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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ARTIST
박 항 환
Park, Hang Hwan
2005. 6. 29 - 7. 8
상갤러리 (인사동)
韓國山水의 새로운 樣式과 定型化에 成功한 重鎭
김남수 / 미술평론가
한국미술의 대표적인 예술양식 가운데 근간을 이루는 소재는 두말할 나위 없이 산수화가 불변의 화목 (畵目)으로 자리잡고 있다. 마치 한국화가로 입신하기 위해서는 반듯이 산수화를 이수를 하고 산수화가로 명실상부하게 공인을 받을 때 한국의 화가가 되는 그런 수순이 관행처럼 지켜져 왔다. 그 까닭은 농경사회로 부터 산수경은 우리네 조상님네들의 삶의 터전이자 마음의 본향이었다. 한마디로 산수를 떠나서는 하루도 생애를 살아 갈 수 없는 그런 자연환경 속에서 우리는 살아온 것이다. 산신께 풍년을 기약하는 것도 그렇고 성황님께 기우제를 드리는 등 우리의 기복신앙도 산과 물(강)에 의지를 해왔다. 조선시대의 우리의 선배작가들 가운데는, 그리고 근대에 이어지면서 독특한 자기만의 조형양식, 사투리적인 자기언어를 만들어낸 화가만도 상당수가 있다. 가령 겸제 정선, 오원 장승업, 허백년, 이상범, 노수현, 허건 등은 각기 다른 자기만의 독자적인 언어를 만드는데 성공한 미술인들이다. 현역 작가들 가운데도 상당수의 화가들이 자기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산수화의 심층연구 등 독자적인 자기양식을 만들어낸 원로, 중진, 중견 등 상당수가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호 표지작가로 선정된 전정 박항환은 한국산을 주제로 한 일관된 작업을 해 왔다. 마치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후 자기를 길러준 고국을 버릴 수 없듯이 그는 우리의 것에 대한 애정과 향수를 집요하게 화폭에 담아왔다.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는 현대미술의 태동기여서 서구주의가 홍수처럼 밀려와 우리 미술인들은 방향타를 잃고 갈등과 혼돈기를 맞았다. 당시 박항환은 사숙에서 스승에게 사승을 하면서 우리의 전통을 최후의 보루처럼 지켜왔다. 작가는 초기 산수화의 연찬기에도 오히려 산수화 작업의 현대화를 추구하면서 점진적인 완만한 변화를 추구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의 지론을 소개하면 “근대화라는 미명 때문에 우리의 안방까지 서구화로 자리매김을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렇다고 조상이나 선배가 뿌려준 씨앗이나 핏줄까지 바꿀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 현란한 조형이론으로 위장되고 과학화된 물량주의적인 서구식 모더니즘보다는 우리 미술의 창조적인 계승과 발전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요, 과제기 아닌가 생각해요. 해학과 익살, 관용과 용서의 미학이 바로 우리 미술의 사상이자 정신이죠”라고 신념을 펴는 그는 이어 “서양화의 파렛트 대신에 먹과 벼루를 선택한 것은 동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요, 나의 길은 숙명처럼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라고 주장하는 박항환의 신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자연을 거스른 적이 없고, 인간을 버린 적이 없는 우리 미술의 전통회화사상과 정신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 생명을 가장 중히 여기는 값진 미술의 본령이며, 한국미술은 이러한 철학 속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역설하고 있다. 그는 불과 나이 19세 되던 소년시절 최연소 작가로 국전에서 입선을 따내어 화단에 등단했다. “지금 생각하면 스승의 기량을 배운 것이 아니요, 정신과 인품을 배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오늘의 자신을 있게한 스승에게 한없는 홍은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자연과 묵시적인 교감을 하면서 자연의 심오한 진실을 캐내는 작업이 완만한 변화를 추구하면서 상당기간 오래 계속되어 왔다 . 그 후 그가 선회한 것은 현장사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진경산수화 작업이었다. 자연이 살아있는 생동감, 인간으로서의 삶을 의식하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이었다. 이른바 사생현장에서 피사체를 생생하게 화폭에 담는 희열을 만끽했다.
