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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교회를 평생 다녀도 듣지 못한 구원받는 유일한 방법!! 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제가 중고등부, 대학부 때 교리에 대해서 배웠는데 이해가 안갔습니다. 교리를 배우면 성경이 잘 보이고 예수님이 믿어져야 되는데 교리를 배우다 보니까 점점 예수님과 멀어질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고 후배를 보았더니 너무너무 예수님이 좋아서 한 명은 고신대 신학대학을 갔고 한 명은 연세대 신학대학을 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3~4학년이 될수록 순하고 착하고 누가 때리면 얻어 맞을 것 같은 친구들이 점점 강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이상해지는 것입니다. 좋은 애들이 신학대학가서 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국시 공부할 때 독서실 옆에서 목사 고시를 준비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을 보고 ‘학교에서 뭘 배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떠들고 옆방에 피해를 주어서 얘기했더니 미안하거나 잘못했다는 말을 한마디도 안해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되려는 자들이 솔직히 부끄러웠습니다. 옆에 있는 제 동료들은 교회를 안 다녀서 제 얼굴이 빨개지고 ‘저도 교회 다닙니다. 전도에 방해됩니다’라고 해도 눈 하나 깜짝 안합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할 때 교만해서 나오는 것에 굉장히 실망을 했었습니다. 교리를 배우면 오히려 더 높아지고, 성도들을 섬기는 자들이 되지 않고 섬김을 받으려 합니다. 자기가 옳고 남을 꾸중해야 할 위치가 되고 섬김을 받을 사람들이 되어서 너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배웠다면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어 누가 보아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그분들을 보았을 때 종교인이었습니다. 이번주에 고민한 것은 종교인이냐 그리스도인이냐에 대한 것입니다. 종교인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많은 교회와 예수를 믿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분들이 종교인이 되어 있고 당연히 구원받는 줄 압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흠이 없는 줄 알고 다른 사람을 꾸중하고, 당연히 축복받고 잘되고 당연히 천국을 간다고 하는데 행동을 보면 세상 사람보다 훨씬 비양심적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인을 양성하지 않고 오히려 비양심적인 종교인들을 양성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가 그랬고 지금 우리 때와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 때도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유대인들은 천국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두개인은 믿지 않았지만 주류인 바리새인은 믿었고 유대인들은 천국이 있다고 믿었고 당연히 천국에 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 유대인들과 현재 우리 교인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에게 가면 나는 택함 받았고 구원받은 자이고 너희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자로 생각하면서 전도했다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할 일은 다 했고 선택은 네가 하는 거라고 돌아서 나옵니다. 제 후배들이 찾아와서 ‘기독교인들은 다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건방지고 남에게 함부로 말하고 상처주는 말을 쉽게 합니까?’라고 얘기합니다. 잘못된 것을 제가 설명드렸고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전도를 하면서 나는 택함 받았고 너는 택함 받지 못했다고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잘못 가르친것입니다. 처음에 예수와 십자가를 만났을 때는 낮아졌던 자들이 오히려 목사가 되고 장로, 전도사, 권사가 되고 교회에서 직분자들이 종교인으로 변하는 것은 성경을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배워야 됩니다. 성경을 배우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이 교회에 모이게 하십니다. 오늘 그 내용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를 보고자 합니다. 종교인은 구원받을 수 없고 가라지인데 가라지인 줄 모르고 알곡인줄 알면 큰일 납니다.
