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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13년 7월 20일(셋째주 토요일) 날씨:맑음(무척 더웠던 하루)
산행지:부산 금정산(해발 801.5m),장군봉(해발 734.5m)
산행코스:양산시 다방동(대정 그린파크APT)~석산마을 갈림길(등산안내판)~530M봉
~금륜사(은동굴)갈림길~726.6M삼각점~장군봉,고당봉 갈림길~장군봉
~억새밭~갑오봉 갈림길~임도~청련암~범어사 계곡
산행시간:5시간(중식 및 충분한 휴식 시간 포함)
금정산(고당봉 801m)
위치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구, 동래구, 경남 양산시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으로 늘 물이 차 있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금색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금샘'(金井)에서 산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산으로, 주봉인 고당봉(801.5m)은
낙동강 지류와 동래구를 흐르는 수영강의 분수계를 이루는 화강암 봉우리이다.
나무와 물이 풍부하고 화강암의 풍화로 인한 기암절벽이 많다.
북쪽으로 산정으로부터 남쪽으로 ㄷ자형을 이루는 금정산성이 있다.
금정산의 특색은 남북으로 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는 것과 능선의 대부분에
옛 금정산성의 유적이 남아 있고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등 동서로 조망이 좋으며
정상일대의 암봉으로 산의 기세가 당당하다는 것이다.
남쪽에서 정상에 이르는 능선은 대체로 완만하여 걷기가 쉬우며,
바위지역은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과 의상봉일대에 많다.
장군봉 북쪽, 제3망루 부근과 그 이외에 능선의 동측 사면 여기저기에 단애나 바위가
산발적으로 보이고 금정산능선의 동쪽은 서쪽에 비해 훨씬 가파른 것도 금정산의 특색이다.
★금정산 등산코스★
※ 제1구간(산성고개-남문-망미봉-파리봉-서문)※
산성고개(목장승)→전망대→평평바위→제2망루→남문→망미봉→헬기장→사거리
→상학산 상계봉(640m)→제1망루터(638m)→파리봉(615m)→임도→산성로→서문.
[산행시간 4시간30분]
※ 제2구간(서문-고당봉-북문-원효봉-의상봉-동문-산성고개)※
서문→부부묘→도원사사거리~중성갈림길→도원사→전망대→부산학생교육원(사시골)→철탑
→주능선(496봉)→석문→제2금샘 사거리→금곡동 갈림길→미륵사 갈림길→미륵사
→미륵바위 전망대→북문 갈림길→고당봉(802m)→고당샘→금샘→금정산장→북문→원효봉
→의상봉→제4망루→무명안부→부채바위→제3망루→나비암→동문→산성고개. [산행시간 6시간]
※고당봉※
범어사입구버스정류장→범어사→북문→고당봉→금샘→북문→의상봉→제4망루→제3망루
→동문→산성고개(또는 금성동사무소 앞). [산행시간 3시간 30분]
※고당봉※
범어사입구버스정류장→범어사→북문→고당봉→금샘→북문→범어사→범어사입구버스정류장.
[산행시간 2시간 30분, 원점회귀]
※고당봉※
지하철 2호선 호포역→샘터→고당봉→철탑→가산리 마애불→계곡→호포농원→호포역.