하지만 장황하고 실명적인 묘사는 일순에 지나지 않았다. 이른바 가시적인 현장세계를 포괄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에서의 한계 같은 것이 그의 작업에 침체를 불러들였다. 이 무렵 그는 많은 갈등과 방황을 하면서 몸부림했다. 장황한 설명이나 불필요한 덧살이 주절주절 왜 필요한 것인가. 여기에서 그가 탐색한 해답은 소재의 정일(靜逸)한 생략과 축쇄와 응집이었다. 작가의 의식 속에 비친 꼭 필요한 진수만을 화폭에 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방법론의 천착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순도 높은 신선감을 더해 갔다 . 과장이나 허세의 군더더기를 말끔히 씻어내 버린 것이다. 이번 그가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 특히‘소나무’ 연작들은 축약된 최소한의 언어로 한국의 많은 이미지와 향수를 함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얼핏 보면 작가의 영감이 농축된 최소한의 축약을 통하여 작가의 조형언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지금도 우리의 심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시골길이나 강변, 암벽과 계곡의 모습, 듬성듬성 강과 바다 위에 떠 있는 그림 같은 섬, 그 위의 점경(點景)인물, 태공망의 낚시꾼과 일엽편주 등이 수묵기조의 기운생동하고 자유분방한 필세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파묵과 갈필, 파필과 발묵 등 먹의 농담으로 연출되는 붓작업은 그 동안 그가 갈고 닦은 숙련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요즈음 그의 작품경향은 작품의 완성을 위해 많은 시추작(試錐作)과 그리고 완성작까지 버린다. 결코 자신이 흡족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버리는 미완성작업은 수십점의 같은 소재에서 한 점의 작품을 걸러내는 어려운 작업공정을 이어 가고있다 . 공인으로서의 세심한 배려와 책임을 느끼는 양식있는 작가 박항환은 예술품은 작가의 분신이요, 자화상이기 때문에 심사숙고가 필요하다는 작가의 조형정신은 요즘 무책임하게 작품을 다작하여 양산해내고 남발하는 상업주의의 세시풍속과는 차별과 위상이 크게 다른 화가다. 이번 작품전이 또 한 번 그가 도약하는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結論
전정 박항환의 작품세계는 뒤 틀리고 비틀어진 토속적인 한국의 소나무를 흉중일기(胸中逸氣)처럼 내밀하게, 최소한의 언어로, 축쇄해버린, 간결하면서도 표현질의 진수만을 표출해 내는 개성주의가 강열한 자기만의 예술양식을 완성해 내고 있다. 화가에게 자기만의 「트레이드」가 형성된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에 접근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가 형상화하고 있는 한국의 산수화와 소나무들은 그만의 독자적인 올리지날리티요, 가장 사투리적인 박항환의 예술양식인 것이다. 그가 한국산수의 이미지 창출과 새로운 형상의 전형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하고 몸부림할 때 마다, 필자는 창조적인 그의 노력을 곁에서 지켜봤고 그때마다 그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특히 오는 9월 제2회 북경 비엔날레에 선정된 (이종상, 이철주, 김병종, 박항환) 것이라던지, 오는 9월 23일 중국 항주의 塘雲미술관(박행보, 김영철, 박항환) 등에 초대된것은 그가 추구하고 있는 한국미술이 국제감각 등 한국성이 세계의 양식과 접목되면서 공감을이루고 있음을 명확하게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미술이 세계의 양식과 공존하고 국제질서의 반열에 낄 수 없는 것이라면
이상의 시각에서 볼때 전정 박항환의 예술은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한국화가라고 볼 수 있다 . 앞으로 작품세계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인지는 자못 궁굼하지만 많은 기대를 걸어 봐도 좋을 것 같다.