마태복음 6장 11절부터 15절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기도를 많이 하고 방언을 받았으면 방언 기도를 3시간 해야 구원받는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고 기도의 양을 이야기하고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기도는 그런것이 아니고 기도를 모르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주기도문 내용을 보면 위에 부분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늘 기억하며 사명을 가지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전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하는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그 말씀을 전파하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실 예수를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래 내용은 우리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너희가 말씀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것은 하루하루 내 마음에 등불이 되어 나를 이끌 수 있는 말씀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말씀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양식, 영의 양식을 먹었더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오셔서 너무 힘든 일을 겪었고 도저히 용서가 안돼요.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물으시면 솔직하게 저도 용서가 잘 안 됩니다. 그런데 말씀 속에서 용서의 방법을 찾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면 용서할 힘이 생기고 말씀을 먹어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하라. 하나님이 용서하라고 하셨지 않느냐 해도 용서가 잘 안 됩니다. 시골에 가서 돼지 여물을 보시면 위에는 맑은데 여물을 주려고 흔들면 속 안에 찌꺼기가 확 올라옵니다. 겉보기에는 용서한 것 같아도 우리 속은 끓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들어가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용서가 가능해집니다. 말씀을 받았을 때 그 말씀이 나를 용서할 수 있는 자로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이고 용서를 하게 될 때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면 구원받는다고 주기도문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께 용서받은 죄인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어야 나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긴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가 주는 시험을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입니다. 마귀가 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놀랍게도 우리 모든 인류는 악에게 붙잡혀 있다는 뜻입니다. 악에게 잡혀서 지옥 갈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기도의 목적은 구원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께 무엇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주시려고 하시는 것은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먹고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시험에 들지 않게 되어 악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기도문의 내용을 보면 악과 악인을 하나님은 분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죄 지은 악인을 용서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은 분류하시고, 악은 물리치고 싸워서 이겨야 될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기도문에 악인과 악을 분리하여 사람은 결단코 미워하지 말고 죄를 미워하라는 것이 주기도문의 요체입니다. 예수님은 악인도 사랑하시고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교리는 하나님이 미리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분리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택함 받았다는 의미를 잘못 받아들인 것인데 다음주에 택함 받았다는 의미를 정확하게 말씀드릴것입니다. 택함 받은 것은 구원받았다는 논리인데 전혀 아닙니다. 택함 받은 것과 구원받은 것은 아무 관계가 없고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오늘은 어려운 것을 하기 전에 더 중요한 기초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5장 38절 39절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했다는 것인데 사람이 갖고 있는 분노하는 마음을 그대로 가르친 것입니다. 말씀대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가르쳐서 유대인들은 민족주의에 빠지고 정복하여 지배하고 있는 다른 민족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을 보면 민족주의입니다. 민족주의는 상대방 국가를 미워하게 만듭니다. 중국 일본 한국이 주변 국가를 미워하고 자국 위주로 국수적인 협소한 생각들을 가르칩니다.
이것은 국민들을 죄 짓게 만드는 것이며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분명히 악인이 있다는 것인데 유대인을 괴롭히는 로마인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국가적인 문제이고 개인 문제가 아닌데 우리의 관점에서 개인의 문제로 보면 뒤에 나오는 말씀이 우리에게 적용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강압적이고 빼앗기던 상황에서 분노하고 싸우지 말라는 말씀이고 차라리 주어버리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분노하고 사람을 미워하다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예수님이 경계한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국가의 상황을 모르고 우리에게 적용하면 안 맞는 부분을 이해하시는게 좋습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에서 48절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38절에 이는 이로, 하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부분이고 죄를 짓지 않게 하시려는 말씀입니다. 43절에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이 성경에 없는데 성경을 확장시켜서 미워하고 싸우게 하기 위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가르치신 적이 없다고 하시고 44절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악인과 원수는 핍박하는 자 바로 로마인입니다. 그 당시 피지배 국가였던 이스라엘의 현황에 대해서 정확히 이야기하시고 계십니다. 말씀은 살아있어서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고 보셔야 합니다. 45절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놀랍게도 용서하고 사랑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산상수훈은 주제는 용서와 사랑이고 그렇게 할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라. 해와 비를 선인과 악인에게 다 주시고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사랑하는 자를 왜 미워하느냐, 그가 악인 같지만 용서하고 사랑해야 너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성경은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악인과 의인에 대해서 누가 선인과 의로운 자인가? 누가 악인과 불의한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과 악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 다릅니다. 자기가 불속에 뛰어들고 물에서 사람을 구하고 대신 돌아가신 많은 착한 분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의인을 그렇게 말하지 않고 의인과 선인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놀랍게도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의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의인이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장 6장 7장의 산상수훈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대 주제를 가지고 모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뜻이 무엇이기에 그를 하나님은 의인이라 여기시고 선한 자라고 말씀하실까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가난하다는 것을 〔아니〕라고 하며 ‘고통을 받다, 억압을 받다’로 눌려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아나〕에서 파생됐는데 전쟁에서 져서 점령을 당해서 억압을 받는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과 히브리어의 가난은 뜻이 전혀 다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관점이 달라서 우리 언어는 나와 너의 관점인데 히브리어의 관점은 나와 하나님의 관점이므로 전혀 다릅니다. 히브리어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생각했을 때 언어들이 파생된 것입니다. 우리 언어는 가난하다는 뜻이 비교하여서 상대적인데 히브리인들에게 가난하다 뜻은 절대적이고 그분과 나의 관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는 것에서 출발하여 언어의 구조가 우리와 너무 다릅니다.