[산행시간 3시간30분]
※고당봉※
화명동 도시화명 그린아파트→윤씨 문중묘→체육공원→남근석→494m봉→제2금샘
→미륵사→711m봉→고당봉(801.5m)→금샘→철탑→마애불갈림길→장군평원→계명봉
→양산시 녹동. [산행시간 6시간]
※고당봉※
금곡동 지하철 2호선 율리역 2번출구→인천유치원→화명·금곡동 경계능선→금정산성
→고당봉→가산리마애불→계곡→가산리새마을→호포역 순. [산행시간 5시간]
※금정산 장군봉-고당봉-원효봉-의상봉※
양산시 동면초교→외송마을→은동굴 금륜사→주능선→장군봉→고당봉→북문
→원효봉→의상봉→동문 [산행시간 6시간30분-7시간]
※계명봉-장군봉※
범어사역→경동아파트→아파트 뒤쪽 팔각정→봉수대→계명봉→사배고개→장군봉
→727봉→은동굴→양산시 동면 사송리 동면초교 앞. [산행시간 4시간~4시간30분]
※호포-고당봉-장군봉-계명봉※
호포전철역→금호사→임도→고당봉→가산리마애불입구→샘터→장군봉→746.6봉
→안부→계명봉→계명암→청용동 범어사 전철역. [산행시간 6시간 30분]
※의상대-고당봉-금샘※
청룡동 상마마을 버스정류장→오동나무집→원효암의상대→북문→금샘→고당봉→미륵사
→북문→원효봉→매바위→미륵불→상마마을. [산행시간 4시간]
※원효봉-의상봉※
지하철 1호선 범어사역→남산봉→소원바위→원효봉→의상봉→제4망루→제3망루
→나비암→정암약수터→너덜지대→구서동 산복도로. [산행시간 3시간]
※상계봉-파리봉※
지하철 2호선 화명역→화명그린힐 아파트→갈림길→와석골(계곡)→기도처(작은 암자)
→간이 막사→베틀굴→상계봉→제1망루→파리봉→잇단 전망대→잇단 체육시설→간이 화장실
→등산로 입간판→지하철 2호선 화명역. [산행시간 4시간]
※상계봉※
장전2동 규림병원→아기자기능선→제2망루→남문→망미봉→상계봉→제1망루→수박샘
→남문→휴정암→약수정사→민속예술관→금강공원 입구. [산행시간 4시간]
※상계봉※
덕천로터리→낙동고교→해병대북구지회전우회→공동묘지→체육공원→354봉→상계봉
→제1망루→남문→휴정암→케이블카→금강공원→온천장. [산행시간 4시간 30분]
※성지곡-남문-상계봉※
초읍 어린이대공원 정문→성지곡수원지→만남의 광장→구민의 숲→만덕고개→깔딱고개→남문
→수박샘→제1망루→상계봉→354m봉→체육공원→공동묘지→덕천동. [산행시간 4시간30분]
※성지곡-만덕고개-대륙봉-동문-원효봉※
초읍 어린이대공원 정문→성지곡수원지→만남의 광장→만덕고개→대륙봉→산성고개→동문
→제3망루→제4망루→의상봉→원효봉→622.2m봉→하마마을→범어사전철역. [산행시간 6시간 30분]
금정산 801.5m |
위치: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구 사직운동장 5.347번 교대앞 6.247번 재송동 7.147번 교대앞 8. 50번사직운동장 9.37번 동부터미널 10. 148번 구포삼거리기타 산행깃점인 금강공원, 구서동, 회룡암, 범어서 등에 운행하는 시내버스 다수. 외송깃점은 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신평행 버스를 타고 외송에서 하차. |
산행: 금정산은 내륙으로부터의 부산진입로인 경부고속도로에서 부산지역으로 진입하자 마자 처음 대면하는 산이자 부산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금정산의 특색은 남북으로 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는 것과 능선의 대부분에 옛 금정산성의 유적이 남아있다는 것,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등 동서로 조망이 좋으며 정상일대의 암봉으로 산의 기세가 당당하다는 것이다. 남쪽에서 정상에 이르는 능선은 대체로 완만하여 걷기가 쉬우며, 바위지역은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과 의상봉일대에 많다. 장군봉 북쪽, 제3망루 부근과 그 이외에 능선의 동측 사면 여기저기에 단애나 바위가 산발적으로 보인다. 금정산능선의 동쪽은 서쪽에 비해 훨씬 가파른 것도 금정산의 특색이다. 사진:안개속의 정상암봉 금정산산행은 대체로 3개지역으로 나눠볼 수 있다. 산성고개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 그리고 장군봉을 중심으로 한 최북단지역이 그것이다. 남쪽 코스는 금강공원의 망미루나 만덕동에서제2망루-상계봉을 연결하는 산행이나 그 반대로 상계봉-제2망루, 또는 산성고개까지 연결한 산행으로 이루어진다. 산성고개 북쪽의 산행코스는 산성입구기점, 회룡암기점, 구서역기점, 범어사기점, 외송기점으로 나눠볼 수 있다. 