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성서주일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귀한 선물로 성경말씀을 주신데 대한 감사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는 성경말씀을 가장 존중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도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표어를 가지고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우리 개혁교회에서는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으로 믿고 있습니다. 장로교 신조 제1조에
보면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16절 상반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벧후1:21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란 하나님이 숨을 불어 넣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숨이란 하나님의 영을 뜻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말하기를 성경은 임의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기록됐다는
영감설을 주장합니다. 카톨릭과 우리 개신교의 다른 점이 있다면 곧 성경관입니다. 카톨릭은 전통적인 권위를 앞세우지만 개신교는 성경의 권위를
앞세웁니다. 카톨릭은 성경을 교회의 예속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개신교는 성경이 없이는 교회도 있을수 없다고 단정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위에 세워지지 않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누가 성경으로 인정한다고 성경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하고 있기에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줄 믿습니다.
둘째,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본문 15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읽는 자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는 지혜를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지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아이가 5세가 되면 부모님들이 의무적으로 율법을 가르쳤고 6세가 되면 랍비에게서 율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디모데의 율법에 대한
지식도 그 어머니와 외조모를 통하여 배웠습니다(딤후1:5). 성경은 그 자체가 성령의 감동함을 입은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성경을 읽거나 듣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받게 됩니다. 핍박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로 변화된 것도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행9:4). 낙심중에 고향으로 돌아가던 엠마오의 두 제자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마음이 뜨거워져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전도자가 됐습니다(눅24:32, 33). 그래서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함께 일할수 있는 성령의 능력도 받게 될줄 믿습니다.
셋째, 성경은 삶의 표준이 되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본문 16∼17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헬라어로 "카논"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표준 기준 규범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 축복과 저주, 구원과 멸망의 표준이 되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바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바른 삶과 축복의 삶을 살게 됩니다. 창12:4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간 것이 축복의 삶이 됐습니다.
시119: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시119:9에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정치가 웹스터는 "미국이 받은 축복의 비밀은 성경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는 축복의 비밀도 역시 성경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므로 축복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종교 교육의 중요성/딤후3:12-17 2001-09-20
09:46:47 read : 26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백년 앞을 내다보며 원대한 계획과 꾸준한 인내심으로
시행해야 된다 는 말입니다. 이것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룻 소는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 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칸트는 "사람은 교육에 의하여서만이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웰링턴은 "종교
없는 교육은 다만 약빠른 악마를 만들뿐이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진리의 종교인 기독교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어린이 여름성 경학교와 각 기관 수련회를 통하여 영적 사람으로 더욱 성숙해 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교교육의 중요성이 무엇 입니까?
첫째,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 상반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했 습니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아이가 5세가 되면 부모들은
의무적으로 율법을 가르쳤고 6세가 되면 랍비에게서 율법을 배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그 외조모와 어머니를
통하여 성경을 배 웠습니다(딤후1:5).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받은 기자들을 통하여 기록케 했습니다(16). 그래서
우리의 신앙과 윤리에 조금도 부 족함이 없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인 증거가 몇가지 있습니다.
성경은 1500여년 동안 40여명이나 되는 각계 각층의 기자들이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전혀 오류가 없고 완전
일치합니다. 그것은 기자 모두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기 때문인줄 믿습니다. 그리고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 록까지
성경 66권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구원의 도리를 밝혀 주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인 증거입니다. 또한 성경은 교훈과 책
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 케 하는 완전한 윤리를 제공합니다(16). 이것이 곧
진리입니다. 이런 진리는 오직 성경에서만 배울수 있기에 기독교 교육이 더욱 중요한줄 믿습니다.
둘째, 창조주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 중반절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 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영적 지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에서도 제일먼저 나오는 것이 "신론"입니 다. 사도신경에서도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입니다. 주기도문의 첫 머리에도 "하 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했습니다. 일찍이 호세아
선지자는 내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했습니다(호4:6). 성 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로
믿고 깨닫는 지식에서만 구 원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삼위의 독립된 개체이면서도 본질은 완전 히 일치합니다. 사역에 있어서도
창1:26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한 것을 보 면 천지창조에 있어서는
동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구원의 사역에 있어서는 분담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만세전에 구원할 자를 선택하셨 고 예수님은 선택된
자를 속죄하셨으며 성령님은 감동, 인도, 보호의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삼위일체의 교리는 오직 성경에서만 배울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교육이 중요한줄 믿습니다.
셋째, 가장 귀한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 하반절에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 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신앙하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는 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요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
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구원자 예수님을 바로 증거키 위하여 기록됐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은 구원자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할 때 도덕적인 예 수님이나 사회 운동가로만 소개한다면 대단히 잘못된 증거입니다.
예 수님은 죄인된 나를 구원키 위해 오신 구세주입니다. 이 구원의 도리 를 바르게 교육하는 것이 기독교교육입니다. 우리는 이
교육을 통하여 체험적이고 확신있는 신앙인으로 성숙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딤후3:13-17 2001-09-20
09:47:45 read : 29
우리는 오늘 저녁에 교사 헌신 예배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금년도 여름 행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해마다 여름 행사를
개최하는데 있어서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이들 배부르게 먹이자는 것도 아니며, 간식을 많이 주자는 것도 아니고, 게임이나 율동을
많이 하자는 것도 아니며,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시키고 물놀이를 시키자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이유가 하나있다면 우리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줌으로서 그들이 어려서부터 디모데와 같이 성경을 아는 아이로 자라가게 하기 위함이며, 구원을 얻게 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어 지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한 자로 자라게 하기 위함에 그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한가지를 덧붙인다면 21세기를
이끌어 갈 교회의 지도자를 훈련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우리 주일학교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기관입니다. 이것은 개혁주의자들의 한결같은 부르짖음입니다. 그들은 세 가지를 힘있게 부르짖었는데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라는 슬로건입니다.
1. 기독교 교육의 기초는
기독교 교육의 기초는 오직 성경입니다. 이
성경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입니다. 이것을 신명기에서 분명히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신6:1-3절을 함께 읽어보면서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1)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 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 2)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3)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들에게 주신 명령이 무엇입니까?
신6:2절입니다.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잘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중요한 책임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부지런히 자녀들에게 토라를
가르쳤습니다. "토라"라는 말은 율법이라는 말입니다. 이 율법을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든지 길에 행할 때든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명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앙을 전승하는 전승신앙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면 가르치는 교과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물론 성경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4, 5절입니다.
신6:4,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기서 말씀의 시작을 "이스라엘아 들으라!"라고 시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백성들의 교육헌장입니다.
이스라엘 교육 정신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그들의 교육헌장은 신6:4절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하는 말씀인데 이것을 "세마"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말의 히브리어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교육의 중심입니다.
우리가 듣고 또 들어야 할 말씀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율법"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 교육의 헌장이며, 교육 내용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이스라엘아!
들으라!"라는 명령입니다. 기독교교육은 듣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들음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그 들음이 세마입니다.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둘째는 그 여호와라 하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육 내용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그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라고 하십니까? 교육 방법입니다. 신6:6-9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6)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말씀을 좀 분석하여 보면 교육의 장은 가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은 그
부모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인 성경을 제일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할 사람은 그 부모입니다. 그리고 7절에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집은 다른 나라의
집들과 다른 점이 오직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문설주에 성경구절이 붙어 있는 메주자(mezuzah)가 있는 것입니다. 호텔에 들어가도 매주자가
문설주 옆에 붙어 있습니다. 방마다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은 출입할 때마다 그곳에 입을 맞춥니다. "하나님 말씀을 손목에 붙이고
이마에 매는 것"은 네 손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불완전한 인간의 지식보다 하나님의 지혜인 말씀에 의존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22:6절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무는 어린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부모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부모들의 의무를 다 한 결과 그 민족은 세계 열방이 두려워하는 민족과 국가를 이루고 있었으니
이것은 약속의 성취입니다. 신6:2절에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강성하리라"라고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면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성취입니다.(신28:13)
2.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책인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영감의 책입니다. 본문 16절 말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감동"이란 말은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는 뜻입니다. 벧후1:21절에는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임의로 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일점일획이라도 잘못된 오류가 없는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의 책이기 때문에 우리가 읽으면
감동을 받습니다.
둘째는 성경은 구원을 이루는 지혜를 얻게 해 줍니다. 본문 15절 말씀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삼일만에 다시 부활 하셨다는
사실도! 성령을 보내 주셨다는 사실도 성경을 통하여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의 책입니다.
3. 성경은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 16절 말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온전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을 만드는 일을 성경이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전한 인격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성경은 네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첫째기능은 교훈해 줍니다. 교훈이란 좋은 말로서 잘 가르치고 타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교훈 집이 있지만 성경 만한 교훈 집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교훈 집은 아닙니다.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교훈하기에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히4: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교훈의 능력을 말합니다.
둘째 기능은 책망 적인
기능입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났던지 잘못하였을 때에 책망을 하였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을 찾아가서 다윗의 죄에 대하여 꾸짖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책망을 하였고, 예수님은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아" 라고 책망 을 하였습니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에서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피아 교회만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교회는 주님께 책망을 들은 교회입니다.(계2:-3:) 성경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죄에 대한
책망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책망의 말씀이라도 달게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할 때에
듣지 않다가 멸망을 당한 왕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 할 때에 그 말씀을 듣고 겸손히 회개하여 오히려 범죄하고
더 큰 축복을 받은 왕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로 온전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책망이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기능은 인생을 바르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것의 규범이며, 기준이며, 삶의 푯대입니다. 성경을 규범으로
사는 민족과 나라가 강하고 질서가 있으며, 번영합니다. 성경을 규범으로 살아가는 가정이 잘되고 행복합니다. 잠29:1절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교육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세상은 마지막 날이 되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마음이 강팍해져 가고, 어두움을 좋아하고 빛을 미워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쫓아가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여 혼돈 된 세상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바른 교훈을 싫어하고 옳은 충고를 하면 원수가 됩니다.
이미 대학의 학문이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를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학교 교육이 온전한 인격자로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도 이미 물 건너갔습니다. 세상에 최고 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혹 돈 때문에 자기 부모라도 해 할 수 있지만, 비록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의 바르게 하는 말씀으로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으면 불효자라도 효자가 되게 하고! 깡패라도 사회의 모범생이 되게
합니다.(딤후4:3)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교회에 두 가지 선물을 주셨는데
첫째는 성경을 주셨고, 둘째는 성경을 가르칠 교사를 주셨습니다. 이 지구 촌 어떤 곳에는 성경을 보고 싶지만 성경이 없어서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성경은 있으나 가르칠 교사가 없어서 그 의미를 알지 못해 안타까운 인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성경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성경을 해석해 줄 하나님의 종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부디 바라기는
우리는 부지런히 가르쳐야 하고,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세상에 배울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성경을 배우는 일입니다. 이는 우리
부모들이 하나님께 받은 명령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사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는 일이 우리의 손에 달린 줄 자각하시고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 교회 성도들은 교사들이 어린아이를
한사람이라도 더 가르칠 수 있도록 어린아이들을 모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과거 6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은 주일학교 교육의
전성시대였었습니다. 그때에 교사들은 열심이었습니다. 헌신적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주일학교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아이들이 이미 성년이 되어
교회의 중직자들이 되었고 한국교회의 축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가 이렇게 흥왕 하게 된 것은 그때의 주일학교 교육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일학교교육의 부재시대요,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주일학교의 모습이 20년 뒤에 우리 교회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심각하게 보아야 합니다.
미국의 실업가로서 체신부장관을 지낸 존 와너메이커는
"백화점 왕"입니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탁월한 판단력과 정확한 경영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가 투자해 구입한 물건들은 엄청난 이윤을
남겼습니다. 와너메이커가 투자하는 것은 항상 최고의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어느 날 한 신문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때 와나메이커는 말하기를 "내가 열두 살 때 최고의 투자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2달러 50센트를 주고 성경 한 권을 샀습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답니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와나메이커는 가난한 소년시절에 성경을 읽고 꿈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대부호가 됐습니다. 그는 성경 말씀을 쫓아가므로 인해서 성공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제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니 많은 길이 있다고 해도 속지 마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입니다. 이 성경을 붙들고 살면 그 인생이 바뀝니다.
축복의 인생! 소망의 인생! 승리의 생애가 됩니다. 하늘의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한 인생이 됩니다.
금년에도 우리 대선의 온 성도들이 교사는 교사들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하시고! 우리 성도들은
나름대로 섬기는 일에! 또는 주변에 있는 어린아이들을 모아 오는 일에 힘을 합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더운 여름이 오히려 축복을
가져다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배우고 확신하고
거하라/딤후3:13-17 2001-09-20
09:48:49 read : 52
지금 우리는 한 천년을 보내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려는 기대와 불안,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시간에 서 있습니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불확실한 시대를 준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의 중요한 핵심은 14절의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세 가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바울이 디모데에게 줄 때에 시대적 상황을 유념해야 합니다. 본문을 읽어 드리지는 못했지만 딤후 3장 1-5절까지에는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상세하게 열거하고 있습니다.『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하였고 구약 다니엘서 12장 4절에는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 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하여 종말론적 삶을 사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교훈해야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13절에는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어쩌면 바울이 살고 있던 시대와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가 이렇게도 똑 같을 수가 있을까요?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14절 첫 머리에
나오는 『그러나』 라는 접속사에 유념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지고 악이 득세하여 악한자가 잘되고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속이는 사람이
많아서 정직하게 살면 죽을 것 같아도" 『그러나』 너희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세 가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첫째-
『배우라』고 합니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 중에 하나는 스승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보다 나은 사람이 있고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은 사람에게는 장점을 배우고 못한 사람에게는 단점을 보고 반성하면 곧 이들 모두가 스승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사람이 됩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합니다.
배움이 중요하지만 모든 것이 유용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배우라』는 것은
말씀을 배우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진리이고 생명이고 창조이며 기초이며 핵심이며 사람을 온전케 만드는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 히브리서 4장12-13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 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였습니다. 말씀 앞에서는 살인마도 강도도, 사기꾼도 핍박자도 회의론자도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류 윌리스라는 사람은 자기의 친한 친구가 고리타분한 신앙에 빠져있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그는 합리적으로 성경의 허구성을 파헤치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니 성경을 읽지 않을 수 없었고 성경을 정독하기를 시작했습니다. 한 번을 정독하고 나니
회의에서 확신으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두 번을 읽고나니 믿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세 번 째 읽다가 그는 완전히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허구성을 증명키 위해 성경을 읽다가 성경이 영원한 진리라는 증거의 소설을 쓰게 되었는데 그 소설이 영화로 제작되어 불후의
명작이된 『벤허』라는 작품입니다.
말씀은 나를 변화시킵니다. 내 생각을 변화시킵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뀝니다. 말씀 앞에 철저히 나를 내려놓고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말씀이 나를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둘째- 『확신하라』고 합니다.
사격하는 자는 『정조준』해야합니다. 백발백중하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총을 쏘는 사람과
방향도 목표도 없이 총을 쏘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一石二鳥 』, 『도랑 치고 가재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같은
말입니다.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두 가지를 충족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성경 지식을 많이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을 읽고
맥을 확실히 잡고 안 것에 대해서는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성경에는 모든 것이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맥을 잡지 못하고 읽으면 열번 스무
번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무엇을
확신해야할까요? 첫째가 『내가 죄인이다』라는 것이고 둘째는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확신입니다. 성경에 다른 것은 다 알아도 이것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성경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합니다. 반대로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이 두 가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성경을 읽었다면
성경의 중심을 바로 잡은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젭니다.
성경에는 예수를 만나서 구원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상황이 다를지라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기 잡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빈
그물을 채우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5:8』 하였고,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만나지만 『자신의 토색을 4배로 갚겠다고 회개함니다. 눅19:8』.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희망의 확신도 중요하고 축복의 확신도 중요하지만 『내가 죄인이라』는 확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만일 이 확신이 없다면 예수를 구주로
믿지는 못합니다.
두 번째로 확신해야할 것은 『나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라는 확신』입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억만금을 가진 거지
노릇하다가 죽는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확신해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사실은 『나는 죄인이었으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셋째-『거하라』고합니다.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의 의미는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병법에 보면 『성을 빼앗기보다 성을 지키기가 더 어렵다』고
합니다. 사업을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정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은혜 받기도 어렵지만 그 은혜를 유지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명예를
얻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습니다.
초대교회에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스데반과 빌립 이외에는 집사노릇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12제자 가운데서도 베드로 요한 이외에 크게 두각을 들어낸 사도가 없습니다. 고인이 되신 이상근 목사님이 저의 학위취득식에 오셔서
설교해 주신 후 돌아가시는 차를 배웅하는 자리에서 『장 박사 학위는 취득하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우이』 하시던 말씀이 뇌리에 남아 개을러지지
않으려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욕심 내서 없는 것 자꾸 달라하지 말고 있는 것 지키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맺음말-우리는 지난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반성은 할 수 는 있습니다. 다가오는 새 천년에 대해 지나치게 기대도 말
것이며 그렇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내용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의 말씀인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미 진리 안에 확고히 서 있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세기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요 한 천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뜻 깊은 주일에 다시 한 번 간절히 권면합니다. 말씀을 계속 배우고, 확신하시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멘
말씀으로
돌아가자/딤후3:14-17 2001-09-20
09:51:29 read : 57
미래학의 권위자 알빈 토훌러(Alvin Toffler)의 저서 가운데 1990년 도에 내놓은 '권력의
이동(Power Shift)'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여 기서 인류 역사를 움직이고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의 힘이 어
디로 어떻게 옮겨지고 있는가를 예리한 눈으로 분석해놓고 있습니다. 그 의 주장에 따르면 예전까지는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힘이 무력 이나 금력 또는 권력 등이었지만 이제 장차 올 미래 사회에서는 그것들 을 대신하여 지식의 힘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돈 있 는 자, 권력 가진 자가 힘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가진 자가 힘있는 자요, 땅을 많이 소유하고 돈을
많이 가졌다고 부자가 아니라 앞으로는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요, 군사적이고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 다고 해서 강한 자가
아니라 지식의 힘을 가진 사람이 진정 강한 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지식
없이 산업화는 더 이상 앞 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지식 없이는 어떤 첨단 제품이나 군사무기 체제도 발달할 수 없다.' 정보와
지식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리라 는 말이 말뿐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이 금 력과 무력에
이어 그 둘을 훨씬 능가하는 지식의 무서운 힘까지 자유자 재로 소유하고 써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실로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
습니다.
지식의 증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쏟아져 나오는 지식의 홍수의 흐름을 보노라면 갑자기 소름이 끼치고
두려운 예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질은 고사하고 양만을 놓고 따져보세요. 연일 출간되는 책들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아 세요? 어떤
분이 미국 예일 대학교 도서관에서 1년 동안 구입한 책의 분량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나 되었을까요? 사람이 그 장서를
읽는 데만도 매일 아침부터 시작해서 쉬지 않고 꼬박 10시간 동안 읽을 경우 총 180년이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하루에 2시간
정도 읽는다고 본 다면 무려 900년이 소요되는 분량입니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야 겨우 대 학 도서관에서 1년 동안 구입한 장서를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양만 해도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1년 동안에 구입한 양이 그 정도 인데 만약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다 읽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처 럼 지식의
물줄기는 한 개인은커녕 한 나라의 힘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도도하게 밀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식의 증가의
속도도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옛날 농사가 주된 인간 의 활동이었던 농촌사회를 생각해보세요. 그 때는 오늘날처럼 그리 많은 지식이
필요치 않았을 거예요. 기껏 해야 농사에 관한 지식 정도가 아니 었을까요? 그 이외의 지식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정도였을 겁니
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요. 앞으로는 농촌에 사는 사람도 컴퓨터를 만질 줄 알아야 하고 인터넷을 통해 농업
정보를 나누 고, 신기술을 배워야 할뿐 아니라 최신 기술로 개발된 전자제품들을 자 유롭게 다룰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지식은 양적으로 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간의 세포 속에 들어있는 엄청난 비밀까지
하나하나 파헤쳐지고 공개되는 실정입 니다. 유전자 공학을 통한 인간 복제도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 식을 통한 첨단기술의
발달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 니다.
어디로 튈 것인가? 통계에 의하면 1700년대까지의 지식을
100으로 보았을 때 1900년도 에 이르러 배로 증가하였고 그 후 50년이 지난 1950년대에 또 다시 배 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지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과 동시에 그 주기가 점점 더 짧아져서 이제는 5년, 3년 이내에 증가를 계속하고 있고
최근에는 배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수 십배, 수 백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미국 주립대학 연합회 회장으로 있는
애플베리(James Appleberry)는 지식이 두배로 증가하는 기간이 2020년에 가면 73일 정 도로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폭발적인 힘을 가지고 최 고의 속도로 증가하는 지식 앞에 인간은 두손을 모으고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뿐입니다.
여기 Compact Disk 한 장이 있습니다. 650 메가바이트 분량의 이 CD 한 장 안에 대형 백과사전 한 질이 다 들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개 발된 제품에 의할 것 같으면 일간신문 50년 분량의 기사 내용을 이 한 장에 다 넣을 수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우리 인 간은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가공할만한 지식의 홍수 속에 파묻혀 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지식이 어디까지 증가할 것이냐 하는 것은 아무 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지식이 미래 인류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냐에 대해서도 전혀 예상하지를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지식이란 공이 어떤 방향으로 튈 것인가 하는 것도 초미의 관심사가 아
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선한 힘으로 작용하면 그래도 다행이겠으나 만 일 나쁜 힘으로 작용할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그에 따르는
재앙은 온 인 류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지게 됩니다. 지식이란 무엇이
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이 과연 영혼의 문제, 인류의 구원의 문제에 얼마만큼이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점점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이 시대에 인류의 빛나는 지식문명이 과연 얼마만큼이나 이 사회를 구출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자연과학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들 거기에서 영혼구원에 대한 지식 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생물학을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보아도
거기에 영혼구원에 대한 지혜가 들어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의학을 열심히 해도 거기서 영혼구원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법학을 공부해도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이 시 대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에 대한 바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 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만이 우리의 영혼의
문제를 말하고 있 습니다. 어떻게 죄인이 구원함을 받을 수 있으며,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이 시대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분명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 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성경이 다른 책하고 달리 위대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구
원에 이르는 지혜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안내서 입니다. 정신수양이나 교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에 비해
세상의 지 식은 우리의 영혼을 죽음과 죄의 세력으로부터 건져내는 데 아무 소용 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결코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생 교훈과 지식은 제시할 수 있을지 몰라 도 영혼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만은 세상의
어떤 지식도 바른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성경만이 이 지혜의 원천입니다.
어두운 감옥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000년도 우리 교회 표어를 '말씀으로 돌아가자' 라고 정했다 해서 '과거로 후퇴하 자'
라든가 '옛날로 돌아가자' 라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합 니다. 오히려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의 지혜와 능력과 은혜를 얻는 길만
이 앞을 향해 바르게 전진해나갈 수 있는 최상의 지름길이 된다는 사실 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새천년의 문을 여는
비밀코드가 있 습니다. 이 세상을 이길 유일한 힘과 권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 온다는 사실을 믿고 오직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 신의 믿음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말씀 속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 를 깨달아 늘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지혜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옵니다. 세상의 지식으로도 구 원이 가능하다면 성경은 존재 하나마나입니다.
누구나 구원의 지혜를 얻 으려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의 언어를
다 섭렵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늘 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다 통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 나 아무리 이 세상
모든 언어를 다 알고 모든 지식을 다 통달했다할지 라도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가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에 이르 게 하는
지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 니다.
