해 철저하게 충성했던 인물입니다. 바티칸의 개신교 말살음모에 전적으로 헌신하던 그는 비빌리에 성경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 결과, 천주교의 교리와 성경의 진리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깨닫고 많은 갈등 끝에 그는 결국 회심하여 거듭나게 됩니다. 그 이후 천주교를 박차고 나온 그는 바티칸의 음모에 그 실체에 대해 폭로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황청 직속 예수회의 신부로 있다가 회심한 리베라 박사는 이후 교황청과 예수회의 음모에 대해 낱낱이 폭로하여 더 이상 사람들이 천주교회의 어두운 수렁으로 빠지지 않도록 헌신했습니다. 그는 1997년 1월 20일 주님께로 부르심을 받기까지 천주교회 및 그에 연계된 기관들의 성경 예언에 따른 역사적, 성경적 연구에 전적으로 몰두했습니다. 리베라 박사는 전 세계의 수많은 교회들과 학교들을 방문하여 설교하면서 많은 천주교도들에게 구원은 교황이나 성모 마리아나 천주교회 제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의 양심고백 때문에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개신교로 개종하게 되자, 카톨릭 신문사에서 알베르토는 목사였다고 은폐하는 기사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목사가 없다는 사실도 모른 기자의 거짓 기사에 불과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바티칸에 의해 통제되거나 매수된 거짓증인들의 네거티브 공세가 이어졌으나 리베라 박사의 정확한 증언 및 그것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물증들로 인하여 교란정보에 휘둘리는 사람들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그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리베라 박사의 간증은 총 8권의 만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 151개 국가에서 출판되었으며 27개국에서 카톨릭의 압력에 의해 출판이 거부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나, 역자가 이단시비에 휘말리면서 제대로 판매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자의 사정과는 무관하게, 리베라 박사의 간증 자체는 바티칸의 실체를 드러내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특히, 레바라 박사는 죽음(순교)를 통해 자신의 증언이 진실임을 마지막으로 증명했습니다.

 

   알베로토 리베라 박사의 아내인 누리 리베라는 자신의 남편이 바티칸의 하수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다음처럼 확신있게 증언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독살하였습니다. 나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생전의 리베라 박사는 전 제수이트(카톨릭 예수회) 제너럴 페드로 아루피 밑에서 사역하며, 주로 개신교회에 침투하여 파괴하는 공작을 수행했습니다. 회심한 리베라 박사는 목숨을 걸고 바티칸의 정체를 폭로했으며, 바티칸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그의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생전에 리베라 박사는 예수회의 암살자들로부터 공격받으며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바티칸의 에이전트들은 여러 차례 그녀의 집에 찾아와 집기를 부수며 리베라 박사의 물건들을 압수해갔습니다. 드디어 리베라 박사를 암살하는 데에 성공한 바티칸은 그의 아내에게 만일 남편이 정신병자였다는 문서에 서명하면 1,000,000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런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하자, 그녀 역시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히려 이런 사실을 그레그 시만스키 라디오 쇼를 통해 증언했습니다. 이는 아래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arcticbeacon.com/articles/20-Feb-2007.html 


   특히, 알베르토 리베라의 간증서 제1권 『거듭난 알베르토』의 내용을 살펴보면, 은사주의 진영의 개신교도들에 의해 천주교가 크게 위협받던 20세기 중후반에 바티칸이 이를 막기 위해 어떤 공작을 벌였는지 잘 나와있습니다. 그 당시, 바티칸에서는 예수회의 신부들을 은사주의 진영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회’ 소속 교회로 대거 침투시켜서 수많은 교회들을 교란시키며 무너뜨렸습니다. 이는 초창기의 은사주의 진영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오염되고 부패한 것이었다면, 즉, 처음부터 그것이 뉴에이지 영성운동이었다면, 바티칸이 그렇게 무너뜨리려고 애쓸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티칸이 사주하여 활성화시킨 뉴에이지적 영성운동 때문에 은사주의 진영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 역시 은사중단론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뉴에이지 영성운동을 빌미로 개신교 은사주의 진영을 도매금으로 취급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간증만화 여덟 권을 접할 때는 이 부분만 분별하면 될 것입니다. 리베라 박사의 간증으로 최초로 출간한 칙출판사에서 한국어 버전으로 1권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웹상에서 바로 읽기를 원하시면, 아래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www.chick.com/reading/comics/1302/1302_allinone.asp 

 

나머지 책을 구매하시기를 원하시면, 다음의 링크 주소를 참조해주세요.