외송지역을 빼면 어느 곳에서 산행을 하더라도 하산지점에서 대중교통 수단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금정산 산행의 장점이다. 만덕까지 와서 상계골로 들어가도록 한다. 온천장에서 망미루나 식물원쪽에서 케이블카 아래 능선을 따라 제2망루-남문-상계봉이나 제2망루-산성고개로 가거나 할 수 있다. 약수터를 지나 계속 올라가면 제3망루가 나온다. 역에서 나와 외국어대운동장 왼쪽에 시멘트포장길이 나온다. 회룡암, 능선의 순서로 주능선에 오른뒤 의상봉, 원효봉을 지나 북문에서 범어사로 내려가거나 고당봉에 오른뒤 내원암-범어사코스로 내려갈 수 있다. 범어사 코스는 내원암으로 올라가 고당봉에 이르는 길과 금강암-북문-고당봉길로 나뉜다. 내원암코스는 범어사 동북쪽의 계명봉과의 사이에 형성된 계곡길로 올라가는 코스이다. 장군봉과 고당봉사이의 능선산록을 끼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이 길은 1시간 10분정도의 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범어사-금강암-북문 코스는 범어사에서 남쪽으로 난 고당봉-원효봉사이 계곡길(바윗덩이들이 많은 계곡)을 올라가면 금강암을 지나 주능선상에 있는 북문에 도착하게 된다. 부산에서 외송으로 오르면 노포동을 지나 고개(지경고개)를 넘어야 한다. 동부시외버스터미널(온천2동)에서 양산행버스를 타고 고개를 넘어 외송에서 하차한다. 동면초등학교를 지나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금륜사로 오른다. (하차이후 금륜사까지 50분정도 걸림) 장군봉에 이르기전 727m봉이 나오고 그전에 바위구간이 조금 있다. 장군봉을 지나면 억새밭이 나온다. 되다시피하는 너덜지대가 나온다. 범어사 아래 주차장도 원래는 이런 화강암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었으나 지금은 주택지대로 변모하여 흔적을 찾을 길이 없어졌다. 이 지역이 바로 봄이 오면 자생 등나무가 거목 소나무숲에 의지하여보라색꽃구름처럼 흐드러지게 등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골짜기이다. 이색적인 생태현장으로 이런 곳이 전국을 통틀어도 별로 없었던 지역이었다. 지금도 그일부가 주차장 위쪽에 남아 있으나 개발과 인구집중이 자연파괴의 장본이라는 것은 이경우에도 해당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더구나 범어사로 올라가는 길가에 산경관을 가로막는 거대한 아파트(경동 아파트)가 서있어서 벌린 입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도대체 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경관중의 하나를 장벽으로 가리다시피하는 이런 주택을 허가해주어 아파트주민에게만 봉사한 것은 경관에 대한 무감각이 빚어낸 한심한 작태라고 하지않을 수 없었다. 경관을 회복하기위해 아파트를 허물었던 뉴스를 이곳에선 듣지도 못했던 모양이다. 범어사를 지난 다음 너덜지대 옆으로 대성암이보이고 너덜지대를 횡단하면 너덜지대옆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너덜지대의 화강암은 훙륭한 건축자재가 되었던 것이 대성암과 금강암의 돌담에서도 드러난다. 범어사는 부산불교의 구심점이 되다시피하는 절이다. 그래서 20여년전에 본 범어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사세확장이 보인다. 본찰은 그대로이지만 주변 암자가 크게 확장되어 있다. 특히 내려올 때 본 청련암은 범어사의 부속암자라기 보다는 웬만한 대가람과 같은 규모이다. 문제는 인구증가와 교세확장, 그리고 소득증대 등 원인에 의해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시설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범어사는 더이상 금정산록의 자연과 조화되는 아름다운 사찰이라는 이름을 누리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아가 한마디 더 고언을 한다면 이제는 현재 사찰의 기능일부를 도시로 가져오라는 것이다. 