원래 히브리어와 유대인들의 사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생명을 다해 사랑하십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해 자녀인 우리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고 내 아들, 내 자녀라고 말씀하시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은 ‘상수’입니다. 우리 사람은 ‘변수’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느냐, 가지 않느냐에서 결정되고 복은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나에게 주는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히브리어는 복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복을 받기 위해 나아가서 무릎을 꿇다, 하나님을 찬양하다, 그러면 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그분이 어떻게 주실 것이다.라는 언어 구조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해와 비를 내려주시고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공평하시고 사랑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께 나아가서 무릎을 꿇는 자, 그분께 마음으로 나를 복종시키는 자, 내 마음이 그분에게 점령당하여 복종하는 자가 천국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의 생각과 의지가 아니라 말씀을 따르는 상태를 구원 받는다고 하십니다. 교리는 하나님이 변수가 되어서 구원받는 자와 받지 않는 자가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선택을 못 받아서 지옥에 가야 된다면 하나님이 해와 비를 모든 만인에게 내리신다는 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이런 오해는 바로 언어의 구조를 이해못해서 생긴 것입니다.
성경은 정확하게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구원하려고 하시며 사람이 행동을 할 때 구원을 받게 되는데 교리는 상수와 변수가 바뀌어 있는 것입니다. 교리에서 하나님은 사람에 따라서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하는 예로 많이 드는 게 ‘야곱과 에서’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신다는 것은 개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주에 십계명의 언약이 민족과 맺으셨다고 말씀드렸고 야곱과 에서도 민족 이야기입니다. 원래 혈육의 장자인 에서는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혈육의 차자인 야곱을 장자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장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존재가 되었고 차자인 우리가 구원받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 이야기를 개인적 관계로 생각해서 완전히 오해하고 이스마엘과 이삭의 이야기도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혈육의 장자인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고 약속의 자녀는 바로 우리입니다.
예수님 안에 속한 자가 장자가 될 것이라 말씀하시고 믿음에 관한 것으로, 혈육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피가 섞이지 않은 우리가 약속의 자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스라엘은 구원을 못 받고 이방인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가슴을 치며 하는 이야기를 개인 이야기로 바꾼 것입니다.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하는 것이 아니고 언어의 구조를 몰라서 잘못 받아들여 오늘날 교리가 뒤틀렸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다 구원하려 하시므로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언약을 지킬 때 구원받을 수 있고 그 언약의 내용이 용서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니 너희가 나를 정말로 사랑하면 내게 나아오라고 말씀하시는 언약의 내용이 마태복음 5장 6장 7장 전부입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부터 12절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핍박을 받던 시대에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핍박을 받을 각오 하는 것이고 지금 예수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너무 다릅니다.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는 핍박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예수 믿는다는 말을 안 했습니다. 핍박을 안 해도 혹시 손해 볼까봐 예수 믿는다고 말하기가 어려운데 핍박을 받는 상태에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왕따를 당하고 쫓겨날 각오를 해야 되고, 감옥에 가고 죽어야 될 각오와 이혼 당할 각오와 수많은 어려운 일을 각오해야 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순간에 주홍 글씨가 달리는 상황에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입으로 시인하는 것과 지금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다릅니다.