일전에 말씀 드렸던 페스카마호 선상 반란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이 되어 사형언도를 받아 부산 구치소에 복역중인 전재천씨라는 분을 기억 하실 것입니다. 저희와 면담을 한 뒤로 세례를 받겠다는
연락이 와서 그 분을 따로 돕고 계신 김정득 목사님과 함께 구치소로 가 지난 크리스마 스 예배시에 세례를 베푼 적이 있습니다.
세례 문답을 하는 중에 이 분 이 감옥에서 경험한 생생한 간증을 들으면서 감옥 깊은 곳까지 뚫고 들 어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 찬양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 습니다. 처음 사형이 확정되는 순간 도저히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가 없
었다고 합니다. 순간 순간 죽고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생각이 자기 가 족에게 미칠 때면 너무나 답답하고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는 겁니 다. 궁리 끝에 '나는 사람을 직접 죽인 일도 없고 동료들의 협박에 못이 겨 어쩔 수없이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저지른 일이니 형량을 감해달라' 는 내용을 적어 법무부장관 앞으로 탄원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국에 발각되어 징벌을
받게 됩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자기 의 사정을 알릴 길이 없다고 판단되어 그렇게 한 것뿐인데 반대로 일이 꼬이고 만 것입니다.
냉방이나 다름없는 작은 독방에 갇혀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얼마나 불안하고 괴로운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먹는 것도 변변치
않고 팔 다리는 사슬에 묶여 불편하기 짝이 없고 날씨는 추워 잠시도 가만히 앉 아있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칠 것만 같더라는 거지요.
거기다 고양이만한 큰 쥐들이 자기 주위를 어슬렁대면서 도망가지도 않고 틈만나면 달려들 어 물어뜯는데 잠은 잘 수가 없고 마음에는
분노의 불길만 치솟아 오르 고 원한만 쌓여 가는데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불덩어리 아무런 희망도
없이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지나던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꿈이 자신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자기 머리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지더니 하얀 구름이 저 멀리서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랍니다. 구름 주위로 찬란한 불
꽃이 번쩍거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흰옷을 입은 한 사람이 나타나더 니 이글거리는 불덩어리를 하나 집어들고는 자기를 향하여 힘차게
내던 지더랍니다. 쏜살같이 자기를 향해서 날아오는 그 불덩이를 보는 순간 "으악......" 하고 뒤로 넘어져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그 불덩어리 가 하나님의 성경책으로 변해 있더랍니다. 그 순간 큰 깨달음이 오더랍니다. "아... 나는 지금까지 이
공산주의 사상에 깊이 빠져 지내왔는데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통해서 내게 무엇 인가 주실 말씀이 있는가 보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 때부터 하 나님의 말씀을 펼쳐서 읽는 중 말씀이 하나하나 깨달아지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게 되었고 그
죽은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얼 마나 못할 짓을 했는가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족들이 자기 때문에 당했을 고통은
둘째치더라도 그들이 그 당시 받았을 고통과 상 처들이 가슴깊이 느껴지더라는 겁니다. 회개의 영이 자신을 감싸기 시작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구세주가 되심을 마음속에 확신하게 되 었고 십자가 신앙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형수에게도 임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능력의 말씀인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김현장이라는 지존파 두목을 아실 줄 압니다. 그
사람이 감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뭐라고 고백했는 줄 아십니까? 말씀을 읽는 순간 그리스도가 보이기 시작하고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형수 고재봉이라는 사 람을 아시지요?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도끼로 사람을 쳐서
죽인 사람 아닙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화를 받아 새 사람이 된 다음 전도에 힘써 그곳에 있던 이천명의 죄수 중
천팔백 여명에게 말씀 을 전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 였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요? 세상의 지식이나 제도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그런 역사를 일으켜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 받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통하여 구원의
지 혜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원하기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동안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셔서 그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삶 속에서 날마다 복음을 전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 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
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책들은 인간이 다 머리 속으로 생각 해서 적어
놓은 글들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 기에는 하나님의 감동이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말씀에는 능력
이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하나님의 감동이 스며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숨결 본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이 헬라어 '데오프뉴스코스 (theopneuskos)' 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말과 '숨결'이라는 말이 합쳐
진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해 놓 으셨다는 것입니다. 저자를 감동시켰다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하나 하 나, 단어 하나하나, 장, 절 하나 하나를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그 속에 하나님의 숨결을 집어넣으시고 하나님의 감동을
집어넣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거기에 집어 넣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전해질 때 자연히 하나님의 능력이 그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기 에 놀라운 신앙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못하는
이유가 무 엇입니까? 기도하면서도 왜 우리에게 능력이 없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 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역사가 그 속에 스며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기 적이 나타나고 능력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 까이 하시는 한 해로 만드셔서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성령의 놀라운 기 적과 능력을 체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 충만했다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디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했습 니다. '말씀 충만은 곧 성령
충만이다.' 옳은 얘기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 있기만 하다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 은 놀랍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 능력으로 전도하십시오. 그 능력으로 봉 사하십시오. 그 능력으로 기도하십시오. 그 능력으로 선교하십시오. 무엇
보다도 먼저 말씀의 위력을 체험하십시오.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와 능력을 덧입으십시오.
말씀의
권위아래 복종하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 말씀의 권위 아래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 말씀의 권 위 아래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말씀의 권위 아래에 두어야 합 니다. 남자의 생각이나
여자의 생각이 그 가정을 주장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뜻이 그 가정을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축복 받는 가정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말씀이 가정을 다 스리도록 하십시오. 온 가족이 말씀의 권위 아래에서 서로 사랑하고 복 종하십시오.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능력을 체험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 을 말씀의 권위 아래 두십시오.
성경이 성경을 여러분의
사업이나 직장도 말씀의 권위 아래에 두십시오. 어떤 분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모르시는 말씀 마세요. 그렇게 해서는 아
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아세요? 말씀도 중요하지만 빵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말씀대로 안되는 일도 있는 법입니다. 제발 저를 괴롭히지 마세요." 거짓과 불법으로 돈 을 벌어보려는 분들이 대체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들으세요. 직장의 특수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도 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말씀의 권위 앞에 복종하 며 살려고 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얄팍한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성 경을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내
사정이나 형편에 따라 짜맞추려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성경이 말하도록 해야합니다. 항상 말씀에 비추어 우 리의 정신, 사상,
인생관, 세계관을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 씀을 나의 유일한 권위자로 삼고 내 신앙과 내 행동의 유일한 규범으로 알아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 인생에 대한 모든 해답 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아래 두시고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하늘의 위대한 능력을 체험하 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14절 말씀 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이 말씀을 통하여 세 가지 실천사항을 올 해 동안 이루어 보려고 합 니다. '말씀을 품자!' '말씀을
배우자!' '말씀을 나누자!' 입니다. 말씀을 읽고 말씀을 품고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나누려면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
하여야 하고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하고 말씀을 어떤 것 보다도 더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배우시기를 원하십니까? 얼마나 읽고 계십니까?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나의 사랑하는 책 어느 집사님 댁에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이 심방을 오셨습니다. 예배 를 보려고 하자 기회는 이 때라고 생각하신 집사님께서 자신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를 보여드릴겸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뜻에 서 자기 아이를 불러 부탁을 합니다. "아가야 너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책
있지 않니? 엄마가 늘 보던 거 있잖아. 그것 좀 갖다 줄래?" 엄마는 당연히 성경책을 갖다 주리라고 기대하고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입 니다. 얼마 안있어 책 하나를 달랑 들고 오는데 보니 영 다른 책이더라 는 것입니다. 무슨 책이었을까요?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책'은 성경책이 아니라 백화점 세일품목이 담겨져 있는 홍보 책자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말씀을 가볍 게 여기는 사람은 영적으로 왜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말씀을 귀히 여기는 것이 예수 그리스 도를 귀히 여기는 삶임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을 지배하도록 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읽는 모든 사람의 영혼에 영감
을 끊임없이 불어넣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 를 가지고 있어서 누구에게로 가든지 구원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말씀에 는 능력이 있어 말씀을 뜨겁게 사랑하고 복종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말씀에 붙들릴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 다.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말씀을 뜨겁게 사모합시다. 말씀을 펼쳐서 읽 기 시작합시다. 말씀을
적극적으로 가슴에 품읍시다. 말씀을 열심히 배 웁시다. 말씀을 아낌없이 나누며 살아갑시다. 말씀으로 새천년의 문을 열어갑시다.
< 기도 > 거룩하신 아버지! 저희들이 2000년 한 해를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표어 아래
시작하려고 합니다. 사랑의 주님, 주께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중심으로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우리의 신앙과 행동의 유일한 규범으로 알아 그 권위 아래 복종하며 살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다 체험하게 하옵소서. 늘 말씀을 품고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말씀의 능력이
우리의 삶과 가정과 기업과 교회 위에 강력하게 나타나게 하시고 그 능력을 힘입어 힘차게 전진하게 하옵소서. 말씀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모든
성경은/딤후3:14-17 2001-09-20
09:52:22 read : 60
여기 위대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정치문제를 다룬 책이 아닙니다. 철학문제를 다룬 책도 아닙니다. 경제 문제를
다룬 책도 아닙니다. 문학이나 사상이나 역사나 사회학을 다룬 책이 아닙니다. 어떤 개인의 인물사를 기록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인간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1,600여년 동안 약 40여명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개성과 취미가 다르고, 문화적 수준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감동을 입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감동'이란 '하나님께서 호흡하시는'이란 뜻인데 사람이 하나님의
생기로 생령이 된 것 같이(창2:7) 성경 말씀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절대 영감성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책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어야 될 것을 알리는 책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영생의 책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책이요,
죄인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는 책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생명을 다루는 책입니다. 죄인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영생문제는 천하를 다루는 문제보다 크고, 급하고 중대한 문제입니다. 오늘도 본문을 중심으로 '모든
성경은'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함께 은혜를 받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성경은…
1. 나를 상대하는 책입니다.
본문 14절에도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했습니다. 15절에서도 "또 네가"라고 하였고, "너로"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이 '너'라고 하는 개인을 상대하는 것은 구원이
개인적임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시대시대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상대하고, 나를 구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철저히 개인적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철저히 배워야 할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거하라'는 말은 끝까지 그 상태를 유지하며 머물라는 말입니다. 계속적인 거주를 의미합니다. 성경을
배우면서 예수를 알고, 성경을 배우면서 영생을 알고, 성경을 배우면서 천국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소중한 말씀이기에 누구에게서 배웠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곳은 성경을 가르치는데 내세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을 퇴색시켜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특히 이단은 성경을 가르치는데 자기 중심적으로 가르쳐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가르치는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디모데는 성경의 진리를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배웠습니다(딤후1: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진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 바울을 통해 철저히 배웠습니다(10-11절,행14:12) 오늘도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비결입니다. 모든 지혜와
보화가 이 성경 말씀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이 나를 상대하면서 오늘도 바르게 배우도록 요구하고 있고, 배운대로 확신에
거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2. 구원을 얻게 하는 책입니다.
본문 15절 말씀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죄로 타락한 죄인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리는 구원의 책입니다. 인생이 지닌 문제는 정치문제도 아닙니다. 인생이
지닌 문제는 경제문제도 아닙니다. 과학문제도 아니요, 교육문제도 아니요, 세계 평화문제도 아닙니다. 환경문제도 아닙니다. 이런 문제들은
인생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는 영생문제입니다. 이 영생문제를 성경이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로
하여금 믿어 구원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구원의 길이 하나밖에 없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행4:12). 오직 예수 그 분만이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실 자이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방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끝이 나게 됩니다. 성경의 기록 목적도 바로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구원자 예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해 기록하고 있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이 성경이 바로 구원을 얻게 하는 지혜서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3. 신전 인격자로 만드는
책입니다.
본문 16절과 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는 이제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에게 교훈을
주고, 잘못된 길로 갈 때에는 책망을 하고,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바르게 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잘못되었을 때 우리의 길을 교정하고, 회복시키며, 바로 잡아줍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게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땅의 가치관이 아닌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땅에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으며 살아야 합니다(3:1-2). 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땅의 것에 집착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땅에 것에 너무 목숨을 걸지 않나 싶습니다. 혹시 땅의 것이 부족하거나
없으면 살지 못할 것으로 안절부절하지 않습니까? 무언가 땅의 것을 손에 쥐어야 안심하고 사는 연약한 성도들은 아니십니까?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로 예수 믿고 구원을 베푸신 것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함에 있습니다. 성도는
자기 욕심만 챙기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는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 '온전한'이란 말은 '완전히 적합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적합한 사람, 선한 일을
행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꼭 필요한 사람,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기에 알맞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모든 성경은' 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누구도 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성경은
오늘도 나를 상대하며 나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성도로 하여금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고 했습니다. 이기적인 성도의 삶이 아니라 이타적인 삶을 살도록 우리를
변화시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는 고상한 삶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선한 일을 열심 내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믿음의 삶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딤후3:14-17 2001-09-20
09:53:21 read : 38
성경학교에 물심양면으로 도웁시다.
밀알제단이 세워지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여름 어린이 성경학교가 7월
22일(월) 오전 9:30분부터 24일(수) 오후까지 3일간 열리게 됩니다. 성경학교는 이름 그대로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으나 모든 교육의 소재(素材)가 성경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학교 교사는 어린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자로서 성경에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아이들의 정서에 맞도록 잘 요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일학교 교육이 범하기 쉬운 과오가 무엇인가? 성경을 하나의 교리적으로만 가르쳐 구원에 관한 지식만 전달해서는 안됩니다.
모태로부터 신앙생활을 한 자들이나, 어려서부터 주일학교 교육을 받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무엇인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기나 중년기에 들어서면서 교회의 제도적인 것에 염증을 느낀 자들이 교회를 이탈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이단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어떤 이론이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개인적인 사건입니다.
바울은
그가 임종을 앞에 두고 젊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할 때 세속적인 가치관을 거부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중심에서 자신을
세우고, 그후에 양무리를 치는 사역자가 될 것을 부탁했습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그러면 이 성경은 지금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가?
첫째: 성경은 당신에게 구원의 확신을 줍니다.
읽을 말씀☞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14절)
본문 앞 13절에 보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말씀하신 후 14절에서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이는 앞의 속된 가치관을 부정하고 뒤에 나오는 영적인 가르침을 따를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중요한 단어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배운다」는 희랍어 「에마테스 - ??????」인데 2인칭 단수 능동태이며,
다른 하나는「확신한다」는 「에피스토테스 - ?????????」로서 3인칭 단수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너가 배우는 노력을 통해
열심히 행하면 그가 확신을 주실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배우는 열심히 수반되지 않고는 확신을 얻은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얻어지는 어떤 의지나 신념이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 언약의 말씀을 통해서 주어진 은총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가르치는 교사로서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느냐」하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함은 제자에 대한 스승의 책임을 묻는 말입니다. 잘 배워야 할 제자의 사명도 중요하지만 잘 가르쳐야 할 스승의 사명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역을 통해서 세우기도 하고 넘어지게도 합니다. 그러므로 후일에 선생된 자들의 받을 심판이 무서운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태복음 18:6)고
했습니다. 주님은 어린아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유대인의 격언에 「자식을 사랑하거든 상위에 고기를 올려놓지 말고
바닷가로 데리고 가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 그리하면 평생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라는 후세들을 바르게
교육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 세워 두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디를 가도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창세기 39:3) 주일학교의
연장인 성경학교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둘째: 성경은 당신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읽을 말씀☞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5절)
디모데의 신앙교육은 어린 유아기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디모데후서 1:5)고 했습니다. 유아기에 철저하게 배운 교육은 평생동안
잊어지지 않습니다. 모세가 그 어머니에게 젖을 먹으면서 배운 히브리사상은 사십년 동안 바로의 왕궁에서 배운 애굽의 사상을 능가한 것입니다.
바울의 편지속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희랍말로 「엔 크리스토스 -?? ??????」라는 말인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이 말을 자주 사용함에는 자신의 삶속에 잊을 수 없는 다메섹 사건이 있었습니다(사도행전 9:5). 그가
예수밖에 있을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었으나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을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렸는데 오히려 기쁨이
충만했던 것입니다(빌립보서 3:8).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성경에 구체적인 경제학
이론이 없으나 경제의 뿌리인 물질을 다루는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누가복음 12:15). 성경이 정치학을 가르치지 않으나 모든 권세가 위로부터
주어짐을 가르칩니다(로마서 13:1). 성경이 과학적인 이론을 가르치지 않으나 모든 사물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줍니다(로마서
11:36). 영국의 심프슨 교수는 환자에게 고통 없이 치료하는 비결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창세기2:22절에서 하나님이 하와를 창조하는 모습을
보고 1847년 마치제 클로로포름을 발견했습니다.
셋째: 성경은 당신을 교육할 유일한 책입니다.
읽을 말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6절)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하면 어떤이들은 말하기를 「성경이 사람의 손으로 기록되었는데 어찌 하나님의 말씀인가」라고 반문합니다. 물론 성경을 기록한 분은
선지자와 사도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기록할 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혹은「예수께서 가라사대」라고 하심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들의 사상과 인격과
감정을 감동하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록하도록 간섭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한점의 오차나 오류도 없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을 교육하는 백과사전이요, 인간의 가치관을 바르게 형성하는 영적인 종합훈련장입니다. 성경만이 인간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인생의 교과서입니다. ① 성경은 당신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여 당신의 무지를 깨우쳐 교훈하는 책입니다. ② 성경은 당신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불순종할 때 당신을 책망합니다. ③ 성경은 당신이 범죄했어도 죄에서 회개하고 돌아서서 바르게 살아가기를 가르칩니다. ④
성경은 당신의 구원이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당신을 주님의 분량까지 자라게 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이
본 받아야 할 영원한 푯대입니다(빌립보서 3:12-14; 히브리서 12:1-2).
「세익스피어의 책 한권과 인도와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물질적인 것보다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정신적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날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자녀들에게 돈을 물려주지 말고 돈을 관리할 수 있는 삶의 지혜인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쳐 믿음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마태복음 16:26). 우리의 생명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의 비밀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넷째: 성경은 당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합니다.
읽을 말씀☞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17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브리서 4:12)고 했습니다. 당신이 성경 앞에 바로 서기만 하면 세상에 속된
것을 다 벗겨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성경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유한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것이므로
이를 해석할 때 몇가지 원리가 따릅니다. ① 계명적 원리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 지켜는 우상숭배나 부모공경 같은 영원히
불변하는 것입니다. ② 변형된 원리입니다. 구약의 계명이 신약의 복음으로 변형된 것으로서 안식일이 주일로, 제사가 예배로 변형된 것입니다. ③
역리적 원리입니다. 버리면 얻고, 죽으면 사는 것으로 이것의 최후 입증은 예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④ 풍속적 원리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문화적인 차이를 서로 용납하는 것으로서 입?추는 인사법이나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 등입니다.
16세기 영국의 제임스왕의
애기입니다. 국내에 도둑이 만연하여 소탕작전을 벌렸습니다. 그래서 만약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사형을 처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암스트롱이라는 자가
양 한 마리를 훔쳐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사형을 면키 위하여 지혜로운 깨를 써서「왕이 번역한 성경을 죽기전에 읽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허락을 받아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빨리 읽으면 죽게 되니 한 구절씩 천천히 묵상하면서 읽었습니다. 엄청난 시간이 걸리자
사형일자가 연기되었고 나중에는 집에 가서 읽게 되는 특혜를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그는 변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이제 나를 죽여
주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하니 「이제 나는 죽어도 천국에 가니까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온전히
변화시켜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디엘 무디는 말하기를 『나는 한때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어느날
믿음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뚝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믿음은 그렇게 오는 것 같지 않았다. 어느날 나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는 말씀을 읽었다. 이전에는 나는 성경을 덮어놓고 기도만 했으나 그러나 이제는 성경을 펴서
놓고 기도하면서 공부하니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속에서 역사합니다.
성경은
무엇인가?/딤후3:14-17 2001-09-20
09:54:13 read : 82
역사학자 벤눔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오 천년 역사는 그들이 그들의 자손에게 두 가지를 물려준
역사라고 했습니다. 무엇 무엇일까요? 하나는 성경이요, 또 하나는 예루살렘의 성전 곧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주신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죽어 가는 모든 인생들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과의 사이에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설교를 듣는 사람과 듣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에도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이 성경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이 너무도
적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① 다른 많은 이야기를 하느라고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공부해라, 숙제해라, 그림 그리라,
피아노 치라, 노래공부 하라, 영어회화 하라, 또는 태권도를 배우라, 영양식을 먹어라'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까 성경이야기를 외면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② 교회 다니기는 하지만 실상 부모 자신이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시세는 알고, 물가는 알아도 성경의 진리를
잘 모릅니다. 여당은 어쩌고, 야당은 어쩌고 돌아가는 정치형편은 알아도 성경은 모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성경 이야기하는 것을 잃고들 산다는
것입니다. ③ 결국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입니다. 또 구원은 예수님만이 주십니다. 그런데 믿는 부모들이 내
자녀들도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겠다는 확신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내일 내일 하다가 자녀들이 성경을 멀리 떠나 살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작은 책입니다. 분량에 있어서나 크기에 있어서 다른 책에 비하면 작은 책입니다. 불교의 경전 중에는 팔만 대장경이 있습니다. 얼마나
엄청나게 큰 책인지 모릅니다. 여기에는 사서삼경이 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전집도 수십 권이고 대형 백과사전도 수십 권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
한 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책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 때문에 역사가 달라지고, 세계가 달라지고, 인간의 문명이 달라졌습니다.