田丁 朴亢煥은 1947년 유서 깊은 예향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 남단 아열대 기후로서 천혜보고가 많은 고장으로 소치 허유,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 소전 손재형 등 한국 화단의 거목들을 배출한 고장이며, 또한 유림과 남도창, 선비 등이 배출된 이름 그대로예향이다. 전정 박항환은 남농 허건을 스승으로 사사를 했으며, 도촌 신영복 문하에서 사승을 했다. 그는 불과 19세의 나이로 국전에 등단하여 지금까지 40년의 외길을 걸어오며 한국화단의 확고한 重鎭 자리를 굳혔다.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심사위원, 운영위원을 역임 했으며 후학양성에 진력해온 그는 역량있고 유능한 후배작가들을 많이 길러냈다. 그동안 국내외 초대전 등 많은 작품전을 가져왔으며 20여회의 개인 발표전을 가졌다.
자연과의 탐색을 통해서 서정과 향수를 담아내
운림산방의 문하인 남농선생과 도촌선생에게서 사승한 田丁 박항환 의 개인전이 갤러리 상에서 열렸다. 문인화를 비롯한 산수화의 독자적인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그는 30여 년 동안 점진적인 변화를 거듭하면서 이른바 ‘신자연주의 산수’라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굳혀가고 있는 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에 미술평론가 김남수씨는 “그의 작업과정을 상술해보면 자연과 묵시적인 교감을 하면서 자연의 심오한 진실을 캐내려는 작업을 추구하면서 자연이 살아있는 생동감, 인간으로서의 삶을 의식하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을 조형행위를 통한 화혼(畵魂)으로 불살랐다. 이른바 사생현장에서 생생한 피사체를 화폭에 담는 희열을 만끽하였다.
그 후 그의 작업은 탐색을 통해 소재의 생략과 감필, 축쇄와 응집을 통해 꼭 필요한 진수만을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시도하였는데 한마디로 과장이나 허세 , 군더더기를 말끔히 씻어 내버리고 작가의 영감이 농축된 조형언어를 보여주고 있다. 기운생동하고 자유분방한 필세, 파묵과 갈필, 발묵법 등 먹의 농담으로 연출해 낸 붓작업은 작가의 원숙한 기량을 읽기에 모자람이 없다” 고 평하고 있듯이 그의 작업은 작가의 의식 속에 비친 자연을 농축된 조형언어로 화폭에 펼쳐 보이고 있으며 동양미술의 사유철학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앞으로도 축약된 최소한의 언어로 작가만 의 진수를 보여주기 바란다.
- 편집부 -
조선 소나무
박시교 / 시인, <유심>주간
오오래 벼른 꼿꼿한 정신의 붓끝으로
마침내 한 그루 소나무를 세웠구나
그아래
詩의 話者처럼
홀로 지켜선 이여 ,
마치 카랑한 기침소리가 묻어날 것 같은
餘白에 드리운 곧은 가지 끝 푸른 서슬
옹이도
아픈 세월의 결도
다 보듬어 안았다 .
무얼까 , 저처럼 차고 넘치는 到底한 기운
다스리고 갈무리할 힘 펼치게 한 것은
濃淡의
墨이 세운 산 높고
강은 또 끝이 없어라 .
