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114장 하늘이 주신 보배
(김승원 교무님 풍류세월에서)
성가 114장은 <마음 거울>이다. 1968(원기53)년에 편수된 성가로서는 <어린이회 노래>에 이어 두 번째로 등장하는 순 한글 부제이다.
성가 114장은 이운권(고산, 1914~1990)교무가 작사하였고 김대현교수가 작곡하였으며, 원기 52년에 정화사에서 제정하였다. 편안한 선율과 의미 깊은 가사로 인해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곡들 중 하나이다. 곡 머리의 ‘장엄하고 흥겹게’라는 나타냄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부르면 편안함 속에서도 장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방길튼 교무님 성가산책에서)
〈성가〉 114장 마음거울은 고산(高山) 이운권 종사가 '심경(心鏡)'이란 제목으로 20세 때인 원기20년(1935) 〈회보〉 20호에 발표한 시조풍의 시이다.
고산은 전무출신을 허락받으러 간 부친을 집으로 모시려 영산성지에서 갔다가 대종사를 친견하고 운권(雲捲)이란 법명을 받게 되며 출가할 것을 약속하게 된다. 이때가 19세로 일 년 뒤 20세 때에 출가해 익산총부 동선에 참여한다.
이 과정을 대산종사는 고산 이운권 종사의 열반을 맞아 "영산회상에서 법연으로 약조하였던 고산 종사님. 새 주세불 대종사님께서 기다리고 찾으셨다가 내가 올 줄 알았다. '운권'이다"하시고 "앞으로 일체중생의 삼독오욕인 먹구름을 다 거두어 제도하라하시며 맞이하심에 종사께서는 옛 약조대로 서원 올리고 신성을 바치며 출가했습니다"라고 술회한다.
고산은 특히 서울출장소 소장이던 1965년에 한국종교협의회 발족에 참여하면서 월간 〈종교계〉를 창간해 종교계와 사상계 및 학계에 원불교 교리 및 사상을 소개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 탄허 스님, 고암 스님과 깊은 교류를 했으며 후일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는 고암 스님은 원불교 법명도 받고 인연들을 원불교로 인도하는 역사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이는 다 고산 종사의 깊은 인간적인 교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백학명 스님 - 주산 송도성 종사로 이어 달마도의 선화(禪畵)의 맥을 이어간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마음거울, 사풍우 심한 곳에 두지 말아야〈성가〉 114장 마음거울은 이운권 교무가 20세에 출가해 그 해에 지은 작품으로 그의 '출가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수행자로서 성품에 대한 탐구와 수행에 대한 열정이 묻어있다.
고산 종사는 원기43년(1958), 〈원광〉 22호에 심보음(心寶吟)을 발표한다. 이 심보음 첫 단락에 마음거울이 다시 등장하는데, "오유심경하니(吾有心鏡) 명유일월이라(明逾日月) 광피천하하야(光被天下) 시성조감호아(時省照鑑). 나에게 마음거울이 있으니 밝기가 일월보다 더한지라 천하에 두루 비추어 때로 살피고 비춰보는가." 20세시의 심경과 43세시의 심보음은 23년의 간격이 있으나 그 마음거울에 대한 확신과 수행이 하나로 흐르고 있다.
고산 종사에게 있어 마음거울은 수행의 표준이요 현실화해야 될 과제였던 것이다. 둥글고 밝은 빛은 결국 일원상 진리의 공적영지의 광명인 것으로 심보음에서는 일월은 유형한 곳 밖에 못 비추지만 마음거울은 무형한 곳까지 비출 수 있다는 것으로, 즉 해와 달의 밝음은 조롱 속의 새와 같다면 마음의 밝음은 산천을 나는 새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유형 무형을 다 밝히는 것은 둥글고 밝은 빛인 공적영지의 마음밖에 없다는 깨달음의 찬탄이다.
〈성가〉 114장 마음거울의 '큰 광명'은 〈회보〉의 심경(心鏡)에서는 '광피일원(光被一圓)'으로 되어 있으며, 이 '광피일원'을 '큰 광명'으로 윤문한다. 심경에서 일원(一圓)이 나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기20년(1935)에 법신불 일원상을 공식적으로 대각전에 봉안하는데, 이 해에 막 출가한 이운권 교무에게도 주지되었다는 것이다. 스승이신 정산 종사의 영향이 크다 할 것이다. 사풍우는 모래(砂)와 바람(風)이 비(雨)와 함께 날리는 또는 모래가 날리는 비바람으로 풀 수 있다. 사풍우는 육진(六塵)의 경계이니 사풍우 경계에 모처럼 밝힌 빛 흐려질까 조심해라는 것이다. 힘들여 회복한 본래마음을 다시 어둡게 하지 말자는 스스로의 다짐이요 법동지들에 대한 당부라 할 것이다.
성가 65장 천지에 크고 작은 ~ 6월 17일 법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