성경은 작은 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장 큰 책입니다. 편의상 구약과 신약으로 나눕니다. 영어로 구약을 Old Testment라고 하고,
신약을 New Testment라고 부릅니다. 이 Testment는 계약 또는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구약은 옛 약속이요, 신약은 새 약
속의 책입니다. 그 약속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구약도 예수, 신약도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 책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오실 예수, 또 하나는
오신 예수, 그리고 하나는 다시 오실 예수입니다. 사도행전은 오셔서 활동하는 예수님을 그려놓고 있고 요한계시록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은 오신 예수님에 관한 예언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신약은 오신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있습니다. 왜 성경이 이토록 예수님을
강조합니까? 행 4:12이 답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성경을 무료로 반포하는 선교 단체가 있습니다. 그곳은 한국 국제 기드온 협회입니다. 사역자들은 학교,
병원, 군부대, 호텔 등을 방문하면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 성경을 무료로, 공짜로 선물로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기드온 협회가 하는
일은 사랑의 운동이요, 생명의 운동이며 구원의 운동입니다. 왜 이 분들이 사제를 털어 가면서 성경을 나누어주어야 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얻습니다. 그래서 롬10:17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을 전해야 구원의 문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엊그제 제33차 한국 국제 기드온 협회 전국대회를 가졌는데 우리 교회 조군종
장로님 주선으로 초정 만찬회에 저희 부부가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영하50도의 혹한의 시베리아까지 찾아가 불쌍한 영혼들에게 이 성경을 나눠주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는 한국 기드온 협회가 한국 불쌍한 사람들만을 위하여 이 시간까지 삼천 팔백 만 부를 나누어주었다는 보고를 듣고
감격한 바가 있습니다. 본문14절 "너는 배우고"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배운다는 말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이요,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은 예수님을 배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배우는 교과서가 무엇입니까? 단 한 권의 책 성경입니다. 그러니까 배우라는 말은
성경을 배우라는 의미입니다. 배우되 언제부터입니까? 본문15절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위하여 어릴적부터서 이 성경을 배워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성경은 최고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오래된 책이요, 가장 진실된 책입니다. 가장 사랑 받는 책이요,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책이며, 많이 팔리고 있는
책입니다. 가장 많이 번역된 책이요. 가장 많이 핍박을 받은 책입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인생에게 보람을 안겨준 책입니다. 인류와 역사와
개인과국가에 공헌하고 너무도 엄청나게 영향을 끼친 책이 성경입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은 만민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양식이 되고, 인생의
길, 등불, 빛도 됩니다. 성경은 죄를 태우는 불도 되고 마귀의 머리통을 부수는 방망이도 됩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성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꿀송이 보다도 더 단 말씀이요, 그 진리가 너무도 심오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만은 어렸을적부터
배워두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둘째 성경은 만민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신화가 아니고, 전설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직접 묵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점에 성경의 권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구름을
통해서 번개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영원히 윤택해 질 수 있는 귀한 말씀이 이 속에 담겨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성경 속에는 그림, 예술, 조각이
있습니다. 물론 실존주의가 있고 허무주의도 있습니다. 문학, 철학, 과학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들이 시 가운데 시요, 노래가운데
노래입니다. 그래서 괴테는 그의 파우스트를 창세기3장에서 본 땄고, 밀턴은 실락원을 요한 계시록에서 본 땄습니다. 영국은 두 개의 책을 가진
나라입니다. 하나는 세익스피어고 또 하나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세익스피어는 영국이 만든 책이라고 하면 성경은 그 영국을 만든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성경은 구원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본문15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말속에는 세 가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① 지난 죄는 사함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죄는 사함 받고♬우리의 찬송입니다. ②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를 거느리시니 평안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역시 우리의 찬송입니다. ③ 미래에 천국으로 올라가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내
주의 손을 붙잡고 천국에 올라가겠네♬이러한 성경을 어찌 어렸을 적부터서 배워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오직 한 길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는 길입니다. 그런데 성경 군데 군데에서 말합니다. "그 길을 찾는 자는 영생을 얻으려니와 그
길을 찾지 못한 다는 멸망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성경을 사랑합시다. 성경을 읽읍시다. 성경을 실천하십시다. 성경을
전파하십시다. 기드온 협회에서 수고하는 사역자들 처럼 우리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동역자가 된다고 하면 미담거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성경을 전해야 합니다. 여기에만 민족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 받는
내 민족이 되어진다면 얼마나 행복스러운 일입니까? 이와 같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딤후3:14-17 2001-09-20
09:55:11 read : 46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마음에 늘 자리잡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예'의 이름의 뜻을 가진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어릴 적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성경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 방문하여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기에 믿음으로 낳은 아들로서 그를 사랑하였습니다. 제 2차 로마 옥중에서 하나님께 드려질 순교의
제물로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고 싶어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오라고 서신을 띄우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본문
3장에서 말세에 나타날 여러 가지 죄악과 이단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수요일까지 여름 성경학교가 개교됩니다. 올해도 전도사님을 중심으로 함께 복음 전선에 몸과
시간과 정열을 쏟아 여름 성경학교에 헌신하는 교사 여러분들께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성경학교를 위해서 간식과 식사
봉사로 물질을 드리고, 몸을 드려 봉사하실 여전도회 회원 여러분들께도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도 본문을 통해서
"성경은..."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함께 은혜 받기를 소원합니다. 특별히 성경학교를 맞이하여 교사가 무엇을 가르쳐야 되며
우리가 가르치는 성경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깨닫고 은혜 받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1.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감동'은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과 같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소설가들이 흥미
위주로 기록한 것과 같은 소설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한 두 번 읽고 접어주는 교양 서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옛날에 기록한 고전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하나님은 약 1500여년 동안 40여명의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각기 다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감동시키셨습니다. 자라 온 배경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개성과 취미가 다른 저들을 감동시켜
성경을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은 지금도 살아 있어 이 성경을 읽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함으로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링컨은 "인류 창조이래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은 곧 그 말씀인
성경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영국의 왕 죠지 5세는 '성경은 영국에 있어 가장 귀한 보배이며,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라고
예찬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자체로 신적 권위가 있습니다. 결코 사람이나 교회가 성경을 인정했기 때문에 성경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의 독자적 신임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외치는 불신앙의 시대입니다. 신학자들의 입에서도 서슴없이 나오는 소리입니다. 교회에서조차도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박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임을 천명하며, 천지는 없어져도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이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2. 구원을 주는 지혜의 책입니다.
본문 15절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철학이나 문학이나 과학이나 정치학의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죄인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의 책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졌고, 영생을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구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인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 성경이 바로 이러한 구원의 책이기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절)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 '거하라'는 말은 '계속적으로 머물러 있으라'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 신자들이 복음을 버리고 다시 율법주의로 되돌아가고, 이방인 신자들은 도덕적 패륜에 빠져 믿음의 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진리를 배우지 못하고 확고한 신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을 배우고 확신 속에 거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도 성경을 가르치는
교육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 일 때문에 주일학교가 필요하고, 성경학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컴퓨터를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속셈 학원에 나가야 되고, 수영도 배워야 되는 딱한 처지에 있습니다.
물론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목적을 포기하고 삶의 수단으로 필요한 한 부분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치 문제입니까?
아니면 경제 문제입니까? 결코 정치, 경제문제, 교육문제, 사회문제, 환경문제들이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은
인생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인생이 지닌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영생문제입니다. 이 문제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크고,
증대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에다 목적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경은 인생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줍니다.
생(生)과 사(死)의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 영생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내세의 문제에 있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죄로 타락한 죄인들에게 영생을 주는 구원의 책입니다. 이러한 소중한 성경을 우리가 더 사랑하고 애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3.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통일성을 보여줍니다. 약 1,500여년 동안 40여명의 저자들이 다른 시대, 다른
장소, 다른 역사적 환경 속에서 성경을 기록했는데 그 내용의 주제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 공통된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5장 46절에서도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니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칼빈(Calvin)은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 길이 없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를 믿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그릇된 자들은 구원의 길이 많이 있음을 주장하지만,
성경은 구원의 길이 오직 한 길(행4:12, 요14:6)뿐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4. 사람을
변화시키는 책입니다.
본문 16절과 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은 인간에게 유익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교육과 선행의 표준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은 죄인을 위해 복음의 진리를 교훈하고, 죄에 대하여(살전5:20,딛2:15),
이단에 대하여(딛1:9,13) 책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다시 올바른 자세에 서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선을 행하기에 온전케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사람'은 구약에서는 주로 선지자들을 지칭했으나 좁은 의미로는 디모데와 같은 전도자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신자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어떠한 사람에게 국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도를 성도 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를 성도다운 성도로 만들며, 사랑의 일을 하도록
충동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성경에 대해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고, 지금도 살아있어 죄인을 회개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주는
지혜의 책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생을 상실한 인생에게 오직 예수께 구원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입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 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책입니다. 세상적인 그 어떤 방법으로도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도록 능력을 제공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을 소중히
알고 성경을 배우고, 성경 속에서 거함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신앙교육의 목적/딤후3:14-17 2001-09-20
09:56:02 read : 47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 6장 6-9절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18-20절
신명기 6장 6-9절
말씀 가운데서 네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수시로 말씀을 강론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보면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가운데서 한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교육을
통하여 사람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것 이 있었지요. 못 먹고 못 살아도 이웃을 생각하는
민족 이였습니다. 동네에서 막난이 들은 어르신들의 준엄한 훈계가 조금이나마 통하는 시대였습니다. 고등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인간다운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유치원부터 시작하여서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학 박사과정----
우리의 현실은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인간다운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극심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생사를 건 생존경쟁, 황금만능주의,
이세상에 만연된 부조리와 한탕주의, 소돔과 고무라와 같은 성적타락 ---- 이루 열거할 수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는 고등교육을 받지만 가장 중요한 인간교육에는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큼직 큼직한 사건들을 보면 어느교회 권사님, 장로님, 집사님 이더라고요. 신앙은 있고 믿음이 있어서 구원은 받았지만 성도들의 삶은 변화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신앙교육에 문제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말씀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 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교육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다른 책과 구별되는 대단한 권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
때문에 그 교육적인 효과는 대단한 것입니다.
단순히 성경교사는 지식의 전달하는 것이 아님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보면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가르치는 단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행동을 동반하도록 하는 교육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교육은 피교육자의 전 인격적인 삶의 변화까지 교육에 포함시켜는 것입니다.
※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일을 하도록 교육적인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 위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 성도들과 교 사들 그리고 목회자의 과제입니다.
기독교의 교육은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교육을 할 때 하나님의 성령은 그 말씀과 함께 역사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심령 속에서 부딪쳐 일어날 때 흉악한 사람도 양과 같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대도라고 말한 조세형씨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변화되어서 지금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전도사로 활동하대요. 조직깡패 대부인
사람도 복음 앞에서 항복하고 목사가 되던데요. 모든 죄인들도 말씀가운데 주님을 만나서 변화 받고 구원받으며, 그의 삶이 놀랍게도 변화 받는 삶을
살데요. "저사람은 가망 없어 저 사람은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니랴! 저런 사람이 예수을 믿어--" 이런 사람도 주님의 말씀 앞에서 항복을 하고
예수 잘 믿고 변화된 삶을 살 아가데요.
※ 이 모든 일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는 다
가능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교사들은 특히 하나님께 생명 걸고 기도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바랍니다. 우리가 생명을 받치는 결단이 없이
어찌 한 영혼을 살리는데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겠어요? 우리들의 일은 다 보고 남은 시간에 애들은 가르치고 아니면 말든가? 이런 결단으로는
아들의 신앙은 절대로 성장시킬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 성경 교사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사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양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종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신명기 6장 7절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은 부모가
철저하게 훈련시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4-15 말씀에 보면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어려서부터 성경교육을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 오늘날은 참으로
바쁘게 살아갑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서 가정예배를 드리지 못할 정도로 모두들 바쁘게 살아갑니다. 여유가 없어요. 아침일찍 출근을 하여서
밤늦게 귀가하고 학생들은 아침일찍 등교을 하여서 밤늦게 집으로 옴니다.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은 많더라도 신앙적인 일에는 열심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의 신앙교육에는 게을리 하지 맙시다.
주일학교 교사들에게만 신앙교육을 다 맡기지 마시고 부모님들도 관심을 가지시고
신앙교육에 열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가정안에 신앙교육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가정예배입니다. 자녀얼굴을 잃어버린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는
삶속에서 가족 구성들이 하나님앞에 한자리에 모여서 성경을 읽고 찬양하고 믿음의 큰 소망과 위로의 말씀과 기도를 한다면 그 가정은 하나님이 함께
한 가정이요.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가정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가정은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빠져갈수 없습니다. 예배하는 가정은
남편이 바람 피울일이 없습니다. 가정에 불화가 있을수 없습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위해서 서로 기도함으로 어떠한 일도 믿음으로 극복될줄
믿습니다.
♣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취약한 부분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교육하기 위해서 교회 주일학교 교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사들에게만 신앙교육을 다 맡기지 마시고 교사와 함께 긴밀한 연합관계에서 협력하시길 바랍니다. 아이가 늦잠을 잔다면
깨워서 예배시간에 늦지 않도록 하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자녀가 교회에 나왔는지 결석하였는지 점검하고 교사들의 말씀을 잘 배우고 있는지도
점검하는 부모가 되시길 바랍니다. 교사가 아니더라도 동네에 놀고 있는 어린이들이나 중. 고학생들이 있으면 교회 나가도록 종용하고 교회로 인도하는
관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 오늘날 학생들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필요로 하고 중요한지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도 우리는 잘 알 수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을 살펴볼 때, 우리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빼져버릴 수 있는 유혹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름니다.
지금은 컴퓨터 마우스 클릭한번 함으로 전세계의 정보들을 다 열어 볼수 있습니다. 저는 요 교회 사이트에 많이 접속을 합니다.
유능한 목사님들의 설교나 찬양을 보고 듣지요. 얼마나 좋은지 모름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은혜 받을 곳에 접속을 많이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제력이 없는 어느 몇몇 청소년들은 어느 사이트에 많이 접속을 하겠습니까? 지금은 음란 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여러분 음란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접속을 못할 줄 아십니까?
중요한 것은 심령의 변화입니다. 아무리 음란
차단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도 또 잘못된 일을 한다고 훈계하고 매를 든다고 하더라도 심령의 변화가 없으면 잠시뿐입니다. 이것은 청소년만 해당되는
것은 아님니다. 성인들도 성적인 문제가 심각하데요. 딸 같은 미성년자와 매춘행위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지금은 명단을 발표하지요.
아무리 명단을 발표하고 감옥에 처넣는다고 하더라도 심령의 변화가 없다면 그런 불행한 행동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아이들과 우리의 영혼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며 말씀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의 신앙을 교육하는 위치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공과를 가르치는 단계에서 한 아이의 신앙을 양육하는 영적인 부모로써 아이들을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승리할수 있는 길은 오직 믿음뿐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요한 일서 5장4-5절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 마지막으로 성경은 능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모데후서
3장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리라"
복음전파는 우리의 언어을 통해서 전달합니다. 우리의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말이 복음을
실으면 사람을 살리는데 사용되지만, 우리의 말이 사탄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사람을 죽이고 멸망을 시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가르쳐서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학생 신앙
운동!/딤후3:14-16 2001-09-20
09:57:28 read : 21
오늘은 교단에서 지정한 S. F. C 주일입니다. S. F. C는 Student For Christ의 첫 글자를
옮긴 것인데, 번역하면 "그리스도를 위한 학생", "그리스도를 향한 학생"이라는 뜻인데 이것을 '그리스도를 위한 학생운동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 안에는 수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단체들은 거의가 한국에 복음이 전래됨과 동시에 함께 전래되었거나 아니면 그 후에
들어온 단체들이지만 학생 신앙 운동(S.F.C)은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 신앙 운동'은 1945년 조국 해방과 함께 순수한 한국적
신앙의 뿌리에서 나온 단체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이 해방의 종소리와 함께 대한 예수교 장로회는 새로운 역사적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회개 운동이었습니다. 이 회개는 한국 교회가 범한 공죄입니다. 1938년 9월 10일, 제 27회
총회가 범한 신사 참배 가결의 공죄는 역사가 소리를 지름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성경과 우리의 신앙의 양심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고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사 참배를 솔선수범하고 일본 기독교 조선 교단을 만드는데 공헌한 교직자의 선동, 심지어 교인을 이끌고
일본 천조대신 이름으로 물세례(미소기 바라이)를 강행시킨 일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 사죄를 구하며 회개할 일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1945년 9월 18일에 모여 경남 재건노회가 조직될 때의 현 교직자 '자숙안'은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 자숙안은 목사,
장로, 전도사는 일제히 자숙에 옮겨 담임 교회를 사면할 것과 자숙 기간이 완료되면 교회는 현 교직자에 대한 시무 투표를 시행하여 그 진퇴를
결정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종교 정책을 선동하던 일부 교권주의자들은 이 역사적인 회개 운동에 불참하고 교묘히 이 안을
폐기시켰습니다. 둘째는 신학 사상의 정립 운동입니다. 1938년 9월 30일에 평양 신학교가 일본 총독부에 의하여 폐교되었고,
보수주의 선교사들은 본국으로 귀국하고, 보수주의 신학자들이 국외로 추방 내지는 망명의 길을 떠날 무렵 미국으로부터 자유주의 신학을 입수하여 한국
교회의 정통 신학 사상에 도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평양 신학교가 폐교되자 이들에게는 자유주의 신학 부상에 절호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1940년 4월에 정식으로 서울에서 개교를 보았던 "조선신학원"(현 한국신학대학)이었습니다. 초대 교수로는 채필근,
김영주, 함태영, 이정로 목사이고, 그 후에는 송창근, 김재준, 윤인구, 한경직 목사가 보강되었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평양신학교가
폐교된 상황에서 이 조선신학원이 일제 박해 아래서도 건재하여 해방이 되기까지 일본 기독교 조선 교단의 그늘 아래 성장하여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1946년 4월 서울 숭동교회에서 모였던 제 32회 남부 총회(당시 38선으로 이북 교회 대표들이 참석치 못하였으므로 제 32회 남부
총회라 칭함)가 이 신학교를 총회 직영 신학교로 인준 가결하였습니다. 실로 이것은 해방 후 한국 교회 운동에 치명상을 입힌
결정이었습니다. 신사 참배를 주동한 목사와 교수들로 운영되어 온 신학교를 아무 체계나 비판 없이 그대로 받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총회
직영 신학교로 결정한 것은 제 27회 총회의 결의를 스스로 재확인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여기에 항거하여 1946년 9월 20일에
부산에서 고려신학교를 개교하여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확립하여 전 평양 신학교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해방 후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하여 정면 대결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학 사상의 정립 운동이었습니다. 셋째는 학생 신앙 운동입니다. 이 학생 신앙 운동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회개와 자숙 운동이 결국 어린 학생들의 가슴을 움직였습니다. 이 어린 학생들의 가슴과 가슴이, 마음과 마음이, 뜻과 뜻이 마주치게 되어 매주
토요일이면 책가방을 들고 제일 영도 교회로 모여들어 기도의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기도의 모닥불로 모였던 것이 시작이 되어
저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⑴ 학업 충실입니다. 저들의 신분이 학생이라는 것과 그 학생의 본분은 학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학업에 열중하는 것이 사명의 완수인 동시에 그 학업 성적의 우수와 행실의 본이 되어야 불신 학생들에게 전도가 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근심을 덜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⑵ 학원의 복음화입니다. 어른들과 교역자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학교가 바로
저들 학생들의 전도 구역이라는 것을 알고 '학원은 우리 손으로'라는 슬로건으로 학원 복음화를 결의했습니다. ⑶ 교회 봉사입니다.
교회에서는 저들의 힘이 미치는 작은 일부터 교회를 봉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되어 일어났던 학생 신앙 운동을 기억하고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Ⅰ. S. F. C의 특징
이렇게 시작된 이 학생들의 기도 모임은 1947년에는
학생신앙협조회라 부르다가 1948년 8월 2일에 학생 신앙 운동(Student For Christ)으로 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1. 신앙의 자발심에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총회나 노회나 혹은 어느 특수한 영적 지도자나 혹은 외국 선교
기관이나 단체의 사전 계획이나 권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것은 순전히 시대적 요청인 회개 운동에 동참한 어린 학생들 스스로에 의하여
일어난 운동이었습니다. 2. 신앙의 자립 운동입니다. 개인적인 신앙 인격 즉, 각 개인의 중생 체험이 이 운동의 특례입니다. 결코
의타적이거나 의존적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스스로 일어난 신앙 자립 운동으로써 기도 자립, 예배 자립, 봉사 자립, 전도 자립인 순전한
학생들의 창의적 운동이었습니다. 3. 순수한 학생 운동입니다. 성년이나 청년이 아닌 그리고 사업가도, 교육가도, 실업가도 아닌
내일의 성년이 되기 위하여 오늘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배우는 학생들만의 신앙 운동입니다. 4. 순수한 신앙만의 운동입니다. 순수한
주의 보혈의 공로를 입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산 생명을 공급받는 신앙의 산 체험을 가진 그 신앙을 기초로 하여 일어난 운동입니다.
Ⅱ. S. F. C 강령
S. F. C.의 강령은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 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한다. 우리는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을 확립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됨을 우리의
목적으로 한다. 우리의 사명은 다음과 같다. 1)개혁주의 신앙의 대한 교회 건립과 국가와 학원의 복음화. 2)개혁주의
신앙의 세계 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 우리의 생활 원리는 다음과 같다 1)하나님 중심 2)성경 중심 3)교회 중심
1. 신조입니다. 우리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은 칼빈주의 신학 사상으로써 성경을 기초한 사상인데 ①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혀 그릇됨이 없는 것으로 믿으며 ②삼위일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는 신앙인데 어디서나, 무엇에나, 하나님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 통치를 믿으며, ③인간의 전적 부패를 믿는 신앙으로
인간은 구원에 들어간 선(善)을 전혀 행할 능력이 없음을 믿으며, ④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절대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지한 무조건 선택과
영원한 언약으로 되어짐을 믿으며 ⑤예수는 그리스도로서 참 하나님이시며 성령의 권능으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참된 사람이시며, 그는 죄인의
중보자시요, 그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재림을 믿으며 ⑥성령으로 중생 됨을 믿으며, 성령의 회개와 은혜로 사죄함을 받으며,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을 믿으며 ⑦하나님의 율법은 성도가 지킬 법으로 구원의 조건은 아니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켜야 할 규례임을 믿으며 ⑧성도는
신앙 양심에 위배된 것을 거역할 자유가 없음을 믿으며 ⑨일반 계시 곧 보통 계시를 믿으며 ⑩성도의 교제를 믿으며 ⑪두 가지의 성례를 믿으며
⑫교회의 권징을 믿으며 ⑬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나님께 가고 몸은 흙으로 돌아갔다가 주의 재림할 때 육신이 부활하여 주와 함께 온 영혼과 합하여
영생을 얻는 것을 믿으며 ⑭주님의 재림과 최후 심판을 믿는 신앙입니다. 2. 목적입니다.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을 확립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됨을 우리의 목적으로 한다. 이 말은 ⑴ 개혁주의 신앙 확립입니다. 이 신앙은 ①성경주의 신앙이요 ②정통적
신앙입니다. 성경을 해석하고 믿는 것이 자기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세계 속에 흐르는 신앙의 정통을 따르는 것인데 아벨, 노아,
아브라함, 엘리야, 이사야, 세례요한, 칼빈, 메이천, 바빙크, 주기철, 손양원 목사의 신앙을 따르는 것이요 ③회개하는 신앙이요 ④쟁취하는
신앙입니다. ⑵ 개혁주의 생활 확립입니다. 신앙만의 정통이 아니라 생활의 순결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듯이
신앙의 정통은 생활도 순결해야 합니다. 성경을 믿으면 성경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 생활의 표식은 ①진실한 생활이요 ②겸손의 생활이요 ③순결의
생활입니다. ⑶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동시에 온갖 부패한 것을 방지하여 세상을 성결케 해야
합니다. 3. 사명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의 대한 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입니다. ⑴대내적 사명입니다. ①개혁주의
교회 건설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 훈련을 받고 그 교회에 한 알의 밀알이 되고 그 교회를 위하여 전도에 힘쓰며 교회 부흥에 진력하고 ②국가의
복음화를 성취하기에 힘쓰는 것이며 ③학원의 복음화입니다. ⑵대외적 사명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에 의한 사명입니다. 4. 생활의 원리입니다. ⑴하나님 중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주권 사상의 반영입니다.
