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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좀 쌀쌀하죠 조석으로 몸신경을 써야할 때라 봅니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늦었어도 늦은게 아니란 느낌이 요즘 들어 강하게 올라와
책소개를 할까 합니다^^
운명이다...전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많은 책들이 나왔는데 그중 운명이란 말이
끌어 당기는 강한 마력에 이책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고종인산 이래 가장 많은 5백만이 넘는 국민들이 그분의 죽음을 애도하며 내가족이
우리곁을 떠나간 것처럼 우린 그렇게 가슴이 비어졌습니다.
생전에 철없는 국민들이 조중동 조폭언론에 휘둘려 노대통령에게 원망들을 몰아댔건만
일일이 대응않고 감내하다 당신가슴을 부여잡고 더나가 당신이 원죄다 란 식으로 이승을
떠났으니 그분 가슴속이 어땠을까? 머리로 정리가 될 수 있을까요!!!
해방이 되었지만 이승만에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으로 지어지는 시기 내내 일반
국민들이 그렇게 지도자에 대해 무식하리만큼 대든적 있나요?
온갖 불만에 일안풀리는것도 대통령탓하는 국민들 그 이전 시대엔 왜 그리 순종적이었는지요?
총칼이 무서워서 아님 불법체포, 고문 , 학살이 두려워서였나요?
이제는 압니다!
비겁한 국민이었음을...머리가 없이 조중동 세치 혀에 이끌린 무뇌의 집단이었고 중세시대
마녀사냥처럼 그렇게 눈들이 돌아가고 머리가 어떻게 되었음을 말이죠...
진실은 다가서려 할때만 문을 열어줍니다.
상상해서는 추측해서는 진실은 가까이 오게 하질 않습니다.
지나고나니 빈자리가 그렇게 컸음을 이제는 많은 국민들이 가슴으로 느낍니다.
고물가, 양극화, 청년실업, 열악한 노동환경, 비정규직문제, 환경파괴, 인권유린, 사대외교 국가.지자체
채무급증 등등 이전에도 있었지만 체감하는 정도가 비교가 않됩니다 ㅠㅠ
책내용을 간추리기엔 너무 많은 내용이 있으며 하나 하나 대목을 보면 그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됩니다.
대통령의 공과를 어떻게 자로 잴수 있을까요?
결국 그건 같이 살아간 동시대인들의 공과 다름 아니라고 봅니다.
결과로 보면 자주국방이나 대외외교정책이나 경제지표, 인권개선, 복지제도 확충 등 개선된 면이 많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나라 국민들이면 다 시간을 내어서 이책을 꼭 봐야 된다 생각합니다.
민주시민으로 살아갈 지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의 인생 이력을 올려봅니다.
이것도 우리가 좋아하는 역사적 사실이지요! 개인사도 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이글을 쓰는 입장은 노빠래서도 아니고 노사모이래서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책을 읽고나서 그분의 생각을 헤아리지 못했음에 제자신이 얼마나 작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한번 느껴 보시죠!
그분이 살아온 인생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비교하시길 바랍니다~~
1. 유년과 성장
1946.9.1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인 아버지 노판석씨와 어머니 이순례씨
사이에서 3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나다.
1959 경남 김해시 진영읍 대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영중학교에 입학하다.
1960.2 이승만 대통령 생일 기념 글짓기 행사에서 동급생들과 백지를 내다.
1960.3 부일 장학생에 선발되다.
1963.2 진영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상고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다.
1966.2 부산상고를 졸업(53회)하고 어망회사 '삼해공업'에 입사하다.
1966 봉하마을 뱀산에 토담집 마옥당을 짓고 고시 공부를 시작하다.
1966 울산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산업재해를 당하다.
1966.11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에 합격하다.
2. 도전과 성취
1968.3 육군에 현역으로 입대하다.
1971.1 강원도 인제에서 육군 상병으로 만기제대하다.
1971 3급(현 5급) 공무원 1차 시험과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하다.
1973 권양숙 여사와 혼인하고 장남 건호를 얻다.
1973 맏형 영현 씨 교통사고로 사망하다.
1975 제17회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7기 연수생이 되다.
1975 장녀 정연 태어나다. 아버지 노판석 씨 사망하다.
1977.9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하다.
1978.5 변호사를 개업하다.
3. 인권변호사
1981 '부산일보'에 생활법률상담 연재를 시작하다.
1981.10 부림사건 변론을 맡다.
1982 문재인 변호사와 공동사무실(현 법무법인 부산)을 열다.
1982.5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변호를 맡다.
1984 부산공해문제연구소 이사를 맡다.
1985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다. 울산,마산,창원,거제도와
경북구미공단 등을 다니며 노동운동을 변론하다.