지금의 위치에다 시설물을 계속 짓는다면 금정산이 거덜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고 그 폐해의 일부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답던 너덜지대가 깨어져 사찰로 바뀌는 과정이 되풀이되면 금정산의 자연자산 중 가장 뛰어난 것중 하나인 너덜지대 골짜기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금정산을 처음 올랐던 20연년전의 너덜지대 일대의 이색적인 경관의 기억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이번에 와서 보니 규모가 형편없이 축소되어 있다. 너덜지대를 바라보면서 산으로 올라가는데 비온 다음날이라 능선엔 안개가 끼여있어서 정상의 조망이 좋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범어사에서 송림과 너덜지대를 지나 능선에 올라오는 길은 마지막 부분에 나무로 촘촘이 박은 계단이 나온다. 계단이 있으면 사람들은 계단옆으로 또 하나의 길을 만든다. 그래서 길은 더욱 확장된다. 꼭 필요하다면 계단에다 난간을 만들어 계단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돌출되어 있는 평범한 산길이지만 숲옆으로 너덜지대를 계속 바라보면서 산행을 할 수 있다. 능선은 너무도 평탄하여 산위에 이런 넓은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넓은 길을 따라 남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성곽과 성문이 나온다. 성문은 북문이고 성곽은 금정산성이다. 산성의 높이는 퇴락하여 2m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규모는 굉장히 크다. 전체길이가 17km에 달하는 거성이다. 시에서는 금정산성 일대를 묶어 역사탐방로로 만들었다. 금정산성의 유래를 기록한 게시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속에시 해상을 방어할 목적으로 축성된 것이다. 성은 내.외성으로 이루어졌고 성벽은 자연석으로 쌓았지만 중요한 부분은 가공한 무사석으로 쌓았으며, 성의 길이는 17.337m이고 높이는 1.5 내지 3m 정도이며 면적은 약 8.213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성이다. 처음에 산ㄴ성을 쌓은 것은 확실치 않으나 효종 6년(1655) 동래부사 임의백이 이 산성을 다시 쌓고 부치를 옮기자는 건의를 한 바 있으며 또 현종 8년(1667)에 통제사 이기형이 성터가 남아 있었다는 기록을 한 것으로 보아 이미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숙종 28년(1702)에 이르러서야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로 이듬해 동래부사 박태항, 이야와 함께 성을 쌓게 되었다. 또 숙종 33년(1707) 동래부사 한배하가 중성을 쌓았으나 숙종 40년 이후 성이 너무 넓고 크다 하여 폐하게 되었다. 그후 순조 7년(1807) 수축공사로 동문을 준공하고 이듬해에는 서.남.북문의 문루를 완성하였고 이 사실을 기록한 부설비(碑)가 전해온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동.서.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 북문을 복원하였다. 설치된 식수타워가 나온다. 주봉인 고당봉은 북서쪽으로 약 800m정도 떨어진 곳에 솟아 있다. 해발높이 601m인 산장에서 200미터만 더 올라가면 주봉인데 급경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수로울 것은 없고 길도 평탄하여 30분이면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정상만은 절리가 많은 화강암 암봉으로 되어 있어서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곳곳에 굵은 로프를 설치, 안전을 돕고 있다. 암봉은 동서로 굴곡을 이루며 제법 길게 뻗어있어 부산의 진산다운 당당한 기세와 준수한 위용을 갖추고 있다. 하산길은 암봉의 동쪽 끝에서 북쪽으로 내리뜨린 로프를 타고 바위밑으로 내려서서 바위사이로 깊이 패인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면 장군봉으로 가는 길인데 이길을 이용하여 갈림길까지 갔다가 동쪽으로 내려서는 하산로를 따라 가면 길이 넓어지고 경사도 적어 안전하지만 거의 심심하다고할 정도로 펑퍼짐한 길이 길게 이어진다. 이날(2000년 1월 6일)은 전날 저녁에 봄비같은 비가 촉촉이 내리더니 해발 600미터 위로는 짙은 안개가 끼여 조망을 즐길 수가 없다. 