하나님 주권 사상이란 하나님 의지의 자유와 하나님 의지 적용의 자유와 의지 적용의 결과 성취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영계나
자연계나 인간의 도덕계에 까지 미친다는 것입니다. ⑵성경 중심입니다. 하나님 자기 사상의 표현이 66권에 나타나 있음으로 그
성경이 신앙과 생활의 표준이며 규범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기록된 말씀이 창세 이후 재림까지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⑶교회 중심입니다. 이는 거룩한 교회를 믿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모든 권위의 근원임을 믿으며, 그리스도는 말씀의
방편으로 교회의 권위를 행사하심을 믿으며, 왕으로서 그리스도는 교회에 권세를 주셨음을 믿으며, 진정한 말씀의 전파와 정당한 성례의 집행과 신실한
권징의 시행이 세운 제도를 통하여 이루어짐을 믿으며, 교회는 신앙과 생활의 제 일차적 연단 장소 곧 성결과 경건의 신앙 훈련 도장이며 구속
역사의 기관임을 믿는 신앙으로 교회 안에서의 신앙 운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학생 신앙 운동은 우리 교단
내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매년마다 전국적으로 수련회를 개최하고, 노회별로는 순회 헌신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수많은 사업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곧 우리 교단과 이 나라의 주역으로 성장하고 있기에 이들을 위한 기도와 후원은 끊이지 않아야 됨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이들이 복음으로 새롭게 변화를 받아 나아가 학원을 복음화 시킴으로 청소년 범죄도 예방하는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학생 신앙 운동에 지대한 관심과 기도를 아끼지 않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그리스도인과 성경/딤후3:15-17 2001-09-20
09:58:23 read : 39
오늘은 대강절 셋째주일이고 전 세계 교회가 함께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그 믿음이란 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경을 직접 쓰시지는 않았습니다.
신구약 성경책은 총 66권으로서 약 1500여년에 걸쳐서 40여명의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기록된 책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기록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이 점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오늘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왜 성경이 사람들이 손으로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 책인가를 설교를 통하여 밝히려고
합니다.
본문에서도 말씀하고 있지만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의 계시로, 성령의 역사로 쓰여진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쓴 사람, 66권의 각 성경책을 쓴 사람은 정확하게 말하면 그 책의 저자, 각 성경의 저자가 될 수 없기에
각 성경책을 쓴 사람을 가리켜서 저자라고 말하지 않고 기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자란 '기록한
사람, 받아 쓴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기자, 마태복음 기자, 요한복음 기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의미는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쓴 책이므로 사실 누구가 받아 썼든지 간에 그 기록자가
누구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 기록자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성경 66권 중 어느 한 권을 읽거나 공부할 때 그 성경이 쓰여진 시대를 이해하고 성경의 문체를 이해하기 위해
기록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연구할 수 있지만 제일 중요한 한 것은 그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중심내용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20-21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이렇게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사람들이 받아 쓴 책 중에서 정경으로 정해진 성경은
창세기로 부터 요한 계시록 까지 총 66권의 책으로서 여기에는 큰 책도 들어있고 작은 책도 들어있습니다.
가장 큰 책은
시편으로서 150장이나 되는가 하면 가장 작은 책은 1장만으로 된 책으로서 구약에서는 오바댜 한 권, 신약에서는 빌레몬서 요한
2서 요한 3서 유다서 4권으로 신구약 총틀어 5권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큰 책들과 작은 책들을 쓰게 하셨습니다.
그 기간도 약 1500여년을 걸쳐서 여러 지역, 여러 사람의 손을 빌어서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한 사실은
이 66권의 성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모든 기록자들이 서로 모여 성경을 기록하자고 의논한 적도 없었고 또 그렇게 모여서 의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66권의 성경은 1500여년에 걸쳐서 다양한 사람들의 손을 거쳐 다양한 나라와
다양한 역사 속에서 기록되었지만 성령의 감동과 계시를 통하여 기록되었기 때문에 처음 부터 끝까지 완벽한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성경책이 성령의 감동과 계시 가운데 쓰여지지 않았다면 오랜 역사와 많은 기록자들 속에 다양한 상황 속에서
쓰여졌으므로 내용도 각양각색이었을 것이며 통일성이라는 것도 전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이사야
34:16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짝이 없는 것이 없으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니라"
뿐만 아니라 이렇게
기록된 성경 66권은 일차적으로는 기록될 당시 그 시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뛰어넘어 모든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성경 말씀이 시대를 뛰어 넘어 모든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시대 사람들만의 신이요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신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마가복음
13:37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그리고 또 성경에 관하여 중요한 점은 성경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주신 백과사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록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목적은 요한복음 20:30-31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 그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처럼 성경을 기록한 기록 목적이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데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구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구원을 얻게하기 위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약 창세기에서 신약 요한계시록 까지.... 성경의 관심은 인간 구원과 구원 받은 사람들의 바른 삶에 있으며 구원과 바른
삶에 관한 한 완벽한 교과서가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참된 삶의 교훈을 얻으며 잘못된 삶을 살 때 성경을 통해 책망을 받으며 그래서 우리의 삶을 성경을 통하여 바르게
고치며 죄인들에게는 의로운 삶을 성경으로 교육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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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상가요 신학자이며 의사이며 음악가였던 20세기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
1875-1965)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며 자라난 사람이었는데 그는
성경을 통하여 참된 삶의 교훈을 받고 일평생을 주님께 헌신하여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고 칭찬을 받았는데 그 중 한 예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알버트 슈바이쳐, 그는 독일의 알자스(Alsace)라는 지방에서 목사의 아들로 지금부터 125여년 전인
1875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가 태어나고 자라난 알자스 지방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영토가 됨에
따라 그의 국적은 프랑스 국적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르게 잘 자라나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이후 목사로서 또 대학교 교수로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어려서 부터 음악적
재능이 있어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파이프 오르겔 연주자로서도 활약하였으며 또 예수님에 대하여 깊이 연구도 하여 예수전에 대한
논문도 썼으며 또 음악에도 심취하여 바하 등의 명저도 썼으나........ 어느날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서 몹시 고통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교인 스트라스부르그 의학부에 청강생으로 들어가 의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가 의학 공부를 다 마친
다음 1913년, 아프리카의 적도지방이며 프랑스령인 오고우에(Ogooue) 강 하류의 랑바레네(Lambarene)에 도착하여 혼자
힘으로 병원을 개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모두 병원 유지에 쏟아 부었으나 점점 더 몰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하기에는 그 병원 규모로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각지로 다니며 모금운동을 벌일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자기 고향인 알자스에도 들러 모금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고향의 동료들과 친지 그리고 각계
인사들은 슈바이쳐가 기차역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모여 영접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조금있다가 기차는 도착하였고
환영나온 사람들과 기자들은 그 기차의 1등실 앞으로 우루루 몰려갔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슈바이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허둥대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 맨 뒤칸 3등 열차에서 내려 초라한 모습으로 플랫 폼을
걸어나오는 신사 한사람이 비쳤는데 그가 바로 슈바이쳐 박사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놀란 사람들은 슈바이쳐 박사 앞으로
달려가서 그를 붙들고 말했습니다. "아니 박사님, 어째서 3등칸을 타고 오셨습니까?" 그들의 질문은 질문이라기 보다는 불평에
가까웠습니다.
그때 슈바이쳐 박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4등칸이 없어서 3등칸을 타고 왔습니다"
슈바이쳐의 이 대답은 그들 모두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겸손한 그의 말과 태도에 거기 모였던 사람들은 저절로 모두 고개가
숙여졌고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제가 여기서 이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여러분은 앞으로 기차를
타려면 1등칸은 타지말고 슈바이쳐 처럼 3등칸을 타라고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형편과 처지에 따라, 그리고 필요에 따라
사람은 1등칸도 타야하고 2등칸도 타야하고 3등칸도 타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삶을 살아나가는
삶의 자세요,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성경말씀에 따라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자기의 형편에 맞게 실제적으로
적절하게 도와주려고 애쓰면서 자비의 삶을 실천하였던 슈바이쳐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겸손한 삶의 자세!
그리고 헌신적인 삶의 자세! 이타적인 자비의 삶의 자세!
무엇이 그를 이토록 아름다운 삶의 자세를 갖도록 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경말씀을 자주 읽고
배우고 성경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면서 그대로 실천해 나아가기만 한다면 우리의 생애는 반드시 복된 생애가 될 것입니다.
신명기 30:11-14말씀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으리라"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구가 생긴 이래로 하나님의 말씀은 읽고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다양한 삶의 환경 속에서
구원과 영생과 바른 삶과 그리하여 어려움 가운데서도 건강한 삶을 향한 용기와 자유함과 참된 삶의 의미를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가고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난 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점점 회복시켜 나아가고
그리하여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소금으로 나아가게 하며 죄와 악의 구조 가운데 있는 이 세상을 변혁시켜 나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실제적이고 아주 구체적인 말씀이 바로 성경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잘 읽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삶이 분주하고 바쁘다는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고전이란 인간의 삶에 유익한 책이기는 하나 사람들이 읽지 않고 모셔두는 책을 고전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측면에서 성경책은 책장에 고이 모셔두기만 하는 고전(古典)은 아닙니다.
열심히 읽고, 밑줄을 치고, 깨달은 말씀을
써 넣기도 하며 손 가까이 두고 매일매일 삶의 교과서로 삼아야만 하는 생명의 책입니다.
오늘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에게 성경읽기표를 한 장씩 나누어 드렸습니다. 유용하게 잘 사용하기를 바라며 매일 매일 성경을 읽고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 교육의
축복/딤후3:15-17 2001-09-20
09:59:28 read : 49
A. 서론
1. 어린이 주일, 자녀 교육
이미 신문지상을 통해 보도되었지만, 지난 4월
20일 미국 전역은 큰 뉴스 거리로 난리가 났습니다. 미국 중부 콜로라도주 덴버시 인근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남학생 두 명이 총기를 난사하고
폭발물을 투척하여 15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숨지고 20여 명이 총상을 입은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 중 한 명인 18살
에릭 헤리스의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은 범행계획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총 500명을 사살한다. 학교를 불지른 뒤 여객기를 공중납치,
대도시에서 추락시킨다' 범행을 일으킨 두 학생들의 부모는 한 명은 전직 공군 조종사로서 평소 총기 규제를 주장한 사람이었고 한 명은
대학교수였다고 합니다.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이 일으킨 이번 사건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두 학생은 폭력영화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었고 컴퓨터 인터넷을 통해 폭발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그들은 신나치주의, 백인 우월주의 등의 잘못된 사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부모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사건으로
발전되어서 범죄를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미국의 35개 주(州)에서는 미성년 자녀들이 범죄를 일으켰을 때 부모들이 그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는데, 그 중 플로리다주에서는 아이들이 집에 있는 총기를 가지고 사고를 내면 부모에게 최고 5년까지 징역을
선고하고,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는 어머니의 무관심 때문에 자녀가 갱단이 되면 그 어머니를 형사 기소한다고 합니다. 범죄를 일으키는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낳고 기른 자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비단 미국 내의
사건이고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가 공감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합니다.
'내가 고생해서 낳았고 길렀는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 그러니 간섭하지 말라.' 그렇게 자녀들을 멋대로
길러서 사회에 풀어 놓으면 자녀들은 범죄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해서 그 자녀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사회에 봉사하고, 이웃을 도와주는 인물이 되도록 길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반드시 두 가지 의식을 치룹니다. 첫번째는 아이에게 할례를 받게 하는 일입니다. 할례는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에 실시하는 종교의식으로서, 생명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출생한
지 40일 후에 번제를 드리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인 자녀를 잘 기르겠다는 서약이며, 하나님께 바친다는 마음의 표식입니다.
세계는 미국이 움직이고 미국은 이스라엘 민족이 움직인다는 말이 있듯이 이스라엘은 우리 나라의 강원도 크기만한 작은 나라이지만 노벨수상자의
15%가 유대인이고, 미국의 유명대학 교수의 30%가 유대인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 원인은 유대 민족들의 지적 능력이 높다거나 우수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강렬한 정신의 민족성이 있고 신앙교육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민족이기 때문에 땅이 작고
민족수가 적어도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힘이 큰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 부모의 인생관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그
자녀가 어떤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어떠한 인생을 사느냐 하는 것은 부모를 통해서 결정되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의 교육에
따라 훌륭한 인물이 될 수도 있고,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90%는 집에서 아버지가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따라서 배웠다는 통계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담배뿐 아니라 술, 마약, 도박을 하는 자녀들을 보면 그 부모들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흉내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1장 18∼20절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론하기를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들에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조건입니다.
자녀들을 올바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서도 솔로몬왕이 말하기를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릴 때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말씀으로 교육을 받으면 장수하고 평강을 누리며(잠 3 : 1∼2),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고(잠 3 :
3∼4), 복을 받으며(잠 8 : 32), 바른 길로 인도를 받습니다(잠 23 : 19). 더 나가서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가정 교육을 잘 받아서 훌륭하게 된 인물들이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 삼손, 사무엘, 솔로몬, 욥, 디모데 등이 올바른
신앙과 교육을 통해서 훌륭하게 성장한 인물들인데,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으로 교육받은 자는 반드시
축복된 삶을 삽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디모데후서는 A.D. 67년경 로마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고 말씀 안에서 굳건히 서서 믿음을 지키고 교훈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에베소는 로마 네로 황제의 박해로 핍박을 받았고, 율법주의와 영지주의 같은 이단의 가르침에 유혹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한을 참지 못하고 믿음을 버리고 타락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려서부터
배우고 지켜 온 성경말씀 가운데 굳게 서서 믿음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무 로이스에게서 성경말씀을
배웠고, 청년시절에는 바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울의 뒤를 이어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달은 대로 지키되, 믿음을 지키고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성경 교육을 통해서 세 가지 축복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고, 둘째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셋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됩니다.
B. 성경 교육의 축복
1.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 - 믿음, 구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디모데후서
3 : 15)
성경 교육의 축복 첫째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게 되고, 그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구약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을 읽으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믿음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감으로 심판받지 않고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빨리 깨닫습니다. 또한 겸손하고 온유하고 착한 마음을 가졌을 때 성경 말씀을 깨달아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죄인임을 알고, 그것에 따른 믿음이 성장하고 말씀을 통해서 구원과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1편 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게 사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시간을 지혜롭게, 재물을 지혜롭게, 재능도, 인생도
모든 것을 지헤롭게 사는 비결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10장 9절에서도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깨달은 자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영국의 철학자이며 인식론, 경험론의 창시자인 존
로크(John Locke)는 18세기의 뛰어난 학자였는데, 그는 성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요, 목적은 인류의
구원이며, 그 내용은 순수한 진리이다." 이 세상의 어떤 책이라도 성경처럼 구원과 진리를 전하는 책은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in)은 "성경을 늘 펴고 있으라. 그러면 그대의 천국 가는 길도 늘 펼쳐져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성경을 펼치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을 펼치고 산다는 것은 늘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을 향해서 나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슈바이처(Schweitzer,
Albert) 박사의 회고록을 보면 "나는 유년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서 교회에 나가서 예배에 참석함으로 경건을 배우게 되었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고 믿음을 갖게 된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교회로 이끄는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아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딸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교회에
나와서 함께 예배드리고, 그 자녀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십시오. 그의 삶에 경건과 의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것을 먹게 하며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맹인인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두 아들의 잠자리에서 불을 끄고 점자로 성경을 읽어주었습니다. 두 아들은 자라면서 믿음을 갖게 되었고, 나중에
커서 꼭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눈을 고쳐주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드디어 한 아들은 하버드대학에 진학하여 의사의 길을
가게 되었고, 또 다른 아들은 시카고대학 법대에 진학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앙을 넣어 주었고, 아들은 아버지를 통해서 삶의
목적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갖게 하고, 그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는 삶을 살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2.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유익하다-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디모데후서 3 : 16)
둘째로, 성경 교육의 축복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그 말씀은 바른 신앙을 가지도록 하는 교훈이 되고, 잘못 행할 때
돌이키도록 꾸짖는 책망이 되기도 하며, 그래서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시편 19편 7∼10절에서 다윗왕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고, 지혜롭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순결하고 정직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정치하는 사람은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업가가 될 수 있고, 공직생활 하는 사람은 부정부패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할 때 우리 나라는 선진국가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인 랍비들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꼭 강조하는 여섯 가지의 덕목이 있습니다. 첫째 계속 공부하라, 둘째 환자를 방문하라, 셋째 손님을 대접하라, 넷째 기도에
힘쓰라, 다섯째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라, 여섯째 남의 장점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자녀에게
공부를 시키고, 아픈 사람을 방문하여 환자를 위로하게 하며, 어떤 손님이 오든지 혹 잘 모르는 사람이 온다고 하더라도 대접을 잘 하게 하고,
어려울 때든지 무슨 일이 있을 때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지식을 얻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만 보고 살도록 자녀를 교육시킵니다.
랍비들이 강조하는 이 여섯 가지 덕목을 통해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유대 민족임을 일깨우고, 더 나아가 훌륭한 일을 감당하도록 합니다.
미국 FBI(연방수사국)의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는 22세에 법무부에 들어가 29세에 연방수사국 국장에 취임되고,
죽을 때까지 48년 동안 같은 직책을 맡아서 일했습니다. FBI 최고의 책임자로 오래 일한 그는 "오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아이는 내일의
범죄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며, 따라서 성경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가 교회에 나가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성경말씀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여사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배출된 영국의 최초 여자
수상입니다. 그녀는 수상이기 전에 쌍둥이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요, 충실한 가정주부입니다. 그녀가 어머니로서, 가정주부로서, 아내로서, 한
나라의 수상이 되어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독실한 감리교 선교사였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그녀는 역사학을 공부하여 역사적인 변증을 통해 다른 정치인들과의 대결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녀였기에
대영제국의 수상으로서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육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얼마 전 신문에 전·현직 대통령 세 명의 손자들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전두환 대통령의
손자들은 모두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경기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그 손자들이 얼마나 할아버지를 빼닮았는지 한눈에도 누구의 손자인지 금방 알
정도라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 손자는 점잖고 의젓한 편으로,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이번 학기에 학생들이 직선투표로
선출하는 반회장에 뽑혔다고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 손자는 귀공자형으로, 음악콩쿠르에서 노래로 대상을 받기도 하고 동화구연대회에서 학교대표로
뽑히는 등 예능에 재주가 많다고 합니다. 또 전두환 대통령 손자는 체격이 작지만 아주 활발한 편으로, 보스 기질이 있어서 가는 곳마다 친구들을
모으고 다닌다고 합니다. 정치계·경제계의 유명한 사람 자녀들과 할아버지를 빼닮은 대통령의 손자들이 모두 같은 학교에 다니다 보니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려면 손자를 경기초등학교에 보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커서 '우리 할아버지가 대통령으로서 잘한
것이 무엇이고,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겠습니까? 자녀는 그의 부모를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우리는 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로서 좋은 인생, 좋은 업적을 남겨서 존경심을 갖게 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초등학교 1학년 학급에서 반장 선거를 했습니다. 반장 후보에 오른 몇 명의 학생들이 준비한 유세 연설을 하는데, 그 중 한 학생이 "나를
반장으로 선출해 주시면 우리 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아버지가 무얼
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학생은 '우리 아버지는 교회 장로님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장로님이신 아버지가 가정예배를 드릴
때마다 '주여 죽도록 충성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을 듣고서, 이 학생은 반장 선거를 하는 유세 연설에서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외친
것입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통한 자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의 길을 가게 합니다.
3.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하나님의 사람, 선한 일을 행함, 온전함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3 : 17)
셋째로, 성경 교육의 축복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특별하게 부르심을 받은 구별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선택받은 사람으로서 선한 일,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악한 사람,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성경 말씀으로 교육받은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12장 28절에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영히 복이
있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면, 그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까지 대대로 영원한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녀에게 용돈을 많이 주고, 재물을 많이 상속해 준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재물이 많으면 방탕하고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지식과 올바른 삶의 철학과 믿음과 신앙을 자녀들에게 심어주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하면 그 자녀는
분명 가장 훌륭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들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하라'는 말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완전한 마음을 의미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완전한 마음을 갖고 믿음으로 나가면 아무런 두려움이 없습니다. 미국 에모리대학교의 목회심리학 교수인 제임스 포블러 교수가
『faithful change-성실한 변화』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믿음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가'에 관해 세 가지 획기적인 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발전적인 변화입니다. 이것은 육체·감정·인식·영적생활들이 계속해서 발전해가는 변화가 믿는 사람들에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장하여 성공합니다. 성공은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지, 의심하는 사람에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둘째는 치유와 재창조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많은 상처를 입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속히 치유를 받고, 거기에
재창조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놀라운 일을 행하게 됩니다. 셋째로는 사회에 적응하는
변화입니다. 주변의 환경이 변할수록 긍정적으로 자신을 적응해 나가는 변화의 축복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과도
적응하고, 자기보다 못난 사람들과도 적응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변화들이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부모가 신앙의 모범을 보이면
자녀들에게 발전적인 믿음의 변화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독립운동가 김구(金九) 선생의 어머니는 교회 권사님이셨습니다. 믿음이
독실한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부터 늘 두 가지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너는 커서도 절대로 교회를 떠나서는 안된다. 둘째 무슨 일을 당하든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순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김구 선생은 '교회를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 성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신앙을 본받아서 그는 민족의 지도자로서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선하고 착한 행실을 보이기 위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그 믿음은 성경을 통해서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자란 한 여자가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교회에 나가는 것에 반대하여 10년 동안
교회에 가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남편은 큰 버스운송사업을 하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해 주었지만, 그녀는 10년 동안 교회에 가지
못해서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하고 교회 종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그러다가 결혼한 지 10년 만에 남편의 버스 회사가 파산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경제력을 상실하고 매일 술 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하자, 그녀는 '때는 이때다!' 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핍박이 심했지만, 의지할 데라고는 하나님밖에 없음을 알고 그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닳고 해어진 성경책을 찾아들고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성경을 매일매일 읽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다섯 남매를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맡아서 양육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자녀들을 위해 성경을 읽어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 다섯 명의 자녀들이 다 성장하였는데, 맏아들은 교회 목사가 되고, 둘째 아들은 의사가 되고, 셋째 딸은 목사
사모가 되고, 넷째 딸은 사업가가 되고, 막내 딸은 결혼해서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섯 명의 자녀들이 다
훌륭하게 자라자 주변 사람들은 "여자 혼자서 어떻게 그렇게 다섯 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했느냐?"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 그녀는 "예수님께 내
인생을 전부 의지하고 맡겼더니 내 아이들을 잘 키워주셨습니다" 하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 자녀들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을 위해 걱정, 근심하고, 야단치고 화를 낸다고 해서 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성경 말씀으로 양육하고, 하나님께 맡길 때 자녀들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훌륭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빛나는
인물로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C. 자녀를 성경으로 교육하여서, 믿음을 가지고, 바르고 의롭게 자라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선한 일을 행하는 성공된 자녀로 키우는 성도가 되자
여러분의 자녀가 믿음을 갖고, 바르고 의롭게 자라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선한 일을 행하기를 원한다면 성경으로 교육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으로 자녀를 교육하고, 성경적으로 살면 반드시 축복이 임합니다.
나이 69세에 부동산 매매와 보험업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6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주 건강했고, 여느 젊은이 못지 않게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자네는 그 나이에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느냐? 은퇴는 언제 할 것인가?" 하고
물으면, 그는 "나에게는 은퇴가 없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기쁨이 넘치고, 활력이 있고, 싱싱하게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비결을 물으면 그는 사람들 앞에 성경을 펼쳐 보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 : 31) 그리고 "나는 잠잘 때도 성경 말씀을 읽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성경 말씀을 읽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으니 오늘도 독수리처럼 새 힘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생명을 얻고, 활기를 얻고, 기쁨을 얻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잘 때나
아침에 일어날 때 성경 말씀을 읽고, 또 마음 속에 늘 말씀을 간직하며 사는 사람은 힘차게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성경 말씀으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훌륭한 자녀로 키우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성서주일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귀한 선물로 성경말씀을 주신데 대한 감사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는 성경말씀을 가장 존중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도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표어를 가지고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우리 개혁교회에서는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으로 믿고 있습니다. 장로교 신조 제1조에
보면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16절 상반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벧후1:21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란 하나님이 숨을 불어 넣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숨이란 하나님의 영을 뜻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말하기를 성경은 임의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기록됐다는
영감설을 주장합니다. 카톨릭과 우리 개신교의 다른 점이 있다면 곧 성경관입니다. 카톨릭은 전통적인 권위를 앞세우지만 개신교는 성경의 권위를
앞세웁니다. 카톨릭은 성경을 교회의 예속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개신교는 성경이 없이는 교회도 있을수 없다고 단정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위에 세워지지 않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누가 성경으로 인정한다고 성경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하고 있기에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줄 믿습니다.