1986.5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모태가 된 정법회 창립에 참여하다.
1986.6 송기인 신부 권유로 천주교 세례(세례명 유스토)를 받다.
1987.2 고 박종철 군 추모대회에서 연행되어 부산시경 대공분실에 구금되다.
1987.5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다.
1987.9 대우조선 고 이석규 씨 유족을 돕다가 '장례방해', '제3자 개입'으로
23일간 구속되다. 변호사 업무 정지처분을 당하다.
1987.12 '양김분열'속에 치러진 제13대 대선에서 공정선거감시운동 부산본부장을 맡다.
1988.4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통일민주당,부산 동구)되다. 국회 노동위원회에서
이상수, 이해찬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 활동하다.
1988.6 변호사 업무 정지 해제되다.
1988.12 '제5공화국비리조사특별위원회'에서 '청문회 스타'로 각광받다.
1989.3 제도정치에 한계를 느끼고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다.
4. 통합의 정치
1990 3당합당에 반대, '작은 민주당'을 창당하다.
1990 민자당의 방송법 등 날치기 처리를 규탄하며 김정길, 이철, 이해찬 의원과 함께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다.
1991.9 야권통합을 주도하여 통합민주당 대변인이 되다.
1992.3 제 14대 총선(민주당, 부산 동구)에서 낙선하다.
1992 김대중 대통령 후보 청년특위 물결유세단장을 맡아 제14대 대선에 참여하다.
1993.3 민주당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당선되다.
1994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설립하다.
1994 '여보, 나 좀 도와줘'를 출간하다.
1995.6 부산시장(민주당) 선거에서 낙선하다.
1996.4 제15대 총선(민주당, 서울 종로)에서 이명박, 이종찬 후보와 경쟁하여
3위로 낙선하다.
1996.11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 참여하다.
1997 SBS 라디오 '노무현 김자영의 뉴스대행진'을 진행하다.
5. 원칙과 소신
1997.11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위한 방송연설을 하다.
1998 어머니 이순례 씨 사망하다.
1998.7 제15대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다.
1998 정치 업무 표준화 시스템 '노하우2000'을 개발하다.
1999 부산 출마를 선언하고 종로지구당을 포기하다.
2000.4 제16대 총선(새천년민주당, 부산 북강서 을)에서 낙선하다.
2000.4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탄생하다.
2000.8 해양수산부 장관에 취임하다.
6. 신화를 만들다.
2001.9 부산후원서 대권 도전을 선언하다.
2001.11 '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출간하다.
2002.3 민주당 국민참여 광주경선에서 1위를 기록하며 노풍을 점화시키다.
2002.4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다.
2002.10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를 출간하다.
2002.10.20 개혁국민정당이 창당발기인대회에서 노무현 후보 지지를 결의하다.
2002.11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와 후보단일화에 성공하다.
2002.11.19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다.
7. 대한민국 대통령
2003.2.25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다.
2003.4 청남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주다.
2004.1 균형발전 3대 특별법 서명식을 갖고,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 선포식을 갖다.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을 확정하고, 60년만에 용산을 돌려 받다.
2004.3.12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다.
2004.4.15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얻다.
2004.5.14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를 기각하다.
2004.5.20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다.
2004.10 과학기술부를 부총리 부처로 승격시키고 장관을 부총리로 임명하다.
2005.3 투명사회협약 체결식을 갖다.
2005.7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과 함께 대연정을 공식제안하다.
2006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시작하다.
2006.2 직접 개발에 참여한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 'e-지원'을 특허등록하고,
누구나 무상으로 활용할 수 있게 공개하다.
2006.4 독도 영토주권 문제에 대한 한일관계 특별담화를 발표하다.
2006.8 2030년까지의 국가 장기발전전략인 <국가비전2030>을 발표하다.
2007.1 책임정치 구현을 위해 대선과 총선 시기를 일치시키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하다.
2007.2 당의 요구로 열린우리당 당적을 버리다.
2007.6 대통령 비서실에서 '있는 그대로, 대한민국'을 출간하다.
2007.7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의 기공식을 갖다.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발전을 위한 2단계 균형발전 선포식을 갖다.
2007.9 '한국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를 출간하다.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기공식을 시작하다.
2007.10 평양을 방문하여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10.4 공동선언을
발표하다.
8. 귀향,그리고 서거
2008.2.25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오다.
2008 봉하마을에서 친환경 생태농업과 하천습지 복원, 숲 가꾸기 등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다.
2008.3 봉하마을과 화포천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직접 청소하다.
2008.4 광주 망월동 5.18 묘역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강물처럼'이라는 글을
남기다.
