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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9. 대만 타이베이-충렬사, 고궁박물관, 용산사, 야시장)
여행은 언제나 설렘을 가져온다. 나는 김해고등학교 학생들이 해외교육교류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2014년 1월 19일부터 1월 22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대만을 방문함에 따라 인솔자로 참여하여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방문단은 학교장을 비롯한 5명의 교직원과 일정한 기준에 의해 선발된 22명의 학생대표들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내가 해외연수를 떠날 때에는 아내가 배웅차 직접 공항까지 차를 태워주곤하였는데 이날은 아내가 나보다 더 이른시간에 등산을 간다고 먼저 나가버렸기 때문에 할 수없이 번개콜 택시를 이용하게 되었다. 아내가 일러준대로 다소 여유를 두고 전화로 택시를 불렀는데 놀랍게도 전화를 끊자마자 집앞에 도달했다고 응답이 와서 번개콜은 그 이름 값을 하였다.
기사는 낚시가 취미라고 하면서 한달 평균 비용이 200만원이나 들어간다고 하였다. 회도 먹지않는다는 그가 그렇게나 많은 돈을 들여가며 낚시를 취미로 한다는 것이 의아하긴 하였지만 본인이 좋아서 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나는 취미생활로 댄스스포츠를 하고 있으면서도 비용이 제법 들어가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분에 비교하니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개콜 덕분에 예정된 시간인 9시보다 훨씬 빨리 공항에 도착하였다. 국제선 청사 안으로 들어가니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다. 방학을 맞아 동남아로 여행을 떠나는 국내인과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려는 외국인들이 뒤섞여 떠드는 소리로 왁작지껄하였다. 우리는 국제선 청사 3층의 약속된 장소에서 가이드와 만나 출국 수속을 밟은 후 11시 5분발 에어부산 비행기를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해외 여행의 길에 올랐다.
사진 1) 많은 여행객으로 붐비는 김해공항 국제선 청사
사진 2) 국제선 청사 3층 약속장소에서 가이드를 기다리며
사진 3) 우리가 타고간 에어부산 비행기에 탑승중
이륙후 40분이 지난 11시 50분경 기내식으로 치킨 볶음밥이 제공되었다. 그런대로 맛은 있었지만 점심식사라고 하기에는 양이 조금 부족하였다. 혹시 볼만한 것이 있는지 창밖을 보아도 새털구름과 그 사이로 간간이 푸른바다만 보일뿐 특별한 것은 없어 그냥 눈을 감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대만 도착예정을 알리는 안내방송에 따라 눈을 떠서 창밖을 내려다보니 드디어 대만 땅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늘에서 본 대만의 농경지 모습은 우리와 별 다름이 없었고 군데 군데 저수지가 특히 눈에 많이 띄었다. 비행기는 고도를 낮춰 우리보다 1시간이 늦는 현지 시간 12시 20분경에 대만의 신공항인 도원국제공항에 착륙하였다. 우리는 입국절차를 밟은 후 대합실에서 인원을 점검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이때 벽에 걸린 대형 디지털 온도계는 1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날씨를 가늠하지 못해 복장을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을 했는데 출발 할 때의 케주얼 겨울 양복 옷차림에서 목도리만 빼고 그대로 입고 다닐만 하였다.