둘째,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본문 15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읽는 자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는 지혜를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지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아이가 5세가 되면 부모님들이 의무적으로 율법을 가르쳤고 6세가 되면 랍비에게서 율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디모데의 율법에 대한
지식도 그 어머니와 외조모를 통하여 배웠습니다(딤후1:5). 성경은 그 자체가 성령의 감동함을 입은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성경을 읽거나 듣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받게 됩니다. 핍박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로 변화된 것도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행9:4). 낙심중에 고향으로 돌아가던 엠마오의 두 제자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마음이 뜨거워져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전도자가 됐습니다(눅24:32, 33). 그래서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함께 일할수 있는 성령의 능력도 받게 될줄 믿습니다.
셋째, 성경은 삶의 표준이 되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본문 16∼17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헬라어로 "카논"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표준 기준 규범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 축복과 저주, 구원과 멸망의 표준이 되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바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바른 삶과 축복의 삶을 살게 됩니다. 창12:4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간 것이 축복의 삶이 됐습니다.
시119: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시119:9에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정치가 웹스터는 "미국이 받은 축복의 비밀은 성경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는 축복의 비밀도 역시 성경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므로 축복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종교 교육의 중요성/딤후3:12-17 2001-09-20
09:46:47 read : 26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백년 앞을 내다보며 원대한 계획과 꾸준한 인내심으로
시행해야 된다 는 말입니다. 이것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룻 소는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 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칸트는 "사람은 교육에 의하여서만이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다. 웰링턴은 "종교
없는 교육은 다만 약빠른 악마를 만들뿐이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진리의 종교인 기독교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어린이 여름성 경학교와 각 기관 수련회를 통하여 영적 사람으로 더욱 성숙해 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교교육의 중요성이 무엇 입니까?
첫째,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 상반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했 습니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아이가 5세가 되면 부모들은
의무적으로 율법을 가르쳤고 6세가 되면 랍비에게서 율법을 배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그 외조모와 어머니를
통하여 성경을 배 웠습니다(딤후1:5).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받은 기자들을 통하여 기록케 했습니다(16). 그래서
우리의 신앙과 윤리에 조금도 부 족함이 없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인 증거가 몇가지 있습니다.
성경은 1500여년 동안 40여명이나 되는 각계 각층의 기자들이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전혀 오류가 없고 완전
일치합니다. 그것은 기자 모두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기 때문인줄 믿습니다. 그리고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 록까지
성경 66권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구원의 도리를 밝혀 주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인 증거입니다. 또한 성경은 교훈과 책
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 케 하는 완전한 윤리를 제공합니다(16). 이것이 곧
진리입니다. 이런 진리는 오직 성경에서만 배울수 있기에 기독교 교육이 더욱 중요한줄 믿습니다.
둘째, 창조주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 중반절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 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영적 지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에서도 제일먼저 나오는 것이 "신론"입니 다. 사도신경에서도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입니다. 주기도문의 첫 머리에도 "하 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했습니다. 일찍이 호세아
선지자는 내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했습니다(호4:6). 성 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로
믿고 깨닫는 지식에서만 구 원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삼위의 독립된 개체이면서도 본질은 완전 히 일치합니다. 사역에 있어서도
창1:26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한 것을 보 면 천지창조에 있어서는
동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구원의 사역에 있어서는 분담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만세전에 구원할 자를 선택하셨 고 예수님은 선택된
자를 속죄하셨으며 성령님은 감동, 인도, 보호의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삼위일체의 교리는 오직 성경에서만 배울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교육이 중요한줄 믿습니다.
셋째, 가장 귀한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 하반절에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 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신앙하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는 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요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
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구원자 예수님을 바로 증거키 위하여 기록됐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은 구원자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할 때 도덕적인 예 수님이나 사회 운동가로만 소개한다면 대단히 잘못된 증거입니다.
예 수님은 죄인된 나를 구원키 위해 오신 구세주입니다. 이 구원의 도리 를 바르게 교육하는 것이 기독교교육입니다. 우리는 이
교육을 통하여 체험적이고 확신있는 신앙인으로 성숙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딤후3:13-17 2001-09-20
09:47:45 read : 29
우리는 오늘 저녁에 교사 헌신 예배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금년도 여름 행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해마다 여름 행사를
개최하는데 있어서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이들 배부르게 먹이자는 것도 아니며, 간식을 많이 주자는 것도 아니고, 게임이나 율동을
많이 하자는 것도 아니며,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시키고 물놀이를 시키자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이유가 하나있다면 우리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줌으로서 그들이 어려서부터 디모데와 같이 성경을 아는 아이로 자라가게 하기 위함이며, 구원을 얻게 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어 지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한 자로 자라게 하기 위함에 그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한가지를 덧붙인다면 21세기를
이끌어 갈 교회의 지도자를 훈련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우리 주일학교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기관입니다. 이것은 개혁주의자들의 한결같은 부르짖음입니다. 그들은 세 가지를 힘있게 부르짖었는데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라는 슬로건입니다.
1. 기독교 교육의 기초는
기독교 교육의 기초는 오직 성경입니다. 이
성경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입니다. 이것을 신명기에서 분명히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신6:1-3절을 함께 읽어보면서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1)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 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 2)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3)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들에게 주신 명령이 무엇입니까?
신6:2절입니다.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잘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중요한 책임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부지런히 자녀들에게 토라를
가르쳤습니다. "토라"라는 말은 율법이라는 말입니다. 이 율법을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든지 길에 행할 때든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명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앙을 전승하는 전승신앙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면 가르치는 교과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물론 성경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4, 5절입니다.
신6:4,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기서 말씀의 시작을 "이스라엘아 들으라!"라고 시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백성들의 교육헌장입니다.
이스라엘 교육 정신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그들의 교육헌장은 신6:4절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하는 말씀인데 이것을 "세마"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말의 히브리어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교육의 중심입니다.
우리가 듣고 또 들어야 할 말씀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율법"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 교육의 헌장이며, 교육 내용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이스라엘아!
들으라!"라는 명령입니다. 기독교교육은 듣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들음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그 들음이 세마입니다.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둘째는 그 여호와라 하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육 내용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그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라고 하십니까? 교육 방법입니다. 신6:6-9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6)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말씀을 좀 분석하여 보면 교육의 장은 가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은 그
부모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인 성경을 제일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할 사람은 그 부모입니다. 그리고 7절에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집은 다른 나라의
집들과 다른 점이 오직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문설주에 성경구절이 붙어 있는 메주자(mezuzah)가 있는 것입니다. 호텔에 들어가도 매주자가
문설주 옆에 붙어 있습니다. 방마다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은 출입할 때마다 그곳에 입을 맞춥니다. "하나님 말씀을 손목에 붙이고
이마에 매는 것"은 네 손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불완전한 인간의 지식보다 하나님의 지혜인 말씀에 의존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22:6절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무는 어린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부모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부모들의 의무를 다 한 결과 그 민족은 세계 열방이 두려워하는 민족과 국가를 이루고 있었으니
이것은 약속의 성취입니다. 신6:2절에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강성하리라"라고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면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성취입니다.(신28:13)
2.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책인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영감의 책입니다. 본문 16절 말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감동"이란 말은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는 뜻입니다. 벧후1:21절에는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임의로 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일점일획이라도 잘못된 오류가 없는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의 책이기 때문에 우리가 읽으면
감동을 받습니다.
둘째는 성경은 구원을 이루는 지혜를 얻게 해 줍니다. 본문 15절 말씀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삼일만에 다시 부활 하셨다는
사실도! 성령을 보내 주셨다는 사실도 성경을 통하여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의 책입니다.
3. 성경은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 16절 말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온전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을 만드는 일을 성경이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전한 인격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성경은 네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첫째기능은 교훈해 줍니다. 교훈이란 좋은 말로서 잘 가르치고 타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교훈 집이 있지만 성경 만한 교훈 집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교훈 집은 아닙니다.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교훈하기에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히4: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교훈의 능력을 말합니다.
둘째 기능은 책망 적인
기능입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났던지 잘못하였을 때에 책망을 하였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을 찾아가서 다윗의 죄에 대하여 꾸짖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책망을 하였고, 예수님은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아" 라고 책망 을 하였습니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에서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피아 교회만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교회는 주님께 책망을 들은 교회입니다.(계2:-3:) 성경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죄에 대한
책망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책망의 말씀이라도 달게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할 때에
듣지 않다가 멸망을 당한 왕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 할 때에 그 말씀을 듣고 겸손히 회개하여 오히려 범죄하고
더 큰 축복을 받은 왕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로 온전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책망이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기능은 인생을 바르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것의 규범이며, 기준이며, 삶의 푯대입니다. 성경을 규범으로
사는 민족과 나라가 강하고 질서가 있으며, 번영합니다. 성경을 규범으로 살아가는 가정이 잘되고 행복합니다. 잠29:1절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교육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세상은 마지막 날이 되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마음이 강팍해져 가고, 어두움을 좋아하고 빛을 미워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쫓아가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여 혼돈 된 세상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바른 교훈을 싫어하고 옳은 충고를 하면 원수가 됩니다.
이미 대학의 학문이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를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학교 교육이 온전한 인격자로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도 이미 물 건너갔습니다. 세상에 최고 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혹 돈 때문에 자기 부모라도 해 할 수 있지만, 비록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의 바르게 하는 말씀으로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으면 불효자라도 효자가 되게 하고! 깡패라도 사회의 모범생이 되게
합니다.(딤후4:3)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교회에 두 가지 선물을 주셨는데
첫째는 성경을 주셨고, 둘째는 성경을 가르칠 교사를 주셨습니다. 이 지구 촌 어떤 곳에는 성경을 보고 싶지만 성경이 없어서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성경은 있으나 가르칠 교사가 없어서 그 의미를 알지 못해 안타까운 인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성경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성경을 해석해 줄 하나님의 종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부디 바라기는
우리는 부지런히 가르쳐야 하고,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세상에 배울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성경을 배우는 일입니다. 이는 우리
부모들이 하나님께 받은 명령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사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는 일이 우리의 손에 달린 줄 자각하시고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 교회 성도들은 교사들이 어린아이를
한사람이라도 더 가르칠 수 있도록 어린아이들을 모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과거 6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은 주일학교 교육의
전성시대였었습니다. 그때에 교사들은 열심이었습니다. 헌신적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주일학교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아이들이 이미 성년이 되어
교회의 중직자들이 되었고 한국교회의 축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가 이렇게 흥왕 하게 된 것은 그때의 주일학교 교육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일학교교육의 부재시대요,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주일학교의 모습이 20년 뒤에 우리 교회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심각하게 보아야 합니다.
미국의 실업가로서 체신부장관을 지낸 존 와너메이커는
"백화점 왕"입니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탁월한 판단력과 정확한 경영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가 투자해 구입한 물건들은 엄청난 이윤을
남겼습니다. 와너메이커가 투자하는 것은 항상 최고의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어느 날 한 신문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때 와나메이커는 말하기를 "내가 열두 살 때 최고의 투자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2달러 50센트를 주고 성경 한 권을 샀습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답니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와나메이커는 가난한 소년시절에 성경을 읽고 꿈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대부호가 됐습니다. 그는 성경 말씀을 쫓아가므로 인해서 성공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제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니 많은 길이 있다고 해도 속지 마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입니다. 이 성경을 붙들고 살면 그 인생이 바뀝니다.
축복의 인생! 소망의 인생! 승리의 생애가 됩니다. 하늘의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한 인생이 됩니다.
금년에도 우리 대선의 온 성도들이 교사는 교사들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하시고! 우리 성도들은
나름대로 섬기는 일에! 또는 주변에 있는 어린아이들을 모아 오는 일에 힘을 합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더운 여름이 오히려 축복을
가져다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배우고 확신하고
거하라/딤후3:13-17 2001-09-20
09:48:49 read : 52
지금 우리는 한 천년을 보내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려는 기대와 불안,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시간에 서 있습니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불확실한 시대를 준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의 중요한 핵심은 14절의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세 가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바울이 디모데에게 줄 때에 시대적 상황을 유념해야 합니다. 본문을 읽어 드리지는 못했지만 딤후 3장 1-5절까지에는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상세하게 열거하고 있습니다.『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하였고 구약 다니엘서 12장 4절에는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 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하여 종말론적 삶을 사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교훈해야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13절에는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어쩌면 바울이 살고 있던 시대와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가 이렇게도 똑 같을 수가 있을까요?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14절 첫 머리에
나오는 『그러나』 라는 접속사에 유념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지고 악이 득세하여 악한자가 잘되고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속이는 사람이
많아서 정직하게 살면 죽을 것 같아도" 『그러나』 너희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세 가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첫째-
『배우라』고 합니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 중에 하나는 스승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보다 나은 사람이 있고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은 사람에게는 장점을 배우고 못한 사람에게는 단점을 보고 반성하면 곧 이들 모두가 스승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사람이 됩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합니다.
배움이 중요하지만 모든 것이 유용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배우라』는 것은
말씀을 배우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진리이고 생명이고 창조이며 기초이며 핵심이며 사람을 온전케 만드는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 히브리서 4장12-13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 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였습니다. 말씀 앞에서는 살인마도 강도도, 사기꾼도 핍박자도 회의론자도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류 윌리스라는 사람은 자기의 친한 친구가 고리타분한 신앙에 빠져있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그는 합리적으로 성경의 허구성을 파헤치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니 성경을 읽지 않을 수 없었고 성경을 정독하기를 시작했습니다. 한 번을 정독하고 나니
회의에서 확신으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두 번을 읽고나니 믿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세 번 째 읽다가 그는 완전히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허구성을 증명키 위해 성경을 읽다가 성경이 영원한 진리라는 증거의 소설을 쓰게 되었는데 그 소설이 영화로 제작되어 불후의
명작이된 『벤허』라는 작품입니다.
말씀은 나를 변화시킵니다. 내 생각을 변화시킵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뀝니다. 말씀 앞에 철저히 나를 내려놓고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말씀이 나를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둘째- 『확신하라』고 합니다.
사격하는 자는 『정조준』해야합니다. 백발백중하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총을 쏘는 사람과
방향도 목표도 없이 총을 쏘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一石二鳥 』, 『도랑 치고 가재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같은
말입니다.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두 가지를 충족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성경 지식을 많이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을 읽고
맥을 확실히 잡고 안 것에 대해서는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성경에는 모든 것이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맥을 잡지 못하고 읽으면 열번 스무
번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무엇을
확신해야할까요? 첫째가 『내가 죄인이다』라는 것이고 둘째는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확신입니다. 성경에 다른 것은 다 알아도 이것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성경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합니다. 반대로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이 두 가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성경을 읽었다면
성경의 중심을 바로 잡은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젭니다.
성경에는 예수를 만나서 구원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상황이 다를지라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기 잡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빈
그물을 채우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5:8』 하였고,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만나지만 『자신의 토색을 4배로 갚겠다고 회개함니다. 눅19:8』.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희망의 확신도 중요하고 축복의 확신도 중요하지만 『내가 죄인이라』는 확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만일 이 확신이 없다면 예수를 구주로
믿지는 못합니다.
두 번째로 확신해야할 것은 『나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라는 확신』입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억만금을 가진 거지
노릇하다가 죽는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확신해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사실은 『나는 죄인이었으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셋째-『거하라』고합니다.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의 의미는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병법에 보면 『성을 빼앗기보다 성을 지키기가 더 어렵다』고
합니다. 사업을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정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은혜 받기도 어렵지만 그 은혜를 유지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명예를
얻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습니다.
초대교회에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스데반과 빌립 이외에는 집사노릇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12제자 가운데서도 베드로 요한 이외에 크게 두각을 들어낸 사도가 없습니다. 고인이 되신 이상근 목사님이 저의 학위취득식에 오셔서
설교해 주신 후 돌아가시는 차를 배웅하는 자리에서 『장 박사 학위는 취득하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우이』 하시던 말씀이 뇌리에 남아 개을러지지
않으려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욕심 내서 없는 것 자꾸 달라하지 말고 있는 것 지키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맺음말-우리는 지난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반성은 할 수 는 있습니다. 다가오는 새 천년에 대해 지나치게 기대도 말
것이며 그렇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내용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의 말씀인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미 진리 안에 확고히 서 있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세기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요 한 천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뜻 깊은 주일에 다시 한 번 간절히 권면합니다. 말씀을 계속 배우고, 확신하시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멘
말씀으로
돌아가자/딤후3:14-17 2001-09-20
09:51:29 read : 57
미래학의 권위자 알빈 토훌러(Alvin Toffler)의 저서 가운데 1990년 도에 내놓은 '권력의
이동(Power Shift)'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여 기서 인류 역사를 움직이고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의 힘이 어
디로 어떻게 옮겨지고 있는가를 예리한 눈으로 분석해놓고 있습니다. 그 의 주장에 따르면 예전까지는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힘이 무력 이나 금력 또는 권력 등이었지만 이제 장차 올 미래 사회에서는 그것들 을 대신하여 지식의 힘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돈 있 는 자, 권력 가진 자가 힘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가진 자가 힘있는 자요, 땅을 많이 소유하고 돈을
많이 가졌다고 부자가 아니라 앞으로는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요, 군사적이고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 다고 해서 강한 자가
아니라 지식의 힘을 가진 사람이 진정 강한 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지식
없이 산업화는 더 이상 앞 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지식 없이는 어떤 첨단 제품이나 군사무기 체제도 발달할 수 없다.' 정보와
지식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리라 는 말이 말뿐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이 금 력과 무력에
이어 그 둘을 훨씬 능가하는 지식의 무서운 힘까지 자유자 재로 소유하고 써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실로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
습니다.
지식의 증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쏟아져 나오는 지식의 홍수의 흐름을 보노라면 갑자기 소름이 끼치고
두려운 예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질은 고사하고 양만을 놓고 따져보세요. 연일 출간되는 책들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아 세요? 어떤
분이 미국 예일 대학교 도서관에서 1년 동안 구입한 책의 분량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나 되었을까요? 사람이 그 장서를
읽는 데만도 매일 아침부터 시작해서 쉬지 않고 꼬박 10시간 동안 읽을 경우 총 180년이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하루에 2시간
정도 읽는다고 본 다면 무려 900년이 소요되는 분량입니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야 겨우 대 학 도서관에서 1년 동안 구입한 장서를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양만 해도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1년 동안에 구입한 양이 그 정도 인데 만약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다 읽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처 럼 지식의
물줄기는 한 개인은커녕 한 나라의 힘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도도하게 밀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식의 증가의
속도도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옛날 농사가 주된 인간 의 활동이었던 농촌사회를 생각해보세요. 그 때는 오늘날처럼 그리 많은 지식이
필요치 않았을 거예요. 기껏 해야 농사에 관한 지식 정도가 아니 었을까요? 그 이외의 지식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정도였을 겁니
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요. 앞으로는 농촌에 사는 사람도 컴퓨터를 만질 줄 알아야 하고 인터넷을 통해 농업
정보를 나누 고, 신기술을 배워야 할뿐 아니라 최신 기술로 개발된 전자제품들을 자 유롭게 다룰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지식은 양적으로 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간의 세포 속에 들어있는 엄청난 비밀까지
하나하나 파헤쳐지고 공개되는 실정입 니다. 유전자 공학을 통한 인간 복제도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 식을 통한 첨단기술의
발달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 니다.
어디로 튈 것인가? 통계에 의하면 1700년대까지의 지식을
100으로 보았을 때 1900년도 에 이르러 배로 증가하였고 그 후 50년이 지난 1950년대에 또 다시 배 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지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과 동시에 그 주기가 점점 더 짧아져서 이제는 5년, 3년 이내에 증가를 계속하고 있고
최근에는 배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수 십배, 수 백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미국 주립대학 연합회 회장으로 있는
애플베리(James Appleberry)는 지식이 두배로 증가하는 기간이 2020년에 가면 73일 정 도로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폭발적인 힘을 가지고 최 고의 속도로 증가하는 지식 앞에 인간은 두손을 모으고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뿐입니다.
여기 Compact Disk 한 장이 있습니다. 650 메가바이트 분량의 이 CD 한 장 안에 대형 백과사전 한 질이 다 들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개 발된 제품에 의할 것 같으면 일간신문 50년 분량의 기사 내용을 이 한 장에 다 넣을 수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우리 인 간은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가공할만한 지식의 홍수 속에 파묻혀 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지식이 어디까지 증가할 것이냐 하는 것은 아무 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지식이 미래 인류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냐에 대해서도 전혀 예상하지를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지식이란 공이 어떤 방향으로 튈 것인가 하는 것도 초미의 관심사가 아
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선한 힘으로 작용하면 그래도 다행이겠으나 만 일 나쁜 힘으로 작용할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그에 따르는
재앙은 온 인 류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지게 됩니다. 지식이란 무엇이
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이 과연 영혼의 문제, 인류의 구원의 문제에 얼마만큼이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점점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이 시대에 인류의 빛나는 지식문명이 과연 얼마만큼이나 이 사회를 구출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자연과학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들 거기에서 영혼구원에 대한 지식 을 배울 수는 없습니다. 생물학을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보아도
거기에 영혼구원에 대한 지혜가 들어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의학을 열심히 해도 거기서 영혼구원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법학을 공부해도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이 시 대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에 대한 바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 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만이 우리의 영혼의
문제를 말하고 있 습니다. 어떻게 죄인이 구원함을 받을 수 있으며,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이 시대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분명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 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성경이 다른 책하고 달리 위대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구
원에 이르는 지혜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안내서 입니다. 정신수양이나 교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에 비해
세상의 지 식은 우리의 영혼을 죽음과 죄의 세력으로부터 건져내는 데 아무 소용 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결코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생 교훈과 지식은 제시할 수 있을지 몰라 도 영혼구원의 문제에 대해서만은 세상의
어떤 지식도 바른 해답을 줄 수 없습니다. 성경만이 이 지혜의 원천입니다.
어두운 감옥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000년도 우리 교회 표어를 '말씀으로 돌아가자' 라고 정했다 해서 '과거로 후퇴하 자'
라든가 '옛날로 돌아가자' 라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합 니다. 오히려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의 지혜와 능력과 은혜를 얻는 길만
이 앞을 향해 바르게 전진해나갈 수 있는 최상의 지름길이 된다는 사실 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새천년의 문을 여는
비밀코드가 있 습니다. 이 세상을 이길 유일한 힘과 권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 온다는 사실을 믿고 오직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 신의 믿음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말씀 속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 를 깨달아 늘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지혜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옵니다. 세상의 지식으로도 구 원이 가능하다면 성경은 존재 하나마나입니다.
누구나 구원의 지혜를 얻 으려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의 언어를
다 섭렵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늘 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다 통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 나 아무리 이 세상
모든 언어를 다 알고 모든 지식을 다 통달했다할지 라도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가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에 이르 게 하는
지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 니다.