작가탐구
Park, Hang Hwan
박항환
實驗의 連作으로 脫俗하는 畵家의 精神主義
김남수 / 미술평론가
한국미술의 대표적인 예술양식 가운데 근간을 이루는 소재는 두말한 나위 없이 산수화가 불변의 화목 (畵目)으로 자리잡고 있다. 산수화는 농경사회 때부터 우리네 조상님네들의 삶의 터전이자 마음의 본향이었다. 한마디로 산수를 떠나서는 하루도 살아 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자연환경이었다. 산신께 풍년을 기약하고 기우제를 드리는 등 우리의 기복신앙도 산과 물(강)에 의지를 해왔다. 전정 박항환은 남농 문하의 사숙에서 먹빛을 다루고 운필을 익히는 행운을 안았다. 그는 불과 19세의 나이로 옛 국전에서 산수화로 입선을 따낸 재능의 소유자였다.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는 현대미술의 태동기여서 서구주의가 홍수처럼 밀려왔다. 우리 미술인들은 방향타를 잃고 갈등과 혼도기를 맞았다. 당시 박항환은 사숙에서 스승에게 산수화를 사승을 하면서 우리의 전통을 최후의 보루처럼 지켰다. 그는 초기 산수화의 연찬기에도 오히려 산수화 작업의 현대화를 추구하면서 점진적인 완만한 변화를 추구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해학과 익살, 관용과 용서의 미학이 바로 우리 미술의 사상이자 정신이죠”라고 신념을 펴는 그는 이어 “서양화의 파렛트 대신에 먹과 벼루를 선택한 것은 동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요, 나의 길은 숙명처럼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라고 주장하는 박항환의 신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자연을 거스른 적이 없고, 인간을 버린 적이 없는 우리 미술의 전통회화사상과 정신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 생명을 가장 중히 여기는 값진 미술의 본령이며, 한국미술은 이러한 철학 속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라고 신념을 펴기도 했다. 여기에서 그가 탐색한 해답은 소재의 정일(靜逸)한 생략과 축쇄와 응집이었다. 작가의 의식 속에 비친 꼭 필요한 진수만을 화폭에 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방법론의 천착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순도 높은 신선감을 더해 갔다. 과장이나 허세의 군더더기를 말끔히 씻어내 버린 것이다
그가 선보인 작품, 특히 ‘소나무’ 연작들은 축약된 최소한의 언어로 한국의 많은 이미지와 향수를 함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요즈음 그의 작품경향은 작품의 완성을 위해 많은 시추작(試錐作)과 그리고 완성작까지 버린다. 결코 자신이 흡족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버리는 미완성작업은 수십점의 같은 소재에서 한 점의 작품을 걸러내는 어려운 작업공정을 이어 가고 있다.
전정 박항환의 작품세계는 뒤틀리고 비틀어진 토속적인 조선의 소나무를 내밀하게, 최소한의 언어로, 축쇄해버린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표현질의 진수만을 표출해내는 개성주의가 강열한 자기만의 예술양식을 완성해 내 놓고 있다. 다시 말해 흉중일기(胸中逸氣)로 그려내는 심미주의적 사고에 바탕을 둔 그의 예술은 현장에서의 실사 등 사생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어차피 예술은 관념이나 이념 등 사의성이 강한 정신주의 예술이며 또 다른 피사체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창조적인 의미는 대상의 카피와 무관한 것이다.
지난 2008년 9월 우림화랑에서 가진 작품 발표전은 그동안 수십년 동안 산수화의 소나무와는 다른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먹을 주조로 하였으면서도 붉은 황토 빛깔로 변한 홍매와 백매의 형상의 이미지들이 화폭을 압도하고 있다. 또한 적송 수목의 가지에 앉은 학의 군상들,그동안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고 파격적인 탈출을 시도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명징하게 들어나고 있다. 특히 먹색과 아크릴이 조합하여 보색(補色)을 이루는 그의 색채의 미학은 우리의 옛 토담벽이나 추억과 향수 등이 화폭 속에 농축되어 있다. 거칠고 둔탁한 갈필법의 고졸미(古拙美)는 생래적인 작가의 영험적인 화혼(畵魂)이 화폭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가의 회화양식의 기초는 스승과 선배들이 그랬듯이 남종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심미주의와 심상의 예술을 지향하는 전통주의에 획고한 뿌리를 두고 있으며 창작행위의 실현이 가능한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신작전에 평문을 쓴 김상철씨는 ‘무엇이 전정을 탈출케 하고 그는 도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일단 오랜 기간에 걸쳐 축척되어진 남종의 조형경험들을 벗어던졌다. 중봉으로 대변되는 고유한 선묘, 운필의 가치에서 벗어나 마치 흙벽에 둔탁한 막대기로 모양을 그리고 글자를 새기듯 둔중하고 고졸한 선들을 남기고 있다. 수묵의 유현한 가치와 현학적인 해석을 던져버리고 보다 적극적이고 현란하며 표현적인 색채를 취하고 있다.
