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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시인님 특강
남진, 가슴 아프게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같이 목메어 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연락선이 없었다면
날 두고 떠나지는 않았을 것을
아득히 바다 멀리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같이 목메어 운다.
남진의 「가슴 아프게」 또한 “나”와 “갈매기”뿐 아니라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가슴”은 폐나 심장이면서 폐나 심장이 아니다. 가슴이 폐나 심장이 아닐 때, 가슴은 마음이 있는 자리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는 말은 폐나 심장이 아프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가슴이 아플 때, 마음은 폐나 심장처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가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런 장기가 아니다.
마음 때문에 가슴이 아플 때, 그건 물리적인 외부의 충격이나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다. 이별이나 상실 같은 정서적 요인에 기인한다. 사정이 그러할진대 아픈 가슴을 치유할 수 있는 건 백신이나 진통제가 아니다. 이별이나 상실의 빈 자리를 재회와 충족으로 원상태대로 복원하는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쓰라린 이별, 그것은 바다 때문이 아니다. 연락선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때문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 때문이든지 우리는 “당신”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 부재의 빈 자리를 보면서 얼마나 그를 사랑했는지 사무치게 깨닫게 된다.
노래는 때로 노래가 아니라 울음이다.
(이승주, 『시가 있는 가요 산책』중에서)
쟈니리, 뜨거운 안녕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비둘기 나란히 구구대는데
기어이 떠난다면 보내드리리
너무도 깊이 맺힌 그날 밤 입술
긴긴 날 그리워 몸부림쳐도
남자답게 말하리다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별들이 다정히 손을 잡는 밤
기어이 떠난다면 보내드리리
너무도 깊이 맺힌 그날 밤 입술
긴긴 날 그리워 몸부림쳐도
남자답게 말하리다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1
얼음 위에 댓잎자리 보아 님과 내가 얼어죽을망정
얼음 위에 댓잎자리 보아 님과 내가 얼어죽을망정
정(情) 둔 오늘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고려가요, 「만전춘(滿殿春)」중에서
고려가요 「만전춘(滿殿春)」은 겨울밤 얼음 위에, 거기 덧보태어 서늘한 댓잎자리까지 깔아서 그 위에서 밤을 지새워 얼어 죽는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님과 함께 보내는 정(情) 둔 이 밤이 더디 새라고 새지 마라고 노래한다. 이만큼 진솔하고도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담은 노래가 얼마나 있을 것인가. 그야말로 한겨울밤 얼음 한기(寒氣)를 이기는 사랑의 뜨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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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쟈니리의 「뜨거운 안녕」은 그대가 기어이 떠나신다면 그를 보내드리리라 다짐한다. 뜨겁게 사랑하였으므로, 오늘밤, 별들은 더욱 ‘다정히’ 손을 잡고 비둘기들도 더더욱 ‘아프게’ 나란히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데, 그날 밤 너무도 깊이 맺힌 뜨거운 입술을 두고 그대 이제 기어이 떠나고 나면 “사랑하고 있다”는 그 말도 더는 들을 수 없을 것인데, 그리하여 홀로 남은 긴긴 날들을 뼈에 새긴 그 말과 가슴에 맺힌 그 입술 때문에 그리움으로 몸부림칠지라도 그대가 “기어이 떠난다면” 그래도 나는 “남자”이니까 남자답게 보내드리고, 남자답게, 목이 메는 울음의 뜨거운 눈물을 참고 뜨겁게 안녕이라고 말하리라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래, 세상에 “사랑이 식었다.”는 말보다 더 슬픈 말도 많지 않겠다. 이 말은 ‘사랑은 본디 뜨거운 것이다.’라는 전제를 내포한다. 사랑이 본디 뜨거운 것일진대, 사랑이 뜨겁지 않고 그저 미적지근하다면 우리 사랑이 애틋하고 절절할까. 그렇다면 인간은 얼마나 춥고 쓸쓸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제대로 사랑도 해보지 않고 사랑이 그저 미지근한 것인 줄 믿는 사람들아. 제대로 한번 사랑해 보시라. 사랑의 온도는 체온보다 높아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왜 ‘뜨거운 눈물’이 되고, 안녕이 왜 ‘뜨거운 안녕’이 되는지 이 생이 가기 전에 알아보시라. 그런 다음에 왜 쟈니리의 이 노래가 그토록 ‘뜨겁게’ 가슴을 울리는지 그 사람에게도 말해 주시라.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 때문에 기꺼이 “얼음 위에 댓잎자리 보아 님과 내가 얼어죽”어도 좋을 당신, 오늘밤 기도문 대신에 이 노래를 외어라.
