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문학관....
왜 원서라고 이름지었을까?(제 개인적으로는 이 이름이 좀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혹시 오탁번 교수님의 호일까? 아니면 무슨 심오한 뜻이 있는 것일까?
가기 전부터 무척이나 궁금했던 이름...하지만 백운면의 옛날 이름이었다는 말에 맥이 탁 풀렸지요.
충북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이름도 참 이쁜 곳에 위치한 원서문학관....
가는 길은 그 흔한 슈퍼(구멍가게) 하나 보이지 않는 첩첩산중 오지 중의 오지였어요.
세 시간 여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

날이 더워서 그런지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고
보이는 건 산산산, 물물물 뿐입니다.
살고 싶은 곳이라고나 할까요?
만약 이곳에 연고가 있다면, 당장 달려내려와 살고픈 곳입니다.
뜨거운 한낮의 햇살이 머리 위를 짓누르는 시각....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백운국민학교 애련분교...작고 아담한 분교의 모습이지요?
교실이 단 세 동밖에 없어요.

학교라기보다는 일반 가정집 같은 느낌이 듭니다.
주인은 없고, 검둥개 깜별이가 반겨줍니다.
이 녀석, 짖지도 않고 살랑살랑 꼬리까지 흔드네요.
먹던 빵을 주자, 얼른 물고 그늘로 가는 깜별이....

오탁번 교수님은 손님이 와서 읍으로 점심 드시러 나갔다며
조금 기다리라고 하시네요.
그 동안 우리는 정원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눈길을 끄는 함박꽃...하얗고 탐스러운 꽃송이...

알록달록 무늬를 자랑하는 나리과의 꽃...

오탁번 선생님의 시가 새겨진 바위...
오탁번 선생님은 어머니에 대한 정이 각별했던 듯 싶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을 조소로 만든 것이 군데군데 눈에 띄네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오후입니다.
처음 뵙는 오탁번 선생님은 마치 오라버니 같기도 하고, 이웃집 개구쟁이 같기도 한
천진난만한 얼굴을 가지신 분이셨어요.
대학시절, 신춘문예에 동화, 시, 소설까지 당선한 신춘문예 3관왕....
35년 간이나 몸담았던 고려대학교를 이태 전 퇴임하시고 이곳에서 정원을 가꾸며 집필 활동을 하신다는 선생님....

교실 하나는 집필실로....
나머지 두 개는 세미나실과 교실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한림대 교수이신 사모님이 아직 완전히 내려오시지 않아, 많은 시간을 혼자서 보내시고 계신 것 같았지요.

점심을 같이 한 분들은 백운국민학교 졸업생들이면서 현재 백운면에 살고 계신대요.

교수님은 직접 사인한 시집을 건네주셨지요.

오래된 학교 문패....
그 곳에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선뜻 제안하시는 오탁번 선생님을 뵈니
참으로 세련되고 쿨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이곳에서 '시의 축제'를 벌이고 세미나실을 빌려주기고 하고, 각종 행사를 벌인다는 선생님...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운영하기는 역부족이라고 하셨지요.
가깝기만 하다면, 제가 당장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답니다.

교실 복도에는 야생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우리 나라 유명한 시인들의 사진과 육필원고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그 옛날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때묻은 책상과 걸상....
책상과 걸상이 붙어 있었어요.
이런 책걸상 저는 처음 보았지요. 너무 신기해서 자꾸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보았답니다.

문학관이라는 것....
그것을 운영한다는 것....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지요.
가장 중요한 건, 죽어있는 문학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일년 내내 살아 있는 문학관을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어요?
아이들의 웃음소리, 재잘거리는 소리가 교실을 꽉 채울 수 있다면?
그곳에 온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뭔가 하나씩 가슴에 씨앗을 품고 갈 수 있다면?
그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오탁번 교수님은 말씀하시더군요.
"문학관을 운영하고 싶다고?
그럼, 여기로 와서 이곳을 운영해 봐!"
어려운 일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수없이 좌절하고, 또 좌절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누구도 안 하려고 한다면?
그래서 하려고 하는 겁니다.
속으로 이렇게 대답은 했지만...
사실 저도 두렵고, 힘든 생각에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망설이고 있답니다.
날씨 선선한 날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드리며 원서문학관을 나섰습니다.
맑고 깨끗한 소년의 모습을 가지신 오탁번 관장님....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 오탁번 저서
시집
아침의 예언(조광, 1973)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청하, 1985)
생각나지 않는 꿈(미학사, 1990)
겨울강(세계사, 1994)
1미터의 사랑(시와시학사, 1999)
벙어리장감(문학사상사, 2002)
오탁번 시전집(태학사, 2003)
손님(황금알, 2006)
소설집
처형의 땅(일지사, 1974)
내가 만난 여신(물결, 1977)
새와 십자가(고려원, 1978)
절망과 기교(예성, 1981)
저녁연기(정음사, 1985)
혼례(고려원, 1987)
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문학사상사, 1988)
순은의 아침(나남, 1992)
연구서
현대문학산책(고려대출판부, 1976)
한국현대시사의 대위적구조(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88)
현대시의 이해(나남출판, 1990)
시인과 개똥참외(작가정신, 1991)
오탁번 시화(나남출판, 1998)
헛똑똑이의 시읽기(고려대 출판부, 2008)
첫댓글 아, 오탁번 선생님을 뵙고 오셨군요. 대학 입시에 수학 문제를 한 문제 풀었지만, 국어 점수가 좋아서 합격하셨다는 일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ㅎㅎ
동화, 시, 소설....세 분야를 두루 섭렵하신 분인데...소박하고 소탈하고...소년 같은 분이었습니다.