그것은 함축과 은유의 상징이기 이전에 먼저 시간적으로 작용하는 조형들이다. 혹여 전정은 남종화의 규칙과 법도가 이미 완성된 것으로 이 시대에 부합되지 않음을 절감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과 자구의 수단으로 극단적인 파격과 일탈을 취한 것인지도 모른다’-생략- ‘누구나 감지하듯이 전정이 나선 길은 결코 순탄할 리 없는 지난한 것임에 자명하다. 적지 않는 이들이 전통에 대한 재해석과 재발견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발현하고 현대미술로의 진입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수혈하고자 하였다. 만약 전정 역시 그러하다 할지라도 그가 보여주고 있는 파격적인 변신은 그간 이루어졌던 양태들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그러하기에 전정이 가고자 하는 길에는 어떠한 이정표도 없을 것이며 친절한 안내자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일견 무모한 듯이 여겨지는 이 모험은 어쩌면 전정이 시도하는 일생일대의 거사이자 모험일 것이다. 전통의 안온한 품에서 벗어나 헐벗고 거친 들판으로 자신을 내 모는 전정의 새로운 실험은 일단 자신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고유의 본질을 찾기 위한 것이라 여겨진다. -중략- 이러한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과감한 행보를 선보이는 그의 발걸음은 벌써 세간의 우려나 호기심어린 시선을 멀리한 채 이미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저만치 가고 있다. 훌쩍 길을 나선 전정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라고’라고 설문을 던지고 있다. 그만큼 작가는 확고한 전통의 바탕위에서 변신을 기약하고 새로운 에포크를 긋는 지평을 열고 있다.
박항환 작품전
서울전 : 2006. 11. 15 - 11. 21 타워갤러리(부산)
자연과 묵시적인 교감을 하면서 작가 특유의 어법을 구사하고 있는 한국화가 田丁 박항환씨의 개인전이
부산에 위치한 타워갤러리에서 성대히 열렸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소나무와 학' 시리즈는 작가의 또 다른 정신적 변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우리의 향토성을 충실하게 드러내는데 주안점을 두었고, 그림의 내용과 기법 면에서 장황한 묘사나 설명을 배제한
일획의 필치로 먹의 농담을 생동감있게 펼쳐 낸 작가의 내재된 조형언어를 느낄수 있었다.
- 편집자주 -
일획의 필치로 먹의 농담을 연출해 내는 숙련된 기량
예향 진도에서 태어나 운림산방의 3代인 남농선생과 도촌 신영복 문하에서 사승한 전정 박항환의 작품세계는 30여년간 점진적인 변화를 거듭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뒤틀리고 비틀어진 토속적인 한국의 소나무를 최소한의 언어로 축쇄해서 작가만의 방법으로 표출해내고 있는데 이에 작가는 “나에게 있어서 이번 전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계절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저의 작품세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서구식 모더니즘보다는 우리고유의 황토성과 창조적 계승발전이 나에게 주어진 숙명이요, 과제라고 생각하고 이런 정신 속에서 초기에는 우리 산하를 화폭에 담는 산수화의 현대화 작업에 주력했고, 그 다음에는 현장사생을 통한 진경산수화에 몰입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나에게는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고난이었지만,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소나무와 학'은 진경산수화에서 다시한번 질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그림의 내용과 기법면에서 장황한 묘사나 설명을 과감하게 걷어냈습니다 ‘소나무'를 세우고 ‘학(鶴)'에 인간의 이상형을 형상화하여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자연과 인간의 합일(合一)을 응축하여 표현해 냈습니다. 이 작업은 유난히도 무더웠던 이번 여름에 제작한 것으로 온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었지만 마음만은 청솔바람으로 가득한 선열(禪悅)을 맛보며 진행 되었습니다”라고 피력하고 있듯이 이번 개인전에서 새로 선보인 작품들은 군더더기를 말끔히 씻어 내버리고 작가의 고격(古格)의 정신주의가 농축되어 작품으로 표출되었으며, 기운생동하고 자유분방한 필세, 파묵과 갈필, 파필과 발묵법 등 먹의 농담으로 연출되는 그의 숙련된 기량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 편집부
전시포커스 >
박 항 환
Park, Hanghwan
韓國山水의 深層追跡 自然主義로 까지 昇華
한국회화의 근간을 이루는 화목(畵目)가운데 으뜸은 '산수화'다. 작가가 19세의 소년시절 옛 국전에서 최연소 입선을 따내어 화단에 등단했던 때도 역시 '산수화'가 화제(畵題)였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무려 35년 간을 작가는 일관되게 '산수경'을 그려왔다. 60년대 초 서구의 현대미술이 홍수처럼 밀어닥쳐 모든 미술인들이 갈등과 혼돈기를 맞았을 때도 그만은 동요없이 전통을 고수하면서 보루처럼 '산수'를 지켰다.