사진 4) 기내식 치킨 볶음밥과 음료
사진 5) 공항에 다가가면서 내려다본 대만 땅의 모습
사진 6) 도원공항 대합실에서 인원점검 중(19도임을 알리는 온도계)
사진 7) 대만 도원 국제공항 청사
우리는 대합실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여행사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한국인 현지가이드 이광수씨의 안내로 타이베이 시내로 이동하였다. 공항에서 40여분 거리의 타이베이까지는 전 구간 잘 다듬어진 복층 고속도로로 시원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2층으로 된 고속도로 위를 달리며 이젠 고인이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92년 대선에 나와 내걸었던 '경부고속도로를 2층으로 건설하겠다'는 공약이 결코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음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깔끔하게 디자인된 교각과 잘 정비된 도로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높은 대만의 국가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 8) 여행기간 우리가 타고다닌 버스
사진 9) 도원 국제공항에서 타이베이 시내까지 연결된 2층 고속도로 모습(1)
사진 10) 도원 국제공항에서 타이베이 시내까지 연결된 2층 고속도로 모습(2)
대만은 중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중국 내전에서 밀린 '중화민국(中華民國)' 정부가 옮겨온 곳이며 수도는 타이페이(台北)이다. 면적은 남한의 1/3 정도인데 인구는 남한의 1/2 정도나 되어 인구밀도가 아주 높다. 현재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넘어 우리와 비슷하지만 우리보다 물가가 안정되어 있고 필수 생활경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없는 사람이 살기에는 더 낫다고 한다.
서울 출신이라는 현지 가이드 이광수씨는 버스를 타고가며 현란한 말솜씨로 농담을 섞어가며 대만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당초 정해진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현지 실정에 맞춰 재량껏 우리를 안내하겠다고 선포하였다. 대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우리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11) 대만지도를 걸어놓고 대만의 지리를 설명하는 가이드
오후 2시경이 되어 버스가 타이베이 시내로 들어서자 가이드는 가장 먼저 충렬사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매 시간마다 정각에 위병교대식이 있는데 시간이 딱 맞다고 하였다. 충렬사는 대만 국민혁명과 대일 전쟁 중에 전사한 애국지사 및 장병들의 영령을 모시기 위하여 1969년에 세워진 성역으로 궁궐모양의 본전은 베이징 태화전을 모방해 지었다고 한다.
차에서 내려 충렬사 정문으로 들어서자 마침 교대식이 시작되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몰려들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군인들의 절도있는 동작은 언제 보아도 멋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해군 의장대의 세련된 동작에 비교하니 이곳 위병들의 교대식모습은 조금 촌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신기한 것도 아닌데 행진하는 군인들을 줄줄 따라다니며 연거푸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더 구경거리였다.
사진 12) 위병들의 교대식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정문에서 출발하는 장면)
사진 13) 정문에서100 여미터 거리의 본전까지 걸어와 교대식을 수행하는 모습
사진 14) 본전 근무교대를 마치고 다시 정문쪽으로 돌아 나오는 모습
사진 15) 본전에서 정문쪽으로 바라본 모습
사진 16) 교대식을 마치고 부동자세로 서있는 정문 위병들
사진 17) 본전으로 들어가는 중문 앞에서 본전을 배경으로
사진 18) 본전 옆 위패봉안당의 내부모습
사진 19) 중문 회랑의 벽면 장식
사진 20) 어느 대만 애국지사의 흉상이 있는 팔각정
사진 21) 충렬사 광장에서 서기순 교장선생님과 함께
40분 가량의 충렬사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고궁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4층의 중국 궁전 양식으로 지어진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은 중국 5,000년의 역사와 문화 예술의 집합체로서 이곳에는 신석기 시대의 출토품에서부터 중국 역대 왕조의 보물 등 세계적으로 가치가 인정된 유물이 70만 점 가량 소장되어 있다.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오면서 중국본토에서 옮겨온 것인데 그 중에 일반에게 전시 공개되고 있는 것은 약 12,000점 정도이며 3~6개월마다 교체하여 전시한다고 한다.