일전에 말씀 드렸던 페스카마호 선상 반란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이 되어 사형언도를 받아 부산 구치소에 복역중인 전재천씨라는 분을 기억 하실 것입니다. 저희와 면담을 한 뒤로 세례를 받겠다는
연락이 와서 그 분을 따로 돕고 계신 김정득 목사님과 함께 구치소로 가 지난 크리스마 스 예배시에 세례를 베푼 적이 있습니다.
세례 문답을 하는 중에 이 분 이 감옥에서 경험한 생생한 간증을 들으면서 감옥 깊은 곳까지 뚫고 들 어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 찬양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 습니다. 처음 사형이 확정되는 순간 도저히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가 없
었다고 합니다. 순간 순간 죽고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생각이 자기 가 족에게 미칠 때면 너무나 답답하고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는 겁니 다. 궁리 끝에 '나는 사람을 직접 죽인 일도 없고 동료들의 협박에 못이 겨 어쩔 수없이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저지른 일이니 형량을 감해달라' 는 내용을 적어 법무부장관 앞으로 탄원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국에 발각되어 징벌을
받게 됩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자기 의 사정을 알릴 길이 없다고 판단되어 그렇게 한 것뿐인데 반대로 일이 꼬이고 만 것입니다.
냉방이나 다름없는 작은 독방에 갇혀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얼마나 불안하고 괴로운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먹는 것도 변변치
않고 팔 다리는 사슬에 묶여 불편하기 짝이 없고 날씨는 추워 잠시도 가만히 앉 아있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칠 것만 같더라는 거지요.
거기다 고양이만한 큰 쥐들이 자기 주위를 어슬렁대면서 도망가지도 않고 틈만나면 달려들 어 물어뜯는데 잠은 잘 수가 없고 마음에는
분노의 불길만 치솟아 오르 고 원한만 쌓여 가는데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불덩어리 아무런 희망도
없이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지나던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꿈이 자신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자기 머리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지더니 하얀 구름이 저 멀리서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랍니다. 구름 주위로 찬란한 불
꽃이 번쩍거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흰옷을 입은 한 사람이 나타나더 니 이글거리는 불덩어리를 하나 집어들고는 자기를 향하여 힘차게
내던 지더랍니다. 쏜살같이 자기를 향해서 날아오는 그 불덩이를 보는 순간 "으악......" 하고 뒤로 넘어져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그 불덩어리 가 하나님의 성경책으로 변해 있더랍니다. 그 순간 큰 깨달음이 오더랍니다. "아... 나는 지금까지 이
공산주의 사상에 깊이 빠져 지내왔는데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통해서 내게 무엇 인가 주실 말씀이 있는가 보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 때부터 하 나님의 말씀을 펼쳐서 읽는 중 말씀이 하나하나 깨달아지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게 되었고 그
죽은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얼 마나 못할 짓을 했는가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족들이 자기 때문에 당했을 고통은
둘째치더라도 그들이 그 당시 받았을 고통과 상 처들이 가슴깊이 느껴지더라는 겁니다. 회개의 영이 자신을 감싸기 시작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구세주가 되심을 마음속에 확신하게 되 었고 십자가 신앙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형수에게도 임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능력의 말씀인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김현장이라는 지존파 두목을 아실 줄 압니다. 그
사람이 감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뭐라고 고백했는 줄 아십니까? 말씀을 읽는 순간 그리스도가 보이기 시작하고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사형수 고재봉이라는 사 람을 아시지요?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도끼로 사람을 쳐서
죽인 사람 아닙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화를 받아 새 사람이 된 다음 전도에 힘써 그곳에 있던 이천명의 죄수 중
천팔백 여명에게 말씀 을 전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 였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요? 세상의 지식이나 제도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그런 역사를 일으켜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 받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통하여 구원의
지 혜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원하기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동안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셔서 그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삶 속에서 날마다 복음을 전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 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
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책들은 인간이 다 머리 속으로 생각 해서 적어
놓은 글들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 기에는 하나님의 감동이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말씀에는 능력
이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하나님의 감동이 스며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숨결 본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이 헬라어 '데오프뉴스코스 (theopneuskos)' 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말과 '숨결'이라는 말이 합쳐
진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해 놓 으셨다는 것입니다. 저자를 감동시켰다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하나 하 나, 단어 하나하나, 장, 절 하나 하나를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그 속에 하나님의 숨결을 집어넣으시고 하나님의 감동을
집어넣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거기에 집어 넣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 전해질 때 자연히 하나님의 능력이 그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기 에 놀라운 신앙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못하는
이유가 무 엇입니까? 기도하면서도 왜 우리에게 능력이 없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 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역사가 그 속에 스며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기 적이 나타나고 능력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 까이 하시는 한 해로 만드셔서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성령의 놀라운 기 적과 능력을 체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 충만했다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디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했습 니다. '말씀 충만은 곧 성령
충만이다.' 옳은 얘기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 있기만 하다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 은 놀랍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 능력으로 전도하십시오. 그 능력으로 봉 사하십시오. 그 능력으로 기도하십시오. 그 능력으로 선교하십시오. 무엇
보다도 먼저 말씀의 위력을 체험하십시오.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와 능력을 덧입으십시오.
말씀의
권위아래 복종하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 말씀의 권위 아래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 말씀의 권 위 아래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말씀의 권위 아래에 두어야 합 니다. 남자의 생각이나
여자의 생각이 그 가정을 주장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뜻이 그 가정을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축복 받는 가정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말씀이 가정을 다 스리도록 하십시오. 온 가족이 말씀의 권위 아래에서 서로 사랑하고 복 종하십시오.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능력을 체험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 을 말씀의 권위 아래 두십시오.
성경이 성경을 여러분의
사업이나 직장도 말씀의 권위 아래에 두십시오. 어떤 분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모르시는 말씀 마세요. 그렇게 해서는 아
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아세요? 말씀도 중요하지만 빵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말씀대로 안되는 일도 있는 법입니다. 제발 저를 괴롭히지 마세요." 거짓과 불법으로 돈 을 벌어보려는 분들이 대체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들으세요. 직장의 특수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도 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말씀의 권위 앞에 복종하 며 살려고 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얄팍한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성 경을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내
사정이나 형편에 따라 짜맞추려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성경이 말하도록 해야합니다. 항상 말씀에 비추어 우 리의 정신, 사상,
인생관, 세계관을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 씀을 나의 유일한 권위자로 삼고 내 신앙과 내 행동의 유일한 규범으로 알아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 인생에 대한 모든 해답 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아래 두시고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하늘의 위대한 능력을 체험하 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14절 말씀 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이 말씀을 통하여 세 가지 실천사항을 올 해 동안 이루어 보려고 합 니다. '말씀을 품자!' '말씀을
배우자!' '말씀을 나누자!' 입니다. 말씀을 읽고 말씀을 품고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나누려면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
하여야 하고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하고 말씀을 어떤 것 보다도 더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배우시기를 원하십니까? 얼마나 읽고 계십니까?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나의 사랑하는 책 어느 집사님 댁에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이 심방을 오셨습니다. 예배 를 보려고 하자 기회는 이 때라고 생각하신 집사님께서 자신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를 보여드릴겸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뜻에 서 자기 아이를 불러 부탁을 합니다. "아가야 너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책
있지 않니? 엄마가 늘 보던 거 있잖아. 그것 좀 갖다 줄래?" 엄마는 당연히 성경책을 갖다 주리라고 기대하고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입 니다. 얼마 안있어 책 하나를 달랑 들고 오는데 보니 영 다른 책이더라 는 것입니다. 무슨 책이었을까요?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책'은 성경책이 아니라 백화점 세일품목이 담겨져 있는 홍보 책자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말씀을 가볍 게 여기는 사람은 영적으로 왜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말씀을 귀히 여기는 것이 예수 그리스 도를 귀히 여기는 삶임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을 지배하도록 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읽는 모든 사람의 영혼에 영감
을 끊임없이 불어넣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 를 가지고 있어서 누구에게로 가든지 구원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말씀에 는 능력이 있어 말씀을 뜨겁게 사랑하고 복종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말씀에 붙들릴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 다.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말씀을 뜨겁게 사모합시다. 말씀을 펼쳐서 읽 기 시작합시다. 말씀을
적극적으로 가슴에 품읍시다. 말씀을 열심히 배 웁시다. 말씀을 아낌없이 나누며 살아갑시다. 말씀으로 새천년의 문을 열어갑시다.
< 기도 > 거룩하신 아버지! 저희들이 2000년 한 해를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표어 아래
시작하려고 합니다. 사랑의 주님, 주께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중심으로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우리의 신앙과 행동의 유일한 규범으로 알아 그 권위 아래 복종하며 살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다 체험하게 하옵소서. 늘 말씀을 품고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말씀의 능력이
우리의 삶과 가정과 기업과 교회 위에 강력하게 나타나게 하시고 그 능력을 힘입어 힘차게 전진하게 하옵소서. 말씀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모든
성경은/딤후3:14-17 2001-09-20
09:52:22 read : 60
여기 위대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정치문제를 다룬 책이 아닙니다. 철학문제를 다룬 책도 아닙니다. 경제 문제를
다룬 책도 아닙니다. 문학이나 사상이나 역사나 사회학을 다룬 책이 아닙니다. 어떤 개인의 인물사를 기록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인간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1,600여년 동안 약 40여명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개성과 취미가 다르고, 문화적 수준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감동을 입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감동'이란 '하나님께서 호흡하시는'이란 뜻인데 사람이 하나님의
생기로 생령이 된 것 같이(창2:7) 성경 말씀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절대 영감성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책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어야 될 것을 알리는 책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영생의 책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책이요,
죄인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는 책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생명을 다루는 책입니다. 죄인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영생문제는 천하를 다루는 문제보다 크고, 급하고 중대한 문제입니다. 오늘도 본문을 중심으로 '모든
성경은'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함께 은혜를 받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성경은…
1. 나를 상대하는 책입니다.
본문 14절에도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했습니다. 15절에서도 "또 네가"라고 하였고, "너로"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이 '너'라고 하는 개인을 상대하는 것은 구원이
개인적임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시대시대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상대하고, 나를 구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철저히 개인적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철저히 배워야 할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거하라'는 말은 끝까지 그 상태를 유지하며 머물라는 말입니다. 계속적인 거주를 의미합니다. 성경을
배우면서 예수를 알고, 성경을 배우면서 영생을 알고, 성경을 배우면서 천국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소중한 말씀이기에 누구에게서 배웠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곳은 성경을 가르치는데 내세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을 퇴색시켜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특히 이단은 성경을 가르치는데 자기 중심적으로 가르쳐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가르치는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디모데는 성경의 진리를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배웠습니다(딤후1: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진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 바울을 통해 철저히 배웠습니다(10-11절,행14:12) 오늘도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비결입니다. 모든 지혜와
보화가 이 성경 말씀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이 나를 상대하면서 오늘도 바르게 배우도록 요구하고 있고, 배운대로 확신에
거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2. 구원을 얻게 하는 책입니다.
본문 15절 말씀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죄로 타락한 죄인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리는 구원의 책입니다. 인생이 지닌 문제는 정치문제도 아닙니다. 인생이
지닌 문제는 경제문제도 아닙니다. 과학문제도 아니요, 교육문제도 아니요, 세계 평화문제도 아닙니다. 환경문제도 아닙니다. 이런 문제들은
인생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는 영생문제입니다. 이 영생문제를 성경이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로
하여금 믿어 구원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구원의 길이 하나밖에 없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행4:12). 오직 예수 그 분만이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실 자이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방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끝이 나게 됩니다. 성경의 기록 목적도 바로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구원자 예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해 기록하고 있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이 성경이 바로 구원을 얻게 하는 지혜서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3. 신전 인격자로 만드는
책입니다.
본문 16절과 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는 이제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에게 교훈을
주고, 잘못된 길로 갈 때에는 책망을 하고,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바르게 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잘못되었을 때 우리의 길을 교정하고, 회복시키며, 바로 잡아줍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게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땅의 가치관이 아닌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땅에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으며 살아야 합니다(3:1-2). 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땅의 것에 집착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땅에 것에 너무 목숨을 걸지 않나 싶습니다. 혹시 땅의 것이 부족하거나
없으면 살지 못할 것으로 안절부절하지 않습니까? 무언가 땅의 것을 손에 쥐어야 안심하고 사는 연약한 성도들은 아니십니까?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로 예수 믿고 구원을 베푸신 것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함에 있습니다. 성도는
자기 욕심만 챙기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는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 '온전한'이란 말은 '완전히 적합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적합한 사람, 선한 일을
행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꼭 필요한 사람,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기에 알맞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모든 성경은' 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누구도 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성경은
오늘도 나를 상대하며 나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성도로 하여금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고 했습니다. 이기적인 성도의 삶이 아니라 이타적인 삶을 살도록 우리를
변화시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는 고상한 삶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선한 일을 열심 내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믿음의 삶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딤후3:14-17 2001-09-20
09:53:21 read : 38
성경학교에 물심양면으로 도웁시다.
밀알제단이 세워지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여름 어린이 성경학교가 7월
22일(월) 오전 9:30분부터 24일(수) 오후까지 3일간 열리게 됩니다. 성경학교는 이름 그대로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으나 모든 교육의 소재(素材)가 성경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학교 교사는 어린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자로서 성경에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아이들의 정서에 맞도록 잘 요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일학교 교육이 범하기 쉬운 과오가 무엇인가? 성경을 하나의 교리적으로만 가르쳐 구원에 관한 지식만 전달해서는 안됩니다.
모태로부터 신앙생활을 한 자들이나, 어려서부터 주일학교 교육을 받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무엇인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기나 중년기에 들어서면서 교회의 제도적인 것에 염증을 느낀 자들이 교회를 이탈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이단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어떤 이론이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개인적인 사건입니다.
바울은
그가 임종을 앞에 두고 젊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할 때 세속적인 가치관을 거부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중심에서 자신을
세우고, 그후에 양무리를 치는 사역자가 될 것을 부탁했습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그러면 이 성경은 지금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가?
첫째: 성경은 당신에게 구원의 확신을 줍니다.
읽을 말씀☞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14절)
본문 앞 13절에 보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말씀하신 후 14절에서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이는 앞의 속된 가치관을 부정하고 뒤에 나오는 영적인 가르침을 따를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중요한 단어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배운다」는 희랍어 「에마테스 - ??????」인데 2인칭 단수 능동태이며,
다른 하나는「확신한다」는 「에피스토테스 - ?????????」로서 3인칭 단수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너가 배우는 노력을 통해
열심히 행하면 그가 확신을 주실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배우는 열심히 수반되지 않고는 확신을 얻은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얻어지는 어떤 의지나 신념이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 언약의 말씀을 통해서 주어진 은총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가르치는 교사로서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느냐」하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함은 제자에 대한 스승의 책임을 묻는 말입니다. 잘 배워야 할 제자의 사명도 중요하지만 잘 가르쳐야 할 스승의 사명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역을 통해서 세우기도 하고 넘어지게도 합니다. 그러므로 후일에 선생된 자들의 받을 심판이 무서운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태복음 18:6)고
했습니다. 주님은 어린아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유대인의 격언에 「자식을 사랑하거든 상위에 고기를 올려놓지 말고
바닷가로 데리고 가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 그리하면 평생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라는 후세들을 바르게
교육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 세워 두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디를 가도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창세기 39:3) 주일학교의
연장인 성경학교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둘째: 성경은 당신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읽을 말씀☞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5절)
디모데의 신앙교육은 어린 유아기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디모데후서 1:5)고 했습니다. 유아기에 철저하게 배운 교육은 평생동안
잊어지지 않습니다. 모세가 그 어머니에게 젖을 먹으면서 배운 히브리사상은 사십년 동안 바로의 왕궁에서 배운 애굽의 사상을 능가한 것입니다.
바울의 편지속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희랍말로 「엔 크리스토스 -?? ??????」라는 말인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이 말을 자주 사용함에는 자신의 삶속에 잊을 수 없는 다메섹 사건이 있었습니다(사도행전 9:5). 그가
예수밖에 있을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었으나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을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렸는데 오히려 기쁨이
충만했던 것입니다(빌립보서 3:8).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성경에 구체적인 경제학
이론이 없으나 경제의 뿌리인 물질을 다루는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누가복음 12:15). 성경이 정치학을 가르치지 않으나 모든 권세가 위로부터
주어짐을 가르칩니다(로마서 13:1). 성경이 과학적인 이론을 가르치지 않으나 모든 사물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줍니다(로마서
11:36). 영국의 심프슨 교수는 환자에게 고통 없이 치료하는 비결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창세기2:22절에서 하나님이 하와를 창조하는 모습을
보고 1847년 마치제 클로로포름을 발견했습니다.
셋째: 성경은 당신을 교육할 유일한 책입니다.
읽을 말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6절)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하면 어떤이들은 말하기를 「성경이 사람의 손으로 기록되었는데 어찌 하나님의 말씀인가」라고 반문합니다. 물론 성경을 기록한 분은
선지자와 사도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기록할 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혹은「예수께서 가라사대」라고 하심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들의 사상과 인격과
감정을 감동하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록하도록 간섭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한점의 오차나 오류도 없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을 교육하는 백과사전이요, 인간의 가치관을 바르게 형성하는 영적인 종합훈련장입니다. 성경만이 인간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인생의 교과서입니다. ① 성경은 당신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여 당신의 무지를 깨우쳐 교훈하는 책입니다. ② 성경은 당신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불순종할 때 당신을 책망합니다. ③ 성경은 당신이 범죄했어도 죄에서 회개하고 돌아서서 바르게 살아가기를 가르칩니다. ④
성경은 당신의 구원이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당신을 주님의 분량까지 자라게 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이
본 받아야 할 영원한 푯대입니다(빌립보서 3:12-14; 히브리서 12:1-2).
「세익스피어의 책 한권과 인도와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물질적인 것보다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정신적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날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자녀들에게 돈을 물려주지 말고 돈을 관리할 수 있는 삶의 지혜인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쳐 믿음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마태복음 16:26). 우리의 생명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의 비밀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넷째: 성경은 당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합니다.
읽을 말씀☞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17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브리서 4:12)고 했습니다. 당신이 성경 앞에 바로 서기만 하면 세상에 속된
것을 다 벗겨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성경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유한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것이므로
이를 해석할 때 몇가지 원리가 따릅니다. ① 계명적 원리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 지켜는 우상숭배나 부모공경 같은 영원히
불변하는 것입니다. ② 변형된 원리입니다. 구약의 계명이 신약의 복음으로 변형된 것으로서 안식일이 주일로, 제사가 예배로 변형된 것입니다. ③
역리적 원리입니다. 버리면 얻고, 죽으면 사는 것으로 이것의 최후 입증은 예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④ 풍속적 원리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문화적인 차이를 서로 용납하는 것으로서 입?추는 인사법이나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 등입니다.
16세기 영국의 제임스왕의
애기입니다. 국내에 도둑이 만연하여 소탕작전을 벌렸습니다. 그래서 만약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사형을 처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암스트롱이라는 자가
양 한 마리를 훔쳐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사형을 면키 위하여 지혜로운 깨를 써서「왕이 번역한 성경을 죽기전에 읽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허락을 받아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빨리 읽으면 죽게 되니 한 구절씩 천천히 묵상하면서 읽었습니다. 엄청난 시간이 걸리자
사형일자가 연기되었고 나중에는 집에 가서 읽게 되는 특혜를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그는 변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이제 나를 죽여
주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하니 「이제 나는 죽어도 천국에 가니까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온전히
변화시켜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디엘 무디는 말하기를 『나는 한때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어느날
믿음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뚝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믿음은 그렇게 오는 것 같지 않았다. 어느날 나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는 말씀을 읽었다. 이전에는 나는 성경을 덮어놓고 기도만 했으나 그러나 이제는 성경을 펴서
놓고 기도하면서 공부하니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속에서 역사합니다.
성경은
무엇인가?/딤후3:14-17 2001-09-20
09:54:13 read : 82
역사학자 벤눔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오 천년 역사는 그들이 그들의 자손에게 두 가지를 물려준
역사라고 했습니다. 무엇 무엇일까요? 하나는 성경이요, 또 하나는 예루살렘의 성전 곧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주신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죽어 가는 모든 인생들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과의 사이에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설교를 듣는 사람과 듣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에도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이 성경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이 너무도
적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① 다른 많은 이야기를 하느라고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공부해라, 숙제해라, 그림 그리라,
피아노 치라, 노래공부 하라, 영어회화 하라, 또는 태권도를 배우라, 영양식을 먹어라'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까 성경이야기를 외면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② 교회 다니기는 하지만 실상 부모 자신이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시세는 알고, 물가는 알아도 성경의 진리를
잘 모릅니다. 여당은 어쩌고, 야당은 어쩌고 돌아가는 정치형편은 알아도 성경은 모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성경 이야기하는 것을 잃고들 산다는
것입니다. ③ 결국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입니다. 또 구원은 예수님만이 주십니다. 그런데 믿는 부모들이 내
자녀들도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겠다는 확신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내일 내일 하다가 자녀들이 성경을 멀리 떠나 살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작은 책입니다. 분량에 있어서나 크기에 있어서 다른 책에 비하면 작은 책입니다. 불교의 경전 중에는 팔만 대장경이 있습니다. 얼마나
엄청나게 큰 책인지 모릅니다. 여기에는 사서삼경이 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전집도 수십 권이고 대형 백과사전도 수십 권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
한 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책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 때문에 역사가 달라지고, 세계가 달라지고, 인간의 문명이 달라졌습니다.