작가의 주장을 빌리면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후 자기를 낳고 길러준 고향이나 고국을 잊을 수 없듯이 산수경은 우리 인간의 마음의 고향이요, 언젠가는 우리가 다시 돌아갈 본향'이라고 역설한다. 따지고 보면 농경사회의 우리네 조상네들은 하늘과 땅만 보고 살아왔다. 가뭄이 들면 산신께 기우제를 드리고 주술적인 기복신앙으로 산과 강에 모든 삶을 의지해 온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안견은 '몽류도원도'의 산수의 극치를 그렸고, 겸제 정선은 '인왕재색도' '금강전도'의 진경 산수화를 그렸다. 그만큼 소재로서의 산수화의 역사는 몇 백년이 훨씬 넘는다.
전정 박항환의 '산수화'도 지난 30여 년 동안 완만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거듭하면서 이른바 '신자연주의'산수라고 명명을 할만큼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굳힌 것이다. 그동안 스승의 문하에서 도제식 사숙을 했던 관렴산수, 현장 스케치를 통한 실경산수, 생략과 감필을 통한 표현질의 진수만을 남기려고 하는 진경산수, 그리고 오늘의 작품세계를 완성한 '신자연주의산수'-필자의 명명-를 들을 수 있다. 필자가 그 곁에서 지켜본 그의 작업의 프로세스를 부연해서 상술을 해보면, 자연과 묵시적인 교감을 하면서 자연의 심오한 진실을 캐내려는 작업이 완만한 변화를 추구하면서 상당히 오랜 기간 계속되었었다. 그후 그가 선회한 것은 현장사생과 진경산수화의 변화였다.
이 때의 심경은 자연이 살아있는 생동감, 인간으로서의 삶을 의식하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을 조형행위를 통한 화혼(畵魂)으로 불살랐다. 이른바 사생현장에서 생생한 피사레를 화폭에 담는 희열을 만끽했다. 하지만 가시적인 현상세계를 포괄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상의 한계는 그의 작업에 침체를 불러들였다. 장황한 설명이나 불필요한 덧살, 주절주절 늘어놓는 췌육이 왜 필요한 것인가.
이때 작가가 탐색을 통하여 얻어낸 해답은 소재의 정일한 생략과 감필, 축쇄와 응집이었다. 마치 문인화에서 흉중일기(胸中逸氣)만을 담아내듯이 작가의 의식 속에 비친 꼭 필요한 진수만을 화폭에 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방법론의 천착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순도 높은 신선감을 더 해 갔다. 한마디로 과장이나 허세, 군더더기를 말끔히 씻어 내버린 것이다. 이번 그가 개인전에 발표하고 있는 '소나무'의 연작들은 축약된 최소한의 언어로 한국의 서정과 향수가 농밀하게 녹아있는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얼핏 생각하면 작가의 영감이 농축된 조형언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의와 형상, 정신주의의 극치가 아닌가 싶다.
