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2:41-46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일주일 가운데 화요일에 일어난 사건이다. 마태는 화요일에 성전에서 일어난 논쟁에 대해 마 21:28-26:2까지 길게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제 목요일이 되면 저녁에 유월절 만찬을 잡수실 것이고, 유다의 배신으로 다음날 새벽에 잡혀 공회에 넘겨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화요일에 성전에서 종교 지도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시고 논쟁을 마다하지 아니하신 것이다. 마 21:23-27에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질문을 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 비유, 포도원 농부 비유, 그리고 혼인잔치 비유를 통해 이들의 잘못된 권위와 신앙에 대해 지적을 하셨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헤롯 당원과 함께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로 도전을 하였고, 사두개인들은 부활에 관한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고자 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와서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46절을 보면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들과의 논쟁을 끝내고 계신다. 논쟁이 끝났다는 것은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고발하여 죽이고자 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와 논쟁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이제 이틀 후면 일어날 일을 지금 준비하고 계신 것이고, 당신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들에게 미리 선언하고 계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어떤 그리스도이신가를 찾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질문으로 이 선언을 시작하고 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42) ‘너희가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기다려왔는데, 그렇다면 그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 그가 누구의 자손으로 오느냐?’ 이렇게 질문하고 계신 것이다. 그들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의 자손”이다.
시 89:4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사 11: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유대인들은 이 말씀들을 통해 다윗의 후손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고, 그분이 오셔서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시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어떤 사람이 일어날 때에 그가 다윗의 후손인가를 가장 먼저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번 더 질문을 하신다. 이 질문에 그들은 대답을 못하였고, 결국 논쟁은 끝이 나고 말았다.
예수님은 시 110:1의 말씀을 인용하셔서 43절에서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느냐?”고 질문을 하셨다. 사실 그들은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자기들의 소원대로 나라를 회복하며 그 나라를 하나님께 드릴 때만 생각을 했던 것이고, 현세적이고 물질적이고 정치적인 그리스도를 요구했을 뿐이었다. 이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영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였고 오직 현재의 삶에서만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부분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그들과의 이런 논쟁은 필요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심으로 해서, 예수께서 지금 무엇을 위해 여기에 오셨는가,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를 정확히 가르치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본문 44절에서 인용한 말씀을 시 110:1과 비교하면 조금 다르다.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의 구약 본문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앞의 “주”는 ‘여호와이신 성부 하나님’을 의미하고, 뒤의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나의 주’를 의미한다. 그래서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말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보냄을 받아 오시는데,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개념은 완전히 잘못된 해석이었다. 그들은 단지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생각했지만, 그들이 위대하게 생각하는 다윗이 그 후손을 향하여 “나의 주”라고 말하였으므로, 그분은 결코 다윗의 후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바로 다윗의 주인이시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할 말을 잃고 오히려 그 마음에 분함이 가득하여 어찌하면 예수를 죽일까 더욱 마음에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증거가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마 26:3-5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그들의 무지가 온 천하에 드러남으로 해서 그들은 지금 악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진정 어떤 분이신지 몰랐던 그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밝힌 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고백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으로 오시고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에 대해서 정확히 가르쳐준다. 그러나 그들은 고의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않았고, 자기들의 입지만을 지키고자 애를 썼을 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는 당신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이며, 다윗이 나의 주라고 말한 그분이라고 밝히지 않으셨지만, 마 26:63-64을 보면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셨다.
마 26:63-64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이때는 십자가를 지시는 금요일 아침으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이가 십자가에 달리느냐 하는 문제이다. 죄인이 달리느냐, 아니면 다윗이 나의 주라고 부른 그분, 즉 그리스도께서 달리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이시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때 선언하신 것이고, 바로 구약에서 그토록 예언한 그리스도로 오셨고, 이제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사역을 완성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과의 마지막 논쟁을 끝으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꾸몄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였고, 결국은 예정대로 예수님께서 은 삼십에 팔리고 말았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오히려 저주하면서 십자가에 매달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여호와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 28:18)를 주셨고, 또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이 결과로 인해 예수님의 제자들과 많은 증인들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고 선포하였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다윗의 주인이 되어 영원토록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당신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성자 하나님이심이시라는 것이다. 다윗은 이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의 후손에게 나의 주라는 고백을 했다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그들은 마땅히 신성모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다린 메시야는 정치적으로 해방시킬 전사와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 고백을 이미 베드로의 고백에서 배웠다.배웠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이 참되다는 것이 십자가에서 증명이 되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이제 다시 오실 날을 준비하고 계신 다윗의 후손이시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이분이 바로 구약에서 그토록 예언한 바로 그분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기다려온 메시야였던 것이다.
영원 전부터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주가 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고, 또 우리의 재림주로 오셔서 우리에게 영생의 축복을 허락하실 것이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자잘한 인생의 문제로 마음 끓이지 않고 영원하신 주님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신앙하는 삶을 건강하고 바르게 세워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날을 사모하며 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으신 그대로 승천하셨기 때문에 지금 성도들이 잠깐 쉬고 있는 낙원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육체로 존재하고 계신다. 우리가 사모하고 간절히 바라야 할 것은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실 그분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 땅에서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할 바른 신앙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