부산에 자주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 퍽 안타까웠다. 그러나 안개속에서 바라본 정상일대의 암봉은 일견 괴기스럽기도 하고 일견 암봉의 빼어남을 극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하여 또다른 인상을 주었다. 산행하는 사람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자연향유의 방법을 터득해야한다고 한 것은 외국의 어느 산악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맑은날보다 구름끼고 안개가 피었다 스러졌다하는 날의 경관이 더 재미있다고 했었다. "고당봉(姑堂峰)은 천신인 고모할머니가 내려와 산신이 되었다해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고대의 신선사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지금도 정상부근에는 고모당(姑母堂)이라는 기도처가 있다. 금정산에서 고당봉이 최고봉이며, 그 가슴께에 용머리 형상의 용두암이 있고 남쪽 산허리쯤에는 고당샘이 있다. 동쪽 능선 허리에는 범천(梵天)의 금어(金魚)가 오색 구름을 타고 내려와 살았다는 금샘(金井)이 있어서 금정산(金井山)과 범어사(梵魚寺)라는 이름의 연원이 되었다고 한다. " 금정산은 부산에서 유일한 800m대의 산이다. 그런데 정상에서 내려다본 단애아래의 풍경은 목불인견이었다. 과자를 쌌던 비닐착색종이, 은박지며, 주스깡통, 맥주깡통과 되는대로 집어던진 귤껍질이며 담배꽁초가 음습한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동쪽을 보아도, 서쪽을 보아도, 남북을 두루 봐도 다 그랬다. 왜 이모양인가. 서울만 하더라도 도봉산이나 북한산에서 이런 광경을 보기는 쉽지 않게 되었다. 서울은 물론 지방을 돌아다녀도 금정산같이 깨끗치 못한 산은 별로 없었다. 부산에는 양식있는 산꾼이 없다는 말인가. 소백산에는 귤껍질을 버리지 말자는 안내판이 있다. 금정산에도 빼어난 산 금정산에 와서 이런 것들을 버리지말자, 부산얼굴에 먹칠을 하지말자는 입간판이나,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부산에 연고가 없지 않은 한 사람으로얼굴이 붉어질 일이라는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흐리멍덩한 날에도 그랬으니 날씨가 개고 하늘이 푸른날은 더욱 가관일 것이다. 게다가 멋지고 아름다운 바위에다 돌로 쪼아 이름을 새긴 곳도 여러군데 보였다. 산에 관한 한 부산 등산인의 환경감각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글씨는 바위색깔의 페인트로 지운 것을 여러산에서 본 적이 있는데 왜 금정산에서는 그대로 놔두는지. 시민의 온갖 학대에도 굳건하게 서서 원래의 장엄함을 상실하지 않고 안개속을 뚫고 아니 안개때문에 더욱 엄청난 볼륨감을 드러내 보이며 치솟아 있다. 조금 내려오니 장군봉으로 가는 길과 계명봉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갈린다. 길은 곧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어진다. 안개가 끼여 좌우의 산이 보이지 않았으나 안부부근에 억새밭이 우거져 마른 적갈색 억새잎이 안개속에서 독특한 해맑은 빛깔을 발한다. 억새는 꽃이 필 때도 아름답지만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엔 매우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이곳 억새는 영취산-신불산 능선에서 본 탈색된 듯한 매마른 억새의 빛깔과는 다르다. 적색이 많이 보이는 잎의 컬러가 매혹적이다. 날씨가 맑으면 한쪽은 계명봉, 뒤쪽은 장군봉, 오른쪽은 금정산 고당봉이 함께 높이자랑을 하는 경관을 보게 되었을 터인데 안타깝다. 세 봉우리는 어깨라고 할만한 높은 능선으로 연결되지 않고 안부까지 고도가 푹 꺼져 있다. 특히 계명봉은 내려가면서 보니 거의 독립봉처럼 느껴진다. 계명봉은 범어사에 절묘한 위치를 부여해준 봉우리로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봉우리다. 