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세보의 ‘사악한’ 쌍둥이---- 노세보 효과? 플라세보와 무엇이 다를까?
2024.04.16 09:00 김민재 리포터
플라세보? 노세보?
1999년 벨기에의 한 학교에서 26명의 학생이 코카콜라 음료를 마시고 나서 갑자기 피로감, 두통, 메스꺼움 그리고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다음날에도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러 학생들이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하자 코카콜라 회사는 다음날 즉시 학교에서 판매하던 모든 제품을 회수하였다. 이어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증상을 보고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급하게 소식을 듣고 조사에 나선 벨기에 당국은 즉시 해당 음료 판매를 중지시키고 전국에서 총 약 3천만 병의 음료를 회수시켰다. 조사가 끝난 후 벨기에 당국은, 놀랍게도 음료수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노세보(Nocebo)’ 현상으로 설명한다. © Getty Images
정말 황당한 일이다. 그렇다면 코카콜라를 마시고 부작용을 호소하던 수많은 사람은 무슨 일은 겪은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플라세보(Placebo)’에 반대되는 현상인 ‘노세보(Nocebo)’ 현상으로 설명한다.
노세보? 위약효과의 ‘사악한’ 쌍둥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여금 약이 효과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플라세보 효과와 반대되는 노세보 현상은 ‘부정적인’ 생각의 힘이다. 말만 들어도 힘 빠지는 용어인 듯 보인다.
누군가가 아침부터 ‘너 정말 안 좋아 보이는데 어디 아픈 거야?’라고 물어보면 이후 뭔가 아픈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아픈 증상이 더 심해지고 심지어는 아프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는 기분이 든다고 보고한다.
전문가들은 노세보 효과가 부정적인 기대에서 비롯되는
부정적인 건강 결과라고 주장한다. © Getty Images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의 보건 연구원이자 “노세보 효과: 말이 당신을 아프게 할 때(The Nocebo Effect: When Words Make You Sick)”의 저자 중 한 명인 샬럿 블리스(Charlotte Blease)는 멀미로 메스꺼움을 느끼고 있었을 때 다른 생각으로 주의를 돌리려고 했지만,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방해하면 노세보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고 상기한다. 그녀는 노세보 효과가 부정적인 기대에서 비롯되는 부정적인 건강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통증, 불안, 메스꺼움, 피로감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노세보 효과: 플라세보의 부정적인 버전
전문가들은 노세보 효과가 위약 효과로 알려진 플라세보 효과의 부정적인 거울 이미지라고 주장한다. 임상 실험을 진행한다고 가정했을 시, 한 그룹에는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실제 약을 투여하고 다른 그룹에는 유효 성분이 없는 설탕 알약을 투여한다. 이때 두 번째 그룹의 환자들이 두통이 완화되었다고 보고하면 의사들은 이 환자들이 위약 효과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두 번째 그룹의 환자들이 첫 번째 그룹의 환자들처럼 진통제를 복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고가 긍정적인 치료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플라세보 효과는 긍정적인 사고가 긍정적인 치료 결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말한다. © Getty Images
이는 놀랍게도 의학적으로 인정된 현상이다. 의료 전문가들은 노세보 효과가 플라세보 효과와는 정반대로 부정적인 생각이 치료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라는 점을 제외하면 매우 비슷한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노세보 효과, 코로나19와 백신 접종의 망설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연구자들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전 사람들의 기대치가 흥미롭게도 백신 접종 후의 느낌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스라엘과 영국의 과학자 연구팀은 60세 이상의 이스라엘 성인 7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들은 모두 코로나19에 대한 세 번째 백신 주사를 맞은 적이 있다.
이 연구를 이끈 이스라엘 바르일란 대학교 사회 보건 과학자 야코브 호프만(Prof. Yaakov Hoffman) 교수는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나 기대감인 ‘백신 주저 현상’과 주관적으로 보고된 부작용의 수를 모두 측정했다. 이들이 2022년 12월 사이언티픽 리포트 저널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 번째 접종 전에 부정적인 기대감을 가졌던 사람들은 세 번째 접종 후 부작용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에 백신과 백신의 안전성, 부작용에 대해 불안감을 많이 느낄수록 실제로 부작용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연구진은 백신과 백신의 안전성, 부작용에 대해 불안감을 많이 느낄수록
실제로 부작용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 Getty Images
그리고 전문가들은 노세보 효과와 백신 주저 현상이 결합되면 악순환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온라인에서 부작용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으로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은 부작용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이때 의사가 부작용에 대해서 기록하고 보고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부작용에 대한 언론 보도가 늘어나고, 이는 백신에 대해 주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부수적으로 낳을 수 있다.
의사가 노세보 효과에 대처하는 방법
의사 입장에서 노세보 효과를 유발하지 않고 환자와 대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의사는 환자에게 진실을 말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작용이 비교적 경미한 백신의 경우 노세보 효과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호프만은 실제로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반드시 위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에 근거하여 현재 경험하고 있는 부작용 중 일정 비율은 노세보 효과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전문가들을 포함하여 호프만은 이는 추측일 뿐이며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편, 다른 전문가들 역시 의사가 환자와 소통하는 방식이 노세보 효과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독일 에센 대학병원에서 통증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임상 신경과학 교수 울리케 빙겔(Prof. Ulrike Bingel)은 의사가 환자와 대화하는 방식이 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더 높은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서 백신의 경우 의사는 가능한 모든 부작용을 공개해야 하지만 환자를 겁에 질리게 할 수 있는 부작용 목록을 나열하는 대신, 부작용을 면역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면 좋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하면 환자가 부정적인 생각을 줄일 수 있고 부작용이 더 적거나 나타나더라도 덜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세보 효과는 진화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마음속의 부정적인 생각은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먼저 노세보 효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세보 효과는 환자의 비관적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노세보 효과와 플라세보 효과는 복잡한 신경과학적 과정을 수반한다고 알려져 있다. 노세보 효과는 신체 통증을 감소시키는 기전을 잠시 중단시키면서도, 오히려 뇌에는 더 많은 자극을 가해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과학자들 및 전문가들이 아직까지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우리의 진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초기 인류는 목숨을 걸고 도망쳐야 할 때를 대비해
부정적인 기대감을 가졌을 것이다. 이는 노세보 효과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 Getty Images
우리 조상들은 야생 동물이나 독이 있는 식물과 접촉하면서 경험한 것이 생존에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어떤 현상과 그 기전이 밝혀진 지금과 다르게, 어떤 음식과 동물이 해로운지 알기 위해서 인류는 내일을 대비하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초기 인류는 목숨을 걸고 도망쳐야 할 때를 대비해 부정적인 기대감을 가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는 오늘날의 현대 의료 환경과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기반으로 노세보 효과는 과거의 잔존물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