 

 http://www.aladin.co.kr/shop/common/wseriesitem.aspx?SRID=24364

 

   리베라 박사의 간증 만화책 여덟 권에 담긴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회 신부들은 바티칸 제국(바티칸이 통치하는 세계단일정부)의 건설을 위해 전 세계 각지에 수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스파이로 파송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종류의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 뇌물, 중상모략, 이간질, 누명씌우기, 고문, 암살 등 그들은 바티칸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사악한 짓도 서슴치 않는다. 이는 콜럼버스 기사단 서약의 내용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들에 의해 수많은 개신교회들이 파괴되거나 변질되었고 수많은 정부기관과 기업들이 파괴되거나 변질되었다. W.C.C.와 같은 모든 종교다원주의 운동의 배후에도 이들이 있다. 리베라 박사가 예수회의 신부로 암약할 당시 그가 스페인에서 무너뜨린 개신교회의 숫자만 해도 19개에 이른다. 이미 전 세계 모든 나라와 모든 분야에는 이들이 침투하여 세계단일정부(큰 성 바벨론)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 바티칸과 천주교 안에는 독신을 강요당하여 욕구불만에 휩싸인 사제들끼리의 동성애가 만연하며 수도승과 수녀들 사이에도 문란한 성관계 역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태어난 사생아들의 다수가 살해당하여 암매장되는 실정이다. 실제로 수도원의 정원에서는 유아들의 유골이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3) 역사상 바티칸에 의해 무려 6,800만 명 이상의 성경대로 믿으려는 선량한 성도들이 온갖 형태의 끔찍한 고문과 고통 가운데 학살당했다.

 

4) 이슬람교는 유럽 지역에서의 패권을 공고히 하려는 교황청의 사주로 중동지역에서 탄생한 유사기독교이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나중에 바티칸의 손아귀를 벗어나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갔고 이로 인해 십자군전쟁이 발생했다. 그러다가 성모 마리아의 거짓기적으로 유명한 파티마 사건 이후, 바티칸과 이슬람교는 다시 동맹을 맺고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 확립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바티칸과 이슬람교의 연결고리는 성모 마리아이다.(자세한 내용은 제6권 중동의 음모를 참조하세요.)

 

5) 공산주의는 오랫동안 바티칸과 대립하며 기독교 진리를 수호해온 동방정교회를 비호하던 러시아 황실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안하고 후원한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이후 그들은 교황청을 배신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갔다. 하지만 스탈린의 사망 이후 공산주의는 다시금 교황청과 손을 잡고 신세계질서 확립을 향해 함께 걸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W.C.C.가 핵심적인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6)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처음부터 교황청이 기획하고 후원하여 만들어낸 독재집단이다. 이들에 의한 제2차 세계대전 역시 교황청이 종교개혁 이후 잃어버린 세속권을 되찾기 위한 시도였다.

 

7) 대부분의 천주교도들 및 등급이 낮은 성직자들은 프리메이슨이 천주교의 적이라고 배우지만, 이는 위장일 뿐이다. 바티칸의 간부가 되면 프리메이슨이 교황청의 충실한 심복임을 누구나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 프리메이슨을 수족으로 부리는 일루미나티가 예수회의 비밀이름이기 때문이다. 즉, 일루미나티가 곧 예수회다. 소위 음모론에 등장하는 빌더버그그룹, 엘리트, 연방준비은행 등도 모두 예수회가 부리는 장기말에 불과하다. 진짜 배후는 예수회(일루미나티)이다. 프리메이슨이 바티칸의 하수조직이라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1983년 1월 25일 교황의 칙령에 따라 천주교 신도들이 프리메이슨에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원래는 은밀한 한통속이었으나 이제는 구태여 숨기려고 하지도 않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진 것이다.

 

8) 바티칸의 실세는 교황이 아니라 검은교황이라 불리는 예수회의 수장이다. (편집자 주-예수회의 수장은 공식적으로 드러나는 총회장이 아니라 숨겨진 보스가 따로 있을 것이다. 교황이나 공식적인 예수회 총회장 역시 얼굴마담일 뿐 진짜 보스는 따로 있을 것이며, 그가 아마도 계시록에 기록된 적그리스도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정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교황(혹은 명목상 예수회 총회장)은 그의 앞길을 예비하는 거짓선지자일 것이다.) 미국외교협회(CFR), 삼변회, 빌더버그클럽, 연방준비은행, 보헤미안 그로브, 로스차일드가문 등등 소위 'NWO 음모론'에서 거론되는 주요 세력들 역시 진짜 배후가 아니라 예수회가 부리는 장기말에 불과하다. 따라서 바티칸이 빠져 있는 NWO 음모론은 바티칸을 향한 주의를 분산시키고 엉뚱한 곳(엘리트 등)에 집착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들이 의도적으로 흘린 교란정보(역정보)의 일종이다.

