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이어령(74)씨가 생애 첫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문학세계사)를 펴냈다. 이씨는 마지막 문단 생활을 첫 시집으로 마무리한다면서 여러 장르 중에서도 시가 가장 크고, 높을 뿐 아니라 언어의 궁극이라고 말했다.
2004년 일본 교토에서 혈혈단신 연구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흔 나이에 할인 제품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서 일본 주부들과 경쟁하고, 스스로 밥을 지었어요. 난생 처음 생활의 감각을 깨달았지만, 지독한 고독도 맛봤습니다. 그 외로움을 달래려 시를 썼어요. 절대 고독에서 시가 기침처럼, 제어할 수 없게 터져 나왔습니다.
시집에는 그가 대학시절 서울대 학보에 투고한 시부터 최근에 쓴 시까지 모두 61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포도밭에서 일할 때’ ‘혼자 읽는 자서전’ ‘시인의 사계절’ ‘눈물이 무지개 된다고 하더니만’ ‘내일은 없어도’ 등 5부로 나뉘었고, 각각 ‘하나님에게’ ‘나에게’ ‘시인에게’ ‘어머니들에게’ ‘한국인에게’란 부제가 붙었다. 특히 1부에는 지난해 기독교에 귀의한 시인이 겪은 영성 체험이 담겨 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무신론자를 위해 시를 썼습니다. 신을 부정하면서 강한 척 하지만, 툭 건들면 울어버릴 것 같은 모든 현대인을 위한 찬미가이기도 합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게 알려지면서 이미 내가 독실한 크리스천인 것처럼 아는 사람이 많아요. 이번에 이렇게 시까지 발표했으니까요.
하지만 세례 받을 때 나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성과 영성 사이의 문지방 앞에서 내가 영성으로 향하는 문을 만나게 될지, 아니면 단단한 벽에 부딪히게 될지 나 자신도 모른다고요. 세례를 받고 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문지방 앞에 서 있습니다. 문지방 위에 한 다리를 올린 채 다른 한 다리를 마저 올렸다 다시 내렸다 하며 휘청 이고 있다는 게 정확한 고백일 겁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내게 기독교인이냐고 물으면 나는 ‘예’라고 답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가끔 주위의 시선 때문에 ‘예’라고 답하고 싶은 순간에도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건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이렇게 조금씩 믿음이 시작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의 한계 깨달은 뒤 한층 풍요롭고 자유로워진 삶
하와이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던 날, 나는 딸이 나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약속했어요. 아직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위해 내가 가진 말과 글을 바치겠다는 약속은 꼭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종교시를 썼고, 기독교와 관련된 강연도 하고 있어요. 어쩌면 이번에 발표한 시집은 하나님을 향해 ‘그동안 교회 몇 번 나갔나 묻지 마시고 이걸로 좀 봐주십시오’하고 드리는 제 부탁 말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 시집이 모두 신앙 고백으로 채워져 있는 건 아니다. 섬세한 감성의 연애시 ‘연시-김소월을 흉내낸’부터, 닭을 학대하는 양계장 실태를 고발하는 실험시 ‘양계장 보고서’까지 ‘정말 이 시들을 이어령이 쓴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만드는 다양한 형식의 시를 고루 실었다. 평소 평론과 칼럼에서 보이던 현학적이고 정련된 문장과 달리 그의 시어는 소박하기만 하다.
‘당신이 찾을 때에는 나는 없어요/ 나는 소설책 주인공이 되어/ 남들은 내 이야기를 읽을 수 있지만/ 당신은 내 말을 들을 수 없어요’(연시-김소월을 흉내낸)라고 노래하는 이어령에게선 더 이상 기존의 석학 이미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시집을 읽으며 화를 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이런 걸 기대하고 이어령의 시를 읽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다만 시의 형식을 통해 내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지금까지는 독자를 위한 ‘서비스업’으로서 문학을 해왔다면, 그래서 시적 아포리즘(경구)이나 메타포(비유) 속에 나를 숨겨왔다면, 이번엔 철저하게 나의 즐거움만을 생각하며 글을 썼어요.
그는 이번 책을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새롭게 태어난 덕분에 저지를 수 있었던 ‘유쾌한 반란’”이라고 표현했다. 다음번에는 독자들이 “이게 시냐?”고 물을 법한, 세상을 뒤흔들 파격적인 시를 쓸 생각이라고도 했다. 그가 마치 선문답처럼 공개한 시의 콘셉트는 “다다이스트 이상의 시보다 더 재미있는, 음계를 벗어난 음악 같은, 우리 언어에 바치는 헌사 같은” 시. 그는 이미 이런 시를 여러 편 써두었고, 앞으로 최소한 50~60편 정도는 더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작품들을 생전에는 발표하지 않을 겁니다. 너무 실험적이라 내 명성에는 타격을 주고, 독자들에게는 노여움을, 출판사에는 가난함만 주게 될 테니까요. 나는 평생 말로 먹고살아왔지만, 돌아보면 형편없는 기수였어요. 지금 새로운 형식의 시를 쓰는 건, 이제라도 내가 가진 언어의 기동력을 최대한 발휘해 우리말을 훌륭하게 조련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때 나는 죽어도 내 언어는 남아 불멸하기를 바라는 허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무겁고 조심스러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인간이 만든 것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압니다. 내가 남길 시가 우리 언어에 충격
내가 지금 방황 하는 까닭은
사랑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헤매고 있는 까닭은
아름다운 순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멀리 떠나고 있는 까닭은
아름다운 순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집으로 갈 수 없는 것은
사랑을 알고 진실을 배우고
아름다움은 보았지만
나에게 믿음이 없는 까닭입니다.
나의 작은 집이 방황의 길 끝에 있습니다.!
날 위해 노래를 불러 줘요. 집으로 갈 수 있게
믿음의 빛을 주어요.
개미구멍만 한 내 집이 있기에
나는 지금 방황하고 있어요.
- ‘탕자의 노래’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