오후 3시경이 되어 박물관에 들어서니 대부분 단체로 온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그 틈에 끼어 FM수신기를 귀에 꽂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각 전시실을 차례로 돌며 관람을 시작하였다. 전시실에는 조각/집기/자기 등 귀중한 보물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가이드는 수신기를 통하여 그 내용을 열심히 설명했으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바람에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마음의 여유도 없이 그 중 일부만을 주마간산으로 훑어보고 1시간 여 만에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사진 22) 고궁박물관 입구
사진 23) 고궁박물관 본관 전경
사진 24) 고궁박물관 본관 앞에서
전시실에는 옥과 상아 그리고 코뿔소 뿔등 매우 딱딱한 재료를 소재로 여러 모양을 아주 세밀하고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작품이 많았는데, 최첨단의 현대 기술로도 하기 어려운 것을 특별한 도구도 없었을 옛날에 도대체 어떻게 깎아서 그렇게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 옛 사람들의 재주에 새삼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물관 안에서는 사진을 못찍게 하므로 내가 본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유물 몇개만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여기에 소개한다. 여기를 클릭하면 http://www.npm.gov.tw/ko/Article.aspx?sNo=03000117 더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25) 진조장(陳組章)의 조감람핵주(雕橄纜核舟)
이는 청나라 시대의 유물로 손톱만한 크기(높이 1.6cm, 길이 2.4cm)의 올리브 씨앗에 조각한 작품이다. 돋보기로 봐야 할 정도로 작고 정교하게 조각된 이 유물은 소동파를 비롯해 점원, 뱃사공까지 8명이 앉아 있으며 모두 다른 표정과 자세로 정밀히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배 밑부분에는 소동파의 시 적벽부(赤壁賦) 360자가 촘촘히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사진 25-2) 육형석 : 삼겹살 모양의 옥 공예품(인터넷 자료)
이 또한 청나라 시대의 유물로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인데 보는 순간 삼겹살이 연상될 정도로 돼지 고깃덩이와 모양이 똑 같았다. 송나라시대의 유명 시인 소동 파(蘇東 波)가 즐겨 먹었다는 뚱퍼러우(東波肉, 동파육)와 흡사한 이 육형석은 껍질, 지방, 고기의 삼중 구조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관광객 사이에서는 일명 “삼겹살”로 불린다고 한다.
사진 25-3) 취옥백채 : 배추잎 모양의 옥 공예품(인터넷 자료)
취옥백채(翠玉白菜)는 청 말기 광서제(光緖帝)의 왕비인 서비(瑞妃)가 혼수로 들여온 예물로서 배추의 흰색은 신부의 순결을 의미하고 여치와 메뚜기는 다산(多産)을 의미한다고 한다. 관람 당시에는 큰 관심없이 지나쳤는데 타이베이 시내 여러 곳에 이와 같은 모양의 공예품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을 보고 이것이 고궁박물관의 여러 유물 중에서도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귀한 보물이라는 것을 좀 더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고궁박물관을 나와 오후 4시 40분경에 일찌감치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메뉴는 몽골리안 바베큐인데 예전에 싱가폴에 갔을때도 먹어보았던 것이다. 뜨겁게 달구어진 넓은 철판위에 손님이 선택한 고기와 채소 등의 재료를 얹어 놓고 재빠르게 휘저으며 요리하는 모습이 그 때와 똑 같았다. 점심을 시원찮게 먹어 배가 많이 고팠던 탓인지 모두들 맛있게 잘 먹는 것 같았다.
사진 26) 저녁먹은 식당
사진 27) 몽골리안 바베큐 요리하는 모습
우리는 저녁을 여유있게 먹고 오후 6시 30분경에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용산사(龍山寺)로 이동하였다. 용산사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유명한 절이라고 하며, 1740년에 최초 건립되었으나 그 후 재해 등으로 몇 번 파괴 된 것을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전국 어디를 가든 역사적인 사찰을 쉽게 볼 수 있는 한국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역사적 가치도 없고 규모도 작은 용산사 정도는 우습게 보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사찰과는 다른 그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화려한 조명으로 환하게 빛나는 사찰의 아름다운 모습과 다소 소란스러운 도시적 분위기는 내 마음을 들뜨게하여 당초 일정을 바꿔 야간에 방문하도록 한 가이드를 칭찬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향내로 진동하는 본당 앞 경내로 들어가니 꽃으로 장식된 넓은 탁자 위엔 여러 종류의 과일과 과자 등의 예물로 가득하고,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참배하는 모습이 보였다.