범어사 대웅전에서 보면 우측은 원효봉에서 원효암쪽으로 뻗어온 능선이 범어사의 우측을 받치고 좌측은 다름아닌 계명봉이 솟아 있어 허할 수도 있었던 범어사의 북쪽을 꽉 막아 실팍한 명당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금정산과 계명봉 사이에는 경사가 완만한 산록이 이어지고 있는데 넓은 길을 따라 내려오면 계명봉과의 사이에 상당히 넓은 분지가 펼쳐져서 고원지대같은 느낌을 준다. 퇴락한 농가가 한 채 있지만 곧 허물어질 것 같다. 만일에 시설물 확장의 필요성 때문에 천혜의 공지인 이곳이 절집의 부지가 된다면 그것은 금정산에는 대재앙을 의미하는 것이 될 터이다. 부산은 이미 만원이어서 높은 산록도 개발해야할 입장에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금정산마저 가만 두지 못한다면 부산에서 자연환경이라고는 볼 것이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우려가 근거없는 기우이기를 부산을 위하여 염원해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농가에서 한참 내려온 뒤 웬 거찰과 거대한 부처상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범어사 아닌 별개의 절이 새로 섰나하고 생각했다. 범어사는 예로부터 전해오던 당우들을 가꾸고 손질하여 사용하되 크게 개축하지는 않고 집을 늘리더라도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보제루, 대웅전의 위계를 기본적으로 저해하지 않고 별로 눈에 띄지않게 증축해왔기에 당우의 증가에도 옛절의 아취는 유지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청련암에 이르면 범어사를 뒷받침하는 거대한 교세가 한눈에 드러난다. 엄청난 부처상과 좌우에 늘어선 2동의 2층 건물등이 주는 위압감은 곧 금정산 골짜기에 있을 여유있는 땅에 대한 갈증으로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이해되려고 했다. 지나가는 신도에게 물어보니 여기가 청련암이라고 한다. 전반적인 규모는 부속 암자인데도 본찰보다 더욱 커보인다. 고당봉에서 안부를 거쳐 범어사까지 내려오는데 1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줄잡아 3시간이면 범어사-북문-고당봉-갈림길-농가-청련암-범어사 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고당봉에서 북쪽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등산로폐쇄라는 작은 플래카드가 보인다. 폐쇄구간은 계명봉이 보이는 분지의 농가위까지이다. 기간은 99년 11월부터 6월말까지로 돼있는 것 같았다. 폐쇄원인은 적혀 있지 않았다. 농가위쪽에서 산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철조망을 쳐놓았다. 우리나라 31본산의 하나.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 최성기때에는 계곡에 당우들이 가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에 고스란히 불타버린 뒤 중창되었다. 대웅전은 조선중기 불전건물의 건축적 가치때문에 보물 제 4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건물. 범어사에는 신라 흥덕왕때의 것으로 보이는 3층석탑이 보물 250호로 지정되어있다. 범어사는 불교적 함의대로 구축된 짜임새 있는 절인데다가 금정산 주능선상의 원효봉에서 뻗어내린 능선이 가람의 우측을 받치고 있고 장군봉에서 뻗어온 능선이 청룡의 기세처럼 높이 솟구치며 북으로부터의 외풍을 막아주며 앞으로 별다른 큰 산이 없이 동으로 넓게 열리는 명당에 자리잡고 있다. 노송 거목이 울창한 송림을 지나면 일주문이 나오는데 이 일주문은 그 특이한 구조와 조형미로 이목을 끌기에 족한 아름다운 문이다. 현재 부산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있는 일주문의 조성연대는 조선조 광해군 6년(1614) 묘전화상이 임란때 불탄 당우들을 중수할 때 함께 건립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숙종 44년(1718)명흠대사가 기둥을 석주로 바꾸었고 정조 5년(1781) 백암선사가 현재의 건물로 중수하였다한다. 이 일주문은 삼문구조형식이다. 오른쪽문 위에 "선찰대본산", 좌측문위에 "금정산범어사"라는 편액이 한자로 씌어 붙어있고, 중앙문 위에는 조그맣게 조계문이라는 편액이 붙어있다. 