남산(南山)에 자리 보아 옥산(玉山)을 베어 누워
금수산(錦繡山) 이불 안에 사향(麝香)각시를 안아 누워
남산(南山)에 자리 보아 옥산(玉山)을 베어 누워
금수산(錦繡山) 이불 안에 사향(麝香)각시를 안아 누워
약(藥)든 가슴을 맞추옵사이다 맞추옵사이다
―고려가요, 「만전춘(滿殿春)」중에서
(이승주, 『시가 있는 가요 산책』중에서)
이미자, 그리움은 가슴마다
애타도록 보고파도 찾을 길 없네.
오늘도 그려보는 그리운 얼굴
그리움만 쌓이는데
밤하늘에 잔별 같은 수많은 사연.
꽃은 피고지고 세월이 가도
그리움은 가슴마다 사무쳐 오네.
꿈에서도 헤맸지만 만날 길 없네.
바람 부는 신작로에 흩어진 낙엽
서러움만 쌓이는데
밤이슬에 젖어드는 서글픈 가슴.
꽃이 다시 피는 새봄이 와도
그리움은 가슴마다 메아리치네.
나는 트로트다. 여전히 지금도 내 심장의 피톨과 내 정서의 여린 세포들은 트로트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내게 있어 트로트의 애절한 가락과 비애와 상심의 노랫말은 그대로 내 피톨과 세포 안의 비애와 상심을 녹여내는 용해제였다. 나는 늘 트로트를 흥얼거렸다. 길을 걸을 때도 버스 안에서도 계단을 오를 때도 아, 가여운 내 청춘의 끝내 새벽에 닿을 수 없던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이미자, 「동백아가씨」中 )”들의 미로를 방황할 때도 트로트는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그냥 흘러나왔다. 그럴 적에 트로트는 사바세계의 고해에 빠진 나를 건져 올려 이승 아닌 어떤 내 태생의 아늑한 슬픔의 집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일상의 부하에 짓눌려 파김치가 되어 눈뜨기조차, 한 마디 말 내뱉기조차 힘들다가도 어디서 이미자의 노래라도 들려오기라도 하면 마치 목마른 대지가 해갈의 단비에 젖듯 나는 금방 트로트에 젖게 되고, 그러면 눈 녹듯 피로가 가시고 거짓말처럼 원기가 되살아났다. 내게 ‘박카스’는 지금도 트로트다. 각설하고,
노래는 전성기 때 목소리로 들어야 제맛이다. 몸도 노래도 전성기를 지나면 쇠해 진다. 모름지기 노래는 가락을 압도해야 제맛이 나는 법인데, 전성기를 지난 노래는 듣는 사람도 힘이 든다.
불가항력으로 세월 따라 몸이 늙어가고 노래도 쇠해 지는 것이지만, 내가 아는 가수 중에 이미자(선생님)만큼 노래가 늙지 않는 가수가 없다. 프로 정신이라고 하지만 이미자(선생님)만큼 프로가 없다. 이미자가 언제 이미자이던가. 내게는 구구단을 외기보다 더 먼저 별리와 사모의 애틋함을 노래로 가르쳐준 전설(?)의 이미자가 아니던가. ‘가요무대’ 같은 데서 다른 원로가수들이 나오면 애가 쓰이고 듣기에 안쓰러움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닌데, 살아 있는 전설의 이미자 노래는 어쩌다 요즘 다시 들어도 그 목소리는 조금도 녹슬지 않아 왕년의 전성기의 목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이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니랴.
(이승주, 『시가 있는 가요 산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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