성경은 작은 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장 큰 책입니다. 편의상 구약과 신약으로 나눕니다. 영어로 구약을 Old Testment라고 하고,
신약을 New Testment라고 부릅니다. 이 Testment는 계약 또는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구약은 옛 약속이요, 신약은 새 약
속의 책입니다. 그 약속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구약도 예수, 신약도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 책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오실 예수, 또 하나는
오신 예수, 그리고 하나는 다시 오실 예수입니다. 사도행전은 오셔서 활동하는 예수님을 그려놓고 있고 요한계시록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은 오신 예수님에 관한 예언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신약은 오신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있습니다. 왜 성경이 이토록 예수님을
강조합니까? 행 4:12이 답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성경을 무료로 반포하는 선교 단체가 있습니다. 그곳은 한국 국제 기드온 협회입니다. 사역자들은 학교,
병원, 군부대, 호텔 등을 방문하면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 성경을 무료로, 공짜로 선물로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기드온 협회가 하는
일은 사랑의 운동이요, 생명의 운동이며 구원의 운동입니다. 왜 이 분들이 사제를 털어 가면서 성경을 나누어주어야 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얻습니다. 그래서 롬10:17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을 전해야 구원의 문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엊그제 제33차 한국 국제 기드온 협회 전국대회를 가졌는데 우리 교회 조군종
장로님 주선으로 초정 만찬회에 저희 부부가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영하50도의 혹한의 시베리아까지 찾아가 불쌍한 영혼들에게 이 성경을 나눠주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는 한국 기드온 협회가 한국 불쌍한 사람들만을 위하여 이 시간까지 삼천 팔백 만 부를 나누어주었다는 보고를 듣고
감격한 바가 있습니다. 본문14절 "너는 배우고"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배운다는 말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이요,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은 예수님을 배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배우는 교과서가 무엇입니까? 단 한 권의 책 성경입니다. 그러니까 배우라는 말은
성경을 배우라는 의미입니다. 배우되 언제부터입니까? 본문15절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위하여 어릴적부터서 이 성경을 배워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성경은 최고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오래된 책이요, 가장 진실된 책입니다. 가장 사랑 받는 책이요,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책이며, 많이 팔리고 있는
책입니다. 가장 많이 번역된 책이요. 가장 많이 핍박을 받은 책입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인생에게 보람을 안겨준 책입니다. 인류와 역사와
개인과국가에 공헌하고 너무도 엄청나게 영향을 끼친 책이 성경입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은 만민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양식이 되고, 인생의
길, 등불, 빛도 됩니다. 성경은 죄를 태우는 불도 되고 마귀의 머리통을 부수는 방망이도 됩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성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꿀송이 보다도 더 단 말씀이요, 그 진리가 너무도 심오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만은 어렸을적부터
배워두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둘째 성경은 만민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신화가 아니고, 전설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직접 묵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점에 성경의 권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구름을
통해서 번개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영원히 윤택해 질 수 있는 귀한 말씀이 이 속에 담겨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성경 속에는 그림, 예술, 조각이
있습니다. 물론 실존주의가 있고 허무주의도 있습니다. 문학, 철학, 과학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들이 시 가운데 시요, 노래가운데
노래입니다. 그래서 괴테는 그의 파우스트를 창세기3장에서 본 땄고, 밀턴은 실락원을 요한 계시록에서 본 땄습니다. 영국은 두 개의 책을 가진
나라입니다. 하나는 세익스피어고 또 하나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세익스피어는 영국이 만든 책이라고 하면 성경은 그 영국을 만든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성경은 구원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본문15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말속에는 세 가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① 지난 죄는 사함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죄는 사함 받고♬우리의 찬송입니다. ②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를 거느리시니 평안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역시 우리의 찬송입니다. ③ 미래에 천국으로 올라가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내
주의 손을 붙잡고 천국에 올라가겠네♬이러한 성경을 어찌 어렸을 적부터서 배워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오직 한 길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는 길입니다. 그런데 성경 군데 군데에서 말합니다. "그 길을 찾는 자는 영생을 얻으려니와 그
길을 찾지 못한 다는 멸망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성경을 사랑합시다. 성경을 읽읍시다. 성경을 실천하십시다. 성경을
전파하십시다. 기드온 협회에서 수고하는 사역자들 처럼 우리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동역자가 된다고 하면 미담거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성경을 전해야 합니다. 여기에만 민족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 받는
내 민족이 되어진다면 얼마나 행복스러운 일입니까? 이와 같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딤후3:14-17 2001-09-20
09:55:11 read : 46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마음에 늘 자리잡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예'의 이름의 뜻을 가진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어릴 적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성경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루스드라에 방문하여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기에 믿음으로 낳은 아들로서 그를 사랑하였습니다. 제 2차 로마 옥중에서 하나님께 드려질 순교의
제물로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고 싶어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오라고 서신을 띄우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본문
3장에서 말세에 나타날 여러 가지 죄악과 이단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수요일까지 여름 성경학교가 개교됩니다. 올해도 전도사님을 중심으로 함께 복음 전선에 몸과
시간과 정열을 쏟아 여름 성경학교에 헌신하는 교사 여러분들께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성경학교를 위해서 간식과 식사
봉사로 물질을 드리고, 몸을 드려 봉사하실 여전도회 회원 여러분들께도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도 본문을 통해서
"성경은..."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함께 은혜 받기를 소원합니다. 특별히 성경학교를 맞이하여 교사가 무엇을 가르쳐야 되며
우리가 가르치는 성경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깨닫고 은혜 받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1.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감동'은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과 같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소설가들이 흥미
위주로 기록한 것과 같은 소설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한 두 번 읽고 접어주는 교양 서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옛날에 기록한 고전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하나님은 약 1500여년 동안 40여명의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각기 다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감동시키셨습니다. 자라 온 배경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개성과 취미가 다른 저들을 감동시켜
성경을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은 지금도 살아 있어 이 성경을 읽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함으로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링컨은 "인류 창조이래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은 곧 그 말씀인
성경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영국의 왕 죠지 5세는 '성경은 영국에 있어 가장 귀한 보배이며,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라고
예찬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자체로 신적 권위가 있습니다. 결코 사람이나 교회가 성경을 인정했기 때문에 성경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의 독자적 신임성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외치는 불신앙의 시대입니다. 신학자들의 입에서도 서슴없이 나오는 소리입니다. 교회에서조차도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박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임을 천명하며, 천지는 없어져도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이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2. 구원을 주는 지혜의 책입니다.
본문 15절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철학이나 문학이나 과학이나 정치학의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죄인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의 책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졌고, 영생을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구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인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 성경이 바로 이러한 구원의 책이기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절)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 '거하라'는 말은 '계속적으로 머물러 있으라'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 신자들이 복음을 버리고 다시 율법주의로 되돌아가고, 이방인 신자들은 도덕적 패륜에 빠져 믿음의 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진리를 배우지 못하고 확고한 신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을 배우고 확신 속에 거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도 성경을 가르치는
교육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 일 때문에 주일학교가 필요하고, 성경학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컴퓨터를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속셈 학원에 나가야 되고, 수영도 배워야 되는 딱한 처지에 있습니다.
물론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목적을 포기하고 삶의 수단으로 필요한 한 부분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치 문제입니까?
아니면 경제 문제입니까? 결코 정치, 경제문제, 교육문제, 사회문제, 환경문제들이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은
인생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인생이 지닌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영생문제입니다. 이 문제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크고,
증대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에다 목적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경은 인생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줍니다.
생(生)과 사(死)의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 영생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내세의 문제에 있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죄로 타락한 죄인들에게 영생을 주는 구원의 책입니다. 이러한 소중한 성경을 우리가 더 사랑하고 애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3.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통일성을 보여줍니다. 약 1,500여년 동안 40여명의 저자들이 다른 시대, 다른
장소, 다른 역사적 환경 속에서 성경을 기록했는데 그 내용의 주제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 공통된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5장 46절에서도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니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칼빈(Calvin)은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 길이 없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를 믿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그릇된 자들은 구원의 길이 많이 있음을 주장하지만,
성경은 구원의 길이 오직 한 길(행4:12, 요14:6)뿐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4. 사람을
변화시키는 책입니다.
본문 16절과 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은 인간에게 유익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교육과 선행의 표준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은 죄인을 위해 복음의 진리를 교훈하고, 죄에 대하여(살전5:20,딛2:15),
이단에 대하여(딛1:9,13) 책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다시 올바른 자세에 서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선을 행하기에 온전케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사람'은 구약에서는 주로 선지자들을 지칭했으나 좁은 의미로는 디모데와 같은 전도자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신자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어떠한 사람에게 국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도를 성도 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를 성도다운 성도로 만들며, 사랑의 일을 하도록
충동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성경에 대해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고, 지금도 살아있어 죄인을 회개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주는
지혜의 책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생을 상실한 인생에게 오직 예수께 구원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입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 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책입니다. 세상적인 그 어떤 방법으로도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도록 능력을 제공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을 소중히
알고 성경을 배우고, 성경 속에서 거함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신앙교육의 목적/딤후3:14-17 2001-09-20
09:56:02 read : 47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 6장 6-9절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18-20절
신명기 6장 6-9절
말씀 가운데서 네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수시로 말씀을 강론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보면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가운데서 한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교육을
통하여 사람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것 이 있었지요. 못 먹고 못 살아도 이웃을 생각하는
민족 이였습니다. 동네에서 막난이 들은 어르신들의 준엄한 훈계가 조금이나마 통하는 시대였습니다. 고등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인간다운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유치원부터 시작하여서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학 박사과정----
우리의 현실은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인간다운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극심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생사를 건 생존경쟁, 황금만능주의,
이세상에 만연된 부조리와 한탕주의, 소돔과 고무라와 같은 성적타락 ---- 이루 열거할 수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는 고등교육을 받지만 가장 중요한 인간교육에는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큼직 큼직한 사건들을 보면 어느교회 권사님, 장로님, 집사님 이더라고요. 신앙은 있고 믿음이 있어서 구원은 받았지만 성도들의 삶은 변화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신앙교육에 문제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말씀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 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교육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다른 책과 구별되는 대단한 권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
때문에 그 교육적인 효과는 대단한 것입니다.
단순히 성경교사는 지식의 전달하는 것이 아님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보면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가르치는 단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행동을 동반하도록 하는 교육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교육은 피교육자의 전 인격적인 삶의 변화까지 교육에 포함시켜는 것입니다.
※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일을 하도록 교육적인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 위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 성도들과 교 사들 그리고 목회자의 과제입니다.
기독교의 교육은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교육을 할 때 하나님의 성령은 그 말씀과 함께 역사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심령 속에서 부딪쳐 일어날 때 흉악한 사람도 양과 같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대도라고 말한 조세형씨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변화되어서 지금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전도사로 활동하대요. 조직깡패 대부인
사람도 복음 앞에서 항복하고 목사가 되던데요. 모든 죄인들도 말씀가운데 주님을 만나서 변화 받고 구원받으며, 그의 삶이 놀랍게도 변화 받는 삶을
살데요. "저사람은 가망 없어 저 사람은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니랴! 저런 사람이 예수을 믿어--" 이런 사람도 주님의 말씀 앞에서 항복을 하고
예수 잘 믿고 변화된 삶을 살 아가데요.
※ 이 모든 일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는 다
가능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교사들은 특히 하나님께 생명 걸고 기도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바랍니다. 우리가 생명을 받치는 결단이 없이
어찌 한 영혼을 살리는데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겠어요? 우리들의 일은 다 보고 남은 시간에 애들은 가르치고 아니면 말든가? 이런 결단으로는
아들의 신앙은 절대로 성장시킬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 성경 교사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사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양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종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신명기 6장 7절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은 부모가
철저하게 훈련시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4-15 말씀에 보면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어려서부터 성경교육을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 오늘날은 참으로
바쁘게 살아갑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서 가정예배를 드리지 못할 정도로 모두들 바쁘게 살아갑니다. 여유가 없어요. 아침일찍 출근을 하여서
밤늦게 귀가하고 학생들은 아침일찍 등교을 하여서 밤늦게 집으로 옴니다.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은 많더라도 신앙적인 일에는 열심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의 신앙교육에는 게을리 하지 맙시다.
주일학교 교사들에게만 신앙교육을 다 맡기지 마시고 부모님들도 관심을 가지시고
신앙교육에 열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가정안에 신앙교육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가정예배입니다. 자녀얼굴을 잃어버린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는
삶속에서 가족 구성들이 하나님앞에 한자리에 모여서 성경을 읽고 찬양하고 믿음의 큰 소망과 위로의 말씀과 기도를 한다면 그 가정은 하나님이 함께
한 가정이요.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가정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가정은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빠져갈수 없습니다. 예배하는 가정은
남편이 바람 피울일이 없습니다. 가정에 불화가 있을수 없습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위해서 서로 기도함으로 어떠한 일도 믿음으로 극복될줄
믿습니다.
♣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취약한 부분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교육하기 위해서 교회 주일학교 교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사들에게만 신앙교육을 다 맡기지 마시고 교사와 함께 긴밀한 연합관계에서 협력하시길 바랍니다. 아이가 늦잠을 잔다면
깨워서 예배시간에 늦지 않도록 하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자녀가 교회에 나왔는지 결석하였는지 점검하고 교사들의 말씀을 잘 배우고 있는지도
점검하는 부모가 되시길 바랍니다. 교사가 아니더라도 동네에 놀고 있는 어린이들이나 중. 고학생들이 있으면 교회 나가도록 종용하고 교회로 인도하는
관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 오늘날 학생들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필요로 하고 중요한지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도 우리는 잘 알 수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을 살펴볼 때, 우리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빼져버릴 수 있는 유혹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름니다.
지금은 컴퓨터 마우스 클릭한번 함으로 전세계의 정보들을 다 열어 볼수 있습니다. 저는 요 교회 사이트에 많이 접속을 합니다.
유능한 목사님들의 설교나 찬양을 보고 듣지요. 얼마나 좋은지 모름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은혜 받을 곳에 접속을 많이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제력이 없는 어느 몇몇 청소년들은 어느 사이트에 많이 접속을 하겠습니까? 지금은 음란 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여러분 음란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접속을 못할 줄 아십니까?
중요한 것은 심령의 변화입니다. 아무리 음란
차단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도 또 잘못된 일을 한다고 훈계하고 매를 든다고 하더라도 심령의 변화가 없으면 잠시뿐입니다. 이것은 청소년만 해당되는
것은 아님니다. 성인들도 성적인 문제가 심각하데요. 딸 같은 미성년자와 매춘행위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지금은 명단을 발표하지요.
아무리 명단을 발표하고 감옥에 처넣는다고 하더라도 심령의 변화가 없다면 그런 불행한 행동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아이들과 우리의 영혼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며 말씀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사들이 아이들의 신앙을 교육하는 위치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공과를 가르치는 단계에서 한 아이의 신앙을 양육하는 영적인 부모로써 아이들을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승리할수 있는 길은 오직 믿음뿐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요한 일서 5장4-5절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 마지막으로 성경은 능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모데후서
3장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리라"
복음전파는 우리의 언어을 통해서 전달합니다. 우리의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말이 복음을
실으면 사람을 살리는데 사용되지만, 우리의 말이 사탄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사람을 죽이고 멸망을 시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가르쳐서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학생 신앙
운동!/딤후3:14-16 2001-09-20
09:57:28 read : 21
오늘은 교단에서 지정한 S. F. C 주일입니다. S. F. C는 Student For Christ의 첫 글자를
옮긴 것인데, 번역하면 "그리스도를 위한 학생", "그리스도를 향한 학생"이라는 뜻인데 이것을 '그리스도를 위한 학생운동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 안에는 수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단체들은 거의가 한국에 복음이 전래됨과 동시에 함께 전래되었거나 아니면 그 후에
들어온 단체들이지만 학생 신앙 운동(S.F.C)은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 신앙 운동'은 1945년 조국 해방과 함께 순수한 한국적
신앙의 뿌리에서 나온 단체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이 해방의 종소리와 함께 대한 예수교 장로회는 새로운 역사적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회개 운동이었습니다. 이 회개는 한국 교회가 범한 공죄입니다. 1938년 9월 10일, 제 27회
총회가 범한 신사 참배 가결의 공죄는 역사가 소리를 지름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성경과 우리의 신앙의 양심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고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사 참배를 솔선수범하고 일본 기독교 조선 교단을 만드는데 공헌한 교직자의 선동, 심지어 교인을 이끌고
일본 천조대신 이름으로 물세례(미소기 바라이)를 강행시킨 일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 사죄를 구하며 회개할 일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1945년 9월 18일에 모여 경남 재건노회가 조직될 때의 현 교직자 '자숙안'은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 자숙안은 목사,
장로, 전도사는 일제히 자숙에 옮겨 담임 교회를 사면할 것과 자숙 기간이 완료되면 교회는 현 교직자에 대한 시무 투표를 시행하여 그 진퇴를
결정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종교 정책을 선동하던 일부 교권주의자들은 이 역사적인 회개 운동에 불참하고 교묘히 이 안을
폐기시켰습니다. 둘째는 신학 사상의 정립 운동입니다. 1938년 9월 30일에 평양 신학교가 일본 총독부에 의하여 폐교되었고,
보수주의 선교사들은 본국으로 귀국하고, 보수주의 신학자들이 국외로 추방 내지는 망명의 길을 떠날 무렵 미국으로부터 자유주의 신학을 입수하여 한국
교회의 정통 신학 사상에 도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평양 신학교가 폐교되자 이들에게는 자유주의 신학 부상에 절호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1940년 4월에 정식으로 서울에서 개교를 보았던 "조선신학원"(현 한국신학대학)이었습니다. 초대 교수로는 채필근,
김영주, 함태영, 이정로 목사이고, 그 후에는 송창근, 김재준, 윤인구, 한경직 목사가 보강되었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평양신학교가
폐교된 상황에서 이 조선신학원이 일제 박해 아래서도 건재하여 해방이 되기까지 일본 기독교 조선 교단의 그늘 아래 성장하여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1946년 4월 서울 숭동교회에서 모였던 제 32회 남부 총회(당시 38선으로 이북 교회 대표들이 참석치 못하였으므로 제 32회 남부
총회라 칭함)가 이 신학교를 총회 직영 신학교로 인준 가결하였습니다. 실로 이것은 해방 후 한국 교회 운동에 치명상을 입힌
결정이었습니다. 신사 참배를 주동한 목사와 교수들로 운영되어 온 신학교를 아무 체계나 비판 없이 그대로 받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총회
직영 신학교로 결정한 것은 제 27회 총회의 결의를 스스로 재확인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여기에 항거하여 1946년 9월 20일에
부산에서 고려신학교를 개교하여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확립하여 전 평양 신학교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해방 후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하여 정면 대결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학 사상의 정립 운동이었습니다. 셋째는 학생 신앙 운동입니다. 이 학생 신앙 운동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회개와 자숙 운동이 결국 어린 학생들의 가슴을 움직였습니다. 이 어린 학생들의 가슴과 가슴이, 마음과 마음이, 뜻과 뜻이 마주치게 되어 매주
토요일이면 책가방을 들고 제일 영도 교회로 모여들어 기도의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기도의 모닥불로 모였던 것이 시작이 되어
저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⑴ 학업 충실입니다. 저들의 신분이 학생이라는 것과 그 학생의 본분은 학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학업에 열중하는 것이 사명의 완수인 동시에 그 학업 성적의 우수와 행실의 본이 되어야 불신 학생들에게 전도가 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근심을 덜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⑵ 학원의 복음화입니다. 어른들과 교역자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학교가 바로
저들 학생들의 전도 구역이라는 것을 알고 '학원은 우리 손으로'라는 슬로건으로 학원 복음화를 결의했습니다. ⑶ 교회 봉사입니다.
교회에서는 저들의 힘이 미치는 작은 일부터 교회를 봉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되어 일어났던 학생 신앙 운동을 기억하고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Ⅰ. S. F. C의 특징
이렇게 시작된 이 학생들의 기도 모임은 1947년에는
학생신앙협조회라 부르다가 1948년 8월 2일에 학생 신앙 운동(Student For Christ)으로 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1. 신앙의 자발심에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총회나 노회나 혹은 어느 특수한 영적 지도자나 혹은 외국 선교
기관이나 단체의 사전 계획이나 권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것은 순전히 시대적 요청인 회개 운동에 동참한 어린 학생들 스스로에 의하여
일어난 운동이었습니다. 2. 신앙의 자립 운동입니다. 개인적인 신앙 인격 즉, 각 개인의 중생 체험이 이 운동의 특례입니다. 결코
의타적이거나 의존적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스스로 일어난 신앙 자립 운동으로써 기도 자립, 예배 자립, 봉사 자립, 전도 자립인 순전한
학생들의 창의적 운동이었습니다. 3. 순수한 학생 운동입니다. 성년이나 청년이 아닌 그리고 사업가도, 교육가도, 실업가도 아닌
내일의 성년이 되기 위하여 오늘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배우는 학생들만의 신앙 운동입니다. 4. 순수한 신앙만의 운동입니다. 순수한
주의 보혈의 공로를 입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산 생명을 공급받는 신앙의 산 체험을 가진 그 신앙을 기초로 하여 일어난 운동입니다.
Ⅱ. S. F. C 강령
S. F. C.의 강령은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 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한다. 우리는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을 확립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됨을 우리의
목적으로 한다. 우리의 사명은 다음과 같다. 1)개혁주의 신앙의 대한 교회 건립과 국가와 학원의 복음화. 2)개혁주의
신앙의 세계 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 우리의 생활 원리는 다음과 같다 1)하나님 중심 2)성경 중심 3)교회 중심
1. 신조입니다. 우리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은 칼빈주의 신학 사상으로써 성경을 기초한 사상인데 ①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혀 그릇됨이 없는 것으로 믿으며 ②삼위일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는 신앙인데 어디서나, 무엇에나, 하나님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 통치를 믿으며, ③인간의 전적 부패를 믿는 신앙으로
인간은 구원에 들어간 선(善)을 전혀 행할 능력이 없음을 믿으며, ④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절대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지한 무조건 선택과
영원한 언약으로 되어짐을 믿으며 ⑤예수는 그리스도로서 참 하나님이시며 성령의 권능으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참된 사람이시며, 그는 죄인의
중보자시요, 그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재림을 믿으며 ⑥성령으로 중생 됨을 믿으며, 성령의 회개와 은혜로 사죄함을 받으며,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을 믿으며 ⑦하나님의 율법은 성도가 지킬 법으로 구원의 조건은 아니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켜야 할 규례임을 믿으며 ⑧성도는
신앙 양심에 위배된 것을 거역할 자유가 없음을 믿으며 ⑨일반 계시 곧 보통 계시를 믿으며 ⑩성도의 교제를 믿으며 ⑪두 가지의 성례를 믿으며
⑫교회의 권징을 믿으며 ⑬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나님께 가고 몸은 흙으로 돌아갔다가 주의 재림할 때 육신이 부활하여 주와 함께 온 영혼과 합하여
영생을 얻는 것을 믿으며 ⑭주님의 재림과 최후 심판을 믿는 신앙입니다. 2. 목적입니다.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을 확립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됨을 우리의 목적으로 한다. 이 말은 ⑴ 개혁주의 신앙 확립입니다. 이 신앙은 ①성경주의 신앙이요 ②정통적
신앙입니다. 성경을 해석하고 믿는 것이 자기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세계 속에 흐르는 신앙의 정통을 따르는 것인데 아벨, 노아,
아브라함, 엘리야, 이사야, 세례요한, 칼빈, 메이천, 바빙크, 주기철, 손양원 목사의 신앙을 따르는 것이요 ③회개하는 신앙이요 ④쟁취하는
신앙입니다. ⑵ 개혁주의 생활 확립입니다. 신앙만의 정통이 아니라 생활의 순결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듯이
신앙의 정통은 생활도 순결해야 합니다. 성경을 믿으면 성경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 생활의 표식은 ①진실한 생활이요 ②겸손의 생활이요 ③순결의
생활입니다. ⑶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는 동시에 온갖 부패한 것을 방지하여 세상을 성결케 해야
합니다. 3. 사명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의 대한 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입니다. ⑴대내적 사명입니다. ①개혁주의
교회 건설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 훈련을 받고 그 교회에 한 알의 밀알이 되고 그 교회를 위하여 전도에 힘쓰며 교회 부흥에 진력하고 ②국가의
복음화를 성취하기에 힘쓰는 것이며 ③학원의 복음화입니다. ⑵대외적 사명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에 의한 사명입니다. 4. 생활의 원리입니다. ⑴하나님 중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주권 사상의 반영입니다.