 

   증언자인 리베라 박사 자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통해 이상의 내용을 거짓말로 치부하려고 해도, 또 다른 수많은 증거들이 이상의 내용이 진심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앞에서 제시한 많은 자료들을 통해서도 방증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리베라 박사의 간증서를 구입하여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단시비에 걸린 역자 및 단체에 의해 출간된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런 외적은 요소는 접어두고 내용만으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추가적으로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의 증언과 맥을 같이 하는 또 다른 두 사람(Svali와 John Todd)의 양심고백 간증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두 사람 모두 양심고백 이후 리베라 박사에 마찬가지로 암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Svali는 일루미나티 출신의 킬러로서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그곳을 빠져나와서 양심고백을 했다가 실종되었으며, John Todd는 프리메이슨의 고위급 마법사로서 고(古) 데이비드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님의 실화로 만든 영화를 계기로 회심한 이후 그곳을 빠져나와서 양심고백을 했다가 누명을 쓰고 투옥된 이후 실종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목숨과 맞바꾸어 남긴 이 두 간증이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의 간증이 사실임을 방증합니다.

 

1) John Todd 간증 : Web-Book으로 보기 | 전자책 다운로드

2) Svali 간증 : Web-Book으로 보기 | 전자책 다운로드

 

   정리하면, 하나님의 안배에 따라 종교개혁 이후의 그리스도의 몸은 수많은 사역공동체들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사역생태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언어의 혼잡 사건을 통해 바벨탑으로 표상되는 니므롯의 세계단일정부를 무너뜨리시고 사람들을 언어에 따라 열방으로 흩으신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말세의 마지막에 세상은 다시 세계단일정부로 통합될 것입니다. 이것의 예표가 교황이 유아독존 하는 천주교입니다.

 

 

▲살아있는 교황을 향해 엎드려서 경배하는 사제들

 

▲교황의 동상이나 사진을 향해 경배하는 신도들

 

   사실 전면적인 배교는 불과 70여 년 전에 한국에서도 이미 있었던 일입니다. 신사참배가 바로 그것입니다. 신사참배란 일제강점기(1910∼1945) 동안 태양여신과 천황을 추앙하는 일본의 국교인 신도의 사원, 곧 신사에서 이루어진 우상숭배를 지칭합니다. 1935년 12월, 안식교단이 신사참배를 최초로 결의했습니다. 1936년 5월에는 천주교가 교황청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신사참배를 시행했으며 성공회도 동참했습니다. 뒤이어 성결교, 구세군, 감리교까지 신사참배를 승인했습니다. 급기야 1938년 9월 10일에는 다수를 점하며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가졌던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되고 말았습니다. 

 

   신사참배를 결의한 한국교회의 목사들과 장로들은 그 즉시 신사에 가서 참배를 드렸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일본의 두목 귀신인 천조대신의 이름으로 서울의 한강과 부산의 송도 등에서 신도침례를 받았습니다. “천조대신이 높으냐? 여호와 하나님이 높으냐?”는 일본 제국주의의 질문에 천조대신이 더 높다고 답변하는 문건에 서명을 하여 관청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국교회의 장로교 총회장이 이른바 ‘전향성명서’라는 공식적인 배교 신앙고백서까지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목사들과 장로들의 주도 하에 주님을 버리고 집단적으로 배교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시켰던 발람처럼 성도들을 기만하여 음란하게 일본 태양신을 숭배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미나다’(神棚)라고 하는 우상단지를 예배당 안 동편에 두고 그것을 향해 예배했습니다. 기도, 소원간구, 찬양 및 손뼉, 예물 바치기, 황국신민서사 낭독 등의 순서로 1부 신도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예배 중에 12시 정오 사이렌 소리가 나면 동쪽을 향해 절을 하는 동방요배도 드렸습니다. 

 

 

   장로교회는 1938년부터 3년간 국방헌금 158만원, 휼병금 17만 2천원을 거두어 바쳤으며, 무운장구기도회 8,953회, 시국강연회 1,355회, 전승축하회를 604회, 위문 181회를 가졌습니다. 1942년에는 ‘조선장로호’라는 이름의 해군함상전투기 1기와 기관총 7정 구입비 15만 317원 50전을 바치고 미군과 싸워서 이겨달라는 신도의식을 거행했습니다. 감리교 역시 1944년 교단상임위원회의 결의로 ‘감리교단호’라는 이름의 애국기 3대 값인 21만원을 헌납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한국교회는 적극적으로 ‘신사참배 인식운동’과 ‘신사참배 권유운동’을 전개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신사참배와 친일행각은 다분히 자발적이었고, 점차 솔선수범했으며, 나중에는 경쟁적으로 열성을 다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우상숭배를 거부하지는 못할망정 주기철 목사님처럼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목회자들을 파직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1907년 평양에서 대부흥의 축복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땅에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에게 절하기로 결의하고 결행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평양은 사탄의 앞잡이인 북한정권의 수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의 거의 모든 성도들을 배교의 길로 이끌었던 장본인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목회자들이 앞장서서 배교를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국교회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에 감염된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또다시 한국교회를 배교의 길로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바로 W.C.C.입니다. 그리고 이 W.C.C.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실체가 바로 바티칸입니다. 다음 단원부터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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