지금도 우리의 심상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시골길이나 강변, 암벽과 계곡의 모습, 강과 바다 위에 듬성듬성 떠 있는 그림 같은 섬, 낚시를 드리운 태공망의 일엽편주와 점경인물,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기운생동하고 자유분방한 필세, 파묵과 갈필, 발묵법 등 먹의 농담으로 연출해낸 붓 작업등은 작가의 원숙한 경륜과 기량을 읽기에 모자람이 없다. 공인으로서의 세심한 배려와 책임을 느낀다는 작가 박항환은 예술품은 작가의 분신이요, 자화상이기 때문에 공개념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그에 대한 책임을 저야하는 것이 애호가들에 대한 도리라고 강조한다.
그의 작업메모에는 이런 글도 실려 있다.'현대화라는 미술사조와 미명 때문에 우리의 안방까지 서구화의 물결이 잠식했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그렇다고 조상이 물려준 핏줄까지 바꿀 수는 없지 않는가현란한 조형이론으로 무장된 실용주의 비인간화된 모더니즘
보다는 해학과 익살, 관용과 용서의 미학으로 뿌리 내려진 동양미학, 한국미술은 우리의 사상이자 철학'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서양화의 빠렛트 대신에 먹과 벼루를 선택한 것은 생래적으로 나의 길은 숙명적인 것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는 또한 자연예찬론자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자연은 거스른 적이 없고 인간을 버린 적이 없는 숭고한 위용을 과시하고 있으며 우리미술의 전통사상과 정신주의야말로 원초적 생명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동양미술의 사유의 철학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전정 박항환은 1947년 한국의 남단 예향 진도에서 태어났다.소치일가인 운림산방의 문하인 남농선생과 도촌선생에게 사승을 했다. 문인화를 비롯한 산수화의 독자적인 언어를 만드는데 성공한 그는 그동안 미술대전을 비롯한 각급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20여회 역임했다. 또한 국내외 초대전과 그룹전 100여 회를 가진 바 있으며 개인전만도 20회를 가진 바 있다.
김남수 / 미술평론가
주요약력
南農 許楗 先生 , 稻村 辛永卜 先生 門下
1947 전라남도 진도 出生
1975 지방작가 초대전 출품 (문예진흥원)
1979 한국의 자연전 초대 출품(국림현대미술관)
1982 문인화 연구회전(백상기념관)
개인전(미도파화랑)
1983 KBS초대 미술전(국립현대미술관)
국전 출신 작가회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83~91 현대미술 초대전(국립현대 미술관)
1984 개인전(롯데미술관)
서울신문사 정예작가 초대전(경인미술관)
1985~96 국제예술문화 교류전(한국,일본,중국)
1986 86한국화 58인전(중앙청역 지하미술관)
상원전(동국대학교 개교80주년 기념 : 동덕미술관)
1987 인천광역시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88 한국현대 미술전(국립현대미술관)
전남도전 심사위원 역임
88서울 회화제, 롯데미술관초대
1989 경인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90 개인전 (백악미술관)
1991 미국LA타이그레스화랑 초대전
동아일보 문화센터 강사 역임
제10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93 광주광역시 미술대전 운영위원
1994 전국무등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95 한국전통산수화전(국립현대미술관)
한국자연대전(한원미술관)
1996 전남도전 심사위원 역임
의재미술상 기념 초대전(광주 문화예술회관)
제1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97 전국무등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1998 서울신문사 초대 유명화가가 본 서울 한강 환경전
개인전(갤러리 상)
1999 제18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역임
경인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개인전(목포문화방송국 미술관)
2000 전국무등미술대전 운영위원 역임
개인전(갤러리 상)
2001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2002~03 전국무등미술대전 운영위원
Korean Arts Festival(예술의 전당)
제22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역임
2003 라혜석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안견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2004 의재 허백연 예술상 수상자 선정 운영위원 역임
중견작가 순회전
2005 한·러 아트페어 (세종문화회관)
제2회 북경 비엔날레 출품작가로 선정
(현)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 현대한국화협회이사
주 소 120-771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1동 455 벽산APT 114동 6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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