2008.5 김해 특산물인 장군차밭을 방문하여 제다(製茶 )체험을 하고, 봉하마을에
장군차나무를 심다.
2008 함평,진주,하동,광양,평창,영월,정선,영동,논산,금산,서천,함양 등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모범사례를 직접 찾아다니다.
2008.6.14 친환경 농사를 위해 논에 오리를 풀어 놓는 행사를 갖다.
2008.10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강연하다.
2008.10.20 콤바인을 몰고 봉하 오리쌀을 직접 수확하다.
2008.12.5 봉하 방문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칩거하며 '진보주의' 연구와
회고록 준비를 시작하다.
2009.4.30 검찰에 출두하다.
2009.5.23 서거하다.
좀 다소 긴 글이 되었지만 이 내용을 보시면 이렇게 힘들게 민주주의와 노동현장과 인권개선을 위해 구속까지
되며 변호사로서의 풍요한 삶을 버렸고 대통령으로서 그저 결재만 하고 조중동하고도 악수하고 재벌이나 미,일
과도 원만히 지냈다면 비극의 대통령은 않될것이다.
그러나 노무현대통령 인생사를 보면 알겠지만 추호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살아온 삶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항상 알려고 노력해야 참역사인의 자세라 생각하여 우리가 모르는 아니 잘못 아는 진실을 같이 알고자
이렇게 글올림을 참고바랍니다^^
첫댓글 공감이 가는 글 입니다.
그렇습니다! 의인으로서 민주투사로서 독재에 항거하고 노동현장에 집회현장에 몸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살아왔으며 국민에게는 한없이 낮은 위치로 자세하고 대외적으로는 얼마나 다당한 우리 대통령이었나요 가장 아깝고 훌륭한 지도자로 그시대의 한계는 당신의 한계가 아닌 우리 국민 민역량의 한계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윤복현님은 저런 이력을가진 역사상 지도자중에서도 혹은 현재 다른 세계 국가와 여러 지도자중에서 저런 이력을 가진 지도자를 본적있습니까? 나는 노통말대로 링컨외에는 생각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힘껏 침튀기고 이야기할때 과연 자신이 힘써서 새롭게 알은 내용인지 아님 썩어빠진 조중동 언론패거리들이 흘린 정보에 현혹되어 우매한 상태인지 냉정히 자신을 판단내려야 합니다 아님 식민사관이 아직도 한국사라고 믿는 강단사학자 류에 불과할 뿐이죠 웃기는 예를 든다면 봉화에 지어진 집이 아방궁이라고 하고 또 취미로 즐겼던 동호회 수준의 일백만원대 요트를 호화요트라고 개거품들 물고 난리쳤죠 무식이 극에 달합니다 ㅎㅎㅎ
네 잘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뭘모르고 구업을 짓는분들이 있어 더 이상 쌓지 말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올렸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많이 성장하고있는 그런 시기가 아닌가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뇌에 있는 정보로 받아들이고 인식하기때문에 저마다 받아들이는 차이가 있지요
자기정보로 인식하고 해석하기전에 더큰 의식으로 세상을 읽을줄 알아야한다고 봅니다.
개인의 의식성장=국가성장=지구의식성장 ..이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노무현대통령을 아주 저급한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의식이 다른각도로 볼 생각이 없고, 보고싶지 않아서..그리고 자기네 이익만 추구하는
어두운 양심의 기준으로 보고있는건 아닐까요?
국민들이 잠에서 깨어나야합니다.
깨어나고 있으니 걱정않하셔도 될것 같습니다^^
자기만 위한 삶을 살아온 위인들이 누가 누굴 탓하다니요.
그런 몰지각한 행태에 여기저기 정의의 화살을 날리니 이건 몰매가 아니라 몰살이지요 ㅎㅎㅎ
정의는 승리한다! 참 진리입니다~~ 여기 삼태극에서도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정의의 깃발을 드높이 휘날립니다^^
잘 보아네요 노무현은 보통 사람로 행정수반이 된 사람 물론사람 이니 말실수나 행동 실수 정도는 있지요 그러나 그거 가지고 폭력 휘둘려 대는 조중동 그리고 그거 때문에 대통령탄핵안 에 고심 하시고 나라 정치 하라고 선출된 국회의원이 대통령 탄핵이나 하고 그래서 탄핵안 결의 한 당 그 이후 총선에서 나온 결과가 잘 말 해 주지요
맞습니다 모든 원죄는 조중동 조폭언론과 검찰, 그리고 거기 행동대원으로 선봉에 선 한날당민주당 정치배들에게 있음을 우리 민심은 잘 꿰뚫고 있흠이다"&"
그렇게 돌아가실분이 아니셨죠....
그럼요 나중에 진실이 나올거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