손해와 핍박을 각오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시인하는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와 같이 천국이 저희의 것입니다. 심령 곧 마음으로 믿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입으로 시인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중간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긴 자, 마음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들은 믿음의 성장 과정들입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시작합니다. 애통은 슬퍼한다는 뜻이 아니라 헬라어로 누군가의 죽음을 애통해한다는 것으로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슬퍼하고 주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심을 믿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부터 믿음이 시작되고 성장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에게 주님이 적용하신 말씀이 13절부터 16절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부터 16절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렇게 팔복을 이행하는 자, 순종하여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순종하는 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었을 때, 또한 의를 위하여 기꺼이 핍박을 받는 자가 되었을 때 그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하신 말씀이고 종교인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종교인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예수님이 주인 되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아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아닙니다. 말씀을 따라 내 생각을 억누르고 말씀이 나를 인도할 때 주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부터 20절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로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율법은 〔토라〕로 모세 5경이고 선지자는 모세입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모세 5경을 완전케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토라의 가르침이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법이 아니라 범죄하지 말고 이웃에게 피해 주지 말라는 토라의 가르침입니다. 십계명의 1장이 ‘너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토라의 중심 내용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데 마음속에 다른 신을 두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마음은 냉장고에 가 있는 경우도 있고 드라마가 어떻게 될까 마음을 다른 곳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하신 것은 마음에 두는 우상을 이야기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과 재물을 사랑하는 두 가지 우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에 마음을 빼앗기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살까 염려하는 마음, 돈을 더 벌고 싶은 욕심과 남보다 돋보이고 싶은 것에 마음을 두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 자기를 낮추라는 것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을 낮추고 마음으로 믿는 겸손한 자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 '용서하라. 사랑하라. 내가 용서하고 사랑하듯이 너희도 그렇게 하면 나의 아들들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말씀이고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와 새 언약을 맺으시고 그렇게 아니하면 멸망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은 새 언약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6장은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하고 기도해야 될 것인가, 7장은 경계와 결론을 내리는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새 언약의 가장 중요한 것은 마태복음 5장이고 성경의 축약본 바로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보시면 성경 전체를 보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읽으시고 시간이 있는 분은 써도 좋습니다. 늘 일용할 양식을 드시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목적은 일용할 양식을 먹어서 우리의 영이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 14절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다른 말씀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24)고 하십니다. 많은 자들이 들어가려고 해도 못 들어 가지만 놀랍게도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을 말씀하시고 7장은 선언을 하십니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천국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늘 읽고 기억합시다. 사람이 만든 교리는 하나님 중심이 아닌 사람이 중심된 주제는 버려야합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세상에는 말씀보다 기도, 예언, 환상, 꿈, 계시가 중요하다는 거짓 선지자가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들어서 천국에 갔다 오신 분도 많고 지옥 갔다 오신 분도 왜 그리 많습니까? 그런 것에 현혹되지 마시고 말씀과 언약이 여러분을 살립니다. 모세 5경의 언약과 십계명의 언약을 예수님이 완전케 하시려 오셨고 그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나와 혼인할 것이고 천국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언약을 이행하는 자가 받습니다.
마태복음 7장 18절부터 20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예수님은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한다 하시고 거짓 선지자에게 잘못 빠지면 나쁜 나무가 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나무이고, 누가 의인이고 선한 자일까요?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은 같은 현장에서 첫 구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 하나님께 마음이 점령당한 자, 언약의 말씀으로 누르는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씀에 따라가는 자가 좋은 열매를 맺고 다른 것에 주목하면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여기에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구원받는다고 적혀 있는데 왜 행위구원론자 이단이라 말합니까?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살고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돌아가실 때 제자들에게 나의 안에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구원받았다, 택함 받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안에 있으라(요15:4) 나의 밖에 있으면 말라 불에 던져질 것이다(요15:6) 하시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의 안에 있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 23절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 앞에서 선지자와 선생이었고 귀신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수많은 이적과 기사가 일어난 것에 주목한 것은 불법입니다. 법은 정확하게 가르침 즉 언약입니다. 언약은 낮은 자가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용서하고 낮은 자로 섬기며 사랑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언약 안에 있지 아니하면 교회에 나오고 이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병이 나아도 소용없습니다. 성도를 특별한 자로 교만하게 만드는 것은 죽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오실 때까지 주님 안에 순종하며 낮은 자로 삽시다. 이 말씀 안에 있지 아니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예수님이 정확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절부터 27절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언약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집을 지어야 됩니다. 여러분 모두 집을 짓는 자들이고 마음의 성전에 어떤 집을 지어야 될까요? 바로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 말씀을 늘 명심하고 매일 일용할 양식을 삼고 사는 자는 반드시 구원받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에 기초를 두면 이 세상 마지막 때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창수가 부딪힐 때 그 집은 무너지고 구원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이 땅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날 때 믿음의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들은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러 갈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반석에 집을 짓지 못한 자들이 말씀이 아닌 은사에 주목하고 기도에 집착하는 것은 구원과 무관합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과 언약을 지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는 목적은 언약을 지키고 악에서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반드시 구원받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구원받기 쉬웠다면 이렇게 기도하게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일매일 악과 싸우는 것이고 시험에서 이기게 하기 위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날마다(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읽고 명심하고 순종하여 살아갑시다. 반드시 구원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구원받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말씀으로 구원받는 유일한 방법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마태복음 5장 6장 7장 말씀을 명심하여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하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자기 멍에를 메고 내게 와서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말씀하신 것 같이, 교회는 성도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라가서 우리가 예수를 닮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이 목적임을 배웠습니다.
주님 그 예수님을 닮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옵소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내가 주께 왔사오니 성령님이여 가르쳐 주옵소서.
그리고 더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