본당 기둥에는 용 문양이 검게 조각되어 있고 그 뒤로는 역사적 인물들의 춤추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지붕에는 더 많은 모양의 문양과 용들이 장식되어 대만 특유의 종교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본당을 지나 뒤뜰로 들어가니 참배객의 모습과 함께 또 하나의 건물이 보이는데 그곳에는 부처가 아닌 다른 인물상이 모셔져 있었다. 우리는 이 모습을 통해 용산사가 단순한 불교사원이 아니라 도교와 민간신앙까지 복합된 독특한 사원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사진 28) 용산사 정문
사진 29) 정문을 지나 본당으로 들어가는 중문
사진 30) 용산사 본당(대웅전 같은 곳) 앞에서
사진 31) 본당 기둥의 용 조각과 여러가지 문양
사진 32) 본당 내부 모습
사진 33) 본당 뒷편 후관
사진 34) 후관 한쪽 내부 모습
사진 35) 후관 뜰 탁자에 놓인 예물과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우리는 40 여분 용산사 관람을 마치고 정문으로 나와 오후 7시 10분부터 8시까지 바로 길건너에 있는 야시장을 구경하였다. 이곳은 먹거리 위주의 시장으로 산과 바다를 아우르는 갖가지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 즐비하였는데 떠들썩한 분위기는 볼만 했지만 음식은 전혀 사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학생들은 말도 안통하는 그곳에서 재주껏 음료 등을 사먹으며 분주히 돌아다녔다.
나는 주어진 시간도 다 채우지 못하고 용산사 앞 출발지점으로 되돌아 나와 학생들을 기다렸다.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 따라가 보니 공원 한쪽에서 군중을 모아놓고 공연을 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내가 등장하여 그 앞에서 멋진 춤을 춰야 그림이 잘 어울릴 텐데 학생 인솔이라는 무거운 책임때문에 차마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입맛만 다시다 돌아오고 말았다. 시간이 조금 더 남아 바로 밑 지하상가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사진 36) 야시장 입구
사진 37) 야시장 안 상가 입구
사진 38) 야시장 먹거리 장터 모습
사진 39) 용산사 앞 공터에서 공연하는 장면
사진 40) 지하상가 어느 음식점 풍경
밤 기온이 조금 쌀쌀했지만 가벼운 바람막이 옷을 덧입었더니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우리는 오후 8시에 야시장 입구에 모여 다시 버스를 타고 타이베이에서 40분 거리의 인근 도원시에 있는 숙소로 향하였다. 차가 조금 밀려 숙소인 도원호텔에 도착하니 오후 9시였다. 버스에서 짐을 챙겨 호텔입구로 걸어가는데 길건너에 십자가 불빛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 도시에서는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대만에서는 처음 발견한 것이기에 신기하게 느껴졌다.
사진 41) 첫날부터 3일동안 숙박한 도원 호텔
사진 42) 호텔부근 어느 조그만 교회의 십자가 불빛
우리는 숙소에서 짐을 풀고 간단히 씻은 다음 오후 9시 30분경에 인근 간이 음식점에 가서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하루 일과를 평가하였다. 숙소에 머물고 있는 학생들은 학교대표로 선발된 모범생들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특히 감시하거나 통제할 필요가 없었다. 가게에서 뭔가를 주문하려고 했으나 아무도 중국말을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얼른 눈치를 채고 한글이 표시된 메뉴판을 가지고 왔다. 누런 종이 위에 서툰 글씨로 써내려간 메뉴판이 우리에게 작은 웃음을 선사하였다. 우리는 오후 11시경에 숙소로 돌아와 다음 날 일정을 위해 잠을 청하였다.
사진 43) 호텔부근 간이 음식점
사진 44) 외국인을 위한 메뉴판
사진 45) 첫날 저녁 하루 일과 평가회
첫댓글 좋은글~잘~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