전체적으로 기둥이 높지않아 대지를 딛고선듯한 확실한 안정감이 발산되고 있고 맞배지붕구조가 비례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송림에서부터 대웅전까지는 자연스런 경사도가 유지되도록 가람이 설계되어 있어서 상승감으로 인하여 자연스레 종교적인 경건함 속으로 몰입하는 느낌을 주도록 했다는 것도 범어사 건축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그 구조와 조화가 완성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나온다. 천왕문을 지나면 불이문(불이문과 주변의 대나무숲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다음이 보제루, 보제루 앞 마당에 한쪽에 삼층석탑이, 한쪽에 석등이 배치되어있다. 불이문 옆 담장밖에는 울창한 죽림이 푸른 죽엽을 바람에 나붓기게 하고 있어서 안팎으로 숲과 당우의 조화가 돋보인다. 삼층석탑은(소재지: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보물 제250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조성연대는 신라 흥덕왕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는 석탑이다. 석탑 안내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석탑이다. 하층기단은 각면에 탱주없이 3구씩 안상을 조각하였고 상층기단은 중석을 높게 하고 각 면석에 꽉 들어차게 안상을 조각하여 그 수법이 특이하다. 1층 탑신에 비해 2층 이상의 탑신은 매우 작게 줄였으며 옥개석은 추녀가 수평을 이루나 옥개받침은 4단으로 되었고 평평하고 얇아 신라 하대의 양식을 드러내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후대에 보충한 보주만이 있을뿐 다른 부분은 없어졌다. 일제시대 높은 석단 위에 올려놓았다. 안정감과 비례미로 조선중기건축의 아름다움을 은은히 표현하는 대웅전(보물제434호)이 앞에 다가선다. 이 건물은 정면, 측면이 모두 3칸으로 된 맞배지붕의 다포집이다. 공포는 외3출목이고 옥내에는 2개의 고주를 세워 들보는 높은 기둥에 결구되고 후불벽을 만들어서 그 앞에 불단을 설치하였으며 불단위에는 화려하게 장식한 닫집을 얹었다. 이 건물의 기둥머리의 두공과 처마의 구조가 섬려하고 아담한 교창이 달렸으며, 닫집과 불단의 조각이 정교하게 섬세하여 조선중기 불교건축의 아름다움과 조선시대 목조공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안에는 주존으로 석가여래, 좌협시에 미륵보살, 우협시에 가라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안내 설명판 참조) 보완된 간주석이 빈약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상실한데다 상륜부의 부재들이 없어져 볼품없이 되었다. 옥개석위의 노반도 제짝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석등의 하대석 복련이나 상대석 앙련이 모두 겹꽃으로 꽃잎이 8잎인데, 꽃잎이 단엽인 것이 쌍엽인 불국사 석등과 다를 뿐 형식은 같다. 석등은 원래 금당이나 탑앞에 놓이지만 이 석등은 일제시대때 현재의 장소에 옮겨놓았다. 석등을 금당앞에 두는 것은 "사람이 운명하는 순간에 등을 밝히면 상종명을 얻고 죽은 자를 위하여 탑요제불 앞에 등을 밝히면 삼십삼천에 태어나며 다섯가지 청정을 얻는다는 것 등이 지혜, 자비, 선행, 청정, 재생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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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도 둘러보고......
석산마을 가는길.
맛있는 점심시간.......돼지목살에다 시원한 캔 맥주까지~~^*^
저 아래가 팔송......저멀리 천성산도....
폼나게.....하늘의 구름들이 멋진 배경과 조화를 이루네요.
양산시 전경.
은동굴(금륜사)가는 길목 갈림길에서.....목도 축이면서~
726.6M 삼각지점.
장군봉과 고당봉이 한 눈에......
정상 인증샷~!!
범어사 계곡에서 알탕 하였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