하나님 주권 사상이란 하나님 의지의 자유와 하나님 의지 적용의 자유와 의지 적용의 결과 성취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영계나
자연계나 인간의 도덕계에 까지 미친다는 것입니다. ⑵성경 중심입니다. 하나님 자기 사상의 표현이 66권에 나타나 있음으로 그
성경이 신앙과 생활의 표준이며 규범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기록된 말씀이 창세 이후 재림까지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⑶교회 중심입니다. 이는 거룩한 교회를 믿는 것으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모든 권위의 근원임을 믿으며, 그리스도는 말씀의
방편으로 교회의 권위를 행사하심을 믿으며, 왕으로서 그리스도는 교회에 권세를 주셨음을 믿으며, 진정한 말씀의 전파와 정당한 성례의 집행과 신실한
권징의 시행이 세운 제도를 통하여 이루어짐을 믿으며, 교회는 신앙과 생활의 제 일차적 연단 장소 곧 성결과 경건의 신앙 훈련 도장이며 구속
역사의 기관임을 믿는 신앙으로 교회 안에서의 신앙 운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학생 신앙 운동은 우리 교단
내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매년마다 전국적으로 수련회를 개최하고, 노회별로는 순회 헌신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수많은 사업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곧 우리 교단과 이 나라의 주역으로 성장하고 있기에 이들을 위한 기도와 후원은 끊이지 않아야 됨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이들이 복음으로 새롭게 변화를 받아 나아가 학원을 복음화 시킴으로 청소년 범죄도 예방하는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학생 신앙 운동에 지대한 관심과 기도를 아끼지 않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그리스도인과 성경/딤후3:15-17 2001-09-20
09:58:23 read : 39
오늘은 대강절 셋째주일이고 전 세계 교회가 함께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그 믿음이란 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경을 직접 쓰시지는 않았습니다.
신구약 성경책은 총 66권으로서 약 1500여년에 걸쳐서 40여명의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기록된 책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기록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이 점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오늘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왜 성경이 사람들이 손으로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 책인가를 설교를 통하여 밝히려고
합니다.
본문에서도 말씀하고 있지만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의 계시로, 성령의 역사로 쓰여진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쓴 사람, 66권의 각 성경책을 쓴 사람은 정확하게 말하면 그 책의 저자, 각 성경의 저자가 될 수 없기에
각 성경책을 쓴 사람을 가리켜서 저자라고 말하지 않고 기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자란 '기록한
사람, 받아 쓴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기자, 마태복음 기자, 요한복음 기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의미는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쓴 책이므로 사실 누구가 받아 썼든지 간에 그 기록자가
누구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 기록자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성경 66권 중 어느 한 권을 읽거나 공부할 때 그 성경이 쓰여진 시대를 이해하고 성경의 문체를 이해하기 위해
기록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연구할 수 있지만 제일 중요한 한 것은 그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중심내용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20-21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이렇게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사람들이 받아 쓴 책 중에서 정경으로 정해진 성경은
창세기로 부터 요한 계시록 까지 총 66권의 책으로서 여기에는 큰 책도 들어있고 작은 책도 들어있습니다.
가장 큰 책은
시편으로서 150장이나 되는가 하면 가장 작은 책은 1장만으로 된 책으로서 구약에서는 오바댜 한 권, 신약에서는 빌레몬서 요한
2서 요한 3서 유다서 4권으로 신구약 총틀어 5권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큰 책들과 작은 책들을 쓰게 하셨습니다.
그 기간도 약 1500여년을 걸쳐서 여러 지역, 여러 사람의 손을 빌어서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한 사실은
이 66권의 성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모든 기록자들이 서로 모여 성경을 기록하자고 의논한 적도 없었고 또 그렇게 모여서 의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66권의 성경은 1500여년에 걸쳐서 다양한 사람들의 손을 거쳐 다양한 나라와
다양한 역사 속에서 기록되었지만 성령의 감동과 계시를 통하여 기록되었기 때문에 처음 부터 끝까지 완벽한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성경책이 성령의 감동과 계시 가운데 쓰여지지 않았다면 오랜 역사와 많은 기록자들 속에 다양한 상황 속에서
쓰여졌으므로 내용도 각양각색이었을 것이며 통일성이라는 것도 전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이사야
34:16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짝이 없는 것이 없으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니라"
뿐만 아니라 이렇게
기록된 성경 66권은 일차적으로는 기록될 당시 그 시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뛰어넘어 모든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성경 말씀이 시대를 뛰어 넘어 모든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시대 사람들만의 신이요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신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마가복음
13:37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그리고 또 성경에 관하여 중요한 점은 성경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주신 백과사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록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목적은 요한복음 20:30-31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 그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처럼 성경을 기록한 기록 목적이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데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구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구원을 얻게하기 위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약 창세기에서 신약 요한계시록 까지.... 성경의 관심은 인간 구원과 구원 받은 사람들의 바른 삶에 있으며 구원과 바른
삶에 관한 한 완벽한 교과서가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참된 삶의 교훈을 얻으며 잘못된 삶을 살 때 성경을 통해 책망을 받으며 그래서 우리의 삶을 성경을 통하여 바르게
고치며 죄인들에게는 의로운 삶을 성경으로 교육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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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상가요 신학자이며 의사이며 음악가였던 20세기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
1875-1965)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며 자라난 사람이었는데 그는
성경을 통하여 참된 삶의 교훈을 받고 일평생을 주님께 헌신하여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고 칭찬을 받았는데 그 중 한 예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알버트 슈바이쳐, 그는 독일의 알자스(Alsace)라는 지방에서 목사의 아들로 지금부터 125여년 전인
1875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가 태어나고 자라난 알자스 지방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영토가 됨에
따라 그의 국적은 프랑스 국적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르게 잘 자라나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이후 목사로서 또 대학교 교수로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어려서 부터 음악적
재능이 있어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파이프 오르겔 연주자로서도 활약하였으며 또 예수님에 대하여 깊이 연구도 하여 예수전에 대한
논문도 썼으며 또 음악에도 심취하여 바하 등의 명저도 썼으나........ 어느날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서 몹시 고통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교인 스트라스부르그 의학부에 청강생으로 들어가 의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가 의학 공부를 다 마친
다음 1913년, 아프리카의 적도지방이며 프랑스령인 오고우에(Ogooue) 강 하류의 랑바레네(Lambarene)에 도착하여 혼자
힘으로 병원을 개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모두 병원 유지에 쏟아 부었으나 점점 더 몰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하기에는 그 병원 규모로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각지로 다니며 모금운동을 벌일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자기 고향인 알자스에도 들러 모금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고향의 동료들과 친지 그리고 각계
인사들은 슈바이쳐가 기차역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모여 영접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조금있다가 기차는 도착하였고
환영나온 사람들과 기자들은 그 기차의 1등실 앞으로 우루루 몰려갔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슈바이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허둥대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 맨 뒤칸 3등 열차에서 내려 초라한 모습으로 플랫 폼을
걸어나오는 신사 한사람이 비쳤는데 그가 바로 슈바이쳐 박사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놀란 사람들은 슈바이쳐 박사 앞으로
달려가서 그를 붙들고 말했습니다. "아니 박사님, 어째서 3등칸을 타고 오셨습니까?" 그들의 질문은 질문이라기 보다는 불평에
가까웠습니다.
그때 슈바이쳐 박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4등칸이 없어서 3등칸을 타고 왔습니다"
슈바이쳐의 이 대답은 그들 모두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겸손한 그의 말과 태도에 거기 모였던 사람들은 저절로 모두 고개가
숙여졌고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제가 여기서 이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여러분은 앞으로 기차를
타려면 1등칸은 타지말고 슈바이쳐 처럼 3등칸을 타라고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형편과 처지에 따라, 그리고 필요에 따라
사람은 1등칸도 타야하고 2등칸도 타야하고 3등칸도 타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삶을 살아나가는
삶의 자세요,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성경말씀에 따라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자기의 형편에 맞게 실제적으로
적절하게 도와주려고 애쓰면서 자비의 삶을 실천하였던 슈바이쳐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겸손한 삶의 자세!
그리고 헌신적인 삶의 자세! 이타적인 자비의 삶의 자세!
무엇이 그를 이토록 아름다운 삶의 자세를 갖도록 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경말씀을 자주 읽고
배우고 성경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면서 그대로 실천해 나아가기만 한다면 우리의 생애는 반드시 복된 생애가 될 것입니다.
신명기 30:11-14말씀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으리라"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구가 생긴 이래로 하나님의 말씀은 읽고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다양한 삶의 환경 속에서
구원과 영생과 바른 삶과 그리하여 어려움 가운데서도 건강한 삶을 향한 용기와 자유함과 참된 삶의 의미를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가고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난 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점점 회복시켜 나아가고
그리하여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소금으로 나아가게 하며 죄와 악의 구조 가운데 있는 이 세상을 변혁시켜 나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실제적이고 아주 구체적인 말씀이 바로 성경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잘 읽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삶이 분주하고 바쁘다는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고전이란 인간의 삶에 유익한 책이기는 하나 사람들이 읽지 않고 모셔두는 책을 고전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측면에서 성경책은 책장에 고이 모셔두기만 하는 고전(古典)은 아닙니다.
열심히 읽고, 밑줄을 치고, 깨달은 말씀을
써 넣기도 하며 손 가까이 두고 매일매일 삶의 교과서로 삼아야만 하는 생명의 책입니다.
오늘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에게 성경읽기표를 한 장씩 나누어 드렸습니다. 유용하게 잘 사용하기를 바라며 매일 매일 성경을 읽고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 교육의
축복/딤후3:15-17 2001-09-20
09:59:28 read : 49
A. 서론
1. 어린이 주일, 자녀 교육
이미 신문지상을 통해 보도되었지만, 지난 4월
20일 미국 전역은 큰 뉴스 거리로 난리가 났습니다. 미국 중부 콜로라도주 덴버시 인근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남학생 두 명이 총기를 난사하고
폭발물을 투척하여 15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숨지고 20여 명이 총상을 입은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 중 한 명인 18살
에릭 헤리스의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은 범행계획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총 500명을 사살한다. 학교를 불지른 뒤 여객기를 공중납치,
대도시에서 추락시킨다' 범행을 일으킨 두 학생들의 부모는 한 명은 전직 공군 조종사로서 평소 총기 규제를 주장한 사람이었고 한 명은
대학교수였다고 합니다.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이 일으킨 이번 사건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두 학생은 폭력영화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었고 컴퓨터 인터넷을 통해 폭발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그들은 신나치주의, 백인 우월주의 등의 잘못된 사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부모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사건으로
발전되어서 범죄를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미국의 35개 주(州)에서는 미성년 자녀들이 범죄를 일으켰을 때 부모들이 그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는데, 그 중 플로리다주에서는 아이들이 집에 있는 총기를 가지고 사고를 내면 부모에게 최고 5년까지 징역을
선고하고,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는 어머니의 무관심 때문에 자녀가 갱단이 되면 그 어머니를 형사 기소한다고 합니다. 범죄를 일으키는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낳고 기른 자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비단 미국 내의
사건이고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가 공감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합니다.
'내가 고생해서 낳았고 길렀는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 그러니 간섭하지 말라.' 그렇게 자녀들을 멋대로
길러서 사회에 풀어 놓으면 자녀들은 범죄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해서 그 자녀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사회에 봉사하고, 이웃을 도와주는 인물이 되도록 길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반드시 두 가지 의식을 치룹니다. 첫번째는 아이에게 할례를 받게 하는 일입니다. 할례는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에 실시하는 종교의식으로서, 생명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출생한
지 40일 후에 번제를 드리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인 자녀를 잘 기르겠다는 서약이며, 하나님께 바친다는 마음의 표식입니다.
세계는 미국이 움직이고 미국은 이스라엘 민족이 움직인다는 말이 있듯이 이스라엘은 우리 나라의 강원도 크기만한 작은 나라이지만 노벨수상자의
15%가 유대인이고, 미국의 유명대학 교수의 30%가 유대인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 원인은 유대 민족들의 지적 능력이 높다거나 우수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강렬한 정신의 민족성이 있고 신앙교육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민족이기 때문에 땅이 작고
민족수가 적어도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힘이 큰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 부모의 인생관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그
자녀가 어떤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어떠한 인생을 사느냐 하는 것은 부모를 통해서 결정되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의 교육에
따라 훌륭한 인물이 될 수도 있고,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90%는 집에서 아버지가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따라서 배웠다는 통계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담배뿐 아니라 술, 마약, 도박을 하는 자녀들을 보면 그 부모들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흉내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1장 18∼20절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론하기를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들에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조건입니다.
자녀들을 올바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서도 솔로몬왕이 말하기를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릴 때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말씀으로 교육을 받으면 장수하고 평강을 누리며(잠 3 : 1∼2),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고(잠 3 :
3∼4), 복을 받으며(잠 8 : 32), 바른 길로 인도를 받습니다(잠 23 : 19). 더 나가서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가정 교육을 잘 받아서 훌륭하게 된 인물들이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 삼손, 사무엘, 솔로몬, 욥, 디모데 등이 올바른
신앙과 교육을 통해서 훌륭하게 성장한 인물들인데,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으로 교육받은 자는 반드시
축복된 삶을 삽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디모데후서는 A.D. 67년경 로마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고 말씀 안에서 굳건히 서서 믿음을 지키고 교훈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에베소는 로마 네로 황제의 박해로 핍박을 받았고, 율법주의와 영지주의 같은 이단의 가르침에 유혹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한을 참지 못하고 믿음을 버리고 타락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려서부터
배우고 지켜 온 성경말씀 가운데 굳게 서서 믿음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무 로이스에게서 성경말씀을
배웠고, 청년시절에는 바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울의 뒤를 이어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달은 대로 지키되, 믿음을 지키고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성경 교육을 통해서 세 가지 축복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고, 둘째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셋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됩니다.
B. 성경 교육의 축복
1.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 - 믿음, 구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디모데후서
3 : 15)
성경 교육의 축복 첫째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게 되고, 그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구약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을 읽으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믿음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감으로 심판받지 않고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빨리 깨닫습니다. 또한 겸손하고 온유하고 착한 마음을 가졌을 때 성경 말씀을 깨달아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죄인임을 알고, 그것에 따른 믿음이 성장하고 말씀을 통해서 구원과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1편 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게 사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시간을 지혜롭게, 재물을 지혜롭게, 재능도, 인생도
모든 것을 지헤롭게 사는 비결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10장 9절에서도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깨달은 자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영국의 철학자이며 인식론, 경험론의 창시자인 존
로크(John Locke)는 18세기의 뛰어난 학자였는데, 그는 성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요, 목적은 인류의
구원이며, 그 내용은 순수한 진리이다." 이 세상의 어떤 책이라도 성경처럼 구원과 진리를 전하는 책은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in)은 "성경을 늘 펴고 있으라. 그러면 그대의 천국 가는 길도 늘 펼쳐져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성경을 펼치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을 펼치고 산다는 것은 늘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을 향해서 나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슈바이처(Schweitzer,
Albert) 박사의 회고록을 보면 "나는 유년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서 교회에 나가서 예배에 참석함으로 경건을 배우게 되었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고 믿음을 갖게 된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교회로 이끄는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아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딸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교회에
나와서 함께 예배드리고, 그 자녀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십시오. 그의 삶에 경건과 의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것을 먹게 하며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맹인인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두 아들의 잠자리에서 불을 끄고 점자로 성경을 읽어주었습니다. 두 아들은 자라면서 믿음을 갖게 되었고, 나중에
커서 꼭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눈을 고쳐주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드디어 한 아들은 하버드대학에 진학하여 의사의 길을
가게 되었고, 또 다른 아들은 시카고대학 법대에 진학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앙을 넣어 주었고, 아들은 아버지를 통해서 삶의
목적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갖게 하고, 그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는 삶을 살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2.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유익하다-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디모데후서 3 : 16)
둘째로, 성경 교육의 축복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그 말씀은 바른 신앙을 가지도록 하는 교훈이 되고, 잘못 행할 때
돌이키도록 꾸짖는 책망이 되기도 하며, 그래서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시편 19편 7∼10절에서 다윗왕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고, 지혜롭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순결하고 정직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정치하는 사람은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업가가 될 수 있고, 공직생활 하는 사람은 부정부패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할 때 우리 나라는 선진국가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인 랍비들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꼭 강조하는 여섯 가지의 덕목이 있습니다. 첫째 계속 공부하라, 둘째 환자를 방문하라, 셋째 손님을 대접하라, 넷째 기도에
힘쓰라, 다섯째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라, 여섯째 남의 장점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자녀에게
공부를 시키고, 아픈 사람을 방문하여 환자를 위로하게 하며, 어떤 손님이 오든지 혹 잘 모르는 사람이 온다고 하더라도 대접을 잘 하게 하고,
어려울 때든지 무슨 일이 있을 때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지식을 얻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만 보고 살도록 자녀를 교육시킵니다.
랍비들이 강조하는 이 여섯 가지 덕목을 통해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유대 민족임을 일깨우고, 더 나아가 훌륭한 일을 감당하도록 합니다.
미국 FBI(연방수사국)의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는 22세에 법무부에 들어가 29세에 연방수사국 국장에 취임되고,
죽을 때까지 48년 동안 같은 직책을 맡아서 일했습니다. FBI 최고의 책임자로 오래 일한 그는 "오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아이는 내일의
범죄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며, 따라서 성경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가 교회에 나가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성경말씀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여사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배출된 영국의 최초 여자
수상입니다. 그녀는 수상이기 전에 쌍둥이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요, 충실한 가정주부입니다. 그녀가 어머니로서, 가정주부로서, 아내로서, 한
나라의 수상이 되어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독실한 감리교 선교사였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그녀는 역사학을 공부하여 역사적인 변증을 통해 다른 정치인들과의 대결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녀였기에
대영제국의 수상으로서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육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얼마 전 신문에 전·현직 대통령 세 명의 손자들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전두환 대통령의
손자들은 모두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경기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그 손자들이 얼마나 할아버지를 빼닮았는지 한눈에도 누구의 손자인지 금방 알
정도라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 손자는 점잖고 의젓한 편으로,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이번 학기에 학생들이 직선투표로
선출하는 반회장에 뽑혔다고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 손자는 귀공자형으로, 음악콩쿠르에서 노래로 대상을 받기도 하고 동화구연대회에서 학교대표로
뽑히는 등 예능에 재주가 많다고 합니다. 또 전두환 대통령 손자는 체격이 작지만 아주 활발한 편으로, 보스 기질이 있어서 가는 곳마다 친구들을
모으고 다닌다고 합니다. 정치계·경제계의 유명한 사람 자녀들과 할아버지를 빼닮은 대통령의 손자들이 모두 같은 학교에 다니다 보니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려면 손자를 경기초등학교에 보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커서 '우리 할아버지가 대통령으로서 잘한
것이 무엇이고,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겠습니까? 자녀는 그의 부모를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우리는 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로서 좋은 인생, 좋은 업적을 남겨서 존경심을 갖게 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초등학교 1학년 학급에서 반장 선거를 했습니다. 반장 후보에 오른 몇 명의 학생들이 준비한 유세 연설을 하는데, 그 중 한 학생이 "나를
반장으로 선출해 주시면 우리 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아버지가 무얼
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학생은 '우리 아버지는 교회 장로님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장로님이신 아버지가 가정예배를 드릴
때마다 '주여 죽도록 충성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을 듣고서, 이 학생은 반장 선거를 하는 유세 연설에서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외친
것입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통한 자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의 길을 가게 합니다.
3.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하나님의 사람, 선한 일을 행함, 온전함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3 : 17)
셋째로, 성경 교육의 축복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특별하게 부르심을 받은 구별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선택받은 사람으로서 선한 일,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악한 사람,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성경 말씀으로 교육받은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12장 28절에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영히 복이
있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면, 그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까지 대대로 영원한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녀에게 용돈을 많이 주고, 재물을 많이 상속해 준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재물이 많으면 방탕하고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지식과 올바른 삶의 철학과 믿음과 신앙을 자녀들에게 심어주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하면 그 자녀는
분명 가장 훌륭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들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하라'는 말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완전한 마음을 의미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완전한 마음을 갖고 믿음으로 나가면 아무런 두려움이 없습니다. 미국 에모리대학교의 목회심리학 교수인 제임스 포블러 교수가
『faithful change-성실한 변화』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믿음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가'에 관해 세 가지 획기적인 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발전적인 변화입니다. 이것은 육체·감정·인식·영적생활들이 계속해서 발전해가는 변화가 믿는 사람들에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장하여 성공합니다. 성공은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지, 의심하는 사람에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둘째는 치유와 재창조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많은 상처를 입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속히 치유를 받고, 거기에
재창조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놀라운 일을 행하게 됩니다. 셋째로는 사회에 적응하는
변화입니다. 주변의 환경이 변할수록 긍정적으로 자신을 적응해 나가는 변화의 축복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과도
적응하고, 자기보다 못난 사람들과도 적응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변화들이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부모가 신앙의 모범을 보이면
자녀들에게 발전적인 믿음의 변화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독립운동가 김구(金九) 선생의 어머니는 교회 권사님이셨습니다. 믿음이
독실한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부터 늘 두 가지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너는 커서도 절대로 교회를 떠나서는 안된다. 둘째 무슨 일을 당하든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순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김구 선생은 '교회를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 성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신앙을 본받아서 그는 민족의 지도자로서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선하고 착한 행실을 보이기 위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그 믿음은 성경을 통해서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자란 한 여자가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교회에 나가는 것에 반대하여 10년 동안
교회에 가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남편은 큰 버스운송사업을 하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해 주었지만, 그녀는 10년 동안 교회에 가지
못해서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하고 교회 종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그러다가 결혼한 지 10년 만에 남편의 버스 회사가 파산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경제력을 상실하고 매일 술 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하자, 그녀는 '때는 이때다!' 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핍박이 심했지만, 의지할 데라고는 하나님밖에 없음을 알고 그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닳고 해어진 성경책을 찾아들고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성경을 매일매일 읽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다섯 남매를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맡아서 양육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자녀들을 위해 성경을 읽어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 다섯 명의 자녀들이 다 성장하였는데, 맏아들은 교회 목사가 되고, 둘째 아들은 의사가 되고, 셋째 딸은 목사
사모가 되고, 넷째 딸은 사업가가 되고, 막내 딸은 결혼해서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섯 명의 자녀들이 다
훌륭하게 자라자 주변 사람들은 "여자 혼자서 어떻게 그렇게 다섯 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했느냐?"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 그녀는 "예수님께 내
인생을 전부 의지하고 맡겼더니 내 아이들을 잘 키워주셨습니다" 하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 자녀들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을 위해 걱정, 근심하고, 야단치고 화를 낸다고 해서 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성경 말씀으로 양육하고, 하나님께 맡길 때 자녀들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훌륭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빛나는
인물로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C. 자녀를 성경으로 교육하여서, 믿음을 가지고, 바르고 의롭게 자라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선한 일을 행하는 성공된 자녀로 키우는 성도가 되자
여러분의 자녀가 믿음을 갖고, 바르고 의롭게 자라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선한 일을 행하기를 원한다면 성경으로 교육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으로 자녀를 교육하고, 성경적으로 살면 반드시 축복이 임합니다.
나이 69세에 부동산 매매와 보험업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6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주 건강했고, 여느 젊은이 못지 않게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자네는 그 나이에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느냐? 은퇴는 언제 할 것인가?" 하고
물으면, 그는 "나에게는 은퇴가 없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기쁨이 넘치고, 활력이 있고, 싱싱하게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비결을 물으면 그는 사람들 앞에 성경을 펼쳐 보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 : 31) 그리고 "나는 잠잘 때도 성경 말씀을 읽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성경 말씀을 읽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으니 오늘도 독수리처럼 새 힘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생명을 얻고, 활기를 얻고, 기쁨을 얻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잘 때나
아침에 일어날 때 성경 말씀을 읽고, 또 마음 속에 늘 말씀을 간직하며 사는 사람은 힘차게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성경 말씀으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훌륭한 자녀로 키우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