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2000여명 최다 간단한 검사로 부실 진단
황당한 오진도 많아
50대 주부 권모씨는 2년 전 여름, 유방암 검사를 위해 유방촬영술을 받았으나 '정상'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3개월 후 왼쪽 겨드랑이에 멍울이 만져져 다시 검사를 받았다. 그때도 암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가슴과 겨드랑이 통증이 이어져 그해 11월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은 결과, 유방암 3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권씨는 암 덩어리와 함께 왼쪽 유방을 잘라내는 유방절제술을 받아야 했다. 처음에 암 진단을 받았다면, 암만 잘라내고 유방절제술은 피할 수 있었다. 권씨는 소비자원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소송을 해도 5개월 진단 지연에 따른 소액의 위자료만 보상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소송도 포기했다.
이처럼 암 검진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가 1년 안에 '암 환자' 통보를 받는 황당한 경우가 빈번하다. 5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이애주(한나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암 검진에서 '음성'(암 없음) 판정을 받고도 이듬해 암으로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무려 7124명이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건강보험공단 5대 암 검진' 사업 결과를 분석한 내용이다.
◆허술한 암 검진 사업
1년 전 멀쩡했다가 한 해 만에 암 환자 판정을 받은 사람 중에는 유방암 환자가 2384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위암(2147명), 대장암(2101명), 자궁경부암(354명), 간암(108) 순이었다.
이 중에는 그사이 암이 새로 발생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막을 보면, 암 검진에서 암을 놓쳤다고 볼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유방암의 경우, 2007년 암 검진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은 131만5763명. 그중 2384명이 1년 만에 암 진단을 받았으니까 암 발생률은 0.18%이다. 국립암센터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는 유방암 검진 대상은 40세 이상인데, 이들의 유방암 발생률은 0.08%라고 밝혔다. 즉 '1년 전 음성' 환자의 발생률 0.18%는 40세 이상 여성의 발생률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편이라는 뜻이다. 최소 절반인 1200여명의 유방암 환자는 암을 조기에 진단을 받을 기회를 놓친 셈이다. 모든 암은 초기에 치료해야 생존율이 높다. 유방암 1기의 경우 5년 생존 확률은 98%지만, 3기로 가면 69%로 떨어진다.
◆"낮은 비용이 부실 검진 초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도하는 국가 암 검진이나 일반 종합검진에서 유방암 검진은 주로 유방촬영술로 한다. 이는 유방을 엑스레이로 찍어 유방암에서 흔히 보이는 작은 석회 조각 등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한국 여성은 이른바 '치밀 유방'이라고 해서 유방 조직 자체가 매우 촘촘해 엑스레이로 유방을 찍어도 조그만 암 덩어리는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고려대병원 외과 이은숙 교수는 "치밀 유방이 많은 50세 이전에는 유방촬영술과 함께 유방 초음파를 같이 받아 보는 게 좋다"며 "20·30대는 암 발생 속도가 빨라 6개월 사이라도 새로운 유방암이 생길 수 있으니 작년에 정상 판정을 받았어도 증상이 있으면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위암 검진은 방사선에 잘 보이는 액체를 마신 후 위벽 상태를 살펴보는 위장 조영술과 위 내시경 중 하나를 환자들이 선택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위암 전문가들은 내시경이 직접 위벽을 관찰하고 조그만 이상이라도 즉시 조직검사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가능하면 내시경 검사를 받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대장암 검진도 같은 이유로 내시경이 더 정밀하다는 평가다.
폐암 검진은 대부분 흉부 엑스레이 촬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회사원 박모(51)씨는 매년 회사에서 시행하는 종합검진을 받아왔지만 최근 폐암 2기 진단을 받았다. 흉부 엑스레이로만 암 검진을 받아 가슴뼈 뒤에 숨은 폐암을 놓친 것이다. 한 번쯤은 보다 정밀한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폐 검진을 받아볼 필요가 있었던 경우다.
정부 주도 암 검진 비용이 지나치게 낮아 부실 검진을 초래하기도 한다. 자궁경부암의 경우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지불하는 검진비는 5700여원이다. 하지만 최근 병·의원에서는 자궁경부암 검진으로 2만~4만원 하는 특수 검사법을 이용하고 있다. '5700원 검사'는 외부 진단기관에 덤핑 가격으로 넘겨져 부실 검진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국립암센터 박은철 국가암관리 사업단장은 "암 검진 병원의 진단 성적을 조사하고 있는데 5~10%는 검진 내용이 부실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며 "조사가 끝나면 암 검진 지정 의료기관 자격을 취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