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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조선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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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지명찾기 북경원인(北京猿人) 발굴지 -주구점(周口店)은 어디인가?
송계 추천 3 조회 376 22.03.07 14:14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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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03.07 22:26

    첫댓글 1911년 以前 北京이 현 알타이산의 서남쪽에 위치해 있었다면 1858-1860년 2차아편전쟁때 영국, 프랑스 艦隊가 어느 물길을 타고 어찌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1911년 以後 1945년 무렵까지 北京이 현 甘肅省 酒泉이었다고 하면, (당시 南京政府가 宜賓에 있었는지 여부도 밝혀져야 하는데) 宜賓으로부터 서북방향이었다는 것 以外에도 그 추정근거가 보다 폭넓게 갖추어져야 하지않을까 싶습니다.

    漢族이라는 族名이 존재할 수 있는지도 사뭇 의문이 듭니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유전학적으로도 서지적으로도 漢族이란 개념 자체가 허구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 작성자 22.03.08 08:37

    쇠로 만든 배는 1870년이후 영국에서 처음으로 건조됩니다. 제너럴 셔먼호를 비롯해 1870년 이전의 배들은 모두 목조의 소형배들입니다. 현 중경에서 가릉강을 통해 2천킬로를 내륙으로 이동했다고 기록은 전합니다. 바로 내륙운하입니다. 또한 조선사오천년의 백두산을 찾아내고 반도구성에서 6천리거리의 대륙평양을 찾아내게 되면 분명 거기에는 운하와 커다란 물길이 존재했을 터이니..그것을 온전히 밝혀내는 것은 우리와 후학의 몫일 것입니다. 모든것이 변조되었습니다. 남경은 의빈으로 비정되지만 어떤 지도에도 기록에도 현 사천성지역이란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개봉부가 사천성의 중경이나 그 이북쪽에 존재했을 것을 기록을 통해 고증하듯이 우리는 이런것들은 날줄과 씨줄로 엮어 밝혀가는 어려운 여정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곤명에 위치한 미군공군부대가 대만에서 중경을 폭격하는 비행기를 육안으로 보고 교전하러 나갔다고 하는데 현재의 대만과 중경을 놓고 본다면 실소를 금할 황당한 말이겠으나. 그 대만을 해남도로 옮기고 중경을 곤명위쪽의 판츠화로 옮기면 기록은 정확해 지지요. 그리고 우리의 위대한 독립투사들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그 가증스런 조작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 작성자 22.03.08 08:41

    첫걸음을 걷고 있다 보시면 오히려 편할듯 합니다. 열정과 관심으로 하나씩 접근해 가다 보면 많은 것을 밝혀낼수 있을 것입니다. 한족이란 개념도 처음에는 없었겠으나 후대에 오면서 역사학자나 정치인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겠죠. 하지만 현재 그 개념은 명확히 자리잡아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즉 민족주의가 점점 강화되어 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이것을 똑바로 바라보면 우리 조선민족이 어찌 가야 할지 방향성이 나타날 것입니다. 5천년을 공부해야 비로소 100년의 미래를 구상하고 바로 이끌수 있다고 하니...열심히 공부해서 하나씩 찾아가길 기대해 볼 뿐입니다.

  • 22.03.07 22:31

    주구점이 현북경옆이 될 수가 없을 것 같네요…대륙은 서고동저 지형이라 고대로 갈수록 현북경은 물바다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바 물바다에서는 원숭이 인간이든 누구든 살기가 힘들었겠죠…

    주구점은 서쪽에서 지명이동 됐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로 보입니다.

  • 작성자 22.03.08 08:20

    네 그렇습니다. 지금의 이동된 가짜 주구점은 50만년전이면 물바다 였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리라 생각합니다.

  • 22.03.08 01:17

    고맙습니다

  • 22.03.09 09:26

    역사는 기록을 연구하는 학문이란 것을 잊지 마세요.제도권의 학자들 처럼 정확한 자료나 근거없이 '비정된다,추정된다' 란 말을 많이 사용하면 오해를 받지요.지도와 지명은 역사서의 보조자료 일뿐 주자료가 아닙니다.역사를 비롯해 모든것의 진실은 단순합니다.복잡하고 장황하지 않습니다.

  • 작성자 22.03.10 08:25

    문제는 그 기록이 가짜일 경우입니다. 우리의 역사서는 모조리 교열되고 변조되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역사를 연구하면 결국 답은 반도로 귀결됩니다. 이것이 우리 대륙조선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우리 서지상의 기록과 기타 기록들을 비교하여 역사적 지형 또는 고유명사를 밝히게 되면 오히려 문제는 쉽게 접근할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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