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보고, 대구의 재실
50. 군위 엄흥도 진묘 추정 묘 발견과 진묘, 가묘 미스터리
송은석(대구향교장의·대구문화관광해설사)
군위 엄흥도 묘소 꿈을 꿨다.
2026년 7월 12일 밤, 꿈을 꿨다. 꿈에 대구시 군위군 산성면 화본2리 신남촌에 자리한 충의공 엄흥도 묘가 나왔다. 이튿날, 오전 내내 간밤에 꾼 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홀로 군위 엄흥도 묘소로 향했다. 이날 묘소 방문은 올해 3월 5일 이후 43번째 방문이었다. 묘소 방문 때마다 묘역 주변을 주의 깊게 살폈다. 직업병이다. 문화유산 현장에는 어떤 식으로든 옛 흔적이 남아 있다. 이는 30년 가까이 문화유산 현장을 답사하면서 터득한 경험이자 지혜다. 그런데 이날, 묘역에서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묘를 하나 찾았다. 기존의 진묘(A)와 가묘(B)로 알려진 두 기의 묘 외 지금껏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묵묘(黙墓)였다.
말 없는 무덤, 묵묘(黙墓)
묵묘는 엄흥도 묘역에서 남쪽으로 약 20m 떨어진 숲속에서 발견했다. 엄흥도 묘소 지척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묘역에서 벗어난 숲속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묘소는 대부분 산에 있다. 2-3년만 벌초를 게을리해도 잡목이 올라오고, 길이 사라진다. 10년 정도 지나면 묘소는 숲으로 변하고, 시간이 더 흐르면 결국 묵묘가 된다. 한번 묵묘가 된 묘는 되살리기가 쉽지 않다. 어른들은 세상을 떠나고, 젊은이들은 묘소 위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묘소를 잃어버리는 메커니즘이다.
10개 석물로 조성된 미스터리 묵묘
묵묘는 봉분과 석물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봉분 앞에 놓인 석물이었다. 모두 10개의 돌로 구성되었는데 이런 양식의 묘소 석물은 처음 본다. 조선시대 민초들의 묘는 대부분 봉분 하나로 끝난다.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으면 묘 주인의 신상정보를 새긴 작은 상석 하나 정도는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한 묵묘의 석물은 크기는 작지만 모두 10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었다. 8개는 지면에 수평으로 박혀 있고, 2개는 수직으로 세워져 있었다. 비석인 양 수직으로 세워진 2개의 돌에는 글자가 아닌 수수께끼 같은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아뿔사! ‘엄(嚴)’ 자와 ‘흥(興)’ 자가 보인다
문양을 곰곰이 들여다봤다. 글자가 보였다.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 돌은 엄(嚴) 자의 윗부분(口+口+厂), 오른쪽 돌은 엄(嚴) 자의 아랫부분인 ‘감(敢)’을 파자(破字)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왼쪽 돌은 그냥 봐도 그렇지만 위아래를 거꾸로 놓고 보면 예변체(隷變體) ‘嚴’ 자의 윗부분과 거의 일치한다. 반면 오른쪽 돌은 ‘敢’ 자를 최대한 단순화해 표현한 것 같았다. 아마도 누군가가 이 묘의 주인이 ‘嚴’ 자와 관련 있음을 매우 비밀스럽게 표시해 놓은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정면에서 석물 전체를 내려다봤다. 신기하다. 또 글자가 보였다. 돌들이 놓여 있는 모습이 암만 봐도 ‘흥(興)’ 자다. 조선시대엔 묘소에 상석 하나 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이렇게 10개 돌을 사용해 기이한 형태의 석물을 조성했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 묘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무언가를 표시해 둔 건 아닐까? 혹시 이 묘가 군위 엄흥도 묘의 진짜 ‘진묘’는 아닐까?
묵묘 비밀을 풀 수 있는 key word ‘인향(引香)’
전통 예법에 ‘인향’이 있다. 다른 곳에서 향을 피워 혼을 불러 모신 후, 그 혼을 신위(神位)로 모시는 행위를 인향이라 한다. 군위 엄흥도 묘제는 매년 음력 10월 7일경 ‘A묘’에서 모신다. 이때 제일 먼저 행하는 절차가 인향이다. 인향 장소는 1980년대까지는 ‘C묘’ 혹은 ‘C묘-B묘’ 사이,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B’묘에서 행한다. 군위 엄흥도 묘제 인향에서는 향과 함께 술도 사용한다. 이는 허공의 혼을 부르는 ‘분향(焚香)’과 지하의 백(魄)을 부르는 ‘뇌주(酹酒)’를 동시에 행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행간에 숨은 뜻을 잘 읽어야 한다. 군위 엄흥도 묘소에는 진묘 외 별도로 가묘가 있다. 이는 진묘를 숨기기 위해서다. 그래서 남들 눈에 띄는 묘제 역시 진묘가 아닌 가묘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가묘는 허묘(虛墓)가 아닌가! 그래서 찾은 방법이 진묘에서 혼과 백을 모셔 오는 인향이었고, 인향 역시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C묘(진묘)→B묘(가묘1)→A묘(가묘2), 이젠 말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552년 전, 1474년 음력 2월 26일. 엄흥도가 71세를 일기로 군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지 17년 뒤요, 세조가 죽은 지 불과 6년 후였으며, 당시 임금은 세조의 손자 성종이었다. 엄흥도의 장남 엄광순은 자신들의 은거지였던 분토골 인근 월등 기슭에 아버지의 묘, ‘C묘(진묘)’를 조성했다. 그리고 위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B묘(가묘1)’를 조성했다. 이 같은 ‘C묘(진묘)’와 ‘B묘(가묘1)’ 시스템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참고로 1960년대 ‘C묘’는 수난을 겪는다. 이때 신도비·유허비·망주석·문인석 등이 훼손되고 사라졌다) 이후 1990년대 중반 부득이한 사정으로 또다시 ‘A묘(가묘2)’를 조성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C묘’는 묵묘가 됐다가, 2026년 7월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미스터리는 미스터리로 남는 것도...
묘에서 유골이나 지석(誌石)이 나오지 않는 한, ‘C묘’를 진묘로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엄흥도 묘가 군위에 있다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군위 엄흥도 묘 중 어느 것이 진묘, 가묘인지에 대해서는 최근까지도 불분명했다. 그런데 이번 ‘C묘’ 발견으로 ‘진묘·가묘’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확보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오랜 세월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정답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기 때문이다. 필자 생각으로는 서로 간에 도가 넘는 다툼만 없다면 엄흥도 묘 미스터리는 그냥 미스터리로 남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스토리텔러 입장에서는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스토리가 풍성하면 풍성할수록 훨씬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학자와 스토리텔러의 차이다. 필자는 스토리텔러다.
끝..
첫댓글 군위 엄흥도 진묘 추정묘 발견 과정과 진묘 추정 근거 등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왼쪽 메뉴 '대구시 군위군 엄흥도 이야기' 참고하십시오..
모두 9개 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대구선비 송선비 송은석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