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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4:26-35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진희성 목사 1 9 9 9. 04. 04.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시니 /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 저희 눈이 밝아져 그 인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 설교요지 ------------------------------------------------------ 눈이 밝아졌다(29-31절)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실망한 나머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나 같이 걷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 때 그들의 눈은 감겨 있었다. 주님께서 말씀을 풀어주실 때 저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제자들의 영안이 열릴 때 부활의 주님을 알아보았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그들은 신령한 눈이 열려 신령한 세계를 보게 되었다. 마음이 뜨거워졌다(32절) 마음이 뜨거웠다는 것은 마음이 감동되었다는 뜻이며, 깨닫게 되었다는 뜻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설교를 듣고 감동과 깨달음과 뜨거운 마음을 회복받는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처음 열성이 식어버린 냉랭한 가슴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한다. 뜨거운 가슴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형제를 사랑하고 사명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듣고 본대로 말했다(35절)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힘찬 발걸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갔으며 그곳에 모인 제자들에게 길에서 된 일을 말하였다. 즉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들이 되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다면 내가 체험하고 만난 주님을 증거하여야 한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로 입을 다물고 있게 하지 못한다. 본대로, 들은대로, 깨달은대로 전하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부활의 능력과 소망이 성도님들께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을 따르던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이십오리쯤 되는 엠마오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이야기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두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상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에 공포와 허탈감에 빠져있던 두 사람이 엠마오로 내려가면서 근일에 되어진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길을 갔습니다. 이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 동행하시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 동행하신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 때문에, 슬퍼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예수님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은 절망하고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소망을 주시고 빛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세상 길을 걷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어둡고 절망스러운 일이 있어 캄캄하게만 느껴지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 같이 생명의 주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길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난 후에 그들에겐 몇가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로, 눈이 밝아졌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이 억울하게 처형당하셨다는 사실에 실망한 나머지 저들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두 눈을 뜨고 사물을 보면서 길을 갔지만 저들의 눈은 가리워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곁에 다가와 동행하시는 분이 예수님인줄 몰랐습니다. 마음없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믿음없이 보는 것은 볼 수가 없습니다. 저들의 마음에는 무덤 속에 묻히신 죽은 예수님만 생각했지, 살아 동행하실 예수님은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절망과 불신앙만 이들 마음에 꽉 찼지, 부활의 주님은 그 마음에 없었습니다. 29절에서 31절을 보면 엠마오에 도착하여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려 할 때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영안이 열렸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됐을 때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두 눈, 불신앙의 눈, 근심과 절망에 쌓인 눈으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신령한 눈으로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귀라고 다 귀가 아닙니다. 신령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복된 귀입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의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고 하셨는데 성령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복된 귀입니다. 눈이라고 다 눈이 아닙니다. 신령한 세계를 보는 눈,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는 눈이 참된 눈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탐욕과 정욕에 대한 눈은 밝으나 영의 눈이 어두워졌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안이 어두워 신령한 분별력이 없어 의와 불의를 분간치 못하고 선과 악을 분간치 못하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 영안이 밝아져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영안이 밝아 영적세계를 보게 되고 주님의 뜻을 보게 됩니다. 찬송가를 6,000편 이상 쓴 화니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여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으로 그의 일생 95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만난후 영적세계를 향유하며 남들이 보지 못하는 찬란한 세계를 보며 주님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크로스비 여사는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가 204장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썼습니다.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라고 찬송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영의 눈이 밝아지는 부활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32절에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뜨겁다는 것은 마음이 감동되었다는 것이요,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며 새로운 사명을 향해 뜨겁게 일어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감동을 받게 되고 깨닫게 되며 사명을 느끼게 됩니다. 이번에 나온 가이드 포스트 4월호에 보면 「루스 놀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루스라는 여인은 마약 밀매자로서 교도소에서 3년간 복역을 했습니다. 어느날 한 신사분이 와서 룻기의 말씀을 전할때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말씀에 사로잡혀 그날 이후로 마약을 멀리 하고 예수님을 가까이 하게 되었으며 그는 출소 후에 교도소 교도관이 되었습니다. 전과자가 교도관이 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교도소에서 확실하게 교화된 사람을 그만큼 믿어주고 임무를 맡겨주는 미국 사회의 일면을 보게 됩니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 가장 포악한 여자 죄수 셜리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접근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 불쌍한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므로 끝내 그를 교화시키는 이야기입니다. 루스는 말합니다. 옛 것이 죽고 새 것이 시작되는 부활의 의미를 갖고 기쁘게 일한다 고 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감동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에 뜨거움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내가 할 일을 깨닫고 그 일을 성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으로 인하여 마음이 뜨거워지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듣고 본 바를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길에서 된 일을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이들은 먼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죽음과 공포가 있었던 예루살렘, 등지고 떠나온 예루살렘,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큰 일꾼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사명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고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등진 곳을 향하여 되돌아갑니다. 실망하였던 일터로 되돌아가 소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이들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길에서 된 일과 성경을 풀어 해석해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던 일을 증거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 나섰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9-20)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증거하여야 합니다. 아니 증거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른다면 살아 숨쉬는 동안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 생명으로 소망을 주신 주님, 죄와 어둠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 우리로 영원한 생명 가운데 살게 하신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나의 삶을 바꾸어 놓으신 주님, 나에게 사명을 주시는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사람에게 다가오신 주님은 오늘도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찾아 주십니다. 그리고 답답하고 어두운 마음을 밝혀 주십니다. 냉랭하고 차가운 마음에 뜨거움을 주십니다. 힘을 잃고 나약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 주님을 증거하십시다. 나를 사랑하신 주님을 전하며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눅24장